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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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01화
101화
깊은 산중에서 가장 당황스러운 일 중의 하나가 바로 배고픈 이리 떼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이리 떼들은 한 번 목표물을 정하면 그 목표물을 물어뜯어 배를 채우기 전까지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심지어 목표물을 공격하다가 같은 이리가 상처를 입어 피를 보이면 그 피 냄새를 흘린 동족조차 물어뜯어 먹는다.
그나마 그런 성향이 있어 다행이었다. 앳되어 보이는 여인 한 명과 두 명의 사내들은 벌써 반 시진째 이리들에게 쫓기면서 도망을 치고 있었다. 그때마다 따라오는 이리 몇 마리를 죽여 그놈들을 이리들이 뜯어먹게 했지만, 그것이 근본 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다.
게다가 세 사람 모두 정신없이 도망을 치느라 인적이 없는 깊은 산속으로 점점 들어가고 있는데다 이제 해가 져서 어두워지려고 하니 정말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렇게 도망가던 세 사람은 결국 이리 떼들에게 둘러싸여 버렸다. 이 이리들은 여느 이리들과는 다른 것 같았다. 보통 이리들이 무리를 지으면 많아봐야 수십여 마리인데 이놈들은 얼추 백 마리가 넘었던 것이다.
“헉! 헉! 걱정하지 마, 사매. 우리가 지켜줄게.”
사내 중 한 명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앳된 여인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다른 사내 하나가 그녀의 뒤를 막아서며 검을 이리 떼들에게 겨누었다.
여인은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생신날이 다가오자 뭔가 대단한 선물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에 고민을 하다가 우연히 마안혈랑(魔眼血狼)이라는 늑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마안혈랑은 덩치가 산만 한 이리로, 눈에 마기(魔氣)가 서려 그 눈을 보는 사람은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잡아먹히기 때문에 마안혈랑이라 불린다고 했다. 그러니 같은 늑대들조차 마안혈랑을 무서워해서 이리들 중에서는 왕으로 군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이에 여인은 그 마안혈랑이 아버지의 생일 선물로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대단하기로서니 기껏 해봐야 이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니 무공에 자신이 좀 있는 자신과 사형들이 힘을 합치면 그깟 이리쯤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여겼다. 게다가 사형 중 한 명은 예전에 호랑이를 잡은 경험도 있었다.
이에 사형들과 상의를 하니 그들이 선뜻 응해왔다. 그들 역시 사부님의 생신 때 무엇을 선물할지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세 사람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마안혈랑을 찾아 나섰다. 그 결과 지금과 같은 꼴이 되었다. 마안혈랑은 아직 꼬리도 보지 못했는데 이리 떼들에게 쫓기다 둘러싸여 버린 것이다.
“온다!”
그때 사내 중 한 명이 크게 외치면서 자신에게 달려드는 이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쉬가각!
“깽!”
이리가 일검에 베어지며 나가떨어졌다. 깔끔한 솜씨였다. 그러나 뒤이어 달려드는 이리는 미처 제대로 베지 못했다. 이에 상처를 입은 이리가 사납게 달려들며 사내의 팔을 물었다.
“으아악!”
“조심해요!”
그때 사내의 뒤에서 보호를 받고 있던 여인이 검을 휘둘러 그 이리를 단번에 두 동강 내버렸다. 그것은 그녀의 무공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가지고 있는 검이 신병이기(新兵利器)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쌍검은 보통 검보다 조금 짧은 길이의 검이었는데 척 보기에도 보검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날카로워 보였다. 그 검은 천하에서 알아주는 뛰어난 장인이 만든 검으로, 무쇠를 단번에 잘라내고도 검날이 상하지 않으며, 모양 또한 아름다워 검의 손잡이부터 검을 받아내는 호수까지의 전체적인 모양이 마치 봉황과 같았다. 그래서 봉황쌍검이라 불리는 명검 중의 명검이었다.
그러나 여인이 비록 신병이기인 봉황쌍검을 가지고 있었지만 무공은 그리 뛰어나지가 않았다. 나름대로 스스로 무공에 자신감을 가지고는 있었으나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고수들이 보기에는 그렇게 대단한 실력이 아니었다.
이리 떼들은 피를 보자 더욱 흥분해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어떤 놈은 동족들의 피를 보고 그놈들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그런 것을 확인할 사이도 없었다. 끊임없이 덤벼드는 이리 떼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손발을 날려야 했던 것이다.
이에 벌써 십여 마리도 넘게 죽인 것 같았으나 이리 떼의 수는 전혀 줄어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어떡해요?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어요!”
“제길!”
여인이 다급해서 외쳤으나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다 사내 중 한 명이 다리와 팔을 동시에 이리에게 물렸다.
“으아아악!”
이에 또다시 여인이 그를 도와주려고 하는 순간 이리 한 마리가 그녀에게 덤벼들어 그녀의 종아리를 물었다. 그러자 여인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아악!”
“사매!”
그 모습을 보고 나머지 한 사내가 여인을 구하려고 틈을 보이는 순간 사내도 이리에게 팔을 물리고 말았다.
“크윽! 이놈이…….”
그때였다. 어디에선가 마치 하늘에서 군신이 하강하듯이 누군가 떨어져 내렸다. 너무나 가벼운 몸놀림에 달빛을 받아 살짝 보이는 얼굴이 상당히 준수했다. 여인은 이리에게 다리를 물려 끔찍한 고통이 밀려오는 가운데도 그런 그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그렇게 사뿐히 땅에 내려서는 순간 어느새 여인에게 다가서더니 여인의 발을 물고 있는 이리의 입을 양손으로 잡아당겼다.
그 힘이 어찌나 대단한지 이리의 입이 그대로 쫙 벌어지며 턱이 빠져버렸다. 만약 사내가 그냥 이리를 쳤다면 이리가 밀려 나가며 여인의 발이 엉망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입을 직접 잡고 떼어내자 그때까지 이리에게 물린 상처만 있을 뿐 여인의 다리는 멀쩡했다.
여인은 그때까지도 넋을 잃고 그 사내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그가 살짝, 아주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그녀의 사형들을 물고 늘어지는 이리들을 하나씩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달려드는 이리들을 향해 주먹을 한 번씩 뻗어내고 있었는데, 그 주먹의 위력이 어찌나 대단한지 그의 주먹을 맞은 이리들의 몸이 완전히 꺾이며 몇 장이나 튕겨 나갔다.
그래도 이리들은 두려움을 모르는지 사내를 향해 이빨을 들이대며 덤벼들었다. 그런 이리들을 사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일격에 모두 쳐 죽이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자 두려움을 모르던 이리들도 이제 슬슬 겁을 먹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무조건 덤벼들던 이리들이 멀리서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 쉽게 덤벼들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이리 떼들을 향해 사내가 폭풍과 같은 기세를 내뿜자 몇몇 이리는 그 자리에서 똥오줌을 지리며 움츠러들었다. 방금까지 이빨을 들이대고 덤벼들던 모습과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이었다.
“일어설 수 있겠소?”
적운휘는 이리 떼들의 공격이 잠시 주춤하자 이리들에게 틈을 보이지 않으려고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세 사람에게 물었다.
“네? 아, 네.”
그제야 여인은 물론이고, 두 사내도 정신을 차리고는 서로 부축을 하며 일어섰다. 그런 모습을 보고 이리 떼들이 다시 으르렁거렸으나 적운휘 때문에 감히 덤벼들지 못하고 있었다.
“구,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내 중 한 명이 적운휘에게 말하자 적운휘가 주위의 이리들을 쓸어보면서 말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소. 저들은 저들의 우두머리가 올 때까지 우리를 잡아두려고 할 것이오.”
“……!”
“우두머리라면…….”
사내 중 한 명이 말끝을 흐리면서 묻자 적운휘가 누구나 반할 멋진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은 그놈을 마안혈랑이라 부른다더군.”
“아!”
여인은 적운휘가 한 말보다는 그의 미소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트렸다.
사실 그녀는 이곳 형산에 위치한 형산파(衡山派)의 사람이었다. 형산파는 비록 패왕성에 귀속되어 있기는 했으나 오랜 역사를 가진 문파로 이곳 형산 일대에서는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는 커다란 영향력이 있는 곳이었다. 현재 형산파의 장문인은 인자검(仁者劍)이라 불리는 고춘의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별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덕을 쌓으며 주위에 좋은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형산파 안팎으로 인망이 두터운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는 아들 하나와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딸이 바로 그녀였던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고정정으로 고춘의가 애지중지 금이야 옥이야 키우다 보니 세상물정 모르고 큰 아가씨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마안혈랑을 잡겠다고 달랑 사형 두 명과 함께 이렇게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철이 없기는 그녀가 함께 가자고 덜컥 응하며 나선 두 사형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다 사매인 고정정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 어떻게든 그녀는 물론이고 사부인 고춘의에게도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나섰던 것이다.
어쨌든 형산파에서 그렇게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녀는 수많은 남자들이 자신에게 접근을 하며 잘 보이려고 애를 썼지만 마음에 두고 있는 사내는 한 명도 없었다.
웬만한 남자는 눈에 차지도 않아 항상 콧방귀를 뀌던 그녀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찌 된 일인지 적운휘를 보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는 것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적운휘의 말 한마디 손짓 하나하나에 온 신경이 집중되며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상황이 어렵고 비록 달이 밝기는 하나 밤이라서 그런 그녀의 상태를 사형들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적운휘는 이리들이 덤벼들지 못하게 기세로 누르면서 세 사람에게 말했다.
“빨리 지혈을 하고 상처를 치료하시오. 조금 있으면 마안혈랑이 올 것이오. 그때는 나도 당신들을 도와줄 수 없소.”
적운휘의 말에 세 사람이 서로의 상처에 금창약을 뿌리며 대충 치료를 하고 있을 때였다.
여태까지 으르렁거리며 다가서지 못하던 이리 떼들이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디에선가 깊고도 깊은 이리의 울음소리가 크게 울렸다.
“우우우우우우우.”
“놈이 왔군.”
적운휘가 짧게 말을 내뱉더니 갑자기 고정정을 안아 올렸다. 이에 사내 두 명이 놀라서 적운휘를 바라봤다. 그러자 적운휘가 그들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잠시만 버티시오.”
그러고는 이리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다가 힘껏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고정정은 갑자기 적운휘의 품에 안기자 얼굴이 빨개져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러나 몸이 붕 뜨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적운휘를 바라봤다.
달빛에 비춰지는 적운휘의 얼굴은 고정정의 가슴을 다시 정신없이 뛰게 만들고 있었다.
크고 예리한 눈, 오뚝한 코에 굳게 다문 입술, 부드러운 턱선, 그리고 바람에 날리는 몇 가닥의 머리카락까지 그녀의 눈에는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아, 이 사람은…….’
그 순간 어느새 근처의 나무 위에 내려선 적운휘가 그녀를 그곳에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이곳에 있으면 안전할 것이오.”
적운휘가 그렇게 말하고 다시 몸을 날리려는데 그녀가 급히 적운휘의 옷을 잡았다. 이에 적운휘가 의아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자. 그녀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사실 그녀도 자신이 왜 적운휘의 옷을 잡았는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