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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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5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47화
147화
“흠, 무공을 겨루잔 말이군.”
“그래요. 하지만 그냥 겨루면 아무래도 제가 불리하겠지요. 공자님의 무공은 이미 하늘에 닿을 정도라 들었습니다.”
“과찬이오. 그럼 어떻게 겨룰 것이오?”
“간단해요. 저는 최선을 다해서 무공을 펼치겠어요. 그러나 공자님은 저를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제 공격을 피해서도 안 됩니다. 그렇게 10초식을 버티시면 공자님이 이기신 것입니다.”
매의 말이 끝나자 황보란이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말도 안 돼. 그게 무슨 무공대결이죠? 그건 그냥 얻어맞으란 소리나 다름없잖아요.”
“호호. 그러게요. 매가 저렇게 강하게 나온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상대가 상대니만큼 조건을 강하게 거는군요.”
여인이 그렇게 말하면서 과연 강무진이 어떻게 나올지 그를 바라봤다.
강무진은 매의 그 같이 불리한 조건에도 무덤덤했다.
“한마디로 맞고 버티란 말이군.”
“그렇습니다. 하시겠습니까?”
매의 말에 강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럽시다.”
“그럼……. 조심하세요.”
매가 그렇게 말하면서 강무진의 가슴을 노리고 쌍장을 쭉 뻗었다.
퍼어억!
“아!”
매는 자신의 장력이 강무진의 가슴을 치는 순간 마치 바위를 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뭔가 호신기공을 익히고 있군.’
그런 생각이 들자 내공을 최대한 끌어올려 다시 한 번 쌍장을 쭉 뻗어 강무진의 가슴을 쳤다.
퍼어억!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강무진은 그저 약간 꿈틀했을 뿐 전혀 충격을 받지 않았다. 반면에 매는 반탄력 때문에 손목이 욱신거렸다.
‘이 정도로는 안 되나? 그렇다면!’
“하앗!”
그때 매가 기합을 지르며 양손을 활짝 펼쳐 강무진의 양쪽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아무리 대단한 호신기공을 익혔다고 해도 머리에 직접 충격을 주면 어쩌지 못할 거란 생각에서였다.
퍼어억!
그러나 그것은 매의 착각이었다. 강무진은 매의 주먹이 양쪽 관자놀이를 정확히 가격한 상태에서도 씨익 미소를 지어보였다.
“치잇!”
매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손가락으로 강무진의 눈을 찌르려고 했다. 이런 대결에서 써서는 안 되는 잔인한 수였지만 매는 망설임이 없었다. 매의 손가락이 자신의 눈을 찌르려고 하자 강무진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매의 손가락은 강무진의 이마를 치고 튕겨 나갔다.
“큭!”
매는 손가락이 부러져 나갈 것 같은 통증에도 이를 악물고 장으로 강무진의 백회를 노리며 머리를 내려쳤다.
퍼억!
뒤이어 주먹으로 강무진의 목울대와 명치를 가격하고, 마지막으로 발로 사타구니를 올려 찼다.
모두가 상대를 즉사시킬 수 있는 요혈들이었다. 그러나 강무진은 그대로 맞고만 있었다. 다만 사타구니를 차이면 모양새가 좀 우스울 것 같아 몸을 살짝 틀었다. 그러자 매의 발이 사타구니 옆의 넓적다리 안쪽을 찼다.
퍼어억!
보통 사람이 이렇게 연속으로 계속 급소를 가격당했다면 벌써 즉사했겠지만 강무진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8초식을 사용한 매에게 이제 남은 초식은 2초식뿐이었다. 그러나 매는 더 이상 손을 쓰지 않았다.
“무슨 무공이죠? 소림의 금종조인가요?”
‘그때 광인도 풍수개가 했던 말과 같은 말을 하는군.’
“아니오.”
“…….”
‘설마……. 그럼 호신강기?’
매는 그런 생각이 들자 조용히 내공을 끌어올려 오른손 검지에 모았다. 그리고 빠르게 검지를 뻗어 강무진의 미간을 찍었다.
퍼억!
구대문파 중 하나인 아미파(峨嵋派)의 지법 중 최고라 불리는 일지금(一枝金)이었다. 매는 이 일지금을 이미 팔성 이상의 성취를 보이고 있었다. 그 정도면 매의 손가락이 뚫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단단한 돌은 물론이고 심지어 검이나 도 같은 쇳덩어리에도 구멍을 낼 정도였다.
그러나 강무진은 지력의 여파로 인해 단순히 머리만 뒤로 젖혀졌을 뿐, 양 눈썹 사이를 정확히 가격당하고도 구멍은커녕 멍 자국이나 부은 자국조차도 없었다.
“이제 한 초식 남았소.”
강무진의 말에 매가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제가 졌어요. 남쪽의 패왕이시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얕은 재주를 보인 것을 귀엽게 봐주시기 바라요.”
매가 포권을 취하면서 말하자 강무진이 예를 받으면서 말했다.
“양보해 줘서 고맙소. 그럼.”
“안쪽으로 들어가세요. 그럼 난(蘭)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매의 말에 강무진이 건물 안으로 가자 일행들이 그 뒤를 따랐다. 건물 안의 대청에는 방금 본 매만큼이나 미모가 뛰어난 여인이 탁자에 금(琴)을 놓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강무진이 안으로 들어서자 자리에서 일어나 살짝 무릎을 굽히며 예를 갖췄다.
“처음 뵙겠어요. 난이라고 해요.”
“반갑소. 강무진이오.”
“저하고 겨룰 것은 음(音)이에요. 혹시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으신지요?”
“없소. 하지만 창(唱)이라면 조금 하오.”
강무진의 말에 황보란이나 황보린, 그리고 제갈무용이 인상을 살짝 썼다.
“좋아요. 그럼 제가 금을 연주할 테니 맞춰서 노래를 해주세요.”
“그게 다요?”
“그렇습니다. 다만 곡을 끝까지 못 하시면 지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곡을 끝까지 연주할 때까지 노래를 하신다면 제가 진 것으로 하겠습니다.”
“좋소. 시작합시다.”
“그럼.”
난이 그렇게 말하며 금을 한 줄 뜯자 청아한 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따앙!
그때부터 난의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금을 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금 소리가 그녀의 손가락에 따라 울렸는데, 어떤 때는 빠르고 어떤 때는 느린 것이 그 변화가 급격했다.
‘뭐야? 무슨 곡인지는 가르쳐줘야 노래를 하든가 말든가 하지.’
강무진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황보란과 황보린, 그리고 제갈무용이 급히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 보였다.
‘뭐야? 왜 저래?’
그들은 금 소리에 잠시 마음을 놓고 있다가 금의 박자에 맞춰 자신들의 심장이 빨라졌다 느려졌다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뛰는 것을 느끼고는 다급하게 뒤로 물러났던 것이다.
지금 난이 뜯고 있는 금에는 웅후한 내공이 실려 있는데다, 곡 자체가 사람을 홀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화려하고 듣기에 좋았다. 그래서 금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그 금의 박자를 좇아가다가 그대로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강무진은 그런 것을 전혀 못 느끼는 듯, 잠시 목을 가다듬으며 뭘 부를지를 고민했다.
“아, 아.”
난은 강무진이 자신의 금 소리에 아무 영향을 받지 않자, 더욱 내공을 실어 금을 켜면서 손을 더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강무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나라 협객 머리를 동여매고(趙客?胡纓)…….”
이태백의 시 중 하나인 협객행(俠客行)이었다. 그렇게 강무진이 노래를 하기 시작하자 뒤쪽에 있던 황보란과 황보린, 그리고 제갈무용이 귀를 막고 더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크으으윽! 저게 무슨 창이냐? 차라리 돼지 멱따는 소리가 저거보다 더 낫겠다.’
그랬다. 아까 강무진이 창을 좀 할 줄 안다고 하자 모두 인상을 썼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 사실 일행들은 어젯밤에 강무진이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노래 부르는 것을 모두 들었었다. 술 취한 상태에서도 귀를 막아야 했던 그 괴로움은 정말 당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었다. 음치도 그런 음치가 없었다.
그런 강무진이 지금 목소리를 가다듬고 배에 힘을 떡하니 주며 노래를 하니 자신도 모르게 노랫소리에 내공이 실리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박자와 음률을 완전히 무시하는 그 노래실력에 귀를 막고 싶었는데 내공까지 실리자 모두들 참지 못하고 급히 뒤로 물러났던 것이다.
난의 연주는 박자와 음률이 한 치도 어긋남이 없이 정교한 환상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듣는 이로 하여금 누구나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난의 연주에 강무진의 엉망진창인 노랫소리가 어울리기 시작하자 갈수록 금 소리도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에 난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음치라 해도 그렇지 어떻게 저 정도일 수가 있단 말인가?
난은 강무진의 노래를 들으면 들을수록 당장에라도 연주를 그만두고 금으로 강무진을 후려치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그것을 꾹 참고 금을 뜯고 있었는데, 심정이 그러니 집중이 되지 않아 여태까지 완벽했던 연주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순간순간 박자를 놓치기도 했고, 음률을 여러 번씩 틀리기도 했다.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무진은 그저 열심히 노래를 할 뿐이었다.
그러다 결국 참지 못한 난이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힘껏 금을 내려쳤다.
콰아앙!
그러자 모두가 놀라서 난을 바라봤다. 강무진도 노래를 그치고 영문을 몰라 하며 난을 바라봤다.
“이, 이것은… 음에 대한 모독이야! 아악!”
생전 처음 들어보는 엄청난 음치의 노랫소리에 자신이 졌다는 생각이 들자 난은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광분하면서 강무진을 향해 일장을 뻗으며 소리쳤다.
“죽여버리겠다. 너 같은 놈은 죽어버려야 돼!”
그때 안쪽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멈춰라, 난.”
아름답고 영롱한 목소리였다. 더구나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내공이 실려 있어 난의 움직임을 단번에 멈추게 했다. 난은 강무진의 지척에서 동작을 멈춘 채 잠시 그를 노려보다가 곧 금을 들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러자 안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강무진은 아직까지도 난이 갑자기 왜 그렇게 광분을 했는지 이해를 하지 못한 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넓고 아늑하게 꾸며진 방 안에 한 여인이 정좌를 하고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여인은 매나 난처럼 뛰어난 미모는 아니었으나 뭔가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앉으세요. 이곳까지 오신 분은 오랜만이군요. 저는 국(菊)이라고 해요.”
국이 자리를 권하자 강무진이 그 맞은편에 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바둑판이 하나 놓여 있었다.
“저와 겨루실 것은 보시다시피 바둑이에요.”
“음…….”
‘난감한데. 난 바둑은 못 두는데…….’
“선수는 제가 양보하겠습니다. 흑돌을 쥐시지요.”
바둑을 두는 데 상대의 실력을 알아보지도 않고 선수를 양보한다는 것은 그만큼 바둑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고맙소.”
강무진이 그렇게 말하면서 일단 흑돌을 하나 쥐었다.
‘어떻게 한다? 쳇! 이렇게 되면 실력행사를 하는 수밖에.’
딱!
강무진이 바둑돌을 바둑판의 정중앙의 점에 놓았다. 그리고 손을 떼지 않은 상태에서 화기를 일으키자 뜨거운 기운이 사방으로 확 뻗어나갔다.
그 기세에 놀라 국이 손으로 얼굴을 살짝 가렸다.
“무슨…….”
그때 놀랍게도 강무진이 두었던 바둑돌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기 시작하더니 바둑판 안으로 깊숙이 박히기 시작했다. 이어서 바둑판에 불길이 확 일면서 바둑판에 그어진 선들이 모두 지워져 버렸다.
“소저가 둘 차례요.”
강무진의 말에 국이 황당한 얼굴로 바둑판을 내려다봤다. 돌을 놓을 선이 없는데 어디에 돌을 놓으란 말인가?
더군다나 아직까지도 바둑판은 강무진의 열기 때문에 후끈거리고 있어서 가까이 앉아 있는 국에게 그 열기가 그대로 전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