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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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3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35화
135화
제갈무용을 돕기 위해 달려 나간 제갈세가의 사내들은 순식간에 진을 변형하면서 화씨세가의 화룡육방진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화씨세가 사람들은 그렇잖아도 제갈무용 한 사람을 상대하기도 벅찼는데, 이제 제갈세가의 사내들이 가세해서 절진을 펼치며 공격해 오자 금방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주위에서 그것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또다시 제갈세가에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열두 명의 사내들이 수시로 그 어려운 방위를 한 치의 틈도 없이 밟으며 연환해서 진을 펼치자 눈이 어지러워 제대로 보고 있을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앞으로 한 세대가 바뀌어 제갈무용의 세대가 된다면 그때는 제갈세가를 정말 조심해야겠구나.’
“흘. 제법이로구나. 저 아이가 제갈가의 아이라고?”
남궁종상 옆에 있던 체구가 작은 노인도 감탄을 하며 묻자 남궁종상이 정중히 대답했다.
“예, 할아버님. 제갈무용이라고 제 매형이 될 사람입니다.”
“쯧, 네 어미가 벌써 손을 썼던 게냐?”
“하하. 어머님이 달리 지혜낭이라 불리시겠습니까?”
남궁종상이 웃으면서 하는 말에 노인도 허탈하게 웃음을 흘렸다. 이 노인의 이름은 나악태로 나여원의 아버지였다. 그러니 남궁종상에게는 외할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나악태는 무공이 굉장히 뛰어나서 천하제일을 논할 때는 꼭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사람이었는데, 하는 짓이 워낙 괴팍해 사람들이 괴성(怪星)이라고 불렀다. 게다가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아 지금 이곳에 서 있어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남궁종상이 숲에 있을 때 강무진의 말을 듣고 싸우는 장소로 가보니 그곳에는 과연 일곱 명이 한 명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남궁종상은 일곱 명의 협공을 받고 있는 한 명이 곤경에 처해 있을 것이라 여겼었다. 그러나 막상 직접 가서 보니 괴성 나악태가 그를 상대하는 일곱 명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남궁종상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적들이 얼마나 있든 누가 있든 간에 천하제일의 고수라 불리는 사람들 중 한 명인 나악태가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었던 것이다.
“저기 저 아이는 네 여동생이 아니더냐?”
나악태가 턱짓으로 가리키며 하는 말에 남궁종상이 그곳을 유심히 살피다가 곧 강무진과 같이 있는 남궁소희를 볼 수가 있었다.
남궁소희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강무진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그의 팔짱을 끼고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뭐야? 누님이 손을 쓰기로 했는데 저것이 벌써 가로챘나? 흥, 싫은 척하더니 그런 것도 아니었군.’
“네. 맞습니다.”
“그렇군. 저 아이 이름이 소희였지?”
“네. 맞습니다, 할아버님.”
“그런데 저 아이 옆에 있는 놈은 누구냐?”
“우연히 알게 된 자인데 무공이 굉장히 뛰어납니다. 아! 할아버님, 혹시 아수라패왕권이라는 무공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뭐? 뭘 패?”
“저자가 쓰는 무공이 아수라패왕권인데 그 위력이 굉장합니다.”
“처음 듣는구나.”
‘흐음, 그럼 그때는 우리를 속이고 연극을 한 것인가?’
그때였다. 갑자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당당한 걸음걸이로 나타나 공터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짙은 남색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앞에 서서 가고 있는 사람을 보고 모두 놀란 얼굴을 했다. 심지어 괴성 나악태조차도 흥미롭다는 듯이 눈을 빛냈다.
북리세가의 가주 북리단천!
아니, 그 이름보다는 도성(刀星) 북리단천이라는 이름이 더 알려져 있는 사내였다.
북리단천은 날카로운 인상처럼 눈도 날카로웠는데, 호리호리한 체격에 짙은 남색의 장삼을 입고 있어 더욱 그렇게 보였다.
그렇게 북리단천이 앞에 서서 세가의 사람들을 이끌고 걸어가자, 그 앞에서 싸움을 하던 자들이 그의 기세에 눌려 모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곧 북리단천을 알아보고는 무기를 거두며 뒤로 물러났다. 자신들이 아무리 대단하다지만 천하제일이라 일컬어지는 사람 중의 한 명, 북리단천에게는 십초지적(十初之敵)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갑작스러운 북리세가의 등장으로 인해 화씨세가와 제갈세가를 뺀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싸움을 멈추었다.
천하제일인 중 한 명이라는 그의 이름이 얼마만큼 무게가 있는지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걸어가던 북리단천은 화씨세가와 제갈세가가 싸우는 것을 잠시 지켜보다가 조용히 허리에 차고 있던 도를 뽑았다. 그의 도는 다른 사람들이 쓰는 것보다 한 치 정도 더 길고 두꺼웠다.
북리단천이 단지 도를 뽑았을 뿐인데도 그 앞에서 싸우고 있던 제갈무용을 비롯한 제갈세가의 사람들과 화씨세가의 사람들은 갑자기 자신들을 내리누르는 것 같은 엄청난 기세에 모두 깜짝 놀랐으나 싸움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양쪽 모두 너무나 치열하게 손을 쓰고 있어서 만약 어느 한쪽이라도 손을 멈추면 그 순간 목을 내놔야 했던 것이다.
북리단천은 그런 그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면서 제갈무용과 화씨세가의 중년 사내가 서로 싸우는 중간으로 도를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북리단천의 도는 그들 두 사람의 틈을 교묘하게 비집고 들어가 두 사람을 떨어트려 놓았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서로 진을 펼치고 싸우고 있는 양쪽 세가 사람들의 틈으로 가볍게 도를 한 번씩 휘두를 때마다 그들은 손을 거두고 물러나야 했다. 그대로 공격을 했다가 양쪽 다 어딘가가 잘려 나갈 판이었던 것이다.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단순한 동작에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던 양가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손을 거두고 물러나자 사람들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과연!”
‘도성이라는 별호가 괜히 붙은 것이 아니구나.’
그렇게 모두가 물러나자 이제 북리단천의 앞을 막고 있는 사람은 여태까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던 화룡녀뿐이었다. 화룡녀는 북리단천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예쁘게 예를 갖추며 인사를 했다.
“화씨세가의 화룡녀가 북리세가의 어르신을 뵈어요.”
교묘했다. 화룡녀가 차라리 그냥 덤벼들었다면 북리단천은 가볍게 그녀를 옆으로 밀어버리고 계속 나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저렇게 예의를 차리며 인사를 하자 그냥 무시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어쩔 수 없이 북리단천은 화룡녀의 예의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응대를 했다.
“음…….”
“어르신의 명성은 전부터 귀가 따갑게 들어왔는데 이제야 뵙는군요.”
“그래. 화 가주는 잘 계시더냐?”
“네. 잘 계세요. 그런데 어르신께서는 이곳에 어인 일로 오셨는지요?”
사람들은 북리단천의 앞을 막고 저런 말을 하고 있는 화룡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왜 모였는지는 누구나 다 알고 있지 않은가?
“건방지구나. 인사는 그 정도면 되었다. 어서 비켜라.”
“그럴 수는 없습니다.”
화룡녀의 말에 사람들이 놀란 얼굴을 했다. 화씨세가의 가주인 화순지가 이 자리에 있다 해도 저렇게 북리단천의 앞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찌 그의 딸이 저런 행동을 한단 말인가?
“네가 혼이 나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북리단천이 그렇게 말하면서 내공을 끌어올리자 그의 몸에서 폭풍과 같은 기세가 뻗어 나왔다. 그 기세에 화룡녀는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덜덜 떨리려고 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 말했다.
“힘으로 소녀를 핍박하려고 한다면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허나 어르신 같은 분이 도리를 따지지도 않고 그러실 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화룡녀의 말에 북리단천의 기세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도리? 무슨 도리를 따진단 말이냐?”
“저기 있는 저 아이는 분명 북해신궁에서 찾는 아이입니다. 하지만 저 아이가 도움을 청한 것은 저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두 분?”
화룡녀가 그렇게 말하면서 향이와 황랑을 보자 향이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그, 그래요.”
사실 유소호와 향이, 그리고 황랑은 사람들에게 쫓기는 가운데 우연찮게 화씨세가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물론 화씨세가에서 그걸 노리고 접근을 했었지만 그것을 알 리가 없는 그들이었다.
화씨세가가 그들을 보호하기 시작하자 주변에 연락이 가면서 각 세가에서 급히 사람들이 파견되었고 결국 충돌이 일어나 지금과 같은 상황까지 온 것이었다.
“본가는 저들의 부탁으로 저들을 도와주다가 많은 피를 흘렸어요. 그러니 우리는 끝까지 저들을 보호할 생각이에요. 안 그러면 먼저 죽어간 분들이 원통해서 눈을 감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 어르신께서는 무슨 이유로 저들을 해하려고 하는 건지요?”
화룡녀가 이렇게 명분을 들고 말을 하기 시작하자 북리단천은 속으로 아차 싶었다. 그냥 아까 손을 써서 치워버렸어야 했던 것이다. 화룡녀의 말에 북리단천은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유소호 일행에 대한 그 어떤 명분도 없었다. 그나마 천하오대세가라면 북해신궁으로부터 도움을 요청받았다고 하면 되지만 북리세가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였다. 누군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렇다면 그 아이는 이제 우리가 데려가겠습니다.”
사람들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그곳을 바라봤다. 그러자 남궁종상과 나악태가 천천히 화룡녀와 북리단천에게 걸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북리단천은 남궁종상은 신경도 쓰지 않았으나 그 옆에 있는 나악태는 감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북리단천이 먼저 나악태를 보고 인사를 하자 사람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천하제일인 중 한 명이라 칭해지는 북리단천이었다. 그런 그가 먼저 인사를 하며 고개를 숙인 것이다. 그때 멀리서 싸움을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 중 한 명이 나악태를 알아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엇! 괴성이다!”
“뭐? 괴성? 괴성 나악태?”
웅성웅성!
사람들은 한 명도 보기 힘든 천하제일고수라는 사람들을 무려 두 명이나 동시에 보자 모두들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더구나 지금 상황으로 봐서 잘하면 두 사람이 싸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자신들이 왜 이곳에 왔는지는 이미 관심도 없었다.
“오랜만이구먼. 한 5년 정도 되었나?”
“그렇습니다. 건강해 보이시는군요.”
“흘, 자네만 하겠나.”
그렇게 가볍게 북리단천과 인사를 나눈 나악태가 옆에 있는 남궁종상을 보며 말했다.
“넌 할 말이 있으면 해라.”
“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가주님. 지금은 상황이 이러니 나중에 예를 갖추어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북리단천에게 먼저 인사를 한 남궁종상은 사람들이 나악태를 우러러보고 심지어 북리단천조차 예를 갖추자 어깨가 조금 우쭐해지는 것 같았다. 이에 자신감이 가득한 얼굴로 화룡녀를 향해 말했다.
“화 소저, 그 아이는 남궁가의 먼 친척입니다. 그 아이가 북해신궁을 떠나기 전에 그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서찰이 왔었습니다. 그러니 그 아이는 우리가 데려가겠습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죠?”
화룡녀는 생각지도 못한 남궁종상의 말에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말 그대로요. 저 아이는 제 친척입니다. 저 아이를 보호해 준 화씨세가의 도움은 남궁세가에서도 잊지 않고 반드시 보답을 하겠습니다.”
남궁종상이 포권을 취하면서 그렇게 말하자 화룡녀는 뭐라고 할 말이 없어졌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서면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