패왕전설 21화
무료소설 패왕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9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21화
21화
이에 여인을 자세히 살피려고 했으나 헝클어진 머리가 얼굴을 가리고 있어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손으로 조심조심 머리카락들을 걷어내는데 여인이 갑자기 눈을 떴다.
“…….”
“…….”
순간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그 상태 그대로 서로의 눈만 말똥말똥 바라보며 아무 말도 못 하고 굳어버렸다.
‘니미, 하필 이럴 때 눈을 뜨냐?’
‘뭐야?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그리고 저 자식은…….’
여인이 이런 생각을 할 때 어젯밤에 있었던 일들이 순식간에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여인은 조용히 분위기만 살피다가 그 자리를 뜰 생각이었다. 그러나 술 먹고 갈수록 개가 되어가는 유운무를 보면서 자신들의 정보가 많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살수는 목표물에 대한 정보를 토대로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그 정보가 완전히 잘못되었으니 이것을 알리고 계획을 다시 세워야 했다.
게다가 강무진에 대한 것 역시 자신이 알고 있던 정보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어제 강무진은 처음에는 좀 얌전하더니 술에 취하자 옷을 벗어던지며 유운무와 같이 생난리를 치는데 차마 옆에서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자신이 받은 정보로는 강무진이 사람을 포용할 줄 알고 인간적이라고 되어 있었지, 저런 개망나니 짓을 한다고는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혹시나 두 사람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일부러 저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유심히 지켜본 결과 두 사람은 원래 술에 취하면 그렇게 개가 되는 것 같았다. 그러니 결국 자신들이 받은 정보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여인은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 사실을 알리고 계획을 새로 세워야 했다.
이에 바로 방을 나오려고 했으나 눈앞에서 자꾸 허점을 드러내는 유운무를 보면서 갈등이 생겼다. 계속 저런 상태라면 자기 혼자서도 능히 죽일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 때문에 벌써 세 곡이나 금을 켰음에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그 개 같은 유운무가 달려들어서 억지로 술을 먹이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기녀들도 웃으면서 그것을 한 몫 거들었다. 그것을 보고 잠시 말리던 강무진도 어느새 합류해서 자신에게 마구 술을 먹였다.
처음에는 술을 안 마시려고 완강하게 반항을 했다. 그러나 혹시나 자신을 알아보고 시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술을 조금씩 받아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자 유운무와 강무진의 행동이 더욱 심해졌다. 처음에는 술잔으로 조금씩 먹이더니 나중에는 쓰러트려 놓고 억지로 입을 벌리게 해서 병째로 술을 들이부었던 것이다.
여인은 여태까지 수없이 많은 살행(殺行)을 해왔지만 그것이 일이니까 어쩔 수 없이 죽인 것이지 정말로 죽이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처음으로 상대를 진심으로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났다.
자신도 옷을 벗고 춤을 추었던 것 같기도 했고 나중에는 조금 아팠던 기억……?
아프다?
왜 아프지?
설마…….
순간 여인은 후다닥 일어나며 자신이 누워 있던 곳을 봤다.
“헉!”
피였다. 그곳에 피가 배여 있었다.
“아, 아니 난……. 저… 그…….”
여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강무진은 순간 말을 더듬거리며 얼굴이 빨개졌다. 여인의 나신을 본 것도 처음인데 그렇게 갑자기 움직이자 보이지 말아야 할 곳까지 다 보였던 것이다.
하필 그럴 때 또 여인과 눈이 마주치니 머리가 하얗게 되면서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는 강무진을 쏘아보던 여인이 갑자기 강무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자식이 내 순결을!”
“컥!”
여인이 갑자기 달려들자 강무진이 뒤로 밀리면서 그대로 벌러덩 넘어져 버렸다.
평소 같으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워낙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넘어져 버린 것이었다.
“이… 일부러 그, 그런 것이 아니오.”
“닥쳐!”
여인이 소리치며 강무진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동시에 양손으로 강무진의 목을 잡고 힘껏 졸랐다.
보통 사람이 이렇게 목을 눌렸다면 숨을 쉬기가 어려워 컥컥거리기라도 했을 텐데 금강불괴신공을 익힌 강무진은 멀쩡했다. 다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자꾸 말을 더듬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 그게 술에 취해서…….”
“닥쳐! 닥쳐! 조용히 하란 말이야!”
여인이 이성을 잃고 소리치면서 이제는 강무진의 목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그러자 강무진의 뒤통수가 계속 바닥에 쿵쿵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그러나 역시 금강불괴신공 때문에 전혀 충격이 오지 않았다.
그러던 순간 여인은 그곳(?)에 뭔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따뜻하면서 딱딱했는데 뭔가 굉장히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다.
“응?”
이에 여인이 얼결에 동작을 멈추고 강무진을 내려다봤다. 그러자 강무진의 얼굴이 잘 익은 홍시처럼 붉어졌다.
“이, 이것은… 내 뜻이 아니라 몸이 반응을……. 그러니까… 소저가 너무 예뻐서……”
강무진의 말에 여인은 눈에 살기를 띠었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분노와 황당함으로 인해 뭐라 말을 하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이… 이…….”
‘헉! 잘못하면 진짜 죽는다.’
강무진은 그런 생각이 들자 자신도 모르게 몸이 움직였다.
‘에라! 모르겠다!’
“꺄악!”
그 순간이었다. 여태까지 밑에 깔려 있던 강무진이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우며 여인을 바닥에 눕혔다.
-여자는 먼저 누르는 사람이 임자다.
그때 왜 하필 유운무가 했던 말이 떠올랐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여인을 바닥에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탄 강무진은 재빨리 여인에게 입을 맞추었다.
“읍!”
‘이, 이놈이…….’
여인은 필사적으로 반항했다. 그러나 아무리 살수라고 해도 여자의 몸인데다가 지금과 같이 완전히 밑에 깔려 있는 상태에서는 어떻게 힘을 쓸 수가 없었다.
‘물러나면 죽는다!’
여인이 그렇게 필사적인 만큼 강무진 역시 필사적이었다. 강무진은 그렇게 여인과 입을 맞추면서 패왕무고에서 봤던 춘화집에 있던 입맞춤에 대한 기술(?)들을 빠르게 머릿속에 떠올렸다.
“음.”
‘이게 아닌데……. 이게……. 이놈을 죽여야… 하는데… 흐응…….’
부드러웠다. 어느 순간부터 강무진의 입맞춤이 너무나 부드러웠다. 혀의 느낌도 좋았다.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한 감촉에 여인은 자신도 모르게 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아아…….”
‘성공이다!’
그때부터 강무진은 패왕무고에서 봤던 춘화집들에 나와 있던 상승의 비술(?)들을 원 없이 펼치기 시작했다. 이에 이른 아침부터 강무진의 방에서는 알 수 없는 신음과 비명 소리가 섞여서 울렸다.
“…….”
아침에 떠나기 위해서 방문을 두드리려던 유운무는 그 소리를 듣고 순간 멍하니 있다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조용히 그곳에서 물러났다.
자신의 방에도 아직 잠이 덜 깬 기녀들이 몇 명 남아 있을 것이다. 유운무는 그녀들을 좀더 괴롭혀 줄 생각이었다.
몇 번이나 폭풍우가 휘몰아쳤는지 모른다. 나중에는 둘 다 지쳐서 움직일 힘도 없이 침대에 축 늘어졌다. 그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후우.”
잠시 그렇게 누워 있던 강무진이 말을 꺼냈다.
“이름이 뭐야?”
이름?
여인에게는 이름이 없었다. 살수에게는 이름이 없다. 이름대신 그저 72호로 불릴 뿐이었다.
“하나 지어줘.”
“응? 음…….”
잠시 생각을 하던 강무진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여인을 보면서 말했다.
“초연(初戀)이 어때? 사실 나도 처음이었거든. 헤헤.”
“응, 좋아.”
여인이 순간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에 강무진이 여인에게 살짝 입을 맞추었다.
“내가 지금 일이 있어서 절강성에 가거든. 거기 일이 무사히 끝나면 너를 데리러 올게.”
‘너는… 그곳에 가기 전에 죽을 거야. 무사히 간다 해도 살아남지 못해.’
여인은 그런 생각이 들자 그것을 잊기 위해서 또다시 강무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안아줘.”
“응? 아! 그래.”
결국 그날은 강무진 때문에 그 기루에서 점심까지 먹고 나서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길을 나서게 되었다. 물론 기녀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면서 말이다.
유운무는 월담루를 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런 유운무를 보면서 강무진은 속으로 기가 찼다.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극과 극을 달리냐?’
강무진은 유운무가 다시 말없이 조용해지자 자꾸 초연이 생각났다.
‘아씨, 나한테는 소소하고 사매가 있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첫 경험이 워낙에 강렬해 쉬이 잊혀지지 않는 강무진이었다.
<그것이 강호다>
두 사람은 강서성의 수도인 남창을 벗어나 절강성이 있는 서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수십 일이 지나 이제 강서성을 거의 벗어나 절강성으로 들어서려는 때였다.
두 사람의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대나무 숲이 보였다.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자 끝이 안 보일 정도로 하늘 높이 자란 대나무들이 가득했고 그 사이사이로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그때 조금 앞서가던 유운무가 말을 멈춰 세웠다.
“무슨 일입니까?”
강무진이 의아해하며 유운무에게 묻는 순간 갑자기 유운무가 검을 검집째로 뽑아 들며 강무진의 머리를 후려쳤다.
퍼억!
“컥!”
워낙 급작스러운 공격이라 강무진은 머리를 그대로 얻어맞고 말에서 떨어졌다.
파파팍!
그러자 방금 강무진이 있던 곳으로 수십 개의 대나무가 날아와서 꽂혔다.
죽창(竹槍)이었다.
그것은 대나무를 비스듬히 베어내어 뾰족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사람 하나쯤은 거뜬히 뚫어버릴 정도로 날카로웠다.
“뭡니까? 갑자기!”
강무진이 열이 받아 벌떡 일어나서 외쳤지만 이미 유운무는 그 자리에 없었다. 어느새 타고 있던 말을 박차고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곳에는 검은 복면을 한 10여 명의 사람들이 위에서 떨어져 내리며 검을 휘둘러 오고 있었다.
유운무의 검은 화려했다. 화려하다 못해 아름답게까지 보였다. 검을 휘두르는 것이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아…….”
그것을 보고 강무진은 순간 탄성을 내며 눈을 크게 떴다. 여태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검법을 펼치는 것을 보았지만 저렇게 자연스러우면서도 아름답게 검을 펼치는 것은 처음 봤다.
‘검을… 저렇게도 쓸 수가 있구나.’
그렇게 강무진이 잠시 넋을 놓고 있을 때 유운무와 10여 명의 복면인들이 서로 엉키면서 순식간에 지나쳐 갔다. 그리고 유운무가 선녀가 날아오르듯 공중에서 몸을 휘돌리며 날아가 뒤를 봤을 땐, 그 10여 명의 복면인들 중 반 이상이 제대로 착지를 하지 못하고 그대로 땅에 처박히고 있었다.
“아!”
강무진은 유운무가 검을 움직이는 것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건만 순식간에 그렇게 많은 사람을 베어버리자 그저 놀랍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차!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넋을 잃고 보던 강무진이 곧 정신을 챙기며 등 뒤에 비스듬히 메고 있던 자신의 키만큼이나 커다란 도를 뽑아 들었다.
그때 어디에선가 강무진에게로 수십 개의 죽창이 날아들었다.
슈슈슈슈슉!
“흥! 이런 것에 당할까 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