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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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3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18화
118화
“꺼억! 잘 먹었다.”
강무진이 밥을 다 먹고 일어서며 말하자 유소호가 그런 강무진을 손에 든 젓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뭐 하는 짓이냐? 아직 우리는 식사가 끝나지 않았는데 그런 더러운 짓을 하다니!”
“쯧, 나한테 뭐라 하기 전에 그 말투부터 좀 어떻게 해봐라. 말만 안 하고 있으면 참 귀여운데 말이야. 입만 열면 어찌 그리 정이 떨어지냐?”
“뭐예요? 아가씨에게 그게 무슨 말이에요?”
강무진의 말에 향이가 눈을 부릅뜨고 말하자 강무진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소호가 저렇게 된 데는 너한테도 책임이 있으니까 잘 좀 교육시키라고. 내 부하라는 것도 좀 상기시켜 주고 말이야.”
“누가 그대의 부하라는 것이냐? 난 아직 그대의 부하라고 승복한 적 없다.”
“아아, 그래, 알았다. 알았어. 나 참……. 아침부터 시끄럽게시리…….”
왕삼은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 강무진과 향이는 물론이고, 유소호와의 이런 관계에 대해서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자신이 알기에 향이는 이미 강무진의 여자였다. 산채에 여자가 끌려왔다면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왕삼도 그렇게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며칠 간 지켜본 결과, 그런 것 같지가 않았다.
향이가 강무진의 여자라면 좀 고분고분해야 하건만,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유소호까지 향이와 함께 강무진에게 대들며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이자 왕삼은 강무진의 성격이 너무 좋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그렇다면!’
“부두목!”
강무진은 갑자기 왕삼이 크게 소리치며 부르자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그를 바라봤다.
“뭐야?”
“나 오늘 하루만 쉬고 싶습니다.”
“그래? 그럼 아주 푹 쉬게 해주마.”
“네?”
잠시 후 왕삼은 강무진의 그 말을 뼈저리게 이해할 수가 있었다. 사람을 패도 그렇지, 어떻게 밥그릇으로 사람을 그렇게 개 패듯이 팰 수가 있단 말인가?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거품을 물고 쓰러진 왕삼을 향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보며 가버렸다. 그 뒤를 유소호가 쯧쯧 혀를 차며 갔고, 마지막으로 강무진이 그를 패던 밥그릇을 던져버리고 가버렸다.
그러자 바닥에 쓰러져 있는 왕삼이 몇 번 꿈틀했다.
늦은 오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느긋하게 말을 타고 팔공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들의 선두에는 준수하게 생긴 젊은 사내와 빼어난 미인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 그들 뒤로는 마치 잘 갈아놓은 검을 보는 것 같은 기세를 품고 있는 수십 명의 무인들이 따르고 있었다.
준수하게 생긴 젊은 사내는 남궁세가의 소가주인 남궁종상이었고, 그 옆에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여인은 그의 여동생인 남궁소희였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따르고 있는 자들은 남궁세가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남궁천검대(南宮天劍隊)의 대원들이었다.
남궁세가의 주된 무력단체를 남궁검대라고 부르는데, 가장 실력도 낮고 지위도 낮은 것이 남궁지검대(南宮地劍隊), 그 위가 남궁인검대(南宮人劍隊), 그리고 남궁세가에서 최고의 무위를 자랑하는 이들이 바로 남궁천검대였다.
남궁세가는 안휘성 전체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세력이었다. 그런 곳에서 최고의 무위를 자랑한다는 것은 안휘성 전체를 통틀어 최고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남궁천검대는 오직 남궁세가의 가주에 의해서만 움직였다. 그런 남궁천검대의 일부가 지금 가주가 아닌 소가주 남궁종상의 뒤를 따르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이번에 처리해야 할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증거였다.
“이대로 무조건 북상하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남궁소희가 남궁종상에게 묻자 남궁종상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글쎄다. 하지만 딱히 방법이 없으니 일단 북상하는 것이 좋을 듯하구나.”
“하지만 오라버니. 듣자니 그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면서요? 그럼 어떻게 그들을 찾아낸다는 거예요?”
“후훗! 글쎄다. 하지만 그들이 이곳 안휘성에만 들어와 있다면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과연 남궁세가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다른 곳은 몰라도 안휘성 내에서라면 남궁세가에서 불가능한 일은 없었다.
“휴……. 도대체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모르겠어요. 뜬금없이 갑자기 어린아이를 찾아오라니 말이에요. 아버님도 그렇지 아무리 어머니가 부탁한다고 어떻게 이런 일에 덜컥 천검대의 사람들까지 내줄 수 있는 거죠?”
“뭐가 불만인 게냐? 어머님이야 세가 내에서 지혜낭(智慧囊)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총기(聰氣)가 뛰어나시고 심계가 깊으신 분이 아니더냐? 아이를 찾아오라 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천검대 사람들과 같이 가면 우리야 든든하니 좋지 않으냐? 내가 보기에 너는 그런 것보다 천검대의 사람들과 같이 가면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니냐?”
“어머! 오라버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지 오라버니가 오해하겠어요.”
남궁소희가 그렇게 말하며 남궁종상의 옆에서 나란히 가고 있는 한 사내의 눈치를 힐끔 봤다. 그러자 담담히 미소를 짓고 있는 한 사내가 보였다. 그는 지금 이곳에 있는 천검대의 수장으로 지수상이라는 사내였다. 그는 남궁종상만큼이나 수려한 외모에 큰 키, 다부진 체격, 그리고 온몸에서 은연중에 뿜어져 나오는 기세로 인해 누가 봐도 범인으로 보지는 않을 인물이었다. 실제로도 무공에 대한 자질이 뛰어나 벌써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 중에서는 최고라는 소리를 듣고 있었으며, 그런 뛰어난 무공을 지녔음에도 사람들을 대함에 있어서 항상 예(禮)와 의(義)를 다했기 때문에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외에도 여러모로 보여주는 능력도 대단해서 이십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벌써 남궁세가 최고라는 천검대의 백검수(百劍手) 자리에 앉아 있는 사내였다.
남궁검대의 직위는 열 명의 수하를 거느리는 십검수(十劍手), 그 위가 열 명의 십검수와 그 밑의 수하들까지 총 100명을 거느리는 백검수(百劍手), 그리고 그들 모두의 정점에 서 있는 천검수(千劍手)로 되어 있었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천검대의 백검수 자리에 오른 사람은 오직 지수상뿐이었다. 더구나 지수상은 남궁 성을 쓰는 사람이 아닌데도 그렇게 빠른 진급을 했으니 그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말해 주는 것이었다.
“후후. 그러냐? 이 오라버니보다 지백검수가 더 신경이 쓰이나 보구나.”
남궁종상이 미소를 지으며 하는 말에 남궁소희가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하하하. 글쎄다.”
“피이…….”
여전히 남궁소희가 얼굴을 살짝 붉힌 채 다시 한 번 슬쩍 지수상을 훔쳐봤다. 그러자 지수상이 고개를 돌리다가 그런 남궁소희와 눈이 마주쳤다. 이에 지수상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것을 보고 남궁소희도 미소를 지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남궁종상은 속으로 흐뭇한 감이 들었다.
남궁종상으로서도 여동생의 짝이 지수상처럼 능력 있고 대단한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이 팔공산의 중턱쯤에 다다랐을 때였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부두목! 부두목!”
왕삼이 강무진을 부르며 오두막으로 뛰어 들어갔으나 강무진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다.
‘어디 간 거야? 또 폭포에 간 건가?’
그런 생각이 들자 왕삼은 오두막을 나와 숲 속에 폭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에 가보니 과연 강무진이 폭포 밑에서 정좌를 하고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지랄……. 지가 무슨 신선이라고 만날 저 난리야?’
“부두목! 부두목!”
왕삼이 크게 부르는 소리에 강무진이 명상하던 것을 그만두고 폭포에서 나왔다. 그리고 몸의 물기를 닦고 옷을 입고 있는데 왕삼이 가까이 다가왔다.
“부두목! 아니, 오늘 남궁세가의 사람들이 온다는 사실을 잊었습니까?”
“응? 그게 오늘이었나?”
“네. 이미 두목님하고 다른 부두목님들은 모두 가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 알았어. 향이하고 소호는?”
“모르겠습니다. 아까 사냥 간다고 네댓 놈들 꾀어 가는 것 같던데요.”
사실 왕삼이 끌려갈 뻔했었지만 때마침 그들 옆을 지나가던 사람들한테 모두 떠넘기고 자신은 재빨리 그곳을 벗어나 버렸다. 향이와 소호와 같이 사냥을 가면 늘 자신이 미끼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한 번은 그렇게 미끼가 되어 멧돼지에게 받쳐서 며칠이나 누워 있어야 했던 적도 있었다.
“남궁세가의 사람들이 중요한 사람들이랬지?”
“네? 혹시 남궁세가가 어떤 곳인지 모르는 겁니까?”
“응. 왜? 그거 알아야 돼?”
‘니미……. 무슨 인간이 상식이 없냐, 상식이. 천하오대세가(天下五大世家)는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아는 건데…….’
왕삼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으나 겉으로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죠. 하하하. 어서 가시죠.”
“응. 잠깐 있어봐. 중요한 사람들이라고 하니까 옷 좀 갈아입고 가자. 채주님의 체면을 생각해야지.”
“네.”
그렇게 말하며 강무진은 오두막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나 왕삼이 보기엔 그 옷이 그 옷이었다. 낡고 허름하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어때? 좀 나은 것 같아?”
“…….”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대답이 없던 왕삼이 이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기… 솔직히 옷차림이 좀 그렇습니다.”
“그렇지? 하지만 옷이 없는걸.”
강무진은 부두목이란 직책에도 불구하고 검소한 편이었다. 아니, 검소할 수밖에 없었다.
강무진 산하의 부하들이 산적질을 해야 강무진에게도 뭔가가 생기는데, 부하라고는 달랑 향이와 유소호, 그리고 왕삼뿐이었으니 그들 셋이서 산적질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강무진은 욕심이 없어 그냥 배만 채우면 만족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옷 같은 것은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부두목들에 비해 항상 낡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럼 호피(虎皮)라도 하나 두르는 것이 어떻습니까? 산적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호피 아닙니까?”
“뭐야? 그 촌스러운 것을 나보고 입으라고? 더구나 이 더위에?”
“두목님도 그걸 걸치고 갔습니다.”
“그래? 근데 나 호피 없는데.”
“끙. 생각해 보니 그렇군요. 아참! 호피(虎皮)는 없어도 호피(狐皮)는 있습니다. 얼마 전에 향이하고 사냥 나갔다가 만들어놓은 것이 하나 있습죠.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왕삼이 그렇게 말하고는 재빨리 뛰어가서 호피를 가져왔다. 그러나 호랑이야 덩치가 커서 그 가죽으로 상의를 만들어 입을 수가 있었지만 여우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여우의 가죽으로는 기껏 만들어봐야 목도리 정도가 다였던 것이다.
지금 왕삼이 가지고 온 것도 마찬가지로 그 용도는 목도리였다. 그러나 왕삼은 그것을 강무진의 어깨에서부터 비스듬히 옆구리로 해서 묶어주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고 실제로 왕삼도 그렇게 느꼈으나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됐습니다. 이 정도면 좀 낫군요.”
“그래? 이렇게 하니까 그렇게 덥지도 않고 괜찮네. 모양도 좀 나겠지? 좋았어. 가자. 앞장서.”
“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