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5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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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4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59화
159화
이곳 호북성에서 제갈세가를 무시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구대문파 중 하나인 무당파가 있기는 했지만 그들은 산 아래의 일에는 웬만해서는 간섭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실제로 가장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곳이 바로 제갈세가였다. 그러니 이런 객잔의 주인으로서는 당연한 모습이었다.
객잔 주인은 곧 일행들을 3층으로 안내했다. 3층은 이미 제갈세가 사람들이 모두 전세 내서 쓰고 있었다.
한자리에 일행이 모두 앉자 제갈산이 먼저 왕이후를 보며 말을 꺼냈다. 왕이후를 강무진보다 높게 본 것이다.
“반갑소. 노부는 제갈산이라고 하오.”
그때까지만 해도 하은연과 속닥거리고 있던 강무진은 하은연이 팔꿈치로 옆구리를 콕콕 찍자 그제야 분위기를 파악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반갑습니다. 강무진이라고 합니다.”
“……!”
제갈산은 왕이후가 아니라 뜻밖에도 강무진이 인사를 먼저 하자 약간 의아한 눈을 했다.
‘설마 내가 사람을 잘못 파악하고 있었던가?’
강무진이 그렇게 인사를 하자 왕이후가 일어나서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했다.
“패왕성 패왕폭풍대의 대주 왕이후입니다.”
제갈세가 사람들은 왕이후가 말하는 것을 듣고 생각 외라는 듯 그를 바라봤다.
패왕성이 있는 호남성은 제갈세가가 있는 이곳 호북성의 바로 아래에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 관한 이야기는 귀가 따갑게 들을 수가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패왕성에서 패왕폭풍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큰지를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곳의 대주가 이렇게 젊은 사람일 줄은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제갈산은 왕이후에게서 은연중에 나오는 기세를 느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왕이후가 그렇게 자신을 소개하자 황보란과 황보린이 인사를 했다. 그녀들은 전에 한 번 서로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제갈 사람들과 안면이 있었다. 그리고 하은연과 화화가 간단히 인사를 했다.
그러자 제갈세가의 사람들이 자신들을 소개했다. 제일 먼저 인사를 한 건 제갈무용의 형인 제갈무한이었다. 그는 무공이라고는 전혀 모를 것 같은 서생 같아 보였다. 그리고 이어서 제갈강이 인사를 했는데 왕이후를 보며 상당히 도전적인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제갈효명과 마지막으로 제갈용화가 인사를 했다. 그렇게 서로 인사가 오가자 제갈용화가 왕이후를 보고 물었다.
“왕 소협, 아까 왕 소협은 패왕폭풍대의 대주라고 했죠?”
“그렇소.”
“그럼 저분은 패왕성에서 어떤 직책에 있는지 물어도 실례가 되지 않을까요?”
그것은 제갈산도 은근히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아까 왕이후보다 먼저 인사를 한 것으로 봐서 패왕폭풍대의 대주인 왕이후보다 신분이 높은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하는 행동이나 나이로 봐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실례랄 것까지야. 저분은 제 대사형입니다. 혹시 패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군요.”
왕이후의 질문에 제갈세가의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봤다.
“그럼 설마 저 소협이…….”
제갈용화의 말에 왕이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대사형이 바로 그 패왕입니다.”
“아!”
그 사실을 처음 들은 제갈세가의 사람들 모두가 놀란 듯했다. 설마 저렇게 어수룩해 보이는 사람이 그 대단한 소문의 주인공일 줄은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
“몰라봤군. 설마 그 대단한 패왕이 이렇게 젊은 사람일 줄은 몰랐소.”
“아닙니다.”
강무진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그렇게 말하자 그가 패왕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쉬이 믿지 못했다. 아무리 봐도 그렇게 대단한 인물로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패왕이라는 자는 도백광이란 자와의 싸움 이후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중상을 입고 죽어간다고 들었는데……. 혹시 가짜인가?’
제갈산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패왕성에서 그간 흔들렸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이미 죽어버린 패왕을 대신해서 가짜를 내세울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또 앞뒤가 안 맞았다. 패왕성에서 그렇게 가짜를 내세우려면 누가 봐도 패왕이라 할 수 있는 기개 있는 사람을 내새웠을 것이다.
적어도 패왕폭풍대의 대주라는 왕이후 이상은 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제갈산이 보기에 강무진은 왕이후보다 훨씬 못해 보였다. 그래서 처음에 자신도 혼동하지 않았던가?
‘흠, 차차 알게 되겠지.’
“그런데 숙부님, 왜 이곳까지 와 계신 겁니까?”
제갈무용의 질문에 제갈산이 강무진 일행을 보며 말을 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어차피 알게 될 일이니 숨길 필요 없지. 사실 우리는 인간백정이라 불리는 광마(狂魔)가 호북성으로 들어왔다.”
“예?”
제갈산의 말에 제갈무용은 물론이고 강무진만 빼고 모두가 놀란 얼굴을 했다.
인간백정 광마는 예전에 강무진이 만났던 광인도 풍수개와 함께 무림에서는 절대로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정사 구분도 없고, 남녀노소도 구분 없이 살인을 밥 먹듯이 하기 때문에 인간백정이라 불리고 있었다.
그에게는 특이한 취미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어린 소녀들을 데려다가 강간을 하는 것이다. 이번에 제갈세가의 아이가 두 명이나 끌려가 당하고는 죽임을 당했다.
이에 제갈세가의 사람들이 분개하며 호북성을 이 잡듯이 뒤졌다. 그 과정에서 제갈세가는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인간백정 광마의 무공이 너무나 뛰어났던 것이다.
이에 세가에서 무공이 뛰어난 사람을 중심으로 다섯 명의 고수와 그 외의 사람들이 적어도 열 명 이상 같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강무진 일행은 사태가 굉장히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다. 내용을 죽 들어보니 제갈세가에서는 광마를 어떻게 하지 못하고 있는 입장인 것 같았다. 이렇게 몰려 있지 않으면 그를 상대하기 힘들다는 이야기인데, 그가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 있는데 나타날 리가 없었던 것이다.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하은연의 생각에는 제갈세가에서는 이미 광마를 잡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이렇게 몰려다니며 그저 그가 호북성 밖으로 나가기만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만 해도 제갈세가로서는 더 이상 피해가 안 생기고, 무엇보다 제갈세가가 무서워 인간백정 광마가 호북성을 떠났다라는 말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그 동안 광마에게 당해 깎여버린 세가의 위신을 충분히 다시 세울 수가 있었다.
“상황이 이러니 무용이 너는 이제부터 우리와 함께 다녀야 한다.”
제갈무용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절대로 제갈세가로는 안 가겠다고 하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도 자신만을 위해 고집을 피울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저희도 도움이 되고는 싶지만 지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도움을 드리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왕이후가 정말 아쉬워하며 그렇게 말하자 제갈산이 속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사실 제갈산은 최근에 패왕성에서 인간백정 광마와 함께 거론되는 광인도 풍수개를 생포했다는 소문을 들었었다. 그리고 그 일을 해낸 것이 바로 패왕폭풍대의 대주인 왕이후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도와준다면 분명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원래 제갈세가는 천하 오대세가 중 하나로 자존심이 대단한 곳이었다. 그런 곳이기 때문에 다른 이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 했으나 이번 일은 사안이 달랐던 것이다.
“허, 그렇구려. 어쨌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고, 이미 밤이 늦었으니 하룻밤은 이곳에서 묵고 가게나.”
제갈산의 말에 왕이후가 강무진을 슬쩍 바라봤다. 그러자 강무진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야기가 그렇게 끝날 때쯤 식사가 나오자 모두들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갈무용을 비롯한 제갈세가의 젊은 사람들과 황보란과 황보린, 그리고 왕이후가 남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친분을 쌓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각자의 방으로 갔다.
제갈세가의 사람들은 패왕이라는 강무진보다는 왕이후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 때문이었는데, 왕이후가 광인도 풍수개를 생포한 일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풍수개는 물론이고 광마를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자신들과 나이가 그리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왕이후가 그 같은 일을 해냈으니 단연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왕이후가 그렇게 눈에 보이는 실적이 있는 반면에 강무진은 그저 소문뿐이었고, 도백광 역시 패왕성에서나 유명하지 밖에서는 그리 활동을 안 했기 때문에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고 있었다.
강무진은 방으로 들어오는데 하은연이 뒤에서 쫄랑쫄랑 따라 들어오자 그녀를 바라봤다.
“왜요?”
하은연은 요즘 들어 사람들이 있는데도 대놓고 그와 같이 밤을 지내려 했다. 모두가 두 사람의 은근한 관계를 알고는 있었지만 입 밖으로 내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런데 하은연이 요즘 그렇게 행동하자 사람들이 조금씩 그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강무진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라보고만 있자 하은연이 다시 물었다.
“사람들이 신경 쓰여서 그래요?”
“…….”
그래도 강무진이 말이 없자 하은연이 갑자기 강무진의 허리를 안고 침대로 밀고 갔다. 그러고는 침대에 누운 강무진의 가슴에 올라타고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싫으면 지금 말해요, 강 오라버니.”
“저기, 하 누이.”
두 사람은 아직도 서로를 높여서 부르고 있었다.
“네.”
“하 누이는 죽지 마.”
강무진이 갑자기 진지하게 하는 말에 하은연이 멈칫했다. 그러고는 강무진에게 얼굴을 가까이하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내가 죽을까 봐 걱정되나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냥 그랬으면 해서.”
“걱정 마세요. 오라버니보다 오래 살 테니까.”
“응.”
“그러려면 오라버니한테 기를 많이 받아야죠.”
하은연이 그렇게 말하면서 강무진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초연이 생각났을까?’
강무진은 그런 생각을 하며 하은연에게 몸을 맡겼다.
깊은 밤.
달이 뜨지 않아 어두운 밤이었다. 날씨가 흐렸는지 별도 뜨지 않아 바로 앞도 식별하기 힘들 정도로 깜깜했다.
그런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움직이는 자가 있었다.
그는 가볍게 3층이나 되는 높이를 뛰어올랐다. 그리고 커다랗게 나 있는 창 옆의 벽에 바짝 달라붙었다. 그때 안에서 몇몇 사람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들렸다.
“정말 왕 소협은 대단하군요.”
옥구슬이 굴러가듯 고운 여인의 음색이 들려왔다. 그러자 남자다운 굵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아니오. 사실 내가 그때 광인도 풍수개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운이었소.”
“운도 실력이라고 하지 않소. 하하하.”
마지막으로 다른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들려오는 목소리로 봐서 지금 안쪽에는 세 사람뿐이었다.
‘뭐야? 저 녀석이 풍수개를 잡았다고?’
창 밖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우연찮게 들은 그가 슬쩍 안을 들여다봤다.
그 자리에는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각자의 방으로 가버리고 제갈용화와 제갈무한, 그리고 왕이후만이 남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