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14화
무료소설 패왕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49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14화
114화
“벙어리는 아니었군. 찌는 날씨에 땀 흘리기 싫으니까 딱 결정해라. 맞고 따라올래, 아니면 그냥 따라올래?”
“…….”
“첫 번째군.”
강무진이 귀찮다는 듯이 목을 좌우로 젖혀 풀면서 남장 여인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강무진이 천천히 다가가고 있는데, 갑자기 남장 여인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강무진에게 접근하면서 검을 휘둘렀다.
쉬쉬쉭!
퍼퍼퍽!
“……!”
남장 여인은 분명 강무진을 베었으나 사람의 몸을 벤 느낌이 들지가 않았다. 마치 바위덩어리에 칼질을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에 남장 여인이 놀란 눈으로 강무진을 쳐다보자 강무진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다 했냐?”
“……!”
퍼억!
남장 여인이 뭐라고 말할 사이도 없이 강무진의 주먹이 그녀의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남장 여인의 실력이라면 강무진이 그렇게 가볍게 휘두르는 주먹쯤은 충분히 피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검에 맞고도 멀쩡한 강무진의 반응에, 가까운 거리에 있었음에도 잠시 멍해 있었던 것이 실수였다.
그 결과 강무진의 주먹이 남장 여인을 제대로 날려버렸고, 남장 여인은 그 충격에 뒤로 날아가 마차에 몸을 부딪쳤다.
“크윽!”
남장 여인은 싸움 중에 방심했던 것을 후회하면서 간신히 일어나 강무진에게 검을 겨누었다. 그러나 머리가 어질어질한 것이 방금 맞은 주먹의 충격이 가볍지 않게 느껴졌다.
그런 남장 여인에게 강무진이 느긋한 걸음걸이로 다가갔다. 남장 여인은 이번에는 반드시 강무진을 베어버리겠다는 생각에 내공을 있는 대로 끌어올려 검을 휘둘렀다.
“흐압!”
가가가각!
퍼퍼퍼퍽!
남장 여인의 검은 숨 한 번 쉴 동안 무려 네 번이나 강무진의 몸을 긋고 지나갔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강무진의 옷만 베어낼 뿐 그의 몸에는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다 했냐?”
“치잇!”
강무진이 아까와 똑같이 물어보자 여인이 검을 거두며 왼손바닥을 쭉 밀어 강무진의 가슴을 쳤다. 검으로 베어지지가 않는다면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으로 몸 안에서부터 충격을 줄 생각이었던 것이다.
퍼억!
남장 여인의 장력을 가슴에 그대로 맞은 강무진의 몸이 잠시 휘청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강무진은 전혀 충격이 없는지 멀쩡하니 서서 눈에 힘을 팍 주고 남장 여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한 번만 더 치면 죽는다!”
“……!”
검으로도 베어지지 않고 십성의 내공을 운용해 쳐도 멀쩡한 상대를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남장 여인은 도대체 어디서 이런 괴물이 나타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기껏 산적일 뿐이라 생각하며 깊이 생각하지 않고 검부터 휘두른 것이 실수였다. 이렇게 규모가 큰 산적일 줄은 생각도 못 한데다 이런 괴물 같은 놈이 있을 줄은 더더욱 몰랐던 것이다.
“마차에 있는 놈도 이제 내리라고 해.”
“…….”
“그냥 여기서 다 죽을래?”
“…….”
남장 여인은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를 않았다. 마차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목숨을 내주어서라도 보호를 해야 할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그렇게 한다 해도 마차에 있는 사람을 살릴 수 있을지 장담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마차에서 앳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됐어. 이제 그만 해, 향.”
그러더니 마차의 문이 열리며 한 여자아이가 내렸다. 나이가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주 예쁘고 귀엽게 생긴 여자아이였다.
“아가씨!”
남장 여인은 그 아이가 마차에 내릴 줄은 생각도 못 하고 있다가 놀라며 마차로 달려갔다.
“왜 내리셨어요. 빨리 마차에 올라타 있으세요. 제가 금방 이자들을 해결할게요.”
남장 여인의 말에 여자아이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괜찮다. 나도 다 알아. 저 사람은 무공이 대단해. 내 극음빙장(極陰氷掌)도 통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향이가 다치는 것도 싫어.”
“아가씨…….”
‘일단은 저자를 따라갈 수밖에 없겠군.’
어린 소녀에게 향이라고 불린 남장 여인이 그런 생각을 하며 강무진을 바라봤다.
강무진은 마차 안에 타고 있던 사람이 저렇게 조그마한 여자아이인 것이 상당히 의외였다. 그는 마차 안에서 극음의 한기(寒氣)를 느꼈다. 그 정도로 강한 기운은 웬만한 고수가 아니고서는 지닐 수 없건만 막상 상대를 확인하니 저렇게 어린아이였던 것이다.
‘끙. 이거 왠지 일이 귀찮아질 것 같은데…….’
강무진은 그 순간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미래의 일을 자신도 모르게 예측한 것일지도 몰랐다.
<새로운 부하가 생기다>
“으음…….”
어린 소녀가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초라하고 어질러져 있는 방이 눈에 들어왔다. 어색한 풍경이었다. 예전에는 아침에 눈을 뜨면 항상 깔끔하게 정리된 아주 커다란 방이 눈에 들어왔었다. 이런 지저분한 방이 아니었던 것이다.
“으응…….”
어린 소녀는 아직 자신이 잠에서 깨지 않았다고 여기며 눈을 비비다가 다시 자리에 누우려고 했다. 그때 옆에서 향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일어나셨군요.”
향이는 어린 소녀가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보필을 해온 시녀였다. 예전의 크고 깔끔한 자신의 방에서 눈을 뜨면 지금과 같이 항상 향이의 목소리가 제일 먼저 들려왔었다. 이에 어린 소녀는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이 초라한 방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응……. 여기가 어디냐?”
“죄송합니다, 아가씨. 제가 못나서……. 어제 일이 기억나지 않으세요?”
“어제……?”
향이의 말에 어린 소녀는 가만히 어제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자 산에서 산적들을 만나서 싸웠던 일, 조금 모자라 보이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향이와 자신을 부하로 삼겠다고 했던 일, 그리고 그자를 따라 이곳에 왔던 일 등이 생각났다.
‘휴……. 그랬었지.’
“나 좀 씻고 싶구나.”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금방 물을 가져올게요.”
그렇게 말한 향이가 밖으로 나가자 어린 소녀가 천천히 방 안을 둘러봤다. 나무로 대충 지어진 집은 곳곳에 구멍이 나있었고, 나무가 썩어 있는 곳도 있었다. 천장도 허름해서 아침 햇살이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만약 비라도 온다면 그리로 비가 다 샐 것 같았다.
‘어머니가 남궁세가(南宮世家)로 가라고 했는데……. 거기는 좋은 곳이라고 했는데.’
마지막에 자신의 손을 꼭 잡고 당부의 말을 하던 어머니가 생각나자 어린 소녀의 눈에 눈물이 조금씩 맺히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여덟 살의 나이로 그때 어머니가 했던 말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더 이상 어머니나 아버지를 볼 수 없다는 것만은 알 수가 있었다.
그때 향이가 대야에 물을 담아서 방으로 들어오자 어린 소녀가 급히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향이를 보며 말했다.
“왜 이렇게 늦느냐?”
“죄송해요, 아가씨. 물이 있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어요.”
향이가 그렇게 말하면서 대야를 놓고 수건을 물에 적셔서 어린 소녀의 얼굴과 손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조금 불편해도 며칠간은 이곳에서 지내야 할 거예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제가 꼭 남궁세가까지 모시고 갈 테니까요.”
“그래. 알았다.”
“자……. 다 됐어요. 머리도 만져 드릴까요?”
“아니, 됐다. 밖으로 나가자.”
“네.”
향이가 대답하며 조심스럽게 어린 소녀에게 옷을 입혀주고는 그녀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밖으로 나와보니 집 앞에는 조그만 공터가 있었고, 한쪽에는 나무로 대충 지은 오두막이 있었다. 그때 그 오두막의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더니 어제 봤던 멍청해 보이지만 무공이 강한 사내가 나왔다.
“흐아아암…….”
강무진은 크게 하품을 하다가 두 사람을 보고는 잠시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더니 느긋하게 팔자걸음으로 다가와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뭐야?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예?”
강무진이 다가와 대뜸 하는 말에 향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강무진이 향이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대면서 말했다.
“밥은? 아침밥을 준비해야 할 것 아냐?”
그동안 강무진의 부하들은 강무진이 눈뜨기 전부터 아침밥을 준비해 놓고 기다렸었다. 그래서 강무진이 향이에게 그렇게 물은 것이다. 강무진의 아침밥을 차려주던 부하들은 향이가 모두 죽여버렸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향이와 어린 소녀가 그 일을 대신해야 했던 것이다.
그때 향이가 아닌 어린 소녀가 앞으로 나서며 크게 소리쳤다.
“그게 무슨 말이냐? 향이가 왜 그대의 밥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냐?”
“응? 뭐? 것이냐?”
강무진은 어린 소녀의 자연스러운 하대에 어이가 없어 잠시 손가락으로 볼을 긁적였다. 그리고 쭈그리고 앉아 어린 소녀와 눈높이를 맞추면서 물었다.
“이름.”
“뭐?”
“이름이 뭐냐고?”
“무례한 놈. 남의 이름을 묻기 전에 자신의 이름을 먼저 알려주는 것이 예의다.”
“응? 그런가? 난 강무진이다. 여기 팔공채의 부두목이지. 너는?”
“나는 북해……. 아니, 나는 유소호다. 여기 향이는 내 시녀다. 그러니 내 명령 없이 그대의 밥을 준비하지는 않을 것이다.”
‘끙. 어린것이 무슨 말투가 이래? 어디 귀한 집에서 자랐나 보군.’
유소호가 하대를 하면서 말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강무진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보통의 아이들은 저렇게 어른들이 쓰는 말투를 쓰지 않는다. 그러나 명문가의 자제들은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하인들을 부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상대를 하대하는 말투가 입에 붙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집안이 얼마나 대단하냐에 따라 더욱 정도가 심했다. 강무진이 보기에 지금 유소호가 쓰는 말투는 웬만한 명문가 이상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부하로 잡혀온 이상 그런 것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래, 유소호. 너도 알다시피 너하고 저기 네 시녀인 향이는 어제부로 내 부하가 됐다. 그러니 너하고 향이는 내 아침밥을 준비해야 하는 거야. 알았지?”
“흥! 누가 그대의 부하라는 것이냐? 나는 그대의 부하가 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끙. 너 지금 어떻게 아직도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어제 네 시녀인 향이가 우리 산채의 식구들을 몇 명이나 죽였는지 알고 있어? 내 아침밥을 챙겨주던 녀석들까지 싹 죽여버렸지. 그러고도 지금 너희 둘의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은 내가 너희들을 부하로 거둬들였기 때문이야. 그러니 아침밥을 누가 준비해야 하지?”
“그건…….”
유소호가 또다시 뭔가 말하려고 하자 강무진이 그런 유소호의 말을 자르며 먼저 말을 꺼냈다.
“자, 그러니까 가서 아침밥을 준비하도록.”
그렇게 말한 강무진은 대답을 듣지도 않고 크게 기지개를 한 번 펴더니 오두막으로 들어가 버렸다.
“씨이……. 아직 내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가버리다니 저자는 예의도 모른단 말인가?”
“아가씨, 진정하세요. 아침밥은 제가 준비할 테니 아가씨도 잠시 쉬고 계세요.”
“왜 향이가 저자의 아침밥까지 준비해?”
“지금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곳을 벗어날 때까지는 저자의 말을 따라야 합니다.”
“우웅…….”
유소호는 향이의 말대로 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을 인정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볼에 잔뜩 바람을 넣어 부풀리고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향이가 미소를 지으면서 유소호를 달랬다.
“저는 괜찮아요. 그러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자, 그럼 조금만 기다리고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