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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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5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07화
107화
“며칠 뒤에 패왕성으로 가는 일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그러나요?”
“아니.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데 걱정될 게 뭐가 있겠어.”
“…….”
강무진의 말에 잠시 조용히 있던 적영령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아까 오라버니의 얼굴은… 굉장히 쓸쓸해 보였어요.”
“그래?”
“네. 마치 소중한 것을 잃은 사람처럼…….”
“그래……. 많은 것을 잃었지.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아.”
“그렇게 될 거예요.”
“응.”
후원의 중앙까지 오자 강무진이 적영령의 앞쪽으로 와서 적영령을 보며 물었다.
“다리는 좀 어때?”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아요.”
“정말?”
강무진이 자신의 일처럼 좋아하자 적영령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사실 적영령은 요즘 무덕삼과 같이 자신의 다리를 치료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이에 며칠 동안 밤을 새며 토론을 하며 서로의 의술에 대해 알아갈수록 상대에게 감탄을 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무덕삼의 의술은 물론이고 적영령의 의술 역시 대단히 뛰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몇 가지 가능성을 찾아 조심스럽게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치료가 성공하기만 하면 전처럼 뛸 수는 없어도 천천히 걸어다닐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무 아저씨가 너무 열심히 치료해 주셔서 어떤 때는 부담이 될 정도예요.”
“그래? 혹시 그 사람이 너한테 흑심을 품고 있는 것 아냐?”
강무진이 짐짓 화가 나는 척하며 말하자 적영령이 웃음을 터트렸다.
“풋! 전부 오라버니 때문이잖아요. 오라버니가 무병이를 데려와서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그러시는데 어떻게 말릴 수도 없고…….”
“쩝! 그런가…….”
강무진은 무덕삼과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무무병이 뭔가를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관옥상이 유가장원의 여식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의 오라비와 대결을 하기로 한 사실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오라비가 지병을 앓고 있고 그 병을 치료하고 있던 사람이 무덕삼이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사실 관옥상은 그녀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자 무덕삼을 거의 납치하다시피 흑룡문에 데리고 왔다. 그리고 무덕삼이 만든 약을 그녀의 오라버니에게 가져다준다는 핑계로 유가장원을 들락거렸던 것이다.
무덕삼으로서도 악양에서 알아주는 문파인 흑룡문에서 생활하는 것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곳에 있는 의원들과 의술을 토론하고 수많은 약재들을 마음대로 다룰 수가 있어서 좋은 점이 더 많았다.
다만 관옥상이 흑룡문 밖의 출입을 못 하게 하는 것이 조금 불편하기는 했으나 강무진이 무무병을 데려와 만나게 해주고 관옥상을 설득하자 행동이 자유로워졌던 것이다.
“저기 오라버니.”
“응?”
“일이 잘 돼서 도백광과 겨루어 이기면 패왕성의 성주가 되는 거네요.”
“응? 흐음……. 생각해 보니 그러네. 그런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후훗! 그럼 모두가 오라버니를 대단하게 볼 거예요.”
“…….”
적영령은 자신의 이야기에 상관없이 갑자기 강무진이 심각한 표정을 짓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던 강무진이 적영령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뭔가 고민이 있으세요?”
“아니. 난 말이지. 이번 일이 끝나면 패왕성을 떠날까 해.”
“네?”
“여태까지 패왕성의 대공자란 자리에 앉아 있기는 했지만 한 번도 내가 패왕성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사람들도 그렇게 여겨주지 않았고 말이야.”
“그건…….”
“알아. 하지만 그런 것들 때문이 아니야. 나한테는 그 자리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는 거야. 도백광을 이기고 나면 적 사제를 찾아볼 생각이야. 역시 그런 자리에는 적 사제가 제격이야. 왕 사제는 머리도 좋고 무공도 뛰어나지만 너무 강직하지. 반면에 화 사제는 강직한 면이 너무 없고. 그리고 주 사매는…….”
강무진은 주소예를 생각하자 갑자기 예전에 이이책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그때 이이책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이야기를 꺼냈었다.
패왕성에서 적영령과 마홍 등을 구하려고 했을 때, 패왕성에서는 이미 그들이 올 것을 알고 대비를 하고 있었다.
이이책은 자신들이 패왕성으로 잠입할 것이라는 정보를 그들에게 알려준 것이 주소예라고 말했었다.
강무진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이책에게 화를 냈다.
그러나 이이책은 그런 강무진의 반응을 미리 짐작하고 있었던지 강무진의 화가 조금 가라앉기를 기다려 그때의 상황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주소예가 배신했다는 것을 증명했다.
특히 여사악의 여자는 믿지 말라는 그 말이 주소예가 배신했다는 결정적인 단서였다.
강무진은 지금도 주소예가 그랬다는 것을 믿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만나면 한 번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아니겠지만 혹시나, 정말 혹시라도 주소예가 정말 그랬다면 왜 그랬는지 꼭 물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를 용서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녀가 패왕성에 준 정보로 인해 패왕마전대가 전멸하지 않았던가?
함께 웃고 즐거워하기도 했고 어려운 고난을 함께 헤쳐 나오기도 했던 사람들이 모두 죽어갔다. 그것은 아무리 주소예라고 해도 용서할 수가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적영령은 강무진이 주소예란 이름을 꺼내고는 쓸쓸한 얼굴을 하자 가만히 강무진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강무진이 적영령을 바라봤다. 적영령의 눈에는 안쓰러움과 걱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훗! 주 사매는 여자라서 안 되지. 그러니 결국 적 사제가 가장 적격이야. 나는 성격이 너무 물러서 그런 자리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강무진이 그렇게 말하면서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예전에 주소예에게 하듯이 적영령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었다. 적영령은 뜻하지 않게 강무진의 손길이 닿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적 사제를 찾아 성주의 자리에 앉힌 후에는 강호를 유람할 거야.”
“훗! 그럼 저도 데려가 주세요.”
“아니. 넌 적 사제와 함께 있는 것이 더 좋아. 적 사제가 널 끔찍이 위하잖아. 패왕성의 성주가 되면 아마 더 잘해 줄 거야.”
“그래도 전 오라버니와 함께 있고 싶은걸요.”
“뭐? 하하하. 이거 적 사제가 들으면 서운해하겠는걸.”
“진심이에요. 전 적 오라버니보다 오라버니와 더 같이 있고 싶어요.”
적영령은 진심을 담아 이야기를 했다. 사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조금 부끄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야기하고 나니 조금 시원한 느낌은 있었다.
“그래. 그럼 적 사제한테 돈을 왕창 뜯어서 같이 강호나 유람하자. 어차피 기다리는 사람도 없으니…….”
그렇게 말하던 강무진은 순간 절강성에 있는 유빙화가 생각났다. 그리고 뒤이어 정소옥과 용보아도 생각이 났다.
또한 의형인 구소단도 생각이 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패왕무고에 있던 곽소소가 생각났다. 사실 전에 패왕무고를 불태울 때 도움을 주었던 것이 바로 곽소소였다. 만약 그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강무진이 그렇게 쉽게 패왕무고에 불을 지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어. 크큭! 일이 끝나면 가장 먼저 절강성부터 들러야겠군.’
강무진이 그런 생각을 하며 웃음을 짓자 적영령이 그런 강무진을 살짝 째려봤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강무진은 자신의 친동생인 것도 잊고 하마터면 콱 안아버릴 뻔했다.
“방금 다른 여자 생각했죠? 그렇죠?”
“응? 하하하하. 이거 귀신이 와서 울고 가겠는걸.”
“누구예요? 누굴 생각한 거예요?”
“에이……. 아니야. 생각하기는 누굴 생각했다고 그래.”
“거짓말! 지금도 눈이 웃고 있잖아요. 사실대로 말해 봐요. 누구예요?”
“하하하하.”
적영령이 자꾸 집요하게 물어보자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강무진이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멀리 떨어진 전각의 지붕 위에 앉아 있는 두 명의 노인이 흡족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손녀따님이 귀엽군요.”
“허 참, 사람……. 이제 말 놓고 친구하자니까 그러네. 나이도 비슷하구먼……. 험! 자네 손녀딸 이야기는 대충 들었네.”
검성 부형승이 호리병에 들은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노극부에게 내밀자 노극부가 그걸 받아서 한 모금 마셨다. 원래 술은 절대로 입에 대지 않는 노극부였으나 초연 이야기가 나오자 마음이 저려왔던 것이다.
“다 지난 일일세.”
“허허……. 그래. 그렇게 말 놓고 친구하자고.”
“그런데… 내가 세 살 더 많지 않나?”
“…….”
노극부의 말에 부형승은 아무 말도 없었다.
“날씨가 좋군.”
강무진이 배의 갑판 선두에 서서 옆에 있는 이이책에게 말하자 이이책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좋기는 한데……. 너무 조용하군요.”
“좋으면 그만이지.”
“흠, 그거야 그렇죠.”
“조금 있으면 상음인가?”
“저녁때쯤엔 도착할 겁니다. 이대로 조용히만 간다면 말이죠.”
“그러지는 못할 것 같군.”
강무진이 앞쪽에 보이는 배들을 보면서 말하자 이이책이 손으로 햇빛을 가리며 그쪽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를 보내자!>
현재 강무진 쪽의 배는 겨우 다섯 척이었다. 그러나 그 앞을 가로막고 있는 배들은 십여 척이나 되었다.
“남강수로연맹이에요.”
강무진과 이이책의 옆으로 관여지가 다가와서 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남강수로연맹은 패왕성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호남성의 수로를 거의 장악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때였다. 일렬로 가고 있던 배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강무진이 타고 있던 배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무진의 옆으로 배 하나가 바짝 붙어서 왔다.
그 배의 갑판 선미에 타고 있던 관옥상이 강무진을 보고 크게 소리쳤다.
“무진! 내가 널 반드시 패왕성까지 보낸다! 이 형님만 믿어라!”
적의 배가 훨씬 많아 불리한 상황인데도 관옥상은 자신만만했다. 예전의 관옥상에게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믿겠습니다!”
강무진이 그렇게 크게 소리치자 관옥상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강무진의 옆에 있는 이이책과 관여지를 힐끗 보더니 이이책에게 크게 소리쳤다.
“이이책! 내 동생 잘 부탁한다!”
“에?”
이이책은 관옥상의 말에 잠시 놀란 얼굴을 했고 관여지는 얼굴이 붉어져서 소리쳤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런 관여지를 무시하며 관옥상이 뒤에 있는 흑룡문 사람들에게 크게 소리쳤다.
“하하하하! 가자! 흑룡문의 힘을 보여주자!”
“우와아아아아!”
관옥상이 탄 배가 서서히 앞으로 나서면서 최선두에 서자 나머지 배들이 강무진이 탄 배를 삼각형 모양으로 둘러쌌다. 그런 상태로 적의 배들이 있는 곳까지 거의 다다랐는데도 속력을 줄이지 않고 있었다.
“좋았어! 벌려라!”
그때 관옥상이 크게 외치자 그 목소리를 따라 몇몇 사람들이 크게 따라 외치기 시작했다.
“벌려라!”
“벌려!”
그러자 강무진의 앞쪽에 있던 배들이 양쪽으로 비스듬히 나가면서 앞을 가로막고 있던 배들을 그대로 박아버렸다.
콰콰콰쾅!
쿠쿠쿠쿠!
남강수로연맹에서는 흑룡문의 이런 무식한 전법에 꽤나 당황하고 있었다. 이렇게 수로상에서 싸우게 되면 보통 배의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법이다. 그런데 같이 죽자는 식으로 초장부터 배를 부딪쳐오니 적지 않게 당황을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