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6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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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0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67화
67화
그것을 보고 호지가 비꼬듯이 말했다.
“쳇! 모자(母子)간의 정이 돈독하군. 같이 죽을 테니 저승길이 외롭지는 않겠어.”
“운휘야, 미안하다. 운휘야……. 운휘야…….”
부용화는 적운휘의 얼굴에 뺨을 비비며 계속 눈물을 흘렸다. 그때 적운휘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어…머니…….”
“……!”
부용화는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적운휘를 안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후훗. 그렇게 아들을 안고 나와 싸울 수는 없을 텐데.”
호지가 그렇게 말하면서 마력진패강기를 끌어올렸다. 그러면서 부용화의 눈을 본 순간 호지는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부용화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등 뒤에 있는 다른 사람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뭐야? 지금 이 상황에서 날 앞에 두고 한눈을 판다는 건가?’
호지가 그런 생각을 하며 부용화를 앞에 두고도 여유롭게 부용화의 시선을 좇아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러자 부용화의 시선 끝에 있는 여인을 볼 수가 있었다.
그녀는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적운휘가 그렇게 보호하려고 했던 적영령이었다.
‘뭐야? 딸이 걱정되어서 그런 거였나? 괜히 긴장했군.’
호지가 그런 생각을 하며 부용화를 향해 다가가려 할 때 적영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 호지의 귀에는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려왔다.
“알았어요, 어머니. 오라버니를 위해서인걸요.”
적영령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적영령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화기(火氣)가 뿜어져 나가며 주위를 일순간에 태우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크아아악!”
그 열기는 사람은 물론이고 가까이 있던 기둥까지 태워버리고 있었다.
“뭐, 뭐야? 무슨…….”
그걸 본 호지는 물론이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 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놀라 당황하며 적영령을 피해 뒤로 몸을 날렸다.
오직 한 사람만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피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방금까지만 해도 척경을 상대하며 열화마결을 쓰던 머리를 산발한 그 사내였다.
사내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적영령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여, 열화마염풍(熱火魔炎風)…….”
열화마염풍은 열화마결을 12성 이상 완전히 익혀야만 쓸 수 있는 열화마결의 절초 중의 절초였다. 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열기로 인해 손이 닿는 순간 뭐든지 버티지 못하고 새까맣게 타버리는 무시무시한 초식이었다.
역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열화마결을 익혔지만 이 초식을 쓸 수 있을 정도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런 초식을 적영령같이 어린 소녀가 펼치고 있다는 것이 사내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그곳에 있는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다만 적영령의 화기를 보고 넋을 잃고 있는 사내처럼 적영령의 무공이 어떤 것이며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모를 뿐이었다.
사실 여태까지 패왕성의 모든 사람들은 적영령이 무공을 전혀 할 줄 모른다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신변을 보호하는 수신호위의 수도 무려 여덟 명이나 되었다. 이것은 성주인 적상군 다음으로 가장 많은 수의 수신호위가 붙어 있는 경우였다.
“가세요, 어머니. 이자들은 제가 맡겠어요.”
적영령이 그렇게 말하면서 적운휘에게 상처를 입힌 호지를 바라봤다. 그러자 호지가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발자국을 물러났다.
‘뭐야? 이 내가 겁을 먹고 있는 건가?’
호지는 순간 자신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선 것을 깨닫고는 속으로 부끄러워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때 적영령의 등 뒤에서 절규에 가까운 소리가 들리며 누군가 적영령을 향해 양장을 뻗어갔다. 그는 아까 열화마결을 쓰던 머리를 산발한 그 사내였다.
“으아아아아아!”
퍼퍼퍼펑!
“크아아악!”
그러나 그 사내는 공격할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튕겨 나가 바닥을 뒹굴었다. 그냥 뒹구는 것이 아니라 온몸에 불이 붙은 상태로 고통스럽게 뒹굴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자신들도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던 척경을 너끈히 상대하던 사내였다. 그런 사내가 손도 제대로 못 써보고 1초에 나가떨어진 것이다.
사내도 적영령과 같은 열화마결을 익혔지만 차이가 너무나 컸다. 사내가 익힌 열화마결의 화기는 적영령의 화기에 비하면 완전히 조족지혈(鳥足之血)이었다.
그가 그렇게 몸에 불이 붙은 채로 땅을 구르자 아까 수라십삼검을 쓰던 젊은 여인이 사내를 부르며 달려갔다.
“방산!”
그러면서 여인은 다급했던지 자신의 옷을 벗어 사내의 몸을 덮으며 불을 끄려고 했다.
그러나 화기가 얼마나 지독한지 오히려 여인의 옷을 태우고 여인까지 태우려 했다. 이에 여인이 빠르게 몸을 뒤로 빼며 소리쳤다.
“뭐 하고 있어? 빨리 가서 물을 가져와!”
여인의 다급한 외침에 몇몇 사내들이 대청 밖으로 달려 나갔고, 그사이에 여인은 사내의 몸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들고 있던 옷으로 계속 내려쳤다
그렇게 소란이 이는 틈을 타 부용화는 적운휘를 안고 대청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것을 느낀 호지가 그 앞을 막아서려고 하는 순간 어느새 호지의 눈앞에 적영령이 나타났다. 아무런 예비 동작도 없었고 움직이는 것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다. 마치 적영령이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듯이 호지의 앞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었다.
“뭐?”
이에 호지가 놀라서 적영령을 향해 주먹을 뻗으려는 순간이었다.
화아아악!
“크아아악!”
호지가 갑자기 손을 잡고 뒤로 튕겨 나가버렸는데, 그런 호지의 손이 불에 타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호지가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지자 모두들 적영령을 두려운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대청의 입구로 느긋하게 들어서는 세 사람이 있었다. 그들의 중앙에 선 자는 큰 체구에 수염이 자랐던 자리가 거뭇하게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었다. 그가 들어서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의외라는 듯이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방금까지 불을 끄기 위해 옷을 내려치던 여인이 반가운 기색으로 그 사내를 부르며 달려갔다.
“사부님!”
대청으로 들어선 사내는 다름 아닌 도백광이었다.
도백광은 자신을 반기는 여인을 무시한 채 아직까지도 몸에 불이 붙어 괴로워하고 있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사내를 향해 일장을 뻗어내자 사내를 태우던 화기가 거짓말 같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도백광의 손도 화기에 약간 데이면서 살이 타는 냄새가 났다. 이에 도백광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어서 데려가서 치료해 줘라.”
도백광의 말에 몇몇 사내들이 잠시 머뭇머뭇하다가 곧 그 사내를 업고 자리를 떴다.
그러자 도백광이 아직도 몸에서 열기를 뿜어내고 있는 적영령을 보며 말했다.
“생각지도 못했군. 설마 그대가 열화마결을 익히고 있을 줄은 몰랐다. 모두들 그대가 무공을 전혀 할 줄 모른다고 알고 있었는데……. 하긴, 그 정도이니 수신호위조차 짚어내지를 못했겠지.”
“나는 더 이상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그냥 이대로 우리를 보내주세요.”
“음, 그러고 보니 뭔가 이상하군. 이곳은 막힌 곳인데 어째서 이곳으로 들어온 거지?”
도백광이 그렇게 말하다가 곧 뭔가를 깨닫고는 말을 이었다.
“그렇군. 이곳 어딘가에 성을 빠져나갈 수 있는 비밀통로 같은 것이 있나 보군. 어떻게 해서든 성을 빠져나가면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보지?”
도백광이 그렇게 말하면서 천천히 적영령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적영령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열기가 점점 더 거세어져 갔다.
“어디 얼마나 대단한가 한 번 볼까?”
도백광이 그렇게 말하면서 장을 쭉 뻗었다. 그 장력에는 열화마기의 화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것을 보고도 적영령은 피하지 않고 장을 뻗어 맞받아쳤다. 그러자 두 사람의 장이 서로 부딪치면서 귀청을 때리는 파공음이 울리면서 뜨거운 열기가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퍼어어엉!
화아아아악!
“흡!”
“꺄아악!”
그렇게 장력이 서로 부딪치자 도백광과 적영령이 똑같이 대여섯 걸음을 뒤로 물러났다.
이에 도백광은 놀라운 생각이 들었다. 적영령의 화기가 생각 이상으로 강했던 것이다.
순수한 경지로만 따지자면 적상군과 필적할 정도라는 것이 도백광의 판단이었다. 그러니 자신의 열화마기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결론이었다.
“놀랍군. 도대체 어떻게 그 나이에 그런 심후한 경지에 이를 수가 있는 거지?”
도백광이 그렇게 말하면서 이번에는 열화마결에 마력진패강기까지 함께 운용하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적영령을 깔보던 마음을 완전히 버리고 제대로 상대를 하려는 것이었다.
한편 소란스러운 틈을 타 정신을 거의 잃은 적운휘를 안고 대청을 빠져나온 부용화는 뒤따라 나타나는 척경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어떻게 영령 아가씨가 열화마결을 알고 있는 겁니까?”
“이야기하자면 길어요. 일단 이곳을 벗어나요.”
“하지만 이대로 우리만 가면…….”
척경이 그렇게 말하는데 복도의 벽을 살펴보던 부용화가 몇 군데를 번갈아 가면서 손으로 계속 누르자 곧 벽에 있던 비밀통로가 열렸다. 비밀통로의 입구는 한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작고 좁았다.
“먼저 안으로 들어가서 운휘를 받아줘요.”
“네.”
부용화의 말에 척경은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하며 먼저 비밀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부용화가 부축해서 밀어주는 적운휘를 받아 들었다. 그러자 부용화가 척경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흑! 척경! 운휘를 부탁해요.”
“네?”
척경은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느끼며 놀란 눈으로 부용화를 바라봤다. 그 순간 비밀통로의 문이 닫히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부용화의 모습이 점점 가려져 갔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세상에 자식을 버리고 갈 수 있는 부모는 없어요. 운휘를… 부디 운휘를…….”
쿠르르릉!
“아가씨! 아가씨!”
척경은 닫힌 문을 두드리며 몇 번이나 부용화를 소리쳐 불렀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문을 어떻게 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비밀통로를 열고 닫는 것은 적 씨 일가만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척경이 적운휘를 내려다봤으나 적운휘는 심한 내상으로 인해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크윽. 젠장!”
척경은 순간 끓어오르는 분노와 슬픔을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벽을 힘껏 때렸다.
북쪽 땅에서는 말을 타고 남쪽 땅에서는 배를 타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남쪽에는 강이 곳곳에 미치고 있었기 때문에 육로(陸路)로 이동하는 것보다 배를 이용해 수로(水路)로 이동하는 것이 훨씬 빨랐다. 그래서 지금 강무진과 황삼위도 배를 타고 항주로 향하고 있었다.
보타사를 나와 항주까지 가는 배를 알아보다가 항주까지 가는 배가 없어 항주 근처인 상우(上虞)까지 가는 배에 몸을 의탁했다.
그 배는 주산군도(舟山群島)에서 진해를 통해 강을 타고 상우로 가고 있었다. 확실히 육로로 가는 것보다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그렇게 상우에 도착하자 강무진과 황삼위는 객잔을 찾아 짐을 풀었다. 밤이 늦었기 때문에 하루 쉬면서 항주까지 어떻게 이동할지를 생각할 참이었던 것이다.
“이제 소흥(紹興)만 지나면 금방 항주군요. 시간이 좀 있다면 소흥에서 한잔하고 갈 텐데 조금 아쉽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