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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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3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39화
139화
“성으로 돌아간다!”
그러자 천여 명이 넘는 패왕폭풍대 사람들이 일시에 대답을 하며 일어났다.
“하!”
그 엄청난 기백에 강무진을 따라 패왕성으로 가기로 한 사람들은 과연 이것이 잘한 짓인지 살짝 의문이 들었다.
“소호 아가씨가 그리 이야기했다는 말이냐?”
북해신궁의 좌호법 냉혈군자(冷血君子) 구혁상의 말에 보고를 올리던 사내가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사내는 이번에 유소호를 찾아 중원으로 갔던 북해빙겸대의 우두머리였다.
“그렇습니다.”
“음……. 그래, 알았다. 궁주님에게는 내가 말을 전하겠다.”
“그럼 이것을…….”
사내가 품 안에서 팔찌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내서 구혁상에게 내밀자 구혁상이 그것을 받아 들었다.
“흐음. 됐다. 물러가라.”
“명!”
사내가 대답하고 나서 밖으로 나가자 구혁상이 가만히 자신의 손에 있는 팔찌를 봤다.
그것은 유소호의 다섯 번째 생일에 궁주인 유양천이 직접 선물한 팔찌였다. 그때 구혁상도 옆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패왕성으로 갔단 말이지. 패왕성이라……. 유무화도 그곳에 있을 가능성이 많군.’
남궁세가 정도라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가 패왕성이라면 달랐다.
패왕성은 남쪽 네 개의 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곳으로 단일 세력으로는 세외 최강이라는 북해신궁과 버금가거나 그 이상이었다.
더구나 거리가 너무 멀다 보니 서로 간에 왕래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손을 써볼 방법이 없었다.
‘암영대를 움직여야겠군.’
북해암영대(北海暗影隊)는 북해신궁 유일의 살수집단이었다. 북해신궁에서 겉으로 드러내놓고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소리 소문 없이 처리하는 일들이 바로 그들의 몫이었다.
그렇게 마음먹은 구혁상이 방을 나가 후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한쪽에 조용히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한 여인이 보였다.
궁주인 유양천의 다섯째 부인 남궁가영이었다. 그녀는 구혁상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살짝 숙여 예를 표했다. 그러자 구혁상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그러고는 그냥 지나치려다가 문득 뭔가 스치는 생각에 다시 한 번 남궁가영을 바라봤다.
“…….”
구혁상이 보기에 남궁가영의 얼굴은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
지금 그녀의 하나뿐인 딸이 행방불명되었는데 어찌 저리 평온하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남궁가영은 정이 많아 기르던 강아지가 없어져도 안절부절못하는 성격이었다.
평소의 그런 그녀의 성격을 생각해 본다면 지금 저런 모습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뭔가 있다.’
구혁상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그녀와 또다시 눈이 마주쳤다.
구혁상은 그 순간, 아주 잠시였지만 남궁가영이 자신을 비웃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것 역시 평소의 그녀의 성격을 본다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분명 뭔가 있다. 뭔가!’
구혁상은 그길로 발걸음을 돌려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처음부터 여태까지의 상황들을 다시 짚어보기 시작했다.
‘뭐지? 도대체 뭐가 있는 거냐?’
하지만 몇 번이나 되짚어보아도 딱히 잡히는 것이 없었다.
‘흐음……. 직접 알아내야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구혁상이 눈을 빛냈다.
왕이후는 사람들을 이끌고 안휘성에서 수로를 이용해 강을 타고 강서성(江西省)으로 향했다. 그리고 강서성의 수도인 남창(南昌)에 도착하자 육로를 이용해 관도를 타고 패왕성이 있는 호남성(湖南省)의 장사(長沙)로 향했다.
가면서 사람들은 곳곳에 이미 그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모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준비 덕분에 무려 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동을 하고 있었지만, 그 이동 속도가 굉장히 빨랐던 것이다.
가는 동안 왕이후와 주소예는 강무진이 기억을 잃었단 사실을 알았다. 황랑이 강무진을 속였던 사실을 모두 털어놓았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황랑으로서는 강무진이 설마 그런 대단한 인물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가 그를 아는 사람들이 나타나자 더 이상 사실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강무진은 여전히 황랑을 두목이라 부르며 따랐다.
과거에 자신이 패왕이었을지는 몰라도 그때의 기억이 없는 지금으로서는 여태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현재의 그는 누가 뭐라 하든 팔공채의 부두목 강무진이었던 것이다.
왕이후는 강무진이 기억을 되찾기를 바라면서 그간의 이야기를 그에게 해주었다.
그러나 강무진은 왕이후의 이야기가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왕이후가 이야기하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자신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왕이후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왕이후의 말대로라면 강무진이 어마어마한 초절정의 고수라는 이야기인데, 강무진의 무공이 뛰어난 것은 인정하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생각이 다분했던 것이다.
더구나 강무진이 싸우는 모습을 보지 못한 나악태나 북리단천은 더욱이 그런 생각이 짙었다.
그렇게 꾸준히 이동하던 일행이 드디어 장사에 도착해서 패왕성 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사람들은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패왕성의 정문에서부터 100여 장에 이르는 거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양쪽으로 도열해 그들을 맞이했던 것이다.
그들 한 명, 한 명이 뿜어내는 기도가 마치 날이 잘 서 있는 칼과 같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기세를 뿜어내자 그 사이를 걸어가는 일행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긴장이 되어 손에 땀이 배일 정도였다.
심지어 천하제일고수라는 괴성 나악태와 도성 북리단천까지도 약간 긴장한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사실 그들 모두는 아직까지 유소호를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기회를 봐 패왕성에서 유소호를 데리고 빠져나갈 생각이 없지 않았는데, 지금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사람들의 기세에 자신들이 너무 패왕성을 쉽게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패왕성이다.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남궁종상은 그동안 자신이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궁세가가 최고라는 생각과 그곳의 소가주라는 자부심에 항상 어깨가 우쭐했건만, 지금은 그런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계속 일행들이 성을 향해 걸어가자 성문 앞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 중 한 사내가 일행을 보고는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자 그 사내를 따라 나머지 사람들도 천천히 다가왔다.
“대사형!”
맨 앞에서 천천히 걸어오던 사내가 일행 중에 강무진을 발견하고는 크게 외치면서 한 걸음을 디뎠다. 그 순간 어느새 사내는 이미 강무진의 앞에 도달해 있었다.
“아!”
그것을 보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자신들도 모르게 탄성을 냈다.
지금 강무진의 앞에 서 있는 사내, 적운휘의 절묘한 신법에 모두들 감탄을 한 것이다.
그가 펼친 신법을 정확히 본 사람은 나악태와 북리단천뿐이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전혀 파악을 하지 못했다.
“대사형! 건강하셨군요.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적운휘가 기쁜 얼굴로 강무진의 손을 잡고 말하다가 갑자기 강무진을 꽉 껴안았다.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갑자기 사라졌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으…응…….”
적운휘는 강무진의 반응이 좀 이상하자 안고 있던 손을 풀면서 강무진을 가만히 바라봤다.
“왜 그러십니까, 대사형?”
적운휘의 물음에 강무진이 뭐라 대답을 못 하고 있는데, 뒤에 있던 왕이후가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성주님을 뵙습니다. 패왕폭풍대 대주 왕이후, 임무를 완수하고 귀환했습니다.”
왕이후가 그렇게 예를 갖추자 사람들은 그제야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이 사내가 패왕성의 성주인 적운휘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최근에 젊은 사람이 성주가 되었다더니……. 너무 젊군.’
적운휘를 보며 나악태와 북리단천이 이런 비슷한 생각을 할 때, 황보란이나 황보린은 적운휘의 준수한 외모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남궁소희도 적운휘를 보는 순간,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화룡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늘 그렇듯이 무표정하게 적운휘를 보고 있었다.
“응, 그래. 수고했어, 왕 사제.”
적운휘가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강무진과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남궁종상이 앞으로 나서며 포권을 취했다.
“전부터 꼭 한번 만나고 싶었소. 남궁세가의 남궁종상이라고 하오. 그리고 여기 계신 분은 제 외조부님 되시는 분으로 사람들이 괴성이라 부르시는 분이오.”
남궁종상은 적운휘의 모습에 은근히 질투가 느껴졌다.
적운휘는 여자라면 누구라도 혹할 수려한 외모에 남쪽 네 개의 성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패왕성의 주인이었다. 그러니 그를 보는 남자라면 누구나 약간의 시기심이 안 생길 수가 없었다.
더구나 남궁종상은 그동안 남궁세가에서 최고라는 소리만 듣던 그였다. 그런 그가 스스로 초라해지는 기분을 맛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 것이 싫어서 굳이 먼저 나서서 인사를 했던 것이다. 자신만 나서면 무시를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악태까지 끌어들이면서 말이다.
“아! 남궁세가에서 오셨구려. 반갑소.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를 합시다.”
적운휘가 남궁종상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강무진의 손을 잡아끌었다.
지금 적운휘의 관심사는 오로지 강무진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것이 천하제일이라 불리는 괴성이든 도성이든 마찬가지였다. 나악태나 북리단천으로서는 그런 적운휘의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 심기가 불편했다.
여태까지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개도 제집 앞마당에서는 서푼을 먹고 들어간다고 했다. 다른 곳이었다면 상대가 아무리 패왕성의 성주라 하더라도 뭐라 한마디 해도 했겠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그저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적운휘가 강무진의 손을 잡아끌고 성 앞으로 가자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패왕성의 중요 인사들이 모두 강무진에게 예를 취하기 시작했다.
“패왕을 뵙습니다.”
“패왕을 뵙습니다.”
수십여 명의 중요 인사들이 먼저 그렇게 예를 갖추자 양쪽에 도열해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무릎을 꿇으면서 장내가 쩌렁쩌렁하니 외쳤다.
“패왕을 뵙습니다!”
“패왕을 뵙습니다!”
그 기백에 강무진이 깜짝 놀라며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일행들 역시 그 장엄한 기세에 놀라며 할 말을 잃고 있었다.
“오라버니!”
그때 적영령이 반가운 얼굴로 강무진에게 손을 뻗었다.
적영령은 아직까지도 다리가 완전히 치료가 되지 않아 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바퀴가 달린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뒤에서 한 문사 차림의 사내가 그 의자를 밀며 강무진에게 다가왔다.
그 문사 차림의 사내는 이이책이었다. 이이책은 강무진의 유명세 때문에 덩달아 유명해졌고,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아 패왕성 책사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패왕마전대의 일개 조장이었던 그에게는 정말 굉장한 대우였다.
강무진은 적영령과 이이책을 보는 순간 머리가 잠시 어질하면서 뭔가가 순식간에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두 사람이 낯설지 않고 친숙한 느낌만 들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