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6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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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8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67화
167화
남궁종상은 애써 그것을 떨쳐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소림사가 있는 등봉현에 도착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궁종상 일행이 숲 깊숙이 들어섰을 때였다.
불안했던 남궁종상의 예감은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그들의 앞을 막아서는 한 떼의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중앙에는 북해신궁의 좌호법인 냉혈군자 구혁상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덩치가 산만하고 산적같이 수염을 기른 노인이 한 명 서 있었다.
노인의 머리는 완전히 백발에다 수염도 역시 완전히 하얗게 새어 있었다. 몸에는 백곰의 가죽으로 짠 옷을 두르고 있었는데 풍기는 기세가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들 뒤로는 빼어나게 아름다운 중년 여인과 그 여인을 닮은 아주 잘생긴 10대의 소년이 서 있었는데, 이 여인이 바로 북해신궁의 궁주인 유양천의 둘째 부인이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소년은 그 여인의 아들로 북해신궁의 정식 후계자인 유정이었다.
그러나 사실 유정은 북해신궁의 궁주인 유양천의 아들이 아니라 그의 둘째 부인과 좌호법인 구혁상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남궁종상의 옆에 있던 유소호가 단번에 그들을 알아보고 말을 더듬거렸다.
“오…오라버니…….”
“……!”
남궁종상은 유소호가 하는 말에 그들을 유심히 살폈다. 중원에서는 볼 수 없는 복장에다 유소호가 저리 부르는 것을 보니 그들이 누구인지 짐작이 갔다. 이에 우선 포권을 취하면서 말했다.
“북해신궁의 분들이셨군요. 남궁세가의 소가주인 남궁종상이라고 합니다.”
“나는 북해신궁의 좌호법인 구혁상이라고 하오. 여기 이분은 본궁의 태상으로 설왕이라 불리는 분이시오.”
구혁상이 나서며 옆에 있는 덩치가 큰 노인을 가리키며 말하자 남궁종상이 설왕에게도 인사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마중을 나오셨습니까?”
“흠. 그 정도는 당연한 일이오. 본궁의 힘을 무시하지 마시오.”
구혁상이 짐짓 기분 나쁜 투로 말하자 남궁종상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아! 실례를 했군요.”
“아니오. 괜찮소. 어쨌든 소호 아가씨를 찾아줘서 고맙소이다.”
“별말씀을.”
“약속한 빙정은 나중에 사람을 시켜 보내도록 하겠소.”
“고맙습니다. 약속하신 거니 염치없이 받겠습니다. 소호야.”
남궁종상이 그렇게 말하면서 유소호를 부르는데 유소호의 표정이 이상했다. 유소호는 그들을 보고 잔뜩 겁먹은 표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남궁종상은 뭔가 이상하다고 여겼다. 이제 무사히 북해신궁으로 돌아가는데 어째서 저런 표정을 짓는단 말인가?
“소호야.”
남궁종상이 다시 유소호를 부르자 유소호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남궁종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싫어요. 안 갈래요.”
“뭐? 그게 무슨 말이냐?”
“저 사람들은 나를 죽일 거예요. 안 갈래요.”
“뭐?”
남궁종상이 유소호의 말뜻을 선뜻 이해하지 못하고 구혁상을 바라봤다.
그러자 구혁상이 살짝 미소를 띠며 유소호에게 말했다.
“아가씨,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가 어찌 감히 아가씨를 죽일 수 있겠습니까?”
“닥쳐라!”
갑자기 유소호가 소리를 지르자 모두가 놀란 눈으로 유소호를 바라봤다. 그러건 말건 유소호는 손가락으로 구혁상의 옆에 있는 유양천의 둘째 부인을 가리키며 다시 소리쳤다.
“당신은 나를 죽일 거잖아!”
“……!”
유소호의 외침에 남궁종상도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이 온다는 것을 미리 알고 마중을 나왔다면 당연히 궁주인 유양천도 왔어야 했다. 그러나 유양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단지 아이들을 찾아주는 것만으로도 빙정을 준다고 했던 유양천이었다. 그만큼 아이들을 생각한다는 뜻인데 이렇게 자신이 유소호를 데리고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아이를 보고 싶은 마음에 그도 오는 것이 당연했다.
“저자들은 빙정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빙정은 아버님만이 가지고 있어요. 저들은 아버님이 보내서 온 것이 아니에요.”
유소호가 남궁종상을 바라보며 그렇게 이야기하자 남궁종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구혁상에 말했다.
“흐음, 당신들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궁주님을 뵙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소림사가 그리 멀지 않으니 함께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니오. 여기까지 소호 아가씨를 데려다준 것도 고맙거늘 어찌 그런 수고를 끼치겠소.”
구혁상이 그리 말했으나 속으로는 이미 일이 틀어졌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설왕이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귀찮게 일을 처리하는구나. 전부터 중원의 무공과 꼭 한번 겨루어보고 싶었다. 자신 있으면 나서거라!”
설왕의 말은 유소호의 말을 인정하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할아버님, 아무래도 우리가 저자들한테 속을 뻔한 것 같습니다.”
남궁종상은 설왕이 풍겨내는 기세로 보아 자신이 상대할 수 없음을 한눈에 간파하고 괴성 나악태에게 말을 건넸다.
그렇잖아도 설왕의 도전적인 말이 신경에 거슬렸던 나악태였다. 코웃음을 치며 말에서 내리며 말했다.
“클클. 어디 한번 겨루어볼 실력이 되는지 보자.”
그렇게 나악태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설왕도 기다리지 않고 천천히 거리를 좁혀왔다.
천하제일의 고수 중 한 명이라는 괴성 나악태와 북해에서 최강이라는 설왕의 싸움이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두 사람의 기세만으로도 심상찮은 싸움이 될 것이라 여기며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설왕과 나악태는 잠시 움직이지 않고 서로를 노려봤다. 그러면서 서서히 내공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두 사람의 기가 서로 엉키면서 주위에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기세싸움이었다. 단순한 기세싸움만으로도 두 사람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만큼 서로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흐아아압!”
선공은 설왕이 먼저였다. 그 커다란 덩치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에 맞서 나악태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코 설왕의 움직임에 부족하지 않은 빠르기였다.
콰콰콰쾅!
두 사람이 부딪쳤다. 서로의 빈틈을 찾아 권과 장이 오가고 그것을 피하며 두 사람이 정신없이 빠르게 움직였다.
설왕이 이쪽에 있나 싶으면 어느새 저쪽에 나타났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나악태와 서로 위치가 바뀌기도 했다.
나악태 역시 이쪽에 있다가도 없어졌다 싶으면 공중에 떠 있었으니 주위에서 그것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두 사람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땅이 울리고 하늘이 진동을 했다.
그들이 움직이는 데 방해가 되는 건 없었다. 나무건 바위건 그들의 손과 발이 닿으면 모조리 부서져 나갔다.
인간이 어떻게 그런 위력을 낼 수 있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설왕은 마치 성난 커다란 북극곰 같았다. 덩치도 커다란데다 극음의 한기(寒氣)를 온몸에서 뿜어내는 모습이 영락없이 그랬다.
그에 비해 나악태는 작은 체구로 그 북극곰의 주위를 돌며 목을 물어뜯을 기회를 노리는 늑대 같았다.
둘은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면서 가진 바 기량을 모두 펼치고 있었다. 처음 기세싸움 이후로 두 사람 다 한눈에 서로의 실력을 알아봤다. 시작부터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느끼고 두 사람 다 전력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천외천(天外天)이라…….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경악을 하며 정말 하늘 밖에 또 다른 하늘이 있음을 실감해야 했다.
그들을 보고 있자면 자신들의 무공은 한없이 보잘것없이 느껴졌다. 자신들도 모르게 두 손에 땀이 베이고 가슴이 뛰었다. 무인이라면 누구나 오르고 싶어 하는 경지를 지금 눈앞에서 두 사람이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설왕은 나악태와 겨루면서 유양천의 둘째 부인을 따라 중원으로 나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춥고 척박한 북쪽, 꽁꽁 얼어붙은 땅에서 오로지 무공만 알고 지내던 설왕이었다.
그런 설왕에게 그녀가 다가왔을 때 처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다.
미모가 대단하기는 했지만 북해신궁의 궁주인 유양천의 부인이었고, 무엇보다 설왕은 무공 이외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녀의 미모가 아무리 뛰어나고 그것을 이용해 자신을 유혹하려 해도 그것이 눈에 보일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오랜 정성은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북해신궁 궁주인 유양천의 둘째 부인 월계지.
그녀는 실로 대단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인 유정이 순탄하게 북해신궁의 궁주가 되지 못할 경우 힘으로라도 그 자리에 앉힐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다.
세력은 좌호법인 구혁상이 만들어갔다. 그러나 구혁상을 비롯한 그 누구도 궁주인 유양천의 무공을 당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사람이 바로 설왕이었다.
월계지는 수년간 정성을 들여 설왕을 유혹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그녀는 아주 조금씩 은밀하게 유혹하며 설왕에게 다가갔고 드디어 성공했다.
평생 무공만 알고 지내던 설왕은 여인의 몸을 알게 되자 그 달콤함에 미친 듯이 그녀의 몸을 탐했다. 그것은 자신이 알고 지내던 세상과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그때부터 설왕은 완전히 그녀의 손바닥에서 놀아났다. 설왕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었으나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러던 차에 궁주인 유양천이 중원으로 아이들을 찾아 떠났고, 월계지는 이것이 기회라고 여겼다.
혹시라도 첫째 부인의 아들인 유무화가 살아서 돌아온다면 북해신궁에서 실력행사를 해야 했다. 그러면 피를 많이 봐야 하니 아무래도 번거로웠다.
이에 자신이 설왕과 함께 중원으로 나가 유무화를 죽이려고 했다.
만약 이미 유무화와 유양천이 서로 만났다면 두 사람 모두 죽여버리면 그만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더 나은 일일 수도 있었다. 궁주인 유양천만 없다면 북해신궁에서 자신의 세력을 당해낼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아아앗!”
“흐아아압!”
콰콰콰콰쾅!
설왕과 나악태의 장과 주먹이 부딪치면서 커다란 굉음을 냈다.
반나절이나 서로 팽팽하게 싸우던 그들은 이제 조금씩 승패가 갈리고 있었다.
괴성 나악태가 아무리 천하제일의 고수 중 한 명으로 불리고 있다지만 설왕의 상대는 아니었다.
설왕은 반평생 이상을 그 추운 북쪽 땅에서 오로지 무공만을 수련하면서 지냈던 사람이다. 당연히 무공이 나악태보다는 한 단계 더 올라서 있었던 것이다.
나악태는 시간이 갈수록 자신이 점점 밀리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계속 싸우다가는 패배가 분명했다. 어떻게든 다시 승기를 잡아보려고 했으나 길이 보이지가 않았다.
여기에서 나악태는 선택을 해야 했다.
그냥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사력을 다해 설왕에게 부상을 입히고 자신은 죽을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다.
자신이 한순간 사력을 다한다면 충분히 설왕에게 커다란 부상을 입힐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자면 자신은 목을 내놓아야 했던 것이다.
“하아아앗!”
“흐아아앗!”
콰콰콰콰쾅!
또다시 두 사람의 장과 주먹이 부딪쳤다. 이번에 나악태는 상대의 힘을 강력하게 맞부딪치기보다는 일부러 힘을 약하게 해서 상대의 힘을 이용해 뒤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