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8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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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3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85화
85화
원래 송편의 특기는 석파지(石破指)라는 지법(指法)이었다. 석파지는 무공이 뛰어난 고수가 강호를 떠나 석공 일을 하다가 만들어낸 지법이었다. 정과 망치로 돌을 깨던 석공이 어느 날 손가락을 정으로 삼아 돌을 깨보자는 엉뚱한 상상을 하여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 만큼 경지에 오르면 두껍고 단단한 대리석까지 깰 수 있을 정도로 위력이 대단했다.
송편은 그런 석파지를 팔성 이상 익힌 상태였으나 평소에는 항상 유엽도만을 사용했다. 그래서 패왕마전대 내에서도 그와 정말 친한 몇 명을 빼고는 다들 그의 특기가 도법(刀法)인걸로 알고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또 하나, 송편은 왼손잡이였다. 그래서 상대는 송편의 오른쪽 어깨에 호조를 박아 넣었을 때 약간이나마 방심을 했었다. 그때까지 오른손으로 유엽도를 휘두르던 송편이었기 때문에 그 팔을 쓰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이미 다 이긴 싸움이라 여겼던 것이다.
송편은 그런 상대의 틈을 파고들어 왼손으로 석파지를 날렸다. 싸움이 시작되는 처음부터 석파지와 자신이 왼손잡이라는 두 가지 사실을 철저히 숨기고 있다가 한순간 틈을 만들어 활용을 했던 것이다.
송편은 다친 오른쪽 어깨에 금창약을 뿌리고 옷을 찢어 대충 감아 치료를 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청력(聽力)을 돋웠다. 그러자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장님이군.’
단지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만으로 단번에 이이책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송편은 곧 왼손으로 유엽도를 들고 그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하압!”
까까까깡!
이이책은 양쪽에서 허리를 노리고 들어오는 검을 동시에 쳐내면서 양손에 든 판관필을 빙글빙글 돌려 몸을 보호했다. 그러자 이이책을 공격하던 두 사람이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그 틈에 이이책이 강무진이 간 쪽으로 가려고 하자, 물러났던 두 사람이 동시에 다시 공격을 해왔다.
‘이것들 혹시 쌍둥이인가?’
양쪽에서 동시에 목을 향해 찔러 들어오는 공격을 막아내면서 이이책은 문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이책과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의 움직임은 마치 한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똑같았다.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은 물론이요, 검을 찔러 넣는 자세나 심지어 그 기세까지도 마치 한 사람인 것처럼 똑같았던 것이다. 그러니 이이책이 그런 생각을 할 만도 했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 대주님을 도우러 가야 하는데 큰일이군.’
이번에도 양쪽에서 동시에 하체를 쓸어오는 검을 양손에 든 판관필로 막아내면서 이이책이 몸을 살짝 공중으로 띄웠다. 동시에 두 발로 왼쪽에 있는 상대의 얼굴을 교대로 차면서 손에 든 판관필로는 오른쪽에 있는 상대의 얼굴을 향해 찔러 넣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동시에 뒤로 빠지자 공격이 모두 허사로 돌아갔다. 그리고 동작이 컸던 만큼 빈틈이 크게 드러나자 뒤로 물러났던 두 사람이 빠르게 치고 들어왔다.
이에 이이책은 땅에 착지하자마자 몸을 풍차처럼 돌리며 발로 두 사람의 발을 쓸어갔다. 그러자 두 사람이 공중돌기를 하며 다시 뒤로 물러났다.
‘이것들이 정말…….’
이이책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이들은 계속 이런 식이었다. 진심으로 싸울 생각은 없고 그저 이이책의 발만 이곳에 묶어놓으려는 듯, 적극적인 공격은 하지 않고 치고 빠지면서 시간만 끌고 있었던 것이다.
이이책은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떻게 하지를 못했다. 그만큼 두 사람의 무공이 만만찮기도 했고, 무엇보다 두 사람이 똑같이 펼치는 합공은 이이책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이이책이 무엇 때문인지 갑자기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오른쪽에 있는 상대를 향해 맹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판관필로 그의 시선을 교란시키는 한편, 다른 판관필로는 그의 요혈을 찍어갔다. 그리고 동시에 발로 그의 하체를 공격하며 중심을 허물려고 했다.
이이책이 그렇게 맹공을 하자 상대가 정신없이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퍼퍼퍽!
“커윽!”
이이책의 판관필에 가슴이 뚫린 상대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이이책을 바라봤다. 그것은 이이책의 뒤에 있던 다른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가슴을 판관필에 관통당한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이 분명 승세를 잡고 있었건만 어떻게 한순간에 이렇게 뒤집혔단 말인가?
“네놈들 쌍둥이지? 그러니까 그렇게 동작이 똑같지. 하지만 말이야, 너무 똑같았어. 멍청한 놈들아.”
그랬다. 이이책은 두 사람의 움직임이 똑같다는 것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만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다. 두 사람의 동작은 마치 한 사람처럼 똑같았다. 그러니 한 사람의 움직임을 잡아낼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움직임은 보지 않아도 예측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뒤에 있는 상대의 시야를 몸으로 가리면서 앞에 있는 상대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뒤에 있는 상대에게만 틈을 살짝 보였다. 그러자 과연, 뒤에 있는 상대가 그 틈을 공격해 들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앞에 있는 상대는 그 틈을 공격할 수가 없었다. 그 틈을 공격해 들어가는 길을 이이책이 차단하고 있었기 때문에 만약 공격을 한다면 스스로 이이책의 판관필에 찔리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 때문에 앞에서 맹공을 당하던 상대가 잠시 주춤했고, 그것을 놓칠세라 이이책은 숨겨둔 절기를 펼쳐 양쪽으로 판관필을 날렸던 것이다.
판관필을 회수해 피를 털어내던 이이책은 순간 한쪽에서 갈대가 움직이며 누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자 그쪽을 바라보며 재빨리 다시 싸울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상대를 확인하고는 곧 자세를 풀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왜 이렇게 늦었어?”
“어! 조장님! 무사하셨군요.”
갈대를 헤치며 나타난 이는 다름 아닌 송편이었던 것이다.
“상대가 생각보다 강적이었습니다.”
송편의 말에 이이책이 슬쩍 그의 어깨를 바라봤다. 천으로 어설프게 어깨를 감아놓았는데 그 천이 이미 피에 완전히 젖어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녀석, 꼴을 보니 죽다 살아났군.’
“그러기에 평소에 수련을 열심히 해뒀었어야지. 만날 농땡이만 피우더라니……. 쯧, 가자.”
내심은 걱정이 되었으나 그렇지 않은 척 핀잔을 주면서 이이책이 앞장서자 송편이 씨익 웃으면서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앞에서 갈대를 헤치며 나아가던 이이책이 갑자기 멈추며 손을 들어 송편이 따라오는 것을 제지했다. 이에 송편이 몸을 긴장시키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흠, 조금 우회해서 가야겠다.”
“예?”
송편이 이이책의 말을 선뜻 이해하지 못하자, 이이책이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보도 듣도 못한 별의별 암기들이 바닥에 잔뜩 박혀 있었다.
“사방에 암기가 천지다. 아무래도 마 선배님이 이곳에서 한바탕 한 것 같아. 암기 중에 독이 발라져 있는 것도 있을 테니 우회해서 가는 것이 좋겠다.”
“네.”
이이책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꿔 이동하자 송편이 그 뒤를 조심스럽게 따랐다. 그렇게 이동하는데도 곳곳에 널린 암기들 때문에 두 사람은 몇 번이나 멈추어 서야 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자 온몸에 암기가 가득히 박힌 채 죽어 있는 사람을 한 명 볼 수가 있었다.
“끔찍하군요.”
송편이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말하자, 이이책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꼴 되지 않으려면 마 선배님한테 잘 보여야겠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렇게 한참을 더 우회해서 갈대숲을 벗어난 두 사람은 또다시 멈추어 섰다. 그리고 이이책이 잠시 바닥을 살피더니 말했다.
“이곳에서 대주님이 싸웠던 것 같군.”
“흔적으로 봐서 적은 많아야 두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대주님이 이겼을 겁니다. 대주님의 그 성문을 날려버리던 무공이라면 적수가 없지 않습니까?”
송편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이이책이 곧 뭔가를 발견하고는 급히 그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곳에는 바닥에 피가 흥건하니 고여 있었다.
“핏자국이다. 이 정도면 둘 중 하나는 죽었다는 이야긴데…….”
혼자서 중얼거리던 이이책이 좀더 주위를 살피자 한쪽에 또다시 누군가가 싸운 흔적이 보였다.
“어떻습니까?”
송편의 물음에 이리저리 살펴보던 이이책이 마치 본 것처럼 그때의 상황을 짚어내기 시작했다.
“일단 대주님이 가장 먼저 이곳에 도착했고, 이곳에서 기다리던 누군가와 싸웠다. 그 전에 마 선배님도 이곳에 도착을 했으나 싸우지는 않고 그냥 간 것 같다. 저쪽에 피가 묻어 있고 갈대가 헤쳐진 것으로 봐서 확실해. 게다가 마 선배님이 이곳에서 싸웠다면 적어도 암기가 한두 개쯤은 굴러다녀야 하는데 전혀 보이지가 않아. 아마도 내 생각에는 적 소저를 마 선배님이 업고 간 것 같다. 대주님이 그렇게 시켰겠지.”
“그렇다면 조금 이상하군요. 왜 같이 안 싸웠을까요? 싸운 흔적으로 봐서 적은 분명 한두 명 정도였는데 그렇다면 둘이 상대하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꼭 그렇지는 않아. 상대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그렇다면 모두 덤벼도 소용없는 짓이야. 그러니 아마 마 선배님에게 적 소저를 부탁해서 두 사람을 보내고 대주님 혼자 남아서 싸웠을 거야. 여기 남아 있는 핏자국을 한번 봐라. 이 정도 양이면 즉사야. 하지만 시체가 없지. 그 말은 이게 한 사람의 피가 아니라는 이야기야. 아마 대주님하고 상대가 이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격돌을 한 것 같다. 그리고 여길 봐봐. 이곳에 또 싸운 흔적이 있지? 그리고 핏자국도 있고. 음, 몇 사람이 더 있었다는 뜻이다.”
“우리 편입니까?”
“그럴 가능성이 많아. 대주님이 만약 상대를 이겼다면 우리를 찾으러 왔을 거다.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서 우리가 오기를 기다렸을 거야. 그런데 대주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대주님이 졌다는 이야기다. 핏자국으로 봐서 부상이 심해. 거의 치명상이다. 그런 대주님을 누군가 데려가려고 했던 것 같아. 그런 것을 상대가 못 하게 하면서 싸움이 일어났고 그 와중에 누군가 다쳤어. 하지만 어쨌든 무사히 이곳을 벗어난 것 같다.”
이이책의 말을 집중해서 듣고 있던 송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마 죽지는 않았겠지요?”
“장담하지는 못한다.”
이이책이 조금 어두운 얼굴로 대답하자 송편이 잠시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이이책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계속 흔적을 찾아 대주님을 따라가야 합니까?”
“아니. 그러면 시간이 너무 지체된다. 다른 쪽으로 간 마 선배님과 적 소저도 걱정되기는 하는데……. 일단 악양으로 가자. 만약 흩어지게 되면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그리로 가는 것이 상책이다.”
그렇게 말하던 이이책이 다시 한 번 주위를 슬쩍 훑어봤다. 그러다가 뭔가를 발견하고는 눈을 빛냈다.
“……!”
“왜 그러십니까? 뭔가 또 찾아낸 것이 있습니까?”
“크크크. 그럼 그렇지. 대주님이 누구라고 패할까? 크크크. 하하하하.”
“예?”
이이책이 갑자기 앙천대소를 하자 송편이 영문을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이책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