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7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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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3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76화
76화
“패왕진인가? 오랜만에 보는군.”
왕이후와 호지는 뒤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흠칫 놀라며 동시에 뒤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아까 그 둘의 싸움을 말렸던 주양악이 서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 접근하도록 몰랐다니…….’
호지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주양악을 바라봤다. 그러나 주양악은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에 집중을 하고 있느라 호지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그때 그들의 뒤쪽에서 또 한 명의 사내가 느긋하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
왕이후가 그를 불렀으나 그는 왕이후를 무시하며 주양악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흠, 좌호법도 와 있었소?”
왕철심이 그렇게 가까이 다가오며 말하자 주양악도 왕철심을 보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왕 대주.”
그러자 왕철심도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을 바라봤다.
“패왕진은 실로 오랜만에 보는군.”
왕철심의 말에 주양악이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1개조에 불과하군요.”
“음.”
사실 패왕진은 3개조, 즉 60여 명이 뭉쳐서 펼쳐야 완벽했다. 그렇게 펼쳐진 패왕진은 무림역사상 깨진 적이 없다는 소림사의 백팔나한진(百八羅漢陣)과 버금갈 정도라는 세간의 평을 받고 있었다.
소림사의 백팔나한진이 108명의 고수들이 모여서 펼치는 데 반해 패왕진은 그 반인 60명이 모여서 펼치는데도 같은 위력을 낸다고 하니 어떻게 보면 백팔나한진보다 패왕진이 훨씬 뛰어나다고 할 수도 있었다.
“허! 저자는 이이책이 아닌가?”
주양악이 패왕진을 펼치고 있는 패왕마전대의 중심에서 적영령을 등에 업고 이리저리 지휘를 하고 있는 이이책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왕철심도 곧 이이책을 찾아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가 있다면 굳이 3개조가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군.”
두 사람이 하는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왕이후가 궁금해하며 왕철심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버지?”
그러자 왕이후가 여전히 싸움을 지켜보며 설명을 해줬다.
“이이책은 머리가 상당히 뛰어난 자로 상황을 짚어내는 능력이 발군이다. 처음에 그가 패왕마전대에 들어갔을 땐 정말 대단했었지. 그의 그 뛰어난 능력 때문에 유운무가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그를 갑자기 데려왔음에도 아무도 그에게 뭐라 하지 못했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멍청한 놈. 저 이이책이란 자의 능력이 패왕진을 펼칠 때만큼은 한두 개의 조와 맞먹는단 말이다. 지금도 봐라. 이쪽은 사상자가 속출을 하고 있는데 저들은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멀쩡하지 않냐?”
“……!”
왕철심의 말대로 지금 패왕마전대는 막평이 아니라 이이책의 지휘하에 패왕진을 펼치고 있었다. 이에 적들은 이미 50여 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내고 있음에도 패왕마전대는 가벼운 상처를 입은 사람들만 몇 명 있을 뿐이었다.
상황이 그러하자 싸움을 지켜보던 여사악 역시 이이책의 능력과 패왕진의 위력을 실감했다.
‘과연 주군이 눈독을 들일 만하군. 패왕진이라……. 정말 최고의 절진이로군.’
사실 도백광이 성안에 있는 모든 패왕마전대를 죽였음에도 12조의 몇몇 사람들을 살려놓은 이유가 바로 패왕진 때문이었다.
패왕진의 가치를 알고 있는 도백광이 패왕진을 이어받게 하기 위해 그들을 살려놓은 것이었다.
그 당시에 여사악은 그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었다. 진이라는 것이 아무리 대단해도 결국 무공이 뛰어난 고수를 만나면 무용지물이고 머릿수에서 밀리면 그 한계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 직접 패왕진을 보게 되자 그때 성안에 있던 패왕마전대를 상대할 때, 그들이 패왕진을 펼치기 전에 죽인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금 1개조에 불과한 패왕진이 이 정도라면 소문대로 3개조가 모두 모여 패왕진을 펼친다면 그 위력이 어떨지 상상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어떠냐?”
여사악이 여전히 패왕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뒤에 있는 여인에게 묻자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왕이후의 고백을 받았던 바로 그 여인으로 도백광의 제자 중 한 명인 장가연이었다.
장가연은 도백광에게 수라십삼검을 전수받아 무공도 뛰어났지만 진법에도 뛰어났다. 그녀에게 진법을 가르쳐 준 사람은 제갈영지라는 여인으로 천하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진법의 대가였다.
“안 되겠어요. 운용 방법은 물론이고 파해법조차 찾지 못하겠어요.”
그랬다. 진이라는 것은 그 원리를 알아야 운용 방법을 알 수 있고 운용 방법을 알면 그 파해법도 찾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가 보고 있는 패왕진의 원리는 그녀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었다.
사실 여사악이 그녀를 부른 이유는 그녀가 패왕진을 직접 보면 패왕진의 원리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원리만 안다면 복원해 내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은 일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흠, 그 정도란 말이지? 그럼 몇 명은 죽이지 않고 끝까지 살려둬야 한다는 말이군.”
여사악이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들어 손짓을 하자 뒤에서 수하 한 명이 다가왔다.
“주군은 여태 원로원에 계시더냐?”
“그렇습니다.”
“깐깐한 노인네들 같으니라고.”
여사악이 그렇게 원로원을 욕하고 있을 때 원로원을 나오던 도백광 역시 그들을 욕하고 있었다.
“나이 들면 일찍 뒈질 것이지 망할 놈의 늙은이들…….”
그렇게 도백광이 원로원을 향해 거친 욕설을 하며 밖으로 나오자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고운강이 웃으면서 말했다.
“늙은 생강이 맵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야기가 잘 안 되었나 봅니다.”
고운강은 큰 키에 다부진 체격, 여자라면 누구나 반할 것 같은 잘생긴 얼굴의 사내였다. 무공 또한 대단해서 사부인 도백광도 쉽게 대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모두들 몸 사리기에 바쁘다.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여태까지 안정적으로 살아오다가 갑자기 그 안정이 깨지려 하니 두려운 걸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훗! 변화를 즐기는 사람도 있지.”
웃으면서 하는 도백광의 말에 고운강 역시 웃으면서 말했다.
“사부님같이 변화를 즐기는 사람들은 극소수일 뿐입니다.”
“그 극소수의 사람들이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법이다. 그런데 성내가 소란스러운 것 같군.”
도백광이 걸어가면서 어수선하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을 보며 말하자 고운강이 여전히 웃으면서 말했다.
“사부님이 원로원에 계시는 동안 쥐새끼 몇 마리가 숨어들었습니다.”
“쥐새끼? 쥐새끼 몇 마리 때문에 이렇게 소란을 떤단 말인가? 허면 쥐새끼가 아닐 수도 있겠군. 지금 한가하니 한 번 가볼까?”
도백광이 그렇게 말하면서 방향을 바꾸자 고운강이 뒤를 따르며 말했다.
“실망하실 겁니다.”
“그건 가보면 알겠지.”
그렇게 두 사람이 패왕마전대가 패왕진을 펼치며 버티고 있는 내성의 북문 앞에 도착하자 모두들 도백광을 보고 인사를 했다. 그것은 탐탁지는 않아 했으나 주양악이나 왕철심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도백광이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말했다.
“흠, 그대들도 와 있었군.”
“주군.”
그때 여사악이 다가오며 도백광을 부르자 도백광이 그를 보며 물었다.
“패왕마전대냐?”
“그렇습니다.”
“패왕진이로군. 시간이 얼마나 되었느냐?”
“한 시진이 조금 안 되었습니다.”
“어떠냐? 좀 알아볼 수 있느냐?”
도백광이 이번에는 장가연을 보고 묻자 장가연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제자가 능력이 부족해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겠지. 너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너 정도 되는 아이가 알아볼 수 없다면 그만큼 패왕진이 뛰어난 것이지, 네 능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도백광이 장가연을 배려해서 그렇게 말하고는 옆에 있는 고운강을 보며 물었다.
“네가 보기에는 어떠냐?”
도백광의 물음에 고운강이 패왕진을 유심히 살피다가 대답했다.
“확실히 뛰어난 점이 있군요. 지금의 저라면 1각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고운강의 말에 모두들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고운강의 말은 혼자서 저 패왕진을 상대로 겨우 1각 만에 무너트릴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흠, 너는 다 좋은데 가끔 그렇게 자만하는 것이 문제다. 어떠냐? 네 말대로 1각 안에 저들의 처리가 가능한지 한 번 해볼 테냐?”
도백광이 고운강에게 그렇게 말하자 고운강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무슨 말씀을……. 여기 이렇게 인재들이 많은데 굳이 제가 손을 쓸 필요가 없지요.”
“약은 놈 같으니라고. 왕 대주, 패왕폭풍대로 저들을 제압하는 것이 어떻겠소?”
도백광이 왕철심을 보며 말하자 왕철심이 고개를 저었다.
“무리입니다. 지금 저들을 제압하자면 폭풍대의 피해가 상당히 클 것이오.”
“그럼 다른 방법이 있소?”
“일단 사람들을 물리고 고수들이 나서는 수밖에 없습니다.”
“흐음, 고수라…….”
도백광이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여사악을 보고 명령을 내렸다.
“사람들을 모두 뒤로 물려라.”
“넷.”
도백광의 명에 여사악이 그쪽을 보고 손짓을 했다. 그러자 여태까지 패왕마전대를 상대로 끊임없이 달려들던 사람들이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도백광이 모두를 보며 지시를 했다.
“그럼 이제 왕 대주와 거기 좌호법이 나서면 되겠군. 가연이와 호지도 나서라. 여사악 자네도 오랜만에 몸 좀 풀어보지.”
도백광의 말에 왕철심과 주양악은 잠시 머뭇거리다 곧 패왕마전대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장가연과 호지도 그쪽으로 향했고, 마지막으로 여사악이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모두 가버리고 왕이후만이 남게 되자 도백광이 그를 보면서 말했다.
“자네는 나하고 말동무라도 하지. 혼자서 구경하면 재미가 없어서 말이야.”
“네? 네.”
패왕마전대는 갑자기 적들이 모두 뒤로 빠지자 그 틈에 잠시 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패왕진을 펼쳐 여태까지 잘 버티고는 있었지만 겨우 10여 명으로 열 배가 넘는 인원들을 감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은 이제 슬슬 한계에 달하고 있던 참이었다.
“휴, 놈들이 왜 뒤로 빠지는 거지?”
강달무가 크게 숨을 내쉬면서 그렇게 말하자 막평이 도백광이 있는 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음, 도백광이 왔다. 게다가 좌호법인 주양악과 폭풍대의 대주인 왕철심도 왔어. 이거 잘하면 오늘 정말 이곳에 뼈를 묻겠군.”
막평의 말에 강달무가 그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훗! 그나저나 외성에서 기다리고 있는 황삼위는 무사한지 모르겠군.”
“우리가 이 모양이면 그들도 고전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벌써 당했을지도 모르지.”
“쳇! 힘 빠지는 이야기군요.”
막평과 강달무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마홍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이책에게 다가갔다.
“헉헉! 아이고, 오랜만에 힘쓰니 정말 힘이 드는군.”
그런 마홍을 보며 이이책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선배님들이 계셔서 이나마 버틸 수가 있었습니다.”
“클클. 자네 능력은 여전하더군. 오늘 또 한 번 놀랐네.”
“과찬이십니다.”
“그런데 대공자님도 이곳에서 만나기로 한 건가?”
“아닙니다. 대주님은 우리와 따로 움직이다가 나중에 알아서 빠져나온다고 했습니다.”
“흘! 그거 다행이로군. 자칫 이곳으로 왔으면 큰일 날 뻔했어. 그나마 대공자님만이라도 무사하니 마음이 좀 놓이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