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6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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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9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69화
169화
“너! 죽는다.”
“그러냐? 하지만 네가 먼저 죽을 것 같은데.”
강무진의 도발에도 인은 그저 무표정할 뿐이었다.
‘이 자식들 살수 아닌가? 그런데 왜 모습을 보인 거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인가?’
강무진의 생각대로 이들은 살수였다. 여태까지 몇 번이나 강무진 일행을 노렸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게 모습을 감추고 암습을 해도 죽이지 못한 상대 앞에 모습을 나타낼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당당하게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그때 인이 강무진을 다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너! 죽는다.”
“뭐? 이 자식이 정말! 너 다른 말은 모르냐?”
강무진이 화가 나서 소리치자 인의 무표정한 얼굴에 약간 당황한 기색이 스치다가 다시 원래의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사실 인이 할 줄 아는 중원말은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강무진이 그것을 콕 짚어서 이야기하자 속으로 뜨끔했던 것이다.
“너. 죽는다.”
울컥!
강무진은 인이 무표정하게 계속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그렇게 말하자 속에서 뭔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이 자식아! 한번 죽여봐라!”
참다못한 강무진이 그렇게 외치면서 도를 뽑아 들고 금방이라도 인에게 덤벼들려고 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왕이후가 다가와 소리치며 그를 말렸다.
“대사형! 멈추세요!”
갑작스러운 외침에 강무진이 멈칫하고 왕이후를 봤다. 그러자 왕이후가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그가 대사형을 흥분시켜 틈을 만들어 공격하려는 겁니다. 화를 내면 지는 겁니다.”
왕이후의 지적에 강무진은 잠시 자신이 흥분했던 것을 자책하면서 심호흡을 몇 번 했다.
“후우……. 그래. 왕 사제 말이 맞아. 잠시 흥분했었어. 흥분을 하면 지는 거지.”
강무진이 그렇게 화를 다스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있던 인이 이번에는 왕이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무표정하게 말했다.
“너. 죽는다.”
“뭐야? 사람을 그렇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난 죽지 않아!”
왕이후가 큰소리로 맞받아쳤으나 인의 반응은 똑같았다.
“너. 죽는다.”
‘저 자식이 정말!’
무표정하게 손가락질을 하며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인을 보면서 왕이후도 속으로 은근히 끓어올랐지만 그것을 꾹 누르면서 내색을 하지 않았다.
방금 자신이 화를 내면 지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때 인이 다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또 그 말을 하려고 하자 왕이후가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치며 도를 뽑아 들려고 했다.
“이 자식이 정말! 내가 손가락질하지 말라고 했지!”
그런 왕이후를 보고 옆에 있던 제갈용화와 무장이 다가와 그를 붙잡았다.
“진정하세요. 왕 소협!”
“참으십시오!”
왕이후가 그렇게 좀 진정을 하는 모습이 보이자 강무진이 머리를 잠시 긁적이다가 인에게 말했다.
“말하는 건 그렇다 쳐도 우리말을 알아듣기는 하는 거냐? 북해신궁에서 왔으니 노리는 것은 유무화겠군. 맞지?”
강무진의 말대로 인은 강무진 일행이 하는 말을 어느 정도는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살수는 말이 없어야 한다. 말을 많이 하면 성격이 가벼워지게 되고 그러면 반드시 일을 그르치게 되어 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인은 중원에 들어와서도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말이야 안 하면 그만이었지만 듣는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고 할 생각도 없었다. 귀는 항상 열어두고 주위의 정보를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인은 강무진이 그렇게 물어오자 자신이 아는 대답을 했다.
“너. 죽는다.”
“젠장! 도대체가 대화가 안 되는군. 좋아, 그럼, 어쨌든 네가 여기 이놈들의 두목인 것 같으니 너만 죽이면 되겠군.”
“…….”
강무진은 자신의 말에 인이 이번에는 손가락으로 가리키지도 않고 대답도 하지 않자 뭔가 다른 말을 하려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강무진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너. 죽는다.”
울컥!
“그래 이 자식아! 어디 한번 죽여봐라!”
강무진이 그렇게 외치면서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도를 뽑아 들어 인의 목을 그어갔다. 그러자 인도 역시 검을 뽑아 강무진의 눈을 찔러왔다.
가가가각!
쉬쉬쉬쉭!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몇 번이나 검과 도를 휘둘렀는지 아무도 파악해 내지 못했다. 오로지 공문 대사만이 약간 놀란 얼굴로 대강 짐작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다섯 번을 휘둘렀단 말인가?’
그랬다. 공문 대사의 짐작대로 강무진과 인은 그 짧은 순간에 무려 다섯 번이나 서로 공격을 주고받았던 것이다.
슈슈슈슉!
쉬쉬쉬쉭!
다시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른 공격이 오고 갔다. 어찌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검과 도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는 한 번뿐이건만 그사이에 무려 네다섯 번씩 공격을 주고받고 있었다.
강무진과 인은 좌우로 빠르게 보법을 펼치고 상체를 흔들며 상대의 공격을 피했다.
그렇게 움직이자 서로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서로의 거리는 처음 그대로 변화가 없었다. 그 상태에서 여전히 서로 공격을 주고받으며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움직임이 너무나 빨라 그것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눈이 다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빠르기와 빠르기의 대결이었다. 그리고 신법과 신법의 대결이었다.
강무진은 전에 금강불괴신공을 완성시키기 위해 높은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수련을 했었다. 그 수련을 통해서 뛰어난 집중력을 얻을 수 있었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인의 빠른 공격을 감각적으로 모두 피해낼 수가 있었다.
사실 금강불괴신공을 익혔기 때문에 굳이 인의 공격을 피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인의 빠른 검을 보자 한번 겨루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빠르기라면 강무진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쉬쉬쉬쉭!
강무진이 인이 공격해 오는 것을 재빨리 앉았다가 일어나면서 모두 피해냈다. 그러나 간단히 피해낸 것은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상체를 좌우로 틀며 움직여야 했다.
쉬쉬쉬쉭!
다시 한 번 검과 도가 공기를 가르며 서로 몇 번의 공격을 주고받았을 때였다.
문득 강무진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자신의 무기는 도(刀)니까 베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인의 무기는 검이었다. 검은 베는 것보다 찌르는 무기였고 그것이 훨씬 더 빨랐다. 그런데 인은 검을 쓰면서 마치 도를 쓰듯이 오로지 베기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뭔가 노리고 있다.’
강무진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강무진의 예감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한순간 인의 검이 사라진다 싶더니 어느새 강무진의 눈을 파고들고 있었던 것이다.
쉭!
“크윽!”
인의 검은 강무진의 눈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도저히 인간이 낼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그런 만큼 어디서 어떻게 공격해 오는지 파악할 수조차 없었다.
만약 강무진이 문득 떠오른 생각에 미리 대비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눈이 뚫렸을 것이다.
인은 강무진이 자신의 찌르기를 피하자 의외였는지 얼굴에 약간 놀란 기색이 떠올랐다.
여태까지 그 누구도 이 찌르기를 피하지 못했었다. 암살을 할 때는 물론이고 지금과 같이 맞대결을 펼칠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계속 베기만 했던 것은 이 찌르기를 감추기 위해서였다.
베기만 사용하면 상대는 그것에 익숙해진다. 더구나 엄청나게 빠른 베기라면 다른 생각을 할 여유도 없다. 그럴 때 단 한 점을 격하는 찌르기로 마무리를 짓는 것이다.
그런데 강무진이 그것을 피해냈다. 그 말은 그 빠른 공방(攻防) 속에서도 여유가 있었다는 뜻이다.
인은 강무진이 자신의 기술을 안 이상 더 이상 감추지 않았다. 순식간에 다시 강무진의 눈을 노리고 찔러 들어갔다.
쉭!
“쳇!”
아까는 간신히 피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강무진은 상대가 또 검으로 찔러온다는 예감이 들자 팔을 올려 눈을 가렸다. 또다시 피해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인의 검이 강무진의 팔에 맞고 튕겨 나갔다. 강무진의 팔은 금강불괴신공에 의해 보호되고 있는데도 따끔 하는 고통이 느껴졌다. 마치 얇은 침이 팔을 파고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에 자신도 모르게 인과의 거리를 두기 위해 두세 걸음을 물러났다. 처음으로 두 사람의 거리가 벌어졌다.
인은 그런 강무진을 쫓지 않았다.
빠르기를 겨루던 자존심 대결은 강무진이 그렇게 물러남으로 인해 패한 것이었다.
그러나 싸움은 이제부터였다.
잠시 두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 서로를 노려보자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손에 베인 땀을 닦아냈다.
‘처음부터 내 눈을 노리고 있었어. 운이 좋아 피해내기는 했지만 더 이상은 어렵다. 그렇다면…….’
강무진은 머릿속에 어떻게 싸워야 할지 대충 계획이 서자 망설이지 않고 다시 인에게 도를 휘둘러갔다.
그러나 그것은 속임수였다. 도를 휘두르는 척하면서 왼쪽 손을 한 번 떨치자 수십여 개의 암기가 인에게 쏘아져 나갔다.
인은 그 가까운 거리에서 쏘아진 암기를 아무렇지 않게 모두 쳐냈다. 아까 강무진과 그렇게 빠르기를 겨룰 정도이니 이 정도의 암기를 쳐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때 강무진이 인의 오른쪽으로 돌면서 다시 한 번 왼손을 떨쳤다. 그러자 암기가 인의 왼쪽과 정면을 노리고 날아갔다. 인이 그것을 또다시 모두 쳐내는 동안 강무진은 팔로 눈을 보호하면서 인과의 거리를 좁혔다.
강무진은 어떻게든 거리를 좁혀서 인이 그 빠른 찌르기를 쓰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은 그런 강무진의 생각을 단번에 알아채고 재빨리 뒤쪽으로 몸을 뺐다.
강무진은 비록 천변결로 인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봉쇄하면서 움직였으나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때는 눈을 가려야 했다. 이에 인의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무조건 달려들며 손을 뻗었다.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던 것이다.
쉬쉬쉬쉭!
가가가각!
인이 자신을 잡으려고 달려드는 강무진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금강불괴신공으로 몸이 보호되는 강무진에게는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때 강무진은 자신의 손에 뭔가 잡히자 망설이지 않고 힘껏 잡아당겼다. 그것은 인의 소매였다.
인이 끌려오지 않기 위해 힘을 주고 버티며 팔을 반대로 뺐다.
그것이 실수였다. 차라리 강무진이 당기는 데로 따라가면서 팔을 뺐다면 쉽게 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반대로 힘을 쓰면서 버티자 강무진이 잡아당기던 것을 놓아버렸다.
이에 버티는 힘을 주고 있던 인의 몸이 약간 휘청했다. 아주 잠시였고, 인은 곧바로 중심을 잡았으나 이미 강무진은 인에게 바짝 붙어 밑에서 위로 도를 그어 올리고 있었다.
까깡!
처음으로 서로의 무기가 부딪치면서 소리가 났다.
그때부터는 강무진이 승기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완전히 붙어서 싸우는 것은 강무진의 특기 중의 하나였다. 염전상으로부터 붕마도법을 배울 때 그가 늘 강조하면서 가르쳤던 것이 바로 이런 초근접전이었다.
도를 휘두르기 힘들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도를 상대의 무기나 몸에 대고 긁으면서 싸우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그 커다란 도로 이런 근접전을 연습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