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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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9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03화
103화
실수도 그런 큰 실수가 없었다. 이에 고정정은 적운휘가 그녀의 다친 발을 감아주었던 손수건을 보며 며칠 밤을 울었다. 사실 그 손수건은 적영령이 적운휘에게 선물해 준 것이었으나 그런 것을 알 리가 없는 고정정이었다.
그녀가 제대로 밥도 먹지 않고 눈물로 밤을 지새우자 걱정이 된 고춘의는 그녀에게 사정을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고춘의가 아무리 물어봐도 얼굴을 붉히거나 그냥 막무가내로 형산으로 간다고 떼만 쓸 뿐 말을 하지 않았다. 이에 못 가게 말리니 다시 울음을 터트리는 고정정이었다.
고춘의는 고정정이 그런 식으로 나오자 영문을 몰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직 철이 없어 엉뚱한 행동을 하기는 했으나 저렇게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아이는 아니었다. 헌데 지금은 무슨 이유에서 저러는지 이유조차 모르니 답답한 심정을 참을 길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날 고정정과 함께 마안혈랑을 잡으러 갔던 두 제자를 불러들였다. 요즘 그 두 명은 마안혈랑을 잡아와서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했다. 이에 하루하루가 즐거운 두 사람이었다.
고춘의가 그 두 사람을 앉혀놓고 짐짓 화를 내며 거세게 몰아붙이니 두 사람이 그날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고춘의는 두 제자가 마안혈랑을 잡아 왔을 때 눈으로 보면서도 믿지 않았었다. 게다가 마안혈랑의 몸에 난 상처는 형산파 무공의 흔적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을 알면서도 모두들 두 제자를 칭찬하고 더불어 자신까지 높게 쳐주니 제자들의 사기를 위해서도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다 싶어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고정정 때문에 그때의 일을 다그쳐보니 과연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 두 제자로부터 그때의 일을 상세하게 들은 고춘의는 고정정이 왜 그리 난리를 치는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훗! 녀석. 이제 다 컸구나. 아직까지 품 안의 자식이라고 생각했었건만……. 이제 남자를 알 나이라 이거지. 후훗! 그 잘난 놈들을 모두 무시하던 녀석이 도대체 어떤 놈을 봤기에 그러는지 궁금하군.’
제자들의 말을 들으니 젊은 나이에도 무공만큼은 대단히 뛰어난 것 같았다. 자신도 마안혈랑을 상대로 단신으로 싸운다면 과연 이길 수 있을지 자신감이 딱 서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마안혈랑을 혼자의 몸으로 잡았던 것이다. 더구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전에 백여 마리도 더 되는 이리 떼들을 상대했다고 하지 않던가?
‘사람 됨됨이만 뛰어나다면 더없이 좋겠군. 아니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도 마안혈랑과 싸울 생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세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을 보면 협의가 있는 사람이겠군. 무공이 그리 뛰어나고, 협의도 있으니, 가문이 문제인데……. 음……. 그 정도의 젊은 고수를 키울 수 있는 곳이라면 분명 명문가일 게야. 크크. 그럼 이제 생긴 것만 남았는데, 정정이 저렇게 난리를 치는 것을 보니 분명 한 인물 할 테지. 그렇지 않으면 저 눈 높은 것이 저럴 리가 없지…….’
고춘의는 혼자서 적운휘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자신의 딸인 고정정과 어울릴 만한 사람인지 타진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정정을 찾아가 넌지시 떠보자 고정정이 얼굴을 붉히며 그제야 사실을 모두 털어놓았다.
고정정의 이야기를 듣던 고춘의는 봉황쌍검 중 하나를 그에게 줬다는 말을 듣고 생각보다 고정정의 마음이 깊은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봉황쌍검은 고정정이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생일 선물로 정말 어렵게 구한 것을 그녀에게 준 것이었다. 그때 고정정이 얼마나 기뻐하던지 그 모습에 그간의 고생이 모두 날아갈 정도였다. 그 뒤로 고정정은 봉황쌍검을 마치 자신의 몸 일부분인 것처럼 아꼈다. 그런 봉황쌍검 중 하나를 줄 정도이니 그때 고정정의 마음이 얼마나 다급했는지 짐작이 가는 일이었다.
고정정의 마음을 확실히 안 고춘의는 자신의 생일이 지나면 형산을 다 뒤져서라도 꼭 그를 찾아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이에 몇 번이나 약속을 다짐받은 고정정이 그제야 마음을 좀 놓고 정상적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고 장문인.”
고춘의는 서생같이 유약한 모습의 젊은이가 스스럼없이 고 장문인이라 부르면서 인사를 하자 그를 자세히 살폈으나 기억에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일단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 주러 온 사람이었기에 예를 취하면서 말했다.
“허허. 반갑소. 이렇게 본인의 생일을 축하해 주러 와주셔서 고맙소이다.”
“아닙니다. 응당 와야죠.”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고춘의의 옆에 있는 고정정을 보며 눈을 빛냈다. 고정정은 뛰어난 미인은 아니었으나 어디에 빠지지 않을 정도의 미모가 있었다. 게다가 전체적으로 귀여운 상이어서 젊은 사내들은 물론이고 나이 든 사람들도 그녀를 좋아했다.
고춘의는 고정정을 바라보는 상대의 눈에서 욕정을 읽을 수가 있었다. 이에 기분이 조금 상했으나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어디에서 오신 분이신지……. 요즘 나이가 드니 자꾸 기억력이 떨어지는구려. 허허.”
“오늘 처음 뵌 것이니 기억에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저는 패왕성을 대표해서 고 장문인의 생신을 축하하러 온 호지라고 합니다.”
“아! 그렇구려.”
패왕성의 권력 구조가 최근에 바뀌었다는 사실은 고춘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예의도 없고 생판 처음 보는 젊은이를 보내다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은 고춘의였다. 사실 전에는 패왕성에서 사람들이 오면 모두가 강호에서 이름이 있거나 고춘의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왔었다. 고춘의의 체면을 생각해 주는 패왕성 나름대로의 배려였던 것이다.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호지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현재 패왕성의 성주님이신 도백광 님이 제 사부님 되십니다.”
“아, 그렇구려.”
고춘의는 호지가 누구의 제자이건 상관하지 않았다. 그의 인간 됨됨이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패왕성에서 보내는 생신 선물입니다.”
호지가 뒤쪽에 줄지어 들어오는 물건들을 가리키며 자랑스러운 듯이 어깨에 힘을 넣었다. 고춘의는 그런 호지의 모습이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때였다. 어디에선가 장내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패왕성의 성주란 말인가?”
이에 장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자 여자라면 누가 봐도 혹할 것 같은 외모의 젊은 사내와 인상이 날카로운 중년 사내 한 명이 같이 서 있었다.
고정정은 그를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이며 손으로 입을 막았다.
막상 찾아와 달라고 말은 했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아버지가 누구인지조차 말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와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지금 장내에서 모두의 시선을 받고 있는 두 사람은 바로 적운휘와 척경이었다.
적운휘가 호지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서자 호지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올라갔다. 누가 큰소리를 치나 했더니 한때 자신의 손에 패한 적이 있는 적운휘라는 사실을 알고는 가소로운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적운휘는 그런 호지를 무시한 채 먼저 고춘의를 향해 예를 취하면서 말했다.
“어르신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어르신의 명성은 전부터 들어 흠모하고 있었습니다.”
격식에 맞으면서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인사였다. 이에 고춘의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후후. 보잘것없는 명성이오. 흠모는 무슨……. 이렇게 본인의 생일을 축하해 주러 와줘서 고맙소이다.”
“아닙니다. 어르신의 명성은 무공으로 쌓으신 것이 아니라 덕으로 쌓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행하기 힘든 일입니다. 작지만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하찮다고 여기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적운휘가 그렇게 말하면서 척경을 바라보자 척경이 장수면을 가져와서 고춘의에게 내밀었다. 예부터 생일에는 이렇게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장수를 기원하면서 장수면을 선물하는 것이 도리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정말 이렇게 장수면만을 선물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다. 더구나 상대가 형산 일대에서 떵떵거리는 형산파의 장문임에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에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호지가 비웃음을 흘렸다.
“흥! 겨우 장수면인가?”
그러나 고춘의는 패왕성에서 보낸 선물을 호지가 줄 때와는 다르게 아주 기쁜 얼굴을 하며 조심스럽게 그 장수면을 받았다.
“허허. 고맙소이다. 정말 고맙소이다. 아주 값진 선물이오. 내 반드시 이 장수면을 먹고 증손자를 볼 때까지 살겠소이다. 하하하.”
고춘의는 정말 기쁜지 적운휘에게 농까지 하고 있었다. 호지를 대하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것을 보고 호지가 기분 나쁜 투를 역력히 드러내고 있었다.
“훗! 따님이 저리 아름다우니 반드시 좋은 사윗감을 얻을 것입니다.”
“응? 하하하. 그리 생각하시오?”
“물론입니다.”
적운휘의 말에 고춘의가 또다시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까 호지가 욕정이 가득한 눈으로 자신의 딸을 보던 것과는 딴판으로 적운휘는 담담한 눈으로 고정정을 보며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말이 진심이라 여겨졌던 것이다.
고정정은 자신의 아버지가 적운휘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자신도 기분이 매우 좋았다.
“어르신.”
“아, 할 말이 있으면 해보시게나.”
고춘의는 정말 적운휘가 마음에 들었는지 어느새 말투부터 바뀌어 있었다.
“지금부터 벌어지는 일은 어르신의 생신이 무료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제가 준비한 작은 여흥이라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응? 그것이 무슨 말인가?”
고춘의가 물었으나 적운휘는 대답 대신 예를 한 번 취한 후 호지를 향해 말했다.
“방금 패왕성의 성주가 도백광이라 말했나?”
“흥. 당연한 것 아니냐? 내 사부님이 성주님이 아니면 누가 성주님이란 말이냐? 죽은 네 아비가 아직까지 성주란 밀이냐?”
호지의 말에 주위에서 그 말을 들은 모두가 놀란 얼굴을 했다. 호지의 말대로라면 적운휘의 아버지가 바로 남쪽의 패자로 불리던 적상군이었기 때문이다.
“함부로 그분을 입에 올리지 마라!”
적운휘가 순간 무섭게 기세를 뿜어내자 호지가 그 기세를 받아내며 코웃음을 쳤다.
“왜? 이 자리에서 해보려고? 전처럼 그런 꼴을 당할 텐데…….”
“…….”
사람들은 두 사람의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나서서 두 사람을 말리려고 했다. 이곳에는 강호에서 명망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내로라하는 고수들도 더러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고춘의가 뒤로 물러서며 손을 흔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그렇게 오늘의 주인공인 고춘의가 허락을 하니 그들도 더 이상 나서지 않았다.
적운휘는 마력진패강기를 극한까지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두 주먹에 푸른 기운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마력진패강기를 알아본 몇몇 사람들이 놀라면서 웅성거렸다.
“오오, 저것은…….”
“마력진패강기?”
“그렇소. 저 정도 경지면 제법 높은 경지이오만.”
그때 호지가 그런 그들의 웅성거림을 들었는지 그도 마력진패강기를 극한까지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적운휘와 마찬가지로 두 주먹에 푸른 기운이 맺히기 시작했다.
이에 사람들이 또다시 웅성거리며 놀라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