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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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7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16화
116화
황랑의 말대로 황랑이 직접 만들고 연구 중인 팔공당랑공은 강무진의 도움으로 많이 다듬어진 상태였다. 강무진의 기억이 드문드문하기는 했지만 무공의 기초지식만은 세세하게 기억하는 것이 많았다. 그래서 그동안 불완전했던 팔공당랑공의 뼈대를 확실히 다질 수가 있었고 이에 몰라볼 정도로 진보가 있었다. 뭐든지 그렇지만 무공도 기본이 탄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지, 다음 달에 녹림십팔채의 모임이 있네. 천하에 산재해 있는 열여덟 개 산채의 우두머리들이 모이지. 그때 같이 갔으면 하네만.”
“네? 제가요?”
“그래. 처음에는 내가 없을 동안 이 산채를 맡아서 관리하게 할까 했지만 그것보다는 그런 큰 모임에 같이 가는 것이 훨씬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네.”
물론 황랑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애초에 강무진에게 산채를 맡길 생각 같은 것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황랑은 녹림십팔채의 모임에 강무진을 데리고 가 그를 이용해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싶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번 모임에서는 녹림십팔채의 총채주를 새로 뽑는다. 5년마다 한 번씩 각 산채의 채주들의 의견을 조합해 총채주를 뽑는데 이번이 그 기간이었던 것이다.
그런 자리에 강무진 같은 고수를 자신의 부두목으로 데리고 간다면 여러 가지 이점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알고 있게나. 아! 그리고 이틀 뒤에 남궁세가에서 이곳을 지나간다고 하더군.”
“남궁세가요?”
남궁세가는 이곳 안휘성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었다. 안휘성 최고의 세력이기도 하면서 천하에서 알아주는 오대세가 중에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런 산채 정도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초토화시킬 정도의 저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남궁세가가 자신의 세력권을 지나는데 모른 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얼굴 정도는 비춰야 했다. 그렇게 남궁세가의 체면을 세워줘야 산적질을 하는 데 무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 다른 때야 상관없지만 이번에는 그곳의 소가주가 지나간다고 하더군. 그때 얼굴 정도는 보여야 하니 귀찮더라도 같이 가세나.”
“네. 알겠습니다.”
“그럼 가서 볼일 보게나. 내가 할 말은 이게 다일세.”
“네. 그럼.”
황랑의 거처에서 밖으로 나와 오두막으로 향하던 강무진은 한쪽에서 시끌시끌하니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는 그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하압!”
퍼억!
“끅!”
향이의 발에 명치를 제대로 차인 산적 하나가 그 자리에서 거품을 물고 꼬꾸라졌다. 뒤이어 향이를 뒤에서 안아 들어 올리려던 산적도 향이의 발에 턱을 차이면서 뒤로 넘어져 버렸다.
“흥!”
“젠장! 틈을 주지 말고 몰아붙여!”
“그쪽으로 못 빠져나가게 해!”
산적들은 소리를 지르며 향이를 향한 포위망을 점점 조여 갔다. 그 와중에도 향이에게 얻어터져 나동그라지는 산적들의 수는 차곡차곡 늘고 있었다.
“뭐야?”
강무진이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묻자 옆에 있던 산적이 강무진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뭐긴 뭐야? 보면 몰라? 오랜만에 몸 좀 푸는 거지! 흐흐. 저년 몸 좀 봐라. 죽이지 않냐?”
퍼억!
“컥!”
얼결에 주먹을 휘두른 강무진은 자신이 왜 주먹을 휘둘렀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강무진의 주먹에 맞은 상대는 이미 기절한 상태로 뻗어 있었다. 그러나 산적들은 향이를 어떻게 해볼 요량으로 그쪽에 모두 신경이 가 있었기 때문에 산적 하나가 그렇게 쓰러진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 나 정말……. 산채에는 내려오지 말라고 했는데 왜 내려온 거야?”
강무진이 중얼거리는 말을 옆에 있던 산적이 받았다.
“왜 내려오긴, 흐흐흐. 이 몸을 만족시켜 주려고 왔겠지.”
그 산적도 향이에게 눈을 꽂고 옆에 누가 있는지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저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오자 무의식적으로 대답을 했다.
퍼억!
“컥!”
또다시 얼결에 주먹이 나간 강무진은 상대를 한방에 쓰러트리고는 잠시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나 여전히 누구 하나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잠시 뒷머리를 긁적이던 강무진이 주먹을 뒤로 확 젖혔다.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단전에서 뜨거운 기운이 웅웅거리더니 온몸에서 극심한 통증이 일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강무진이 고통을 참지 못하고 오른팔을 잡고 주저앉으면서 크게 비명을 지르자 여태까지 향이를 어떻게 해보려고 모여 있던 수많은 산적들이 그제야 모두 고개를 돌려 강무진을 바라봤다.
“크으으으윽!”
“뭐야?”
“무슨 일이야?”
“부두목이 왜……?”
산적 중 한 명이 의아해하며 강무진에게 다가가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그 산적의 손에 불길이 확 일어나면서 손이 타들어갔다. 그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으아아악! 내 손!”
“뭐야?”
“무슨 일이야?”
산적들은 강무진에게 다가가던 사내의 몸에 불이 붙으며 쓰러지자 모두들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해했다.
“크으으으윽.”
강무진은 몸 안에서 갑자기 미친 듯이 휘몰아치는 열기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 열기에 휩싸여서 자신의 몸이 이대로 타버릴 것만 같았다.
‘크윽! 이대로는… 죽는다!’
강무진은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힘찬 기합과 함께 하늘을 향해 힘껏 뻗어냈다.
“흐아압!”
그러자 몸 안의 열기가 모두 강무진의 주먹을 따라 하늘로 뻗어나갔다.
화아아아아아!
마치 커다란 화룡이 강무진의 온몸을 타고 돌다가 하늘로 승천하는 것 같은 장관에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산적들은 물론이고 향이까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것은… 설마…….’
향이는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북해신궁의 무공은 극음의 차가운 기운을 주로 쓴다. 그리고 무공의 수위가 높아지면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얼려버리기도 한다. 그런 북해신궁의 무공과 상극을 이루는 무공이 있었다. 극양의 기운으로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무공이었는데, 향이가 알기로 그 무공은 패왕성의 절기였다. 패왕성은 남쪽 네 개의 성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세력이었다. 그런 패왕성의 절기를 이런 산적 나부랭이가 알고 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강무진은 처음에 자신도 모르게 아수라패왕진결을 돌려 아수라패왕권을 쓰려고 했다. 이에 단전에 있던 열화마결의 화기(火氣)가 한꺼번에 진동을 했기 때문에 그 기운을 당해내지 못하고 혈관들이 터져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강무진은 죽음이 눈앞에 닥치자 열화마결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아수라패왕진결을 억지로 멈추고 열화마결의 최상승 초식 중 하나인 열화마염풍(熱火魔炎風)을 썼다. 열화마염풍은 최상승의 초식인 만큼 내공의 소모가 굉장히 심했으나 그렇게 내공의 소모가 심한 만큼 강무진의 몸 안에서 들끓던 기는 안정이 되었던 것이다.
“헉, 헉…….”
그렇게 강무진은 얼결에 전력을 다해 열화마염풍을 쓰고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괜찮아요?”
그때 향이가 조심스럽게 강무진에게 다가가며 묻자, 강무진이 그녀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이에 향이가 가까이 다가가자 강무진이 작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부축.”
“네?”
“지금 일어설 힘도 없어. 그러니까 부축 좀 해달라고.”
“…….”
강무진의 말에 잠시 망설이던 향이가 곧 강무진을 부축해서 일으켰다. 그리고 오두막을 향해 가려고 했다. 그러나 아직도 향이에게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던 산적들이 그 앞에 서 있었다.
“뭐야?”
그런 그들을 향해 강무진이 눈에 힘을 주며 말하자 모두 흠칫하더니 곧 길을 내줬다.
그렇게 향이의 부축을 받으며 오두막에 거의 다다르자 강무진이 그대로 자리에 풀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산채에는 내려가지 말랬잖아. 왜 간 거야?”
“아! 맞다! 아가씨가 없어졌어요. 아가씨가 보이지 않아서 아가씨를 찾느라고…….”
“뭐? 그 꼬맹이 말이야?”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요!”
“뭐야? 지금 누구한테 큰소리야? 아까도 내가 안 갔으면 어쩔 뻔했어?”
“흥! 그딴 산적들쯤 제 상대가 아니라고요. 당신이 오지 않았어도 충분히 벗어날 수 있었어요.”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남자가 약해가지고 힘 한 번 쓰고 쓰러지기나 하고…….”
“끙…….”
향이의 말에 강무진의 인상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러나 강무진은 더 이상 뭐라 대꾸하지 않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자 향이가 또다시 강무진에게 핀잔을 줬다.
“그런 비실비실한 몸으로 뭘 하려고요? 그냥 앉아 있어요.”
“조용히 좀 해! 어쨌든 그 꼬맹이를 찾아봐야 할 거 아냐!”
“…….”
“너 혼자서 다니면 아까 같은 일이 또 생길거야. 그러니까 나랑 같이 다니는 것이 좋아.”
“그렇지만…….”
“빨리 와서 부축이나 해. 아직도 다리가 후들거려.”
“핏! 약골…….”
“이게 정말…….”
향이는 강무진의 말에 콧방귀를 뀌면서도 그에게 다가가 부축을 해줬다.
“산 아래까지는 안 갔을 거야. 그럼 누군가 본 놈이 있을 테니 빨리 찾아보자.”
향이는 의외로 강무진이 정말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강무진과 향이가 그렇게 찾아 헤매는 유소호는 엉뚱하게도 산적질을 하기 위해 나와 있는 산적들과 같이 있었다.
산적들은 방금 산을 지나가는 일행들의 주머니를 보기 좋게 털었다. 평범한 사람들이라 굳이 힘을 쓸 필요도 없었다. 그저 눈을 부라리며 크게 소리 몇 번 질렀더니 알아서 돈을 내놓고 갔던 것이다.
“음……. 어째서 저들에게서 돈을 받는 것이냐?”
유소호가 옆에 있던 왕삼에게 물어보자 왕삼이 돈을 챙기고 있다가 대답했다.
왕삼은 지금 산적질을 하러 나와 있는 산적들의 조장이었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배운 것이 아무것도 없어 일자무식(一字無識)이었지만,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늘 아는 체를 하며, 고상한 척하는 사내였다.
“아까 뭘 들은 거야? 이건 통행세라고, 통행세.”
“통행세?”
“그래. 우리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이 팔공산을 사람들이 무사히 지나갈 수 있도록 해주고 있지. 그것에 대한 대가인 거다.”
“우웅……. 그럼 산적질이 내가 알고 있는 것처럼 나쁜 짓이 아니구나.”
“뭐야? 누가 산적질이 나쁘다고 그래? 다른 사람들은 우리들이 빈둥빈둥 놀면서 돈을 버는 줄 알고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너 아까 우리와 같이 나가는 놈들 봤지?”
“봤다.”
“그놈들은 사냥을 하러 간 거야. 혹시나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곰이나 호랑이한테 습격을 받을까 봐 정찰도 할 겸 사냥을 나간 것이지. 그렇게 나갔다가 다치거나 가끔 죽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그만큼 목숨 걸고 일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걸 모르고 모두 오해하고 있는 거야.”
물론 왕삼이 하는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
산적들 중 일부가 사냥을 나간 것은 산채 식구가 무려 200명이나 되는데, 요즘 일거리가 없어 먹을 것이 없자 어쩔 수 없이 나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유소호가 알 리가 없었다. 왕삼이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을 하니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으음……. 그렇구나. 잘 알았다. 여태까지 그대들을 나쁘게 본 것을 진심으로 사과하겠다.”
“아, 뭐……. 그럴 것까지야…….”
왕삼은 유소호가 진심으로 자신의 말을 믿는 것 같아 오히려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산적이라도 여덟 살짜리 어린아이를 속이는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은 느껴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