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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전설 111화

무료소설 패왕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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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패왕전설 111화

 111화

 

<인연이 시작되다>

 

중원의 북쪽에서 더 북쪽으로 가면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 추위가 계속되어 1년 365일 중 여름의 며칠을 빼고는 항상 얼어붙어 있는 바다가 있다.

그곳을 사람들은 북해(北海)라고 불렀다. 그 북해의 중앙에 북해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며 따르는 곳이 있었다.

북해신궁(北海神宮)!

사람들은 그곳을 그렇게 불렀다.

그 북해신궁 후원의 깊은 방에서 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응애……. 응애…….”

사내아이였다. 힘차게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를 보며 산파가 아주 기쁜 얼굴을 했다.

“아가씨, 사내아이예요. 후훗.”

산파는 아이를 낳은 산모를 어렸을 때부터 보필해 온 시녀였기 때문에 산모가 혼인을 해서 아이를 낳은 지금까지도 옛날처럼 아가씨라 부르고 있었다.

“으응……. 안 돼……. 안 돼…….”

“아가씨…….”

아들을 낳았으면 당연히 기뻐해야 할 일이건만 산모는 지칠 대로 지쳐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도 계속 안 된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

산모의 그 같은 모습을 보고 있던 산파는 짐작되는 것이 있었다.

북해신궁의 궁주인 유양천에게는 부인이 다섯 명 있었다.

그 다섯 명의 부인들 중 둘째 부인에게만 아들이 하나 있었고, 다른 네 명의 부인들에게는 모두 딸뿐이었다.

어쩌다가 아들이 태어나기도 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런저런 이유로 모두 죽어버렸다. 이에 사람들이 쉬쉬하고는 있었지만, 모두들 둘째 부인이 자신의 아들을 북해신궁의 주인으로 만들기 위해 손을 썼다고 여겼다.

방금 아이를 낳은 산모는 유양천의 다섯째 부인이었다.

그래서 산모는 방금 아이를 낳아 지칠 대로 지쳐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도 아들이라는 소리를 듣자 계속 안 된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 부인이 자신의 아들에게 가할 흉수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아가씨,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못 봤나 봅니다. 아들이 아니라 딸이에요.”

“으응…….”

산파가 미소를 지으면서 자애롭게 산모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산모가 마음이 놓이는지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쿵쿵!

그때 밖에서 작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자 산파가 화들짝 놀라며 그쪽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그쪽으로 가 문을 열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 말했다.

“딸입니다. 예쁜 공주님이 태어났어요.”

산파의 말에 몇몇 사람들은 기쁜 얼굴을 했고 몇몇 사람들은 실망한 얼굴을 했다.

현재 북해신궁의 궁주인 유양천의 총애는 다섯 명의 부인들 중 가장 아름답고 현숙한 다섯째 부인이 모두 받고 있었다. 그러니 만약 아들이라면 그 아이가 궁주가 될 때까지 자신들이 지지해 줄 생각이었던 것이다.

 

유양천의 다섯째 부인은 아이의 이름은 유소호라고 지었다.

남자 같은 이름이라 주위에서 말이 조금 있었으나 다섯째 부인이 뜻을 굽히지 않아 결국 유소호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에 둘째 부인이나 주위의 몇몇 사람들은 유소호가 혹시나 딸이 아니라 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그러나 커가면서 보이는 유소호의 미모에 그런 생각은 싹 사라졌다. 유소호는 누가 봐도 예쁘고 깜찍한 여자아이였다. 게다가 남다르게 총명하기까지 하니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궁주인 유양천도 일곱 명의 자식들 중 유소호를 가장 귀여워했다. 심지어 유일한 아들인 유정보다도 더 유소호를 예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양천의 첫째 부인이 임신을 했다. 그리고 아들을 낳았다. 이에 북해신궁의 세력 구조에 조금씩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둘째 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양을 떨던 자들이 한두 명씩 모두 첫째 부인에게로 옮겨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첩의 자식이 아무리 뛰어나봤자 결국 첩의 자식이었다. 이제 첫째 부인에게 아들이 생겼으니 그 아이가 모든 것을 이어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궁주의 직위까지 말이다.

“죽여야겠어요.”

“너무 위험합니다. 지금도 소문이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우리 정이가 어떤 꼴을 당할지 알잖아요!”

“…….”

사내는 말이 없었다. 여태까지 다른 부인들이 사내아이를 낳으면 이런저런 방법으로 모두 처리를 했던 것이 바로 자신이었다. 어떤 아이는 독을 써서 죽였고, 어떤 아이는 높은 곳에서 떨어트려 사고로 위장해 죽였다. 또 어떤 아이는 직접 목을 졸라 죽이기도 했다. 그것이 다 자신과 궁주의 둘째 부인 사이에서 생긴 아들을 위해서였다.

모두가 알고 있는 북해신궁의 궁주인 유양천과 둘째 부인 사이의 아들 유정은 사실 그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어떻게요?”

“우선 겁을 주는 겁니다. 첫째 부인은 마음이 유약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반드시 아이를 해칠 것이라고 인식을 시켜주는 겁니다. 그러면 아이를 다른 곳으로 숨기려고 할 거고 그때 처리하면 의심을 받지 않을 겁니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훗! 방금 화를 내서 미안해요. 나한테는 역시 당신밖에 없어요.”

사내는 유양천의 둘째 부인이 품으로 안겨오자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한테는 내가 아니라 아들인 정이밖에 없겠지. 정이가 궁주가 되기 위해서라면 내 목숨쯤 헌신짝처럼 버리라 할 것이 당신이란 여자다. 하지만…….’

그랬다. 유정은 자신의 아들이기도 했던 것이다.

 

“아이가 사라지다니 무슨 말이냐?”

유양천이 놀라서 소리쳤으나 아무도 선뜻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무화와 소호, 둘이 다 없어졌다고!”

“네. 그, 그것이…….”

“당장 찾아내! 두 아이를 찾아내지 못하면 모두 죽여버리겠다!”

“……!”

유양천이 이렇게 화를 내는 모습을 모두들 처음 봤다. 아무리 화가 나도 이렇게 소리를 치면서 분노한 모습을 보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유양천이었다.

유양천의 그런 모습을 보며 모두들 몸을 움츠린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그때 둘째 부인이 유양천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말했다.

“지금 사람들이 흩어져서 백방으로 찾고 있으니 곧 소식이 있을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닥치시오!”

“……!”

“만약 그 두 아이를 찾지 못한다면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한 책임으로 그대들부터 죽일 것이오.”

유양천이 둘째 부인은 물론이고 뒤쪽에 있는 네 명의 부인들을 무서운 눈으로 쏘아보며 말하자 모두들 몸을 움찔했다. 그러나 다섯째 부인만은 속으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금쯤은 무사히 북해를 벗어나고 있겠지. 가거라, 아들아. 가서 자유롭게 살려무나.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마라.’

그런 생각을 하자 가슴이 메여오면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러다 결국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쓰러지면서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그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아이가 없어진 충격 때문에 그러는 줄 알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방금까지 윽박을 지르던 유양천도 자신이 조금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곧 눈물을 흘리고 있는 다섯째 부인에게 다가가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반드시 찾아오겠소. 소호 그 아이만큼은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반드시 찾아오겠소. 그러니 울음을 그치시구려.”

유양천이나 다른 그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의 눈물이라는 것을…….

 

“아가씨! 아가씨!”

시녀 한 명이 다급하게 외치며 방 안으로 들어가자 창가에 서 있던 적영령이 고개를 돌려 시녀를 바라봤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호들갑이야?”

“큰일 났어요, 아가씨!”

“응? 뭐가 그렇게 큰일인데?”

“공자님이… 대공자님이 없어지셨어요.”

“뭐?”

시녀의 말에 적영령이 놀라서 시녀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그러나 생각처럼 다리가 움직여주지 않았다. 근 1년 동안 꾸준히 연구하고 치료를 한 결과 간신히 서 있을 정도는 되었지만 아직 움직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조심하세요, 아가씨.”

적영령이 휘청하자 시녀가 다급하게 외치며 적영령을 부축했다. 적영령은 어찌나 놀랐는지 눈에 초점을 잃고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의식도 없이 1년이 넘게 누워 있던 사람이 갑자기 어디로 갔단 말인가?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어디로 갔단 말이야? 운휘 오라버니는? 오라버니한테는 알렸어?”

적영령이 크게 소리치며 묻자 시녀가 찔끔하며 말했다.

“네. 성주님에게도 이미 전갈이 갔습니다.”

“도대체…….”

적영령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말을 하다 말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런 그녀의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렸으나 적영령은 그것도 못 느끼고 있었다.

 

안휘성(安徽省)의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팔공산(八公山).

어벙하게 생긴 얼굴에 허름한 옷차림을 한 사내 한 명이 느긋하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가 산의 중턱에 다다랐을 때, 어디에선가 덩치 좋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 다섯 명이 나타나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노옴! 가진 것 다 내놓으면 살려준다!”

인적 드문 산속에서 이런 대사를 읊는 사람들은 딱 한 종류뿐이다. 통행세를 명목으로 지나가는 행인들의 주머니를 터는 산적!

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가진 거… 없는데.”

“뭐야? 이 자식이 없으면 없는 거지 어따 대고 반말이야?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지? 앙?”

산적질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초반에 상대편의 기세를 팍 눌러놓는 것이다. 그렇게 해놓으면 상대가 겁을 먹고 쉽게 돈을 내놓기 마련이다. 그러지 못했을 경우 상대가 반항을 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직접 몸을 움직여야 했다. 크게 소리 몇 번 지르면 될 일을 몸을 움직여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때 그들의 저항이 심하면 자칫 다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니 초반에 상대의 기세를 완전히 죽여놓는 것이 최고였다. 지금 소리치고 있는 이 산적도 오랜 경험으로 인해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네놈은 우리가 누구인 줄 아느냐?”

산적이 위협적으로 다시 크게 소리치자 사내가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러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몰라.”

“헛! 이놈이 또 반토막짜리 말을…….”

상대를 위협하며 크게 소리치던 산적은 자신의 기세에 전혀 기죽지 않는 사내를 보며 뭔가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다. 이에 옆에 있는 부하에게 슬쩍 귓속말로 물었다.

“야! 저놈 혹시 고수 아니냐?”

“에이 참, 딱 보면 모르십니까? 고수들은 눈빛이 날카로워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합니다. 헌데 저놈의 눈을 한번 보십시오. 썩은 동태 눈깔처럼 흐리멍덩하지 않습니까?”

부하의 말에 상대를 자세히 살펴보니 과연 눈이 풀린 것이 멍청해 보이기 짝이 없었다.

“험! 나도 알고 있어. 그냥 물어본 거야.”

산적이 무안함에 괜히 헛기침을 하며 어벙해 보이는 사내에게 바짝 다가갔다.

“다시 한 번 말한다. 가진 것 다 내놓으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

산적이 바로 앞에서 눈을 부라리며 윽박을 지르는데도 사내는 그저 멍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이 자식이 정말!”

퍼억!

상대의 멍한 눈이 신경에 거슬렸는지 산적이 주먹을 날려 사내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러나 비명소리는 사내가 아니라 사내를 친 산적에게서 났다.

“끄아아악!”

산적은 사내를 쳤던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펑펑 쏟아내었다. 분명 얼굴을 쳤건만 이건 사람을 친 것이 아니라 마치 바위를 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에 손이 아파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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