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96화
무료소설 패왕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0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96화
96화
송편이 나름대로 석파지라는 꼼수도 있고, 왼손잡이인 것을 숨기고 있다지만 이이책은 그런 송편에 대해서 훤히 알고 있었다. 게다가 제대로 겨룬다면 무공도 두어 단계는 차이가 나기 때문에 죽음의 단련을 한다면 정말 말 그대로 죽음의 단련이 될 가능성이 컸다.
그러한 것을 모르는 송편이 아니었기에 재빨리 차렷 자세를 취하며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금방 갔다 오겠습니다!”
그러고는 발이 안 보일 정도로 휑하니 밭으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보고 이이책이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었고 적영령은 웃음을 지었다.
“저놈이 원래 저런 놈이 아니었습니다. 좀 투덜대기는 했지만 저렇게 나대고 촐랑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원들 다 죽고 이제 남은 사람이라야 우리들뿐이니 일부러 저러는 겁니다. 애써 밝은 분위기를 만들려는 거지요.”
이이책이 달려가는 송편의 뒷모습을 보며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아!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죄송해요. 저 때문에…….”
“아닙니다. 적 소저 때문이 아닙니다. 전에도 이야기했듯이 우리 패왕마전대는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적 소저가 이리 무사하니 마지막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한 겁니다. 그러니 미안한 마음은 가지지 마십시오. 아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면 그만큼 더 오래 살면 되는 겁니다.”
“네. 그렇게 말해 주시니 한결 마음이 가볍네요. 꼭 그렇게 할게요. 훗!”
그때였다. 밭으로 갔던 송편이 진땀을 빼며 이리로 달려오는 모습이 보이자 이이책과 적영령이 의아해하며 그쪽을 바라봤다.
“조자아아아아앙!”
그렇게 달려오는 송편의 뒤쪽에는 아까 밭을 매던 노인이 따라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험악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송편이 이이책과 적영령이 있는 곳에 거의 다다를 무렵, 뒤쪽에 있던 노인의 모습이 흐릿해지더니 어느새 송편을 앞질러 도착해 있었다.
“헉!”
이이책은 노인의 경공을 보면서 상상 이상의 고수라는 것을 느끼고는 재빨리 소매에서 판관필을 꺼내 적영령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나 노인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판관필을 꺼내 드는 이이책의 양팔을 가볍게 치며 어깨를 밀자, 이이책이 그대로 옆으로 밀려났다.
“어어…….”
이에 이이책이 당황을 하며 다시 자세를 바로잡고 노인을 공격하려는 순간이었다. 노인이 그런 이이책의 정강이를 가볍게 차자 이이책이 그대로 풀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걸 보고 송편이 급히 손을 뻗어 석파지를 날렸으나 노인이 가볍게 손가락으로 튕기자 송편의 석파지가 방향을 잃고 튕겨 나갔다.
“헛!”
그런 송편의 정강이 역시 노인이 발로 툭 차자 송편도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이책과 송편은 노인이 마치 장난하듯이 툭툭 건드리는 것에 너무 어이없이 당하자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시 덤벼들려고 했다. 그것을 보고 노인이 손을 한 번 저으면서 말했다.
“죽고 싶지들 않으면 가만히 있어.”
“헉!”
그저 가벼운 손짓이었다. 그러나 그 가벼운 손짓에 무형의 기운이 있어 급히 일어서려는 두 사람의 몸을 잡아 누르는 것이 아닌가?
이에 두 사람은 일어서려다 다시 엉거주춤 그대로 풀썩 주저앉아야 했다.
그때였다. 적영령이 노인을 향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
“응? 허허. 혹시나 했더니 역시 너였구나.”
“할아버지이…….”
적영령은 너무 반가운 나머지 자신의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도 잊은 채 그 노인을 향해 달려가 안기려고 했다. 그러자 다리가 움직이지 않고 상체만 앞으로 쏠리면서 넘어지려고 했다. 그런 적영령의 몸을 어느새 노인이 가볍게 받아 들며 미소를 지었다.
“허허. 조심해야지. 응?”
적영령의 몸을 받쳐 들던 노인은 순간 적영령의 몸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네 몸에 있어야 할 화기가 어디로 간 것이냐? 게다가… 다리는 어쩌다 그런 게야?”
노인이 분노하면서 적영령에게 묻자 적영령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을 보였다.
“아니, 어떤 놈이 감히 내 손녀를 이렇게 만들었어! 내가 잠시 강호에서 활동을 안 했더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들이 있구나! 도대체 누구냐? 응? 말만 하거라. 이 할아비가 가서 아주 혼쭐을 내주마.”
노인은 적영령의 외할아버지이며 부용화의 아버지인 부형승이었다. 부형승은 강호에서 검성(劍星)이라 불리며 천하에서 가장 강한 사람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끼는 사람이었다. 검에 있어서는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무공이 대단해서 강호에 적수가 없다는 사람이 바로 부형승이었던 것이다.
그런 부형승이 화를 내며 기세를 뿜어내자 그의 뒤에 주저앉아 있던 이이책과 송편은 갑자기 가슴이 턱하니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기세만으로도 강호에서 고수라고 인정받는 이이책과 송편이 숨을 못 쉴 정도였던 것이다.
“으응. 아니에요, 할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사연이 길어요. 제가 차곡차곡 이야기해 드릴게요.”
“흠, 그러냐? 그런데 저놈들은 누구냐?”
“저분들은 제 목숨을 구해주고 여태까지 절 돌봐주셨던 분들이에요.”
“뭬야? 그러냐? 그럼 은인이잖아. 험! 그만들 일어나게나.”
부형승의 말에 이이책과 송편이 재빨리 일어나 허리를 숙이며 예를 취했다.
“후배들이 검성 어르신을 뵙습니다.”
“그래. 우리 령아를 도와줬다니 고맙군. 나중에 내 한 번 자네들을 도와줌세. 이제 령아는 내가 돌볼 테니 그만들 가보게. 험!”
부형승이 그렇게 말하고는 누가 뭐라고 말할 사이도 없이 적영령을 안아 들고 휑하니 사라졌다.
이에 이이책과 송편이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초옥 쪽을 바라보자 어느새 초옥 앞에 당도해 있는 부형승과 적영령을 볼 수가 있었다. 이에 두 사람은 마치 귀신에게 홀린 것같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허참! 도대체…….”
“일단 가죠, 조장.”
“그래야겠지?”
“네.”
내키지 않는 발걸음이었으나 초옥 쪽으로 너털너털 발걸음을 옮기는 두 사람이었다.
“여기 어디쯤이라고 했는데…….”
강무진이 혼자 중얼거리면서 주위를 살폈다. 벌써 며칠째 산속을 헤매고 다녔는지 모른다. 가져온 식량은 이미 동이 난 상태여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먹다가 설사를 하기도 했고, 길을 잃어 엉뚱한 곳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래서 지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다시 주위를 살피며 두리번거리던 강무진은 드디어 찾던 것을 찾았는지 눈을 빛냈다.
‘이런 곳에서 정말 사람이 살기는 사는군.’
그런 생각을 하며 조금 더 걸어가자 큰 폭포가 쏟아지는 곳 옆에 지어진 낡은 오두막이 보였다. 그 오두막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간 강무진은 사람이 있나 기척을 살폈다.
‘아무도 없나?’
“계십니까?”
강무진이 크게 사람을 불렀으나 옆에서 떨어지는 폭포 소리에 강무진의 목소리가 묻혀버렸다. 이에 강무진이 내공을 끌어올려 큰 소리로 다시 사람을 불렀다.
“계십니까?”
다시 불러도 사람이 나오지 않자 강무진이 다시 안의 기척을 살폈다. 아무도 없는지 사람의 기척이 잡히지는 않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안에 사람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래서 인기척이 없는데도 큰 소리로 사람을 불렀던 것이다.
그때였다.
“……!”
아주 미세하지만 뭔가 느껴지자 강무진이 감각을 곤두세웠다.
‘누군가 있다!’
강무진은 적영령에게 내공을 전수받은데다 금강불괴신공을 완성한 지금, 몰라보게 무공이 높아져 있었다. 그런 강무진이 간신히 잡아낼 기척이라면 상대도 보통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강무진이 조심스럽게 오두막의 문을 잡아서 천천히 열자 제법 깔끔하게 정리된 내부가 보였다. 그러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잘못 알았나? 이상하다. 분명 기척이 있었는데…….’
강무진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오두막 안은 중앙에 나무로 만든 탁자와 의자가 있고, 그 외에 몇 개의 집기들이 있었는데 모두 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강무진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앞에 있는 탁자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사방을 둘러보며 멍하니 있다가 팔을 얹어 기대고 있던 탁자를 내려다봤다.
“……!”
처음에는 잘 몰랐으나 가까이서 보니 탁자의 잘린 면이 굉장히 깨끗했다.
‘이건… 검으로 단번에 잘라낸 것이다. 이 정도 크기의 나무를 이렇게 깨끗이 잘라내려면…….’
강무진은 탁자를 살피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오두막 밖으로 나와 옆에 있는 숲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한 아름이나 되는 나무들이 많이 있었는데 강무진은 그중 제법 두꺼워 보이는 나무 앞에 서서 허리 뒤로 비스듬히 메고 있던 도를 살짝 잡았다. 그 순간 뭔가 번쩍하더니 어느새 뽑힌 도가 강무진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러자 강무진의 앞에 있던 두꺼운 나무가 비스듬히 그가 베어버린 각도를 따라 미끄러져 내렸다.
쿠우웅!
나무가 큰 소리를 내면서 쓰러지자 강무진이 다가가 나무의 잘린 면을 자세히 살폈다. 깨끗하게 잘리기는 했지만 아까 오두막 안에서 봤던 탁자 정도의 깔끔함은 아니었다.
‘나보다 배는 빠른 쾌검이군. 후우…….’
강무진은 그 자리에서 몇 번이나 더 도를 휘둘러보다가 곧 도를 거두었다. 아무리 휘둘러봐도 방금 나무를 벤 것 이상의 속도는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그만 나오십시오!”
그때 강무진이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아무도 나타나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강무진이 다시 크게 외쳤다.
“초연… 아니, 칠십이 호의 부탁으로 왔습니다!”
“방금 뭐라고 했느냐?”
“헛!”
강무진은 갑자기 자신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몸을 돌림과 동시에 뒤로 후다닥 물러났다. 그러자 키가 작고 삐쩍 마른 노인 한 명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언제 나타난 거야?’
“방금 칠십이 호라고 했느냐?”
“그렇습니다.”
“그 아이가 내가 있는 곳을 말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흐음…….”
노인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강무진을 노려보며 천천히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더니 강무진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대더니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그 아이가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이야기했단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허면 그 아이는 어디 가고 너 혼자 왔느냐?”
“그, 그건…….”
강무진은 순간 초연을 생각하자 가슴이 북받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에 억지로 감정을 누르면서 말했다.
“일단 인사부터 받으십시오.”
강무진이 그렇게 말하면서 그 노인을 향해 넙죽 절을 했다. 그러자 노인이 살짝 인상을 쓰며 이상하다는 듯이 강무진을 바라봤다. 보통 인사를 하면 포권을 취하지 이렇게 절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저는… 강무진이라고 합니다. 초연과 정을 나누었고… 그녀를 좋아했으며… 아직도 그녀를…….”
강무진은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말하다가 목이 메여와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강무진의 모습을 보면서 노인은 순간 짐작 가는 것이 있는지 몸을 한 번 휘청했다.
“모든 것이 제 불찰이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곁에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는데…….”
“그만, 그만 하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