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4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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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5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40화
140화
‘내가 저런 미인을 알았었나? 주소예라는 소저도 그렇고 내 주위에는 상당히 미인들이 많았었나 보군.’
강무진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옆에 있는 주소예를 힐끔 바라봤다.
마침 주소예도 강무진을 바라보다 둘이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먼저 고개를 돌려버렸다.
‘뭐야? 화난 건가?’
강무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어느새 앞으로 온 적영령이 강무진의 손을 잡았다.
“아! 그게…….”
강무진이 당황하면서 손을 빼려고 했으나 적영령이 꽉 잡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그리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강무진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오라버니,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하하하. 그러게나 말입니다. 대주님이 갑자기 사라져서 성이 한 번 발칵 뒤집어졌었습니다. 도대체 어디 가서 뭘 하고 지내신 겁니까?”
이이책은 아직도 옛날 버릇대로 강무진을 대주님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때 이이책 말고도 패왕성의 좌호법인 파천일권(破天一拳) 주양악이나 패왕기밀수위대(覇王機密守衛隊)의 대주인 여제갈 섭초홍 등도 강무진에게 다가와 인사를 하며 반가움을 표했다.
“무사하니 다행이오.”
“호호, 다시 보게 되는군요.”
“패왕을 뵙습니다.”
강무진은 갑자기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반가워하며 인사를 하자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자자, 자세한 이야기는 일단 들어가서 합시다.”
적운휘가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 말하자 그제야 사람들이 옆으로 물러나며 길을 열었다.
그 사이로 적운휘와 함께 걸어가는 강무진은 아직도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적운휘가 잡아끄는 대로 따라갈 뿐이었다.
강무진이 성으로 돌아오자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 인사를 하고 갔다. 물론 강무진이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적운휘는 왕이후에게서 강무진이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을 듣고 상당히 놀랐다. 그러나 몸이 건강한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하며 기억은 언제든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것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강무진을 찾아오는데도 막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람들이 강무진과 좀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했다. 그러면 혹시나 기억이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강무진은 여전히 아무것도 기억해 내지 못했다. 다만 그동안 꿈에 나왔던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을 뿐이다.
“대사형.”
넓은 정원의 중앙에 있는 팔각정자 안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강무진과 남궁소희는 주소예가 다가오자 동시에 그녀를 바라봤다.
남궁소희는 주소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보다 예쁜 것은 둘째치고라도 강무진이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는데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녀를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아! 주 소저.”
“또 그렇게 부르는군요.”
“아! 하하. 그게 익숙하지가 않아서…….”
강무진이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그렇게 말하는 모습을 주소예가 가만히 바라봤다. 그런 주소예의 눈길을 옆에서 보고 있던 남궁소희는 속에서 뭔가 욱하는 것이 느껴졌다.
‘또 저런 눈이야. 흥! 그런다고 강 오라버니가 눈 하나 깜빡일 줄 알고.’
“왔군요. 무슨 일이죠?”
남궁소희가 그렇게 쏘아붙이듯이 주소예에게 묻자 주소예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대사형과 함께 갈 곳이 있어서 왔어요.”
“그럼 나도 같이 가요.”
“훗! 그곳은 외부인은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는 곳이에요.”
“그러면… 오라버니도 가지 마요.”
“풋!”
남궁소희의 말에 주소예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주소예가 보기에 남궁소희는 강무진을 자신이 빼앗아 갈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마치 고양이가 눈앞의 생선을 누가 빼앗아 갈까 봐 두려워서 야옹거리는 것 같았다. 주소예는 그런 남궁소희의 모습이 귀여워 보이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린 것이다.
“왜, 왜 웃는 거예요?”
“아니에요. 미안해요. 어쨌든 대사형과 함께 갔다 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요.”
주소예가 그렇게 말하면서 강무진을 잡아끌자 강무진이 남궁소희의 눈치를 보면서 마지못해 일어났다.
“가요.”
“으응.”
남궁소희는 주소예에게 꼼짝도 못 하고 끌려가는 강무진의 뒷모습을 보면서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주소예를 노려봤다. 그것을 주소예가 슬쩍 보고는 보란 듯이 강무진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팔짱을 끼고 그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남궁소희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으나 곧 한숨을 쉬면서 다시 앉았다.
“휴…….”
‘그녀는 오라버니의 사매야. 그러니 신경 쓰지 말자. 나한테 일부러 저러는 걸 거야. 이럴 때 언니나 어머니가 계셨으면 좋을 텐데…….’
남궁소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강무진은 주소예의 손에 이끌려 패왕무고로 가고 있었다.
주소예는 예전에 강무진을 처음 만나 주먹밥을 나누어 먹었던 곳으로 그를 데리고 갔다.
“이곳에 앉으세요, 대사형.”
“으응.”
강무진이 바위에 앉자 주소예가 그 옆에 앉아 품에서 주먹밥을 꺼냈다.
“먹어보세요.”
“응.”
주소예가 내미는 주먹밥을 강무진이 받아 들고 나뭇잎을 벗겨냈다. 그러자 온갖 약초들이 섞여 고소한 냄새가 나는 하얀 밥이 나왔다.
“맛있겠는걸.”
강무진이 그렇게 말하면서 한 입 베어 물자 고소한 맛이 입 안에 감돌았다. 그런 강무진의 모습을 보면서 주소예가 미소를 지었다.
“기억 안 나세요? 저랑 처음 만났을 때, 대사형이 저한테 이런 주먹밥을 줬었어요. 그때 마홍이 얼마나 눈을 흘기던지……. 호호. 사실 그 주먹밥이 마홍이 있는 돈을 다 털어서 만든 특별한 주먹밥이라는 것을 알았죠.”
“그랬었나?”
주소예의 말에 강무진이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그로서는 그때의 일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네. 그랬어요. 아 참! 마홍이 대사형 소식을 듣고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들었어요. 아마 그를 만나면 뭔가 옛날 일이 떠오를지도 몰라요.”
“마홍?”
“그래요. 훗! 하나 더 드세요.”
“응.”
주소예가 내미는 주먹밥을 하나 더 받아 든 강무진은 그것을 까먹으면서 마홍이라는 이름을 되새겼다. 왠지 그 이름이 상당히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때 주소예가 혼잣말을 하듯이 말하는 것이 들려왔다.
“어쩌면, 대사형이 기억을 잃은 것이 다행일 수도 있겠어요. 제가 그때 잘못했던 것을 대사형이 기억하지 못하니까요. 대사형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대사형이 기억을 잃어서 마음이 편해요.”
주소예가 무릎을 당겨서 안으며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돌려 강무진을 바라봤다. 강무진은 그런 주소예의 모습이 그렇게 귀여워 보일 수가 없었다. 이에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몇 번 쓰다듬어 주었다.
“…….”
“아! 미안하오. 나도 모르게 그만…….”
강무진은 어찌나 당황했던지 주소예에게 다시 반존대를 하고 있었다.
“아니에요. 기억나지 않으세요? 전에는 대사형이 이렇게 자주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었어요.”
“그, 그랬었나?”
“흑…….”
그때 주소예가 눈물이 그렁그렁하니 울음을 터트리려고 하자 강무진이 당황하며 손을 저었다.
“왜 그러시오? 난 그냥……. 그…….”
“미안해요, 대사형. 흑……. 미안해요. 나 때문에…….”
주소예가 품에 안겨오면서 눈물을 흘리자 강무진이 잠시 멈칫해 있다가 그녀의 어깨를 가만히 다독여 주었다.
주소예는 알고 있었다. 그때 자신이 배반한 것 때문에 강무진을 따르던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죽었다는 것을…….
당시에 그녀는 일이 그렇게 될 줄은 전혀 생각도 못 했다. 그때 패왕성에 숨어든 사람들은 겨우 20여 명의 사람들뿐이었다. 아무리 패왕마전대라지만 그들만으로는 패왕성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여겼다. 자신들이 숨어든 것이 발각되면 순순히 항복을 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때 도백광을 따르던 여사악도 그리될 것이라고 이야기했었고, 결정적으로 고운강과의 혼인을 무효화시킴은 물론 그녀의 아버지인 주양악에게도 더 이상 압력을 가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있었기에 그녀는 패왕마전대가 숨어든 것을 이야기해 줬었다.
그러나 그녀의 예상을 깨고 패왕마전대는 겨우 20여 명밖에 안 되면서 그 수많은 적들을 상대로 끝까지 저항을 했다. 게다가 강무진을 성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서 자신들의 목숨을 하나하나 희생해 갔다.
나중에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된 주소예는 크게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그 뒤로 다시 강무진을 보기까지 한시도 마음 편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강무진을 만났지만 강무진에게 용서를 빌 사이도 없이 그는 도백광과 겨루고 나서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정신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1년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누워 있던 강무진이 갑자기 그녀의 앞에 나타났을 때 그녀가 얼마나 놀랐던가?
그동안 마음을 누르고 있던 무거운 짐을 모두 털어낼 수 있다고 여겼건만, 강무진은 기억을 잃은 상태였다.
“미안해요, 대사형. 제가 감정이 격해져서…….”
“아니야. 언제든지 내가 필요하면 이야기해.”
“네.”
주소예가 그렇게 대답할 때였다.
“아앗! 여기서 또 여자를 울리고 있었구나.”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오는 앳된 목소리에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향이와 함께 서 있는 유소호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유소호보다 어려 보이는 남자아이 하나가 유소호에게 꼭 달라붙어 있었다.
“뭐야? 언제 온 거야?”
“부두목이 보이지 않아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냐?”
강무진이 관심 없다는 투로 말하자 유소호가 볼에 바람을 가득 넣어 심통이 난 표정을 지었다.
“흥!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서 왔는데 관두겠다.”
“뭐? 소개? 누구? 혹시 그 옆에 있는 꼬맹이 말이냐?”
강무진이 그렇게 말하자 향이가 나서면서 소리쳤다.
“꼬맹이라니요? 이분은 북해신궁의 소궁주님이십니다.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꼬맹이 보고 꼬맹이라고 하지 뭐라고 하냐, 그럼?”
강무진이 유소호의 옆에 달라붙어 있는 남자아이를 보며 그렇게 말하자 아이가 겁을 먹었는지, 아니면 부끄러운지 유소호의 팔을 꼭 잡고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러자 유소호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면서 강무진에게 크게 외쳤다.
“무화가 겁을 먹지 않느냐? 부두목으로서 예의를 지켜라.”
“끙. 알았다, 알았어.”
강무진이 귀찮다는 듯이 유소호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 준 후 쭈그리고 앉아서 그 뒤에 숨어 있는 유무화를 유심히 바라봤다.
유무화는 눈이 커다래서 얼굴을 보면 눈밖에 안 보였다. 게다가 피부도 하얗고 마른 체격이어서 옷만 바꿔 입혀놓으면 영락없이 여자아이로 오해할 정도로 예쁘게 생긴 아이였다.
“이름.”
“…….”
“이름이 뭐냐고?”
강무진이 그렇게 물어봤지만 유무화는 여전히 유소호의 뒤로 숨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유소호가 유무화의 손을 확 잡아끌어 자신의 앞에 세우면서 그를 꾸중했다.
“앞으로 북해신궁을 이끌어갈 사내가 그게 뭐냐?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어라.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너를 무시한단 말이다. 묻는 것에는 확실히 대답하고!”
유소호의 말에 유무화가 우물쭈물하다가 겨우겨우 기어들어 갈 것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유…무화.”
“뭐? 누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