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04화
무료소설 패왕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1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04화
104화
그 순간 적운휘가 먼저 움직였다. 그러나 빠른 움직임이 아니었다. 마치 산보를 가듯이 느긋한 걸음걸이로 호지에게 다가갔다. 호지는 그런 적운휘의 모습을 가만히 보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면서 손만 뻗으면 상대에게 닿을 수 있는 거리까지 좁혀졌다. 그럼에도 두 사람 모두 손을 뻗지 않고 있었다. 그때였다. 호지가 이를 악물며 먼저 주먹을 뻗었다.
“치잇!”
그런 호지의 주먹을 적운휘의 주먹이 밑에서부터 위로 쳐올렸다.
퍼어억!
“크윽!”
그러자 호지의 주먹이 방향을 잃고 튕겨 올랐다. 그러나 호지는 당황하지 않고 튕겨 나간 손을 당김과 동시에 다른 쪽 주먹을 날렸다.
적운휘는 그런 호지의 주먹이 다가오는 순간 방금과 같이 그의 주먹을 또다시 쳐서 날렸다.
퍼억!
“윽! 이놈이!”
이에 호지가 양 주먹을 번갈아 가며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뻗어내기 시작했다.
퍼퍼퍼펑!
그때마다 적운휘는 호지의 주먹을 모두 옆으로 쳐냈다. 얼핏 보기에 호지가 맹공격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적운휘의 주먹에 모두 차단당하고 있었다. 그러던 순간 호지의 주먹과 적운휘의 주먹이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귀청을 때리는 파공음이 울렸다.
콰아아아앙!
“크윽!”
호지는 주먹에 밀려오는 충격으로 무려 두 걸음이나 물러서며 적운휘 역시 자신과 같이 뒤로 물러섰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적운휘는 오히려 앞으로 나오며 방금 부딪친 주먹 말고 다른 주먹으로 호지의 배를 올려치고 있었다.
적운휘는 호지와 주먹이 부딪치면서 뒤로 튕겨 나오는 힘을 허리를 비틀어냄으로써 다른 쪽 주먹에 실었던 것이다. 그러니 호지가 뻗어낸 주먹의 위력이 고스란히 적운휘의 주먹에 담겨 있었다. 그것을 호지가 간신히 쳐 내리며 막는 순간 호지의 가슴에 세 개의 반원이 터터텅 소리를 내며 파였다.
“커억!”
어느새 적운휘의 주먹이 호지의 가슴을 세 번이나 강타한 것이었다. 뒤이어 적운휘가 앞으로 한발을 강하게 디디면서 손바닥으로 앞으로 숙여진 호지의 턱을 힘껏 올려쳤다.
덜컥!
그러자 호지의 머리가 완전히 뒤로 젖혀지면서 몸이 살짝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 상태에서 한 번 더 손을 쓰면 호지를 죽일 수도 있었으나 적운휘는 그러지 않았다.
털썩!
호지는 뇌가 흔들려서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그런 호지를 잠시 내려다보던 적운휘가 호지와 함께 온 자들을 보고 말했다.
“데려가라. 그리고 가서 도백광에게 전해라. 조만간 찾아가겠다고.”
호지와 함께 왔던 자들이 서둘러 쓰러져 있는 호지를 부축해서 장내를 벗어났다.
그러자 적운휘가 고춘의를 향해 포권을 취하면서 말했다.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그리고 자리를 허락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허허. 아닐세. 간만에 이 늙은이의 눈이 호강을 해서 아주 즐거웠다네.”
“훗!”
고춘의의 말에 적운휘가 잠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옆에서 보고 있던 고정정의 심장은 터져나갈 것같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이 참……. 또 심장이 이러네. 그가 들으면 안 되는데…….’
적운휘가 들을 리도 없건만 그것이 걱정되는 고정정이었다. 그런 고정정의 마음이 닿았는지 적운휘가 고정정에게 다가갔다. 그런 적운휘를 고정정은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적운휘가 그녀의 바로 앞에까지 와서 서자 그를 보는 순간부터 쿵쾅대며 뛰던 심장이 일순 조용해졌다.
“못… 올 줄 알았어요. 내가 그때 누구인지 말을 안 해서… 못 찾아올 줄 알고…….”
“훗! 이런 귀여운 아가씨를 어찌 못 알아보겠소. 그리고 이런 검은 아무나 가지고 있지 않소.”
적운휘가 그렇게 말하면서 고정정이 그때 줬던 봉황쌍검 중 하나를 꺼내서 내밀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고춘의는 순간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
‘헛! 저, 저것은 봉황쌍검! 그렇다면 그때 마안혈랑을 잡고 정정의 마음을 빼앗아 간 상대가 저 젊은이였단 말인가?’
“전에 혹시 내가 상처를 감아 주었던 수건을 가지고 계시오?”
“예? 아! 예. 여기요.”
고정정은 깨끗이 빨아서 봉황쌍검만큼이나 애지중지하며 품고 있던 손수건을 급히 적운휘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적운휘가 그것을 챙겨 넣으면서 말했다.
“미안하오. 사실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을 받은 것이었는데 깜빡 잊고 있었소. 그리고 이 검은 내가 받을 수 없소.”
“아!”
고정정은 적운휘가 자신이 준 봉황쌍검 중 하나를 다시 돌려주려고 하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런 고정정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며 적운휘가 말했다.
“그때 무턱대고 받기는 했지만 너무 귀한 검이오. 나한테는 어울리지 않소. 그러니 돌려주겠소.”
“하, 하지만…….”
고정정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검을 돌려받으면 이대로 적운휘와의 인연이 끝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게 망설이고 있는 고정정의 손에 적운휘가 봉황쌍검을 쥐어주었다.
그리고 몸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고정정이 갑자기 적운휘에게 달려들며 두 손으로 그의 목을 감았다. 그러고는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헉!”
“아니 저, 저…….”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비록 대부분이 무림 사람들이라 남녀의 구별에 크게 상관하지는 않았으나 저렇듯 대놓고 일을 벌이니 모두들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적운휘에게 입을 맞춘 고정정이 갑자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울음을 터트렸다.
“으아앙……. 가지 마요. 당신이 좋단 말이야. 가지 마. 엉엉…….”
“크으…….”
고정정의 돌발행동에 고춘의는 순간 뒷골이 당겨오는 것을 느꼈다. 추태도 이런 추태가 없었다. 곱게 오냐오냐 키워놓았더니 천방지축도 유분수지 자신의 얼굴은 물론이고 형산파에도 먹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 속으로는 내심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춘의는 적운휘가 싫지 않았다. 뛰어난 무공과 잘생긴 외모, 격식 있는 행동, 게다가 패왕성의 성주인 적상군의 혈통이지 않은가?
위험 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잘만 하면 형산파가 더욱 발전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어서 울음을 그치지 못하겠느냐?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게 무슨 추태냐?”
“으아앙……. 몰라, 몰라. 저 사람 못 가게 잡아 줘. 아버지가 찾아준다고 했잖아. 엉엉…….”
“허 참…….”
고춘의는 고정정이 쉽게 진정할 것 같지 않자 그곳에 있는 모두에게 예를 취하면서 먼저 사과를 했다.
“이거 모두들 먼 길을 오셨는데 이런 추태를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하도 오냐오냐 하면서 키웠더니 버릇이 없어서…….”
고춘의가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그렇게 사과를 하는데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그게 어디 고 장문인 잘못이오? 그러지 말고 둘이 맺어주지 그러시오.”
“크크크. 맞소이다.”
“저렇게 좋아 죽겠다는데 맺어줘야지 어찌 하겠소. 푸하하하.”
“맞소이다. 우리가 다 봤소이다. 이제 장문인 따님은 다른 곳에 시집가긴 글렀소이다.”
“하하하하.”
한순간에 장내가 웃음바다가 되면서 사람들이 너도나도 흥에 겨워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적운휘는 당혹감에 어찌할지를 몰라 척경을 바라봤다. 그러자 척경이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때 고춘의가 적운휘에게 다가가더니 예를 취하며 말했다.
“이보게, 젊은이. 일이 이렇게 됐으니 며칠만 이곳에서 묵어 가게나. 내 이야기를 다 들었네. 딸아이의 은인을 이대로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어르신…….”
“내가 이렇게 부탁함세. 딸아이 둔 것이 죄인이라고 이 못난 사람을 봐서라도 그렇게 해주게나.”
고춘의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적운휘도 끝까지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주위에서는 여전히 두 사람을 맺어주라는 말이 오가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일이 이렇게 되었는데 자신이 휑하니 떠나버리면 고정정이나 고춘의는 이후 다시는 강호에서 얼굴을 들지 못할 일이었다.
“휴……. 알겠습니다. 그럼 어르신의 말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예를 거두어주십시오.”
“허허. 고맙네. 고마워.”
고춘의가 얼굴에 환하게 웃음을 띠었다. 그러다 아직까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고정정을 보고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뭘 하느냐? 어서 일어나지 않고! 적 공자가 안 간다고 하지 않느냐?”
고춘의의 말에 고정정이 울음을 그치며 적운휘를 바라봤다. 그러자 적운휘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에 여태까지 울던 고정정이 창피한 줄도 모르고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헤헤…….”
“저, 저…….”
“푸하하하하.”
“입이 귀에까지 걸리겠소.”
“하하하하.”
그 모습에 사람들이 다시 한 번 크게 박장대소를 했다. 그러건 말건 고정정은 적운휘가 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마냥 좋을 뿐이었다. 그런 고정정이 약간은 귀엽다는 생각을 하는 적운휘였다.
<선전포고를 하다>
패왕성.
호남성(湖南省)을 중심으로 강서성(江西省)과 광서성(廣西省), 귀주성(貴州省)까지 총 네 개의 성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무림의 방파이다. 그러나 현재는 실권이 바뀌면서 많은 혼란이 일고 있었다.
그 패왕성의 정문으로 느긋하게 뒷짐을 지고 마치 산보를 가듯이 가고 있는 노인이 한 명 있었다. 남루한 옷차림에 기다란 나무 하나를 뒷짐 진 손에 들고 있는 노인은 뭐가 못마땅한지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
그 노인이 정문에 도착하자 정문을 지키고 있던 사내 두 명이 그 노인을 막아섰다.
“멈추시오, 노인장.”
사내들의 제지에 노인이 그들을 올려다보며 멈추어 섰다. 그러자 사내들 중 한 명이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여기는 무슨 일로 왔소? 이곳은 패왕성이오.”
사내의 말에 노인이 잠시 높은 성문을 올려다봤다. 그러고는 짜증난다는 듯이 혀를 한 번 차더니 말했다.
“쯧, 가서 도백광한테 전해. 대공자의 명으로 노극부가 찾아왔다고 말이다.”
“……?”
“방금 뭐라고 했소? 도백광이라면……. 헛! 이 늙은이가 죽으려고 환장을 했군. 그분이 누군지나 알고 하는 소리요?”
남루한 옷차림의 볼품없는 노인이 어찌 알았는지 요즘 실권을 잡고 있는 도백광의 이름을 옆집 개 이름 부르듯이 막 부르며 말하자 사내들은 어이가 없었다.
“짜증나는데 신소리 하지 말고 빨리 가서 말이나 전해.”
“허 참! 노인장이나 신소리하지 말고 당장 꺼지시오.”
“네놈 귓구멍에는 도백광이라는 이름만 들렸나 보구나. 내가 노극부라고 하는 것은 들리지 않았나 보군.”
“아, 글쎄, 노극부고 개극부고 간에 빨리 가시오. 나 원 참, 날씨가 더우니 별…….”
“쯧, 엉망이군. 어찌 이런 놈을 문지기로 세워두었는지.”
“아니, 뭐야? 이 노인네가 정말…….”
노극부의 말에 사내가 발끈하는 순간이었다. 노극부의 모습이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어?”
이에 사내가 놀라서 두리번거리면서 노극부를 찾고 있는데 갑자기 자신의 손목이 뚝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으아아아악!”
그제야 고통을 느낀 사내가 손목을 잡고 땅을 뒹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내가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