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9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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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9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90화
90화
술자리의 주사만큼은 강무진 역시 인간 말종의 수준을 넘어서는 경지였다. 이에 두 사람 다 술자리가 깊어갈수록 개가 되어갔다. 옷을 벗어던지고 기녀를 희롱하는 것은 기본이요, 그 자리에서 아예 일(?)을 치르려고 하자 기녀들이 도망갔다가 어쩔 수 없이 다시 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탕탕탕!
“그러니까 말이지!”
탁자를 소리 나게 내려치던 관옥상이 입에 거품을 물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냐고? 앙? 아버지가 잘났으면 아들도 잘나야 돼? 아니, 그럼 세상에 못난 놈이 어디 있겠어? 다 잘나지? 젠장할! 잘난 아들도 있으면 못난 아들도 있는 거 아냐? 내가 어디가 어때서 그러냐고? 우이씨……. 술! 술 가져와.”
관옥상이 술에 취해 떠드는 소리에는 한이 맺혀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강무진은 그런 관옥상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자신 또한 패왕성에 있을 때 그러하지 않았던가?
단지 대공자라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제멋대로 기대를 하고 와서 실망을 하고는 마치 못 볼 걸 봤다는 얼굴을 하며 돌아가지 않았던가?
그때 마홍마저 강무진을 포기했다면 지금 자신이 어찌 되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크크크. 마홍은 무사한가 모르겠군.’
“그런데 말이지……. 얼마 전에 아버지 손님이라면서 웬 늙은이하고 젊은 계집이 하나 온 거야. 그런데 고 계집이 정말 절색이었단 말이야.”
“……!”
“하지만 말이야! 나한테는 유매가 있다고! 내가 그렇게 지조가 없는 줄 알아? 앙?”
“어이, 형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응? 형님? 그래. 이제부터 내가 네 형님 한다. 넌 내 아우해라. 좋아. 이리 와.”
“응?”
강무진은 술에 취해 자신도 모르게 형님이라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온 것이었다. 이런 고급 기루에서 술에 취해 떠드는 것은 예전에 의형제를 맺은 흑마련주 구소단과 많이 하던 짓이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말이 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관옥상 역시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강무진을 억지로 잡아당겨 술을 먹이고 맹세를 하면서 의형제를 맺어버렸다.
“크하하하하! 좋다. 이 관옥상에게도 이제 남들처럼 의동생이 생겼구나. 좋아! 원하는 게 뭐냐? 뭐든지 들어주마.”
“에, 그거야 당연히!”
순간 강무진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기녀들을 바라보자 기녀들이 몸을 흠칫 떨었다. 그리고 그것이 무슨 뜻인지 단번에 알아챈 관옥상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하. 좋다. 역시 내 동생이다. 가라! 오늘 밤은 이 형님이 모두 책임진다. 맘껏 골라서 놀아라. 푸하하하하!”
그렇게 어떻게 밤이 지나갔는지 어떻게 다음 날 해가 떴는지 두 사람은 알지 못했다. 다음 날 퀭한 눈으로 쓰린 속을 잡고 기루를 나선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하. 이봐, 동생. 내 비록 술에 취해 있었지만 가볍게 그대를 동생으로 사귄 것은 아니야. 가자고. 일단 옷부터 하나 맞춰야겠군. 쯧! 행색이 너무 말이 아니야.”
“아니, 그러지 않아도…….”
“조용히 하고 따라와. 그 꼴로 내 의제라고 하면 내가 창피하지 않은가?”
그렇게 말하면서 관옥상이 앞장서서 가자 강무진이 어쩔 수 없이 그 뒤를 따랐다.
관옥상이 강무진을 데리고 간 곳은 악양에서도 제일 유명한 포목점이었다. 그곳에 들어가자 주인이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달려 나와 그들을 반겼다.
“호호호. 어서 오시어요, 공자님. 옷 지으러 오셨나요?”
“응. 나는 아니고 여기 내 의제한테 맞는 옷이 있는가 해서 왔네.”
“물론 있고말고요. 마침 아가씨도 와 계시답니다.”
“응? 여지가?”
관옥상이 포목점 주인의 말에 안쪽을 바라보자 두 명의 여인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쪽을 바라봤다. 그중 한 여인은 아담한 체구에 푸른색과 분홍색이 섞인 옷을 입고 있어 화사한 아름다움이 보였고, 다른 한 명은 늘씬한 키에 가벼운 옷차림이었으나 외모가 눈에 띄게 아름다웠는데, 이 여인이 바로 관옥상의 하나뿐인 여동생 관여지였다.
“또 기루에서 밤을 지새웠군요.”
“응? 험! 네가 관심 가질 일이 아니다.”
“오라버니는 항상 그런 식이군요. 아버님이 돌아오실 날이 며칠 남지 않았어요. 지금이라도…….”
“시끄럽다. 험! 오랜만이오, 사 소저.”
관옥상이 관여지가 하는 말을 중간에 끊으면서 관여지의 옆에 있는 여인에게 인사를 하자 여인이 웃으면서 인사를 받았다.
“네. 오랜만이에요, 관 공자. 제 오라버니가 안부 전해달라더군요.”
“험! 그렇소?”
그녀는 악양에서 흑룡문과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철련방(鐵煉幇)의 방주인 사화공의 여식 사연아였다. 철련방은 원래 무기를 만들던 곳이었으나 사화공이 전대의 기인으로부터 무공을 배워와 강호문파의 성격을 띠면서 점점 인정을 받기 시작한 곳이었다.
지금도 그곳의 사람들은 무공을 익히는 한편, 검이나 도, 창, 등을 제련하는 일을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들어진 무기들은 악양은 물론 호남성 전체의 문파들이 앞을 다투어 가져갈 만큼 뛰어났다.
관옥상은 전에 사연아에게 찝쩍대다가 그녀의 오라비인 사의군에게 혼쭐이 난 적이 있었다. 그 뒤로 그녀의 오라비인 사의군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관옥상이었다.
“아! 어서 이리로 오게, 아우.”
그때 관옥상이 강무진을 부르자 강무진이 그리로 다가갔다. 그러자 관옥상이 강무진에게 두 사람을 소개시켜줬다.
“저기 저 소저는 철련방의 사 소저일세. 그 옆에는 내 하나뿐인 여동생 관여지이고.”
“두 분 소저를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강무진이 그렇게 두 사람을 보며 말했으나 잠시 강무진을 훑어보던 두 사람의 반응은 냉랭했다. 특히 관옥상의 여동생인 관여지의 반응은 더했다.
“흥! 이번에는 또 어디의 형편없는 자를 사귀는 거죠? 게다가 예의도 모르는군요.”
관여지의 말에 잠시 관여지를 바라보던 강무진이 왼쪽 팔만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보다시피 오른팔을 쓰지 못해 예를 취하지 못하였소. 그것이 실례가 되었다면 용서하시오. 그리고 내 행색이 초라해서 형편없다 하는 것은 옳지 않소. 그렇게 따진다면 길거리에 있는 초라한 행색의 사람들 모두가 형편없는 사람들이 되는 것 아니오? 그들 중에는 뛰어난 학자도 있을 것이고, 또한 고결한 인품을 가진 사람도 있지 않겠소? 초면에 사람을 앞에 두고 이리 대하는 것을 보니 겉은 아름다우나 속은 형편없구려. 하긴, 그것이 나보다는 조금 나은 것 같군. 적어도 사람들이 나처럼 겉만 보고 당신을 형편없다고 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오.”
관여지는 순간 강무진이 줄줄 쏟아내는 말에 속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강무진의 말이 주구장창 모두 옳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초록은 동색이라 끼리끼리 어울린다더니 그쪽의 아름다운 소저도 같겠구려. 아! 형편없는 이 몸이 너무 말을 많이 한 것 같소이다. 형님, 형님이나 저나 형편없는 사람들이니 어서 옷이나 고르고 가십시다. 또 압니까? 좋은 옷을 입고 있으면 좀 좋아 보일지 말입니다.”
“응? 아! 그래. 그래야지. 크큭.”
관여지는 여자이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관옥상보다 뛰어났다. 무공이나 재능, 인품 등 그 모든 것이 관옥상보다 뛰어나서 세인들이 말하기를 개망나니 짓을 하고 다니는 관옥상보다는 여자이긴 하지만 관여지가 다음 대의 흑룡문주가 되는 것이 더 낫다고 할 정도였다.
이에 처음에는 아니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자신도 모르게 오라비인 관옥상을 무시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관옥상과 어울리는 사람들까지 무시를 하게 되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그동안 관옥상이 사귀는 사람들의 수준이야 안 봐도 뻔했던 것이다.
그들 대부분이 관여지가 한마디 하면 모두들 꼬리를 내리거나 잘 보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였지 이렇게 강무진처럼 대놓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호호, 이번에는 좀 제대로 된 사람인 것 같은데요. 안 그래요? 관 언니.”
“흥! 그래 봤자 얼마 가지 못하겠지. 그만 가자.”
관여지는 여전히 기분이 안 풀렸는지 그대로 나가버렸다. 그러자 사연아가 잠시 강무진을 보고 씩 미소를 짓더니 곧 관여지를 따라 나갔다. 그들이 그렇게 나가자 관옥상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강무진에게 옷을 골라주었다. 그리고 옷을 입고 나온 강무진을 보며 관옥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 옷이 날개라더니 과연! 인물이 사는군.”
“감사합니다. 하지만 소제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옷입니다.”
“아닐세. 아니야. 사실 아까 자네가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굉장히 통쾌했었다네. 크크큭! 사실 여지 그것이 내 동생이기는 하지만 은근히 이 오라버니를 무시하곤 했었거든. 가끔 그렇게 버릇을 좀 고쳐놓을 필요가 있지. 그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게나.”
“훗! 알겠습니다.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포목점을 나온 두 사람은 곧바로 흑룡문으로 향했다.
“저기 형님.”
“응? 왜 그러나?”
“아까 관 소저의 말을 들어보니 문주님이 출타 중이신가 보던데 정말입니까?”
“그렇네. 일이 있어 잠시 나가 계시지. 한 사나흘 있으면 오실 걸세.”
“그렇군요. 아 참! 형님께 뭐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 보게. 내 자랑은 아니지만 이곳 악양에서 내 힘으로 안 되는 일이 없지. 뭐든지 말만 하게나.”
“실은 제 팔을 고칠 수 있는 의원을 찾고 있는데 제 힘으로는 쉽지가 않군요.”
“아! 의원 말인가? 걱정하지 말게. 이 형님의 말 한마디면 이곳의 뛰어난 의원들이 줄을 서서 달려올 걸세. 하하하. 일단 문중으로 돌아가세나. 음, 그러고 보니 마침 본문에 뛰어난 의원이 한 명 와 있으니 그자에게 보이면 되겠군.”
“정말입니까?”
“물론이지. 어서 가세나.”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두 사람이 흑룡문의 정문에 도착하자 정문을 지키고 있던 두 사람이 관옥상을 보며 예를 취했다.
“이제 오십니까? 소문주님.”
“그래. 별일 없지?”
“네? 아, 네. 별일 없습니다.”
“그래, 수고해.”
그렇게 관옥상이 한 사람의 어깨를 툭 치며 지나가자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의 관옥상이라면 괜한 트집을 잡아 자신들에게 한차례 욕을 할 텐데 오늘은 오히려 수고하라고 격려까지 해주며 들어가자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이 어리둥절해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귀공자가 자신들을 보고 씨익 미소를 짓더니 관옥상을 따라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허 참!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군.”
“그러게나 말일세. 그나저나 뒤에 따라간 사람의 얼굴이 왠지 낯익지 않은가?”
“그러게.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흑룡문은 밖에서 보던 만큼이나 넓었다. 몇 개의 전각들과 건물들이 있었고 잘 꾸며진 정원들도 보였다.
“어때? 이곳이 이 형님이 기거하는 곳이다.”
사실 패왕성에 비하면 그리 대단하지 않았으나 강무진은 일부러 감탄을 한 듯이 말했다.
“우와, 대단하군요.”
“후후. 그렇지?”
관옥상이 커다란 대청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자 곧 시비가 차를 가지고 나왔다.
“너는 가서 그 무 뭐라는 그 의원 놈을 데리고 와라.”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