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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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2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05화
105화
“무슨 일이야? 비상! 비상이다!”
사내가 그렇게 크게 외치고 있을 때 노극부는 이미 성문 위로 가볍게 올라 내려선 상태였다. 성문 위에 있던 자들은 갑자기 나타난 노극부를 보고 모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그들을 보고 혀를 한 번 찬 노극부의 모습이 다시 사라져 버렸다.
“쯧!”
그러자 노극부를 봤던 사람들이 방금 헛것을 본 것이라 생각하며 모두 눈을 비볐다. 그때 옆에서 한 사내가 성문 아래를 보며 놀라서 소리쳤다.
“엇! 저기…….”
이에 모두가 그쪽으로 가보니 방금 그들의 눈앞에 있던 노극부가 어느새 성안으로 들어가 느긋하게 걸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침입자다! 경계를 울려!”
“빨리 서둘러!”
사내들이 우왕좌왕하며 급히 품에서 호각을 꺼내 불기 시작했다.
“삐이이이이익!”
그러자 어디에선가 수십여 명의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일언반구도 없이 노극부를 공격해 가기 시작했다.
“엉망이군. 엉망이야.”
노극부는 그런 그들을 보면서 고개를 살랑살랑 저었다. 그사이에도 그들은 노극부를 완전히 에워싸며 공격해 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의 검이 노극부의 몸을 베어버리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노극부의 몸이 사라지더니 어느새 그들의 공격을 완전히 벗어나 무려 삼 장이나 벗어나 있는 것이 아닌가?
“으아아아악!”
“크아악! 내 손!”
“아악!”
노극부를 공격했던 자들 중 세 명이 손을 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이에 사람들은 모두 마치 귀신에 홀린 듯했다.
“내 이름은 노극부다. 가서 도백광에게 내가 왔다고 전해.”
노극부의 말에 그를 다시 포위한 사람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들 중 한 사내가 재빨리 몸을 날렸다. 그것을 보고 노극부가 여전히 뒷짐을 진 채 혀를 끌끌 찼다.
집무실에서 책상에 두 다리를 올려놓고 이런저런 서류를 보며 아무 데나 휙휙 던지던 섭초홍이 흥미가 없다는 듯이 들고 있던 서류 전부를 던져버렸다.
“결국 그가 만나기는 했는데…….”
탕탕!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자 섭초홍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뭐야? 일할 때는 두드리지 말라고 했잖아!”
“급한 사항입니다.”
“급한 일이 뭐가 있어!”
“무영살검 노극부가 도백광을 찾아왔습니다.”
“뭐야?”
콰당!
섭초홍은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급하게 일어서려다가 자신이 책상에 두 다리를 모두 올리고 있다는 것을 잊고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밖에서 보고를 하던 이가 놀라서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이십 대로 보이는 늘씬한 체형의 미녀였는데, 섭초홍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여인이었다.
“괜찮으세요, 대주님?”
“끙! 방금 뭐라고 그랬어?”
“무영살검 노극부가 지금 도백광을 찾아왔습니다.”
쾅!
여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섭초홍이 주먹으로 탁자를 내려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 인간이 왜 지금 여기를 찾아와?”
섭초홍의 기세에 여인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찔끔하면서 대답했다.
“모,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들어왔대? 지금 어디 있어?”
“정문으로 당당하게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를 못 알아보고 막아섰던 자들의 손목이 모두 잘렸다고 합니다.”
“이런 썅! 그런 건 재빨리 보고를 해야지 뭐 했어!”
결국 섭초홍의 입에서 도저히 여인에게 할 수 없는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그, 그게……. 진즉에 알렸는데 대주님이 집무실에 있을 땐 아무도 방해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려놔서…….”
“으……. 이런 멍청한 것들! 상황을 봐가면서 해야 할 것 아니야? 우이씨!”
책상을 두 손으로 짚고 부들부들 떨던 섭초홍이 뭔가를 생각하는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래서 지금 어디 있어?”
“내성의 동문 앞에 있다고 합니다.”
“도백광은?”
“벌써 보고가 갔을 겁니다.”
“나도 간다. 무공이 뛰어난 애들로 열 명만 추려.”
“넵!”
섭초홍이 그렇게 명령을 내리자 여인이 재빨리 후다닥 밖으로 뛰어나갔다.
동문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포위를 당해 있는 상태에서도 노극부는 느긋했다. 마치 산보를 나온 것 마냥 뒷짐을 지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때 어디에선가 덩치가 좋은 두 명의 장년 사내들이 급히 날아왔다. 그중 한 명이 노극부를 둘러싸고 있는 자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이런 멍청한 놈들! 당장 포위를 풀어! 저분이 누군지도 모른단 말이냐?”
사내의 외침에 노극부를 둘러싸고 있던 자들이 우르르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그 사내가 급히 노극부 앞으로 가서 예를 취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노 어르신. 아직 이들이 노 어르신을 몰라서 그러니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쯧! 네놈들은 꼴도 보기 싫어. 당장 가서 도백광이나 오라고 그래.”
노극부가 상대하기도 싫다는 듯이 말하자 다른 중년 사내도 역시 예를 취하면서 말했다.
“어르신, 오랜만에 뵙습니다.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일단 안으로 드셔서 말씀을 나누는 것이…….”
“시끄러워. 지금 당장 네놈들 목을 따지 않는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때였다. 어디에선가 얇으면서도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을 삼가시오. 누가 감히 패왕성의 좌호법과 패왕폭풍대 대주의 목을 딸 수 있단 말이오?”
“저건 또 뭐냐?”
노극부가 다가오는 사내를 보며 묻자 주양악이 그를 보며 대답을 했다.
“여사악이라고 도백광의 측근입니다.”
“저놈이 여사악이란 말이지?”
순간 노극부가 살기를 드러내자 그 살기로 인해 그곳에 있던 자들의 몸이 일순 꿈틀했다. 그것은 그 자리에 있던 패왕성의 좌호법인 주양악과 패왕폭풍대의 대주 왕철심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여사악 역시 그것을 느끼고는 노극부에게 다가가던 걸음을 멈추며 전신을 극도로 긴장시키기 시작했다.
‘주, 죽는다!’
노극부의 살기에 여사악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오로지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 순간 노극부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어느새 검으로 여사악의 손목을 그어가고 있었다. 노극부가 손에 들고 있던 그 긴 막대는 사실 검이었던 것이다. 아까 자신을 막아서던 자들의 손목을 베어버린 것도 그 막대 안에 들어 있던 검으로 베어버린 것이었다.
여사악은 노극부의 빠른 신법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재빨리 손을 뒤로 뺌과 동시에 몸을 뒤로 날렸다. 그러나 그런 여사악을 놓칠 노극부가 아니었다. 여사악이 뒤로 물러나는 것을 따라 노극부의 검도 방향을 바꾸었다. 극쾌의 검을 펼치면서 이렇게 방향까지 바꾼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노극부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었다.
이에 여사악의 손목이 그대로 잘려 나갈 판이었다.
“잠시 손을 거두어주십시오!”
그때 어디에선가 내공이 가득 실린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자 노극부가 잠시 멈칫했고, 여사악은 그사이에 완전히 뒤로 물러날 수가 있었다. 그런 여사악의 손목에는 가늘게 검상이 나 있었다. 정말 조금만 늦었어도 손목이 날아갈 뻔했던 것이다.
이에 여사악이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상대가 살아 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노극부인 걸 알면서도 섣불리 나선 자신의 실수를 책망했다.
노극부는 어느새 검을 회수해 다시 막대기에 꽂아놓은 상태였다. 그는 뒷짐을 지고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봤다. 그러자 잠시 후 도백광과 섭초홍이 공중에서 날아내렸다.
섭초홍은 땅에 내려서자마자 노극부를 향해 예를 취했다.
“어르신을 뵙습니다.”
그런 섭초홍은 쳐다보지도 않고 노극부는 도백광을 노려봤다. 도백광은 그런 노극부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받았다.
“흥! 제법 자신감이 있구나.”
“처음 뵙겠습니다, 어르신. 도백광이라고 합니다.”
“묻자. 네놈은 왜 성주가 되려고 하느냐?”
“…….”
도백광은 갑작스러운 노극부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노극부가 혀를 차면서 말했다.
“쯧쯧, 전대의 성주였던 적공후는 나를 무려 삼 년이나 쫓아다녔었다. 솔직히 그때는 귀찮아서 적공후를 따라 패왕성에 왔었지. 그런데 적상군 그놈은 열두 살 때 나를 찾아와 세상을 이롭게 하고 싶다며 도움을 청했다. 그래서 어떻게 세상을 이롭게 할 것이냐고 물으니 먼저 나를 이롭게 하고 싶다고 말하더구나. 어린 것이 아주 맹랑했지. 그래서 적공후와 상의해서 수신호위대에 내 무공의 일부를 전했다. 항상 사람만 죽이던 내 무공이 사람을 보호하고 살리는 데 쓰인다는 것에 그때 난 눈물을 흘렸었다. 그때 내 속으로 맹세를 했었다. 내 늙어 죽을 때까지 그 어린놈을 주인으로 섬기겠다고…….”
그때를 회상하는지 잠시 말을 끊은 노극부가 곧 이야기를 계속했다.
“걱정 마라. 그놈의 복수를 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내가 오늘 여기에 온 것은 강무진의 부탁 때문이다. 허나 네놈이 만약 적상군 그놈만큼만 된다면 나는 그냥 돌아가려고 했다. 쯧쯧.”
“선배님의 말씀은 제가 적상군보다 못하다는 뜻이군요.”
도백광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자 노극부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한참 모자라. 네놈이 진정 패왕성의 패자가 되고 싶었다면, 제일 먼저 나를 찾아왔어야 했다. 적공후가 왜 삼 년 동안 나를 따라다니고, 적상군이 왜 나를 감동시켜 옆에 두었는지 그 이유를 알았어야 했다. 그것은 네놈들도 마찬가지야!”
도백광에게 이야기를 하던 노극부가 갑자기 주양악과 왕철심을 보고 소리치자 두 사람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어, 어르신…….”
“적상군은 언젠가 한 번 이렇게 패왕성이 뒤집어질 것이라는 걸 예감하고 있었다. 그걸 알고 그는 나에게 쓸데없는 명령을 내려 임무를 완성하기 전에는 절대로 돌아오지 말라고 하더구나. 적상군이 내게 내린 명령이 무엇인지 아느냐? 초홍, 너는 정보가 빠삭하니 네가 한번 말해 보아라.”
노극부의 말에 섭초홍이 노극부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커다란 폭포가 있는 곳에 집을 짓고 혼인을 해서 아이를 만들어 오라는 명령이었습니다.”
“…….”
섭초홍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황당함에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그동안 왜 노극부가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는지 이해가 갔다. 사실 살아 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그가 그렇게 오랫동안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이에 모두들 그가 죽거나 사고를 당해 피해 있다고만 여겼던 것이다.
“그가 왜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 아느냐? 나를 숨기기 위해서였다. 나중에 그놈이 와서 하나 더 내린 명령이 있지. 나중에 제 놈 아들이 나를 찾아와서 도움을 청하면 그를 도와주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적상군 그놈이 스스로 죽으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애써 그것을 무시했지. 사실 그때 그놈은 이미 네놈들이 배신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 게야. 그는 자신이 죽음으로써 네놈들을 살리려고 했던 게지. 멍청한 선택이었어. 차라리 나한테 부탁을 했으면 네놈들 목을 모두 따버렸을 텐데. 말 한마디만 했으면 되었을 것을…….”
노극부의 말에 섭초홍이나 주양악, 그리고 왕철심 모두 할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