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8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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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9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82화
82화
<그와 겨루다>
강을 따라 길게 이어진 길을 네 명의 사람들이 빠르게 걸어가고 있었다. 네 명 모두 사내였고, 그중 한 명은 한눈에 봐도 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여인을 등에 업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지친 모습이었으나 얼굴만은 밝았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상음(湘陰)입니다.”
이이책이 모두를 보며 말하자 송편이 이이책에게 물었다.
“조장! 상음에서는 배로 이동하는 겁니까? 에구, 육로로 이렇게 걸어서 이동하니 다리가 아파서 원…….”
“송편아, 네가 지금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여기 마 선배님도 그런 소리를 안 하는데 새파랗게 젊은 놈이 쯧!”
이이책의 핀잔에 송편이 인상을 팍 썼다.
“쳇! 그냥 걷기만 했으면 이러겠습니까? 제가 지금 여기까지 오면서 도대체 몇 명이나 상대한지 아십니까? 못 잡아도 백 명은 될 겁니다. 나 참, 가는 곳마다 어떻게들 알고 그렇게 뭉텅이로들 몰려 있는지…….”
송편이 투덜대며 하는 말에 이이책이 같잖다는 듯이 웃었다.
“뭐야? 너 겨우 백 명밖에 안 되냐? 나는 얼추 잡아도 백오십 명이 넘는다. 선배님은 몇 명이나 상대하셨습니까?”
이이책이 마홍을 보며 묻자 마홍이 괜히 아프지도 않은 어깨와 허리를 두드리며 곁눈질로 슬쩍 송편을 봤다.
“글쎄? 한 이백 명 되려나? 에고, 나도 많이 늙었어. 예전 같았으면 한 백 명은 더 상대했을 텐데 말이야.”
마홍의 말에 이이책이 씨익 웃으면서 송편을 바라봤다.
“들었냐? 여기까지 제일 놀면서 온 주제에 투덜대지 말란 말이다.”
“쳇! 어차피 육로로 가나 수로로 가나 적들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 좀 편하게 가자는 거지요. 뭐.”
송편이 여전히 투덜거리면서 말하자 이이책이 도끼눈을 하며 송편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야, 이 멍청한 놈아! 육로로 이동하다가 적을 만나면 그나마 도망이라도 갈 수 있지만 수로로 이동하다가 배가 가라앉으면 모두 끝이란 말이다. 지금 네가 그걸 몰라서 하는 말이냐?”
“아니 뭐… 그거야…….”
결국 그렇게 꼬랑지를 내리고 마는 송편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강무진의 등에 업혀 있던 적영령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모두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이쪽으로 와요. 삼십 명 정도 되는 것 같아요.”
“그래? 모두 들었지? 숲길로 이동하자.”
강무진이 그렇게 말하면서 가던 길에서 벗어나 옆의 숲으로 들어가자, 나머지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다.
사실 강무진 일행이 수많은 적들을 피해 이곳까지 무사히 오기까지는 적영령의 도움이 상당히 컸다. 적영령은 비록 걷지는 못했지만, 무공은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 뛰어났다. 내공 또한 굉장히 심후해 이들이 느끼지 못하는, 멀리 있는 적들의 기척을 미리 알아낼 수가 있었다.
그러니 적들이 이쪽의 기척을 알아채기 전에 몸을 피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적들의 눈을 피해 그들을 덜 상대하면서 이곳까지 올 수가 있었으나, 그래도 많은 적들을 상대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강무진과 적영령을 제외하고는 모두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또한 며칠을 쉬지 않고 이동했기 때문에 모두들 상당히 지쳐 있었다.
강무진을 따라 숲으로 빠르게 이동하던 일행들은 강무진이 속도를 늦추자 그제야 긴장을 조금 풀었다.
“그들과 조금은 멀어졌어?”
강무진이 등에 업혀 있는 적영령에게 묻자 적영령이 바로 대답을 했다.
“네. 기척이 점점 멀어지는 것으로 봐서 그 길을 따라 계속 갔나 봐요.”
“그래.”
강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뒤따라오던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중 이이책이 다가오며 강무진을 불렀다.
“대주님.”
“응?”
“이대로 북상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럼? 뭔가 좋은 생각이 있어?”
“상음에 도착하면 흩어지는 것이 좋겠습니다.”
“흩어져?”
“네. 상음에 도착하면 저하고 송편은 계속 북상을 하겠습니다. 대주님하고 마 선배님은 강서성(江西省)으로 움직였다가 다시 북상을 하십시오.”
이이책의 말에 강무진은 가만히 이이책을 바라봤다. 이이책의 말뜻은 이이책과 송편이 미끼가 될 테니 그 틈에 자신들은 안전하게 움직이라는 말이었다.
“지금까지는 운이 좋아 고수들과 부딪치지 않았지만 어차피 한 번은 부딪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그 전에 나누어서 움직이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한 명이라도 빠져나갈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 알았어. 그건 일단 상음에 도착하면 다시 의논하자.”
강무진이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돌리자 이이책은 더 이상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이제 더 이상 아무도 죽게 하지 않아. 내가 모두를 지킨다. 만약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누군가 남아야 한다면……. 이번에는 내 차례야.’
강무진은 이곳까지 오면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뒤에 남기고 와야 했다. 그것이 그의 가슴을 무겁게 하는 한편, 굳은 의지를 심어주고 있었다.
그렇게 강무진 일행이 한참을 이동하자 강을 따라 길게 뻗어 있는 갈대숲이 나타났다. 그 갈대숲을 보며 마홍이 말했다.
“갈대숲이군. 몸을 숨기기엔 좋겠어.”
마홍의 말대로 갈대는 사람의 가슴 높이까지 길게 자라 있어 고개만 살짝 숙여도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오라버니.”
“응?”
“위험해요.”
“뭐? 뭔가 느껴지는 거야?”
“아니요. 그렇지는 않은데……. 누군가의 기척은 없는데 마치 누군가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적영령의 말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갈대숲에 여러 갈래의 물결이 생기면서 그들을 향해 뭔가 빠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적이다!”
그것을 보고 강무진이 낮게 외치면서 도를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다가오는 기척을 잡아내기 위해 주의를 집중했다. 적은 몇 명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대로 뚫고 가는 것이 좋다고 여겨졌다.
“정면으로 뚫고 간다!”
강무진이 다시 낮게 외치면서 먼저 달려 나가자 나머지 사람들이 각자의 병기를 뽑아 들고 그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혹시나 흩어지게 되면 악양(岳陽)에서 만나는 겁니다.”
달려가면서 이이책이 모두를 향해 말하자 모두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이책은 이렇게 높은 갈대숲에서 서로 흩어져 싸우게 되면 서로를 알아보고 다시 모이기가 힘들다는 것을 한눈에 파악하고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맨 앞에서 달려가던 강무진은 뭔가 갑자기 얼굴을 향해 날아오자 재빨리 도를 휘둘러 그것을 쳐냈다.
깡!
그러자 상대가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모습을 보였다. 상대는 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 옷을 입고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손에는 세 가닥으로 길게 뻗은, 갈고리처럼 휜 호조(虎爪)를 달고 있었다.
방금 강무진을 공격했던 무기가 바로 그 호조였던 것이다.
강무진은 상대를 튕겨내자 그냥 그를 무시한 채 달리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그의 발밑을 그대로 지나쳐 갔다.
이에 상대가 잠시 당황하더니 곧 몸을 비틀어 뒤이어 오던 송편을 향해 양손을 휘둘렀다. 그것을 송편이 몸을 바짝 낮추어 피해냄과 동시에 들고 있던 유엽도를 위로 휘두르자 상대의 호조와 송편의 유엽도가 부딪쳤다.
까깡!
그사이에 마홍과 이이책이 그들을 지나쳐 달려 나갔다. 그 와중에 이이책이 슬쩍 뒤를 돌아보자 송편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송편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먼저 가라는 뜻이었다.
“아무래도 넌 나하고 놀아야 할 것 같구나. 재수가 없다고 생각해라.”
송편이 그렇게 말하면서 상대를 향해 유엽도를 겨누자 상대도 진지한 눈으로 곧 싸울 자세를 잡았다.
“괜찮겠나?”
마홍이 달리면서 옆에서 바짝 달리고 있는 이이책을 보며 묻자 이이책이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죽을 놈이 아닙니다. 잔머리 굴리는 데는 저도 한 수 접어주니까요.”
그때였다. 마홍이 갑자기 몸을 낮게 숙이며 외쳤다.
“조심!”
쉬쉬쉬쉭!
그러자 방금 마홍의 머리 위로 어디에선가 날아온 세 개의 단검이 스쳐 지나갔다. 그사이에 이이책은 계속 그대로 달려 나갔고, 단검을 피하느라 잠시 지체했던 마홍은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보통 놈이 아니로군. 한순간에 단검을 날리고는 기척을 완전히 지웠어.’
마홍이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쉬쉬쉬쉭!
또다시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네 개의 단검이 마홍의 등 뒤에서 날아들었다. 그것을 마홍이 재빨리 옆으로 이동하면서 피해냈다. 그러나 상대는 그런 마홍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있었던 듯, 마홍이 그렇게 움직이는 곳에도 이미 세 개의 단검이 날아들고 있었다. 상대는 네 개의 단검은 직선으로 날리고, 세 개의 단검은 크게 원을 그리며 우회하게 던졌던 것이다.
까깡!
마홍이 소매를 떨치며 양손을 휘두르자 어느새 그의 손에 두 개의 단검이 쥐어져, 날아오던 세 개의 단검을 모두 쳐냈다.
“크윽!”
그 순간 마홍이 신음을 내며 뒤로 한걸음을 물러났다. 그의 발밑에는 뾰족한 바늘이 네 방향으로 뻗어 있는 암기가 수십여 개나 뿌려져 있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이것까지 뿌렸단 말인가? 오랜만에 제대로 적수를 만났군.’
마홍은 상대의 실력이 생각보다 대단하자 오랜만에 피가 끓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도 잊은 채 상대와 겨루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암기에 관해서라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마홍이었다.
한편 이이책은 앞에서 달려가고 있는 강무진의 뒤를 놓치지 않으려고 바짝 붙어서 계속 달리고 있었다. 그때 양쪽에서 두 개의 검이 동시에 그를 공격해 왔다. 이에 이이책은 달리던 것을 멈추고 양쪽 소매에 숨겨두었던 판관필을 꺼내 막아내었다.
까까깡!
그러나 이이책은 잠시 그렇게 멈추었을 뿐, 상대의 검을 막고 있던 판관필을 빙글 돌려 상대의 공격을 떨쳐냄과 동시에 다시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흡!”
까까깡!
그러나 상대의 무공은 그렇게 이이책을 보내줄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동시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공격해오자 이이책은 어쩔 수 없이 또다시 멈춰서면서 그들의 공격을 막아내야 했다.
이이책은 판관필을 빙글빙글 돌리며 상대의 눈을 현혹시키는 한편, 상대의 곳곳을 찔러 들어갔다. 그러자 두 사람이 그것을 동시에 방어하기 시작했다. 그런 두 사람의 움직임은 마치 한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똑같았다.
이이책은 두 사람을 상대하면서 틈만 나면 몸을 빼 다시 강무진의 뒤를 따라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방어만 하던 두 사람이 공격을 하며 그의 앞을 막아섰다.
‘이놈들이…….’
“뭐냐? 싸울 생각이 없는 거냐?”
이이책은 상대가 자신이 앞으로 나아갈 때만 공격을 하며 막아서자, 두 사람을 보며 그렇게 물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말없이 이이책에게 검만 겨누고 있었다.
‘대주님과 우리를 떨어트려 놓으려는 건가? 그럼 앞쪽에 뭔가 있다는 이야기인데……. 빨리 처리하고 뒤따라야겠군.’
단번에 상황을 짚어낸 이이책은 마음이 조급해짐을 느꼈다.
이이책이 그러고 있는 사이에 강무진은 적영령을 업고 정신없이 앞으로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