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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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0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48화
148화
그때 강무진의 몸에서 열기가 더 거세게 뻗어 나오자 국은 마치 뜨거운 화로를 안고 있는 느낌에 더 이상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이에 뒤로 몸을 날려 물러났다.
“이게 무슨 짓이죠?”
“무슨 짓은? 보다시피 바둑을 두고 있지. 어서 두시오.”
능청스럽게 말하는 강무진을 보면서 국은 할 말을 잃었다. 지금 돌을 놓으려면 바둑판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야 하는데 그러자면 강무진의 저 뜨거운 화기를 그대로 몸으로 감당을 해야 했다. 자신도 무공이 그리 약한 것은 아니었으나 방금 겪어본 바로는 강무진의 열기를 가까운 거리에서 버티어낼 정도는 아니었다.
‘당했어. 설마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설마?’
그런 생각을 하던 국은 문득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강무진이 왜 첫수부터 저런 식으로 나왔냐 하는 것이었다. 국이 생각하기에 이유는 단 하나였다. 강무진은 바둑을 둘 줄 모르는 것이다.
“설마 바둑을 둘 줄 모르나요?”
국의 물음에 강무진이 갑자기 인상을 팍 쓰며 말했다.
“지금 뭐라고 했지?”
국은 강무진이 갑자기 무섭게 노려보며 되묻자 속으로 찔끔했다. 그때 강무진이 천천히 일어나서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 모습이 저잣거리의 한량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지금 뭐라고 했냐? 앙? 이것들이 좀 놀아주니까 사람을 무시해?”
강무진이 그렇게 말하면서 화기를 더 끌어올리자 국이 또다시 뒤로 물러났다.
“이리 안 와! 어딜 도망가? 그 예쁜 얼굴을 확 지져줄까? 앙?”
국은 갑자기 돌변한 강무진의 모습에 몸을 떨었다. 뒷골목의 한량들이나 할 법한 말을 하며 상대를 협박하는 것이 그녀에게 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 공자님, 일단 진정을 좀 하시고…….”
‘호오, 이것 봐라. 진작 이렇게 할걸.’
“닥쳐!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따위로 사람을 대하는 거냐? 앙? 이따위 기루 다 태워버릴 테다.”
산적이 달리 산적이 아니었다. 강무진은 과거에 팔공채의 산적들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겁을 주는지 수없이 봐왔었다. 그랬던 것을 자신도 모르게 한번 해본 것이었는데 의외로 잘 먹혀들지 않는가?
“공자님, 잠시만 진정하세요. 패왕이라 불리시는 분이 이러시면…….”
이제는 뒤쪽에 있던 여인이 조심스럽게 나서며 강무진을 말리려고 했다. 그러나 강무진이 무섭게 확 노려보자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그 여세를 몰아 강무진이 황보란을 바라봤다. 그러자 어제 있었던 일로 하루 종일 강무진을 구박하던 황보란도 찔끔하며 강무진의 시선을 피해 딴청을 부렸다.
“놀이는 이걸로 끝이다. 가서 당장 항아를 불러와라. 아니면 이곳의 주인을 불러오던가.”
“고, 공자님, 갑자기 이러시면…….”
“닥치라고 했지!”
강무진이 그렇게 외치면서 열화마염풍으로 한쪽 벽을 쳤다.
화아아악!
콰아아앙!
열화마염풍에 맞은 벽은 새까맣게 그을려서 커다란 구멍이 뚫려버렸다. 그 위력에 모두들 놀라며 침을 꿀꺽 삼키는데 무너진 벽 너머에 한 여인이 다소곳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눈만 내놓은 채 면사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뭔가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더구나 드러나 있는 커다란 눈에는 사람을 빨아들일 것 같은 흡인력이 있는 것 같았다.
사실 강무진은 열화마염풍을 쓸 생각이 없었다. 그냥 무심코 손을 휘둘렀던 것인데 아는 초식이 그것뿐이라 열화마염풍을 쓰게 된 것이었다.
그랬던 것인데 설마 벽 반대쪽에 저렇게 누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아가씨!”
그때 국이 그 여인을 부르며 강무진의 눈치를 살폈다.
‘아가씨? 그럼 저 여인이?’
그랬다. 벽 너머에 있는 그 여인이 바로 매난국죽 네 명의 여인을 시비로 두고 있으며 이곳 월궁루의 최고 기녀인 항아였다.
“무례한 분이시군요.”
맑은 음색이었다. 맑으면서도 조용하니 듣기에 상당히 좋은 목소리였다.
“그대가 항아인가?”
여인은 그 자리에 그대로 앉은 채로 강무진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래요. 제가 항아예요.”
“잘됐군. 한 가지만 묻겠소. 어젯밤에 아이를 데리고 이곳으로 온 자를 찾고 있소.”
“이곳은 기루예요. 하루에도…….”
쾅!
강무진이 갑자기 앞에 있는 바둑판을 발로 차버리자 바둑판이 날아가 벽에 꽂히면서 항아의 입이 다물어졌다.
“한 번만 더 엉뚱한 대답을 하면 이곳을 모두 태워버리겠다.”
“…….”
항아는 강무진의 위협에 가만히 그를 쳐다봤다. 그러다 면사포를 벗으며 얼굴을 보였다. 과연 항아의 미모는 앞서 본 매난국 세 여인에게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정말 서시가 울고 갈 정도로 미모가 뛰어났는데, 얼굴 전체가 드러나자 특히 커다랗고 새까만 눈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패왕이라고 하시기에 잠시 기대를 했었는데 실망이군요.”
항아의 말에 강무진이 씨익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국이 그 앞을 막아섰으나 항아가 고개를 젓자 곧 비켜주었다.
항아의 바로 앞에까지 간 강무진이 그녀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대면서 말했다.
“어디 있냐?”
“…….”
항아는 말없이 그저 강무진을 똑바로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자 강무진이 항아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 그것을 보고 놀라서 국이 강무진에게 달려들었다.
“아가씨!”
퍼엉!
국의 쌍장이 강무진의 등을 쳤으나 강무진은 잠시 움찔할 뿐 국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멱살을 잡아 들어 올린 항아를 거칠게 벽으로 밀어붙이며 물었다.
“어디 있냐?”
강무진이 그렇게 묻고 있는데도 국은 여전히 강무진을 향해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그러나 공격을 할 때마다 오히려 공격하고 있는 국의 손과 발이 반탄력으로 인해 욱신거렸다.
“말해!”
그때 강무진이 크게 외치면서 항아를 옆으로 던져버리자 항아가 그대로 날아가 바닥을 몇 바퀴나 뒹굴었다.
“아가씨!”
그걸 보고 국이 강무진을 공격하던 것을 멈추고 재빨리 항아에게 몸을 날렸다.
“괜찮으세요, 아가씨?”
항아는 머리를 바닥에 부딪쳤는지 머리에서 이마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도 말없이 강무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항아로서는 이런 일이 처음이었다. 여태까지 자신을 이렇게 무시한 사람도 없었고 이런 식으로 핍박을 한 사람도 없었다.
아무리 화가 난 사람이라도 그녀가 나서면 일단 분을 삭이며 이야기로 풀어가려 했다. 그만큼 그녀는 자신의 미모에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강무진에게는 그런 것이 통하지 않는다.
패왕이라고 하기에, 자신이 제시한 네 가지 관문을 통과한다고 하기에, 풍류를 좀 아는 사람이라 생각했건만 이건 완전히 뒷골목의 삼류건달과 다름이 없지 않은가?
“소녀를 아무리 핍박하신다 해도 이런 식으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 너 같으면 네 부하가 생판 모르는 놈한테 납치를 당했는데 가만히 있겠냐?”
강무진이 그렇게 말하면서 오른쪽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말해 봐. 내가 어젯밤에 조용히 물러난 것은 너희들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춘 것이었다. 그런데 너희들 마음대로 끝까지 나를 시험하려고 하더군. 그래서 나도 내 마음대로 하고 있을 뿐이다.”
“먼저 네 가지 관문을 통과하겠다고 한 건 당신입니다. 지금이라도 나머지 관문…….”
항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무진이 한 걸음 디디면서 주먹을 후려치자 항아의 얼굴 바로 옆을 스치면서 벽에 꽂혔다.
콰앙!
“말장난하기 싫다. 어디 있냐?”
“차라리 죽이십시오. 이 정도에 굴복할 제가 아닙니다.”
“그래? 그럼 어디 한번 보자.”
그렇게 말한 강무진이 갑자기 옆에 있는 국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퍼억!
“꺄악!”
강무진이 자신을 공격할 줄은 생각도 못 하고 있다가 얼굴을 제대로 얻어맞은 국이 그대로 뒤로 날아갔다. 그러나 강무진은 그런 국의 옷을 잡아당겨 다시 주먹으로 힘껏 올려쳤다.
퍼억!
그때부터 강무진은 사정없이 국을 패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있는 황보란과 황보린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뭐라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여자를 저런 식으로 패는 사내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지켜보던 제갈무용도 심하다는 생각에 강무진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잡으면서 말했다.
“그만두시오. 정도가 지나치오.”
그 순간 강무진이 제갈무용에게 고개를 돌려 무서운 눈으로 쏘아보며 말했다.
“놔.”
“헛!”
그 기세에 제갈무용이 자신도 모르게 손을 놓자 강무진이 다시 사정없이 국을 패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있는 항아는 처음에 별 반응이 없었으나 점점 다리가 떨려왔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치맛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안 건드리면 모르되, 건드렸으면 확실히 해야 한다.
멈칫!
강무진은 갑자기 머릿속에서 울려오는 목소리에 동작을 멈추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자 모두가 질려버린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앞에 쓰러져 있는 국은 피투성이 되어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러다 이를 악물고 있는 항아와 눈이 마주쳤다.
“…….”
“손을 멈춰라!”
그때 어디에선가 내공이 실린 외침과 함께 수십여 명의 사내들과 여인들이 나타나 강무진과 그 일행들을 둘러쌌다. 그 안에는 강무진과 겨루었던 매와 난도 있었는데, 그녀들뿐만 아니라 그들 한 명, 한 명이 뿜어내는 기세가 이런 기루에 어울리는 자들이 아니었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사내들 중 한 명이 항아를 향해 묻자 항아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일이 귀찮게 됐군.’
강무진이 잠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자들을 둘러보다가 다시 항아를 바라봤다.
“어디 있냐?”
“당신이 그 소문의 주인공이라니 믿을 수가 없군요.”
항아의 말에 강무진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국을 발로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마음대로 생각해.”
“당장 발을 치워라! 그대가 정말 패왕인가?”
“흥! 저런 자가 패왕일 리가 없어요. 어디서 소문을 듣고 사칭하는 걸 거예요.”
“당장에 죽여버립시다!”
강무진을 둘러싼 무리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할 때였다.
어디에선가 내공이 실린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니 울렸다.
“누가 감히 그분에게 무례하게 구느냐?”
사람들은 갑자기 들려온 웅후한 목소리에 모두 그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체격이 크고 허리에 보기에도 좋아 보이는 보도를 찬 사내가 서너 명의 사내들을 대동하고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은 그 사내를 확인하고는 모두들 난처한 기색을 떠올렸다. 그들은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패왕성 패왕폭풍대의 대주 왕이후였다. 패왕성의 지척에서 이 같이 큰 기루를 운영하고 있으니 패왕성의 정보에는 누구보다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대사형!”
“아!”
왕이후가 강무진에게 다가오며 그를 부르자 강무진이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누가 감히 대사형에게 무례를 범한단 말이냐? 감히 하오문 따위가 패왕성을 무시하려 든단 말이냐?”
왕이후가 다시 모두를 향해 소리치자 사람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어찌할지를 몰라 했다.
사실 이곳은 호남성에서 가장 유명한 기루이기도 했으며 또한 하오문의 호남성 지부이기도 했다. 하오문은 무림의 정보를 사고파는 일 말고도 청부업과 같은 사람들이 드러내놓고 하지 못하는 일들을 처리해 주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