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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1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9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1화

 

1화

 

 

 

 

 

 

태원에서 동쪽으로 삼백 리 떨어진 관제산(關帝山).

 

그 깊은 곳에 지하석실이 하나 존재했다.

 

크고 작은 방 두 개로 이뤄진 지하석실은 정확히 마흔네 평. 출입구는 높이 여섯 자, 폭 넉 자의 철문이 유일했다.

 

한쪽의 작은방에도 출입구는 따로 없었다. 남쪽의 천장과 벽이 맞닿은 곳에 뚫린, 쇠창살로 가로막힌 가로세로 한 자 크기의 구멍도 그저 숨구멍일 뿐이다.

 

말라붙은 피가 희미한 빛마저 빨아들여 칙칙하게 느껴지는 갈색 벽.

 

눅눅한 공기에 섞인 비릿한 혈향.

 

그곳에 들어서면 절로 숨이 멈춰지고, 공포가 들어선 이의 뇌리를 지배한다.

 

지옥으로 가는 관문.

 

죽음만이 존재하는 고문실.

 

사람들이 비옥(秘獄) 십팔호실(十八號室)이라 부르는 곳.

 

그곳이 바로…… 그가 태어나고, 아버지와 함께 자란 고향이었다.

 

 

 

 

 

 

 

제1장 비옥(秘獄) 십팔호실(十八號室)

 

 

 

 

 

그의 아버지는 비록 등이 굽은 꼽추지만, 고문에 관한 한 강호 제일이었다.

 

기어 다닐 때부터 그는 매일 아버지가 고문하는 것을 보며 자랐다.

 

어쩌면 당연했다. 그가 태어난 곳도, 자란 곳도 비옥십팔호실이었으니까.

 

비옥십팔호실은 석실 두 개로 이뤄져 있었는데, 하나는 고문실, 하나는 그와 아버지가 기거하는 거처였다.

 

거처가 그곳인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특별한 비밀을 지닌 자들만이 비옥십팔호실에 맡겨졌다. 그들을 고문하다 보면, 그의 아버지와 그는 듣기 싫어도 수많은 비밀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성(城)의 높은 사람들 입장에서, 그의 아버지와 그를 건물 밖으로 나가게 하겠는가. 비밀이 새어나갈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자란 그는 다섯 살 때부터 아버지를 도왔다.

 

때로는 바닥에 물을 뿌려 피를 닦기도 하고, 아버지가 원하는 물건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때로는 고문도구도.

 

그의 귀에는 죄인들이 내지르는 비명이 자장가처럼 들렸다. 코를 찌르는 피 냄새도 매일 먹는 음식 냄새와 별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악마라 부르고, 그를 소악귀라고 불렀다.

 

“아버지, 왜 사람들은 우리를 그렇게 불러요?”

 

궁금함을 참지 못한 그가 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를 가만히 품에 안고 등만 쓰다듬었다. 그날따라 그의 귀에는 아버지의 심장고동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 다음부터는 묻지 않았다.

 

세상사람 모두가 아버지를 욕해도, 그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 바로 아버지였으니까.

 

 

 

* * *

 

 

 

“아버지가 말이다. 옛날에는 황궁에서 살았단다. 금의위 북진무사의 지옥사신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 흐흐흐……. 동창 놈들만 아니었어도 잘 나갔을 텐데…….”

 

아버지는 항상 잠자기 전에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가끔은 옛날이야기 하듯이 과거를 말해주기도 했지만, 주로 하는 이야기는 그날 한 일에 대한 것이었다.

 

“무령아, 오늘은 말이다. 산서에서 제일간다는 소화삼이라는 도둑놈이 잡혀왔단다. 그런데 생각보다 의지가 약하더구나. 겨우 한 시진을 버티지 못하고 입을 열었지 뭐냐. 그놈이 뭐라고 했는지 아냐? 글쎄…….”

 

그가 잠을 자던 자지 않던 아버지는 의무인 것처럼 하루도 빼놓지 않았다.

 

“이틀 만에 그자가 입을 열었단다. 나는 그놈이 지닌 무공까지 다 알아냈지……. 크크크, 제법 쓸 만한 걸 알고 있더구나.”

 

어떤 식의 고문을 했는지, 죄인이 무슨 말을 했는지, 하나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몰랐다, 아버지가 왜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말하는지.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매일 아버지를 괴롭히고 있었거늘, 어린 그는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그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

 

비옥십팔호실에 한 사람이 맡겨졌다.

 

아버지는 유난히 침중한 표정으로 그자를 고문했다.

 

그날 밤, 아버지는 아무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다.

 

잠을 자던 중에도 몇 번씩 일어나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아버지의 그런 행동을 모른 척했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보지도 않았다.

 

일이 끝나면 다 말해줄 테니까.

 

만약 아버지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만 있었다면, 그는 아버지가 천천히 일을 마치기만을 바랐을 것이었다.

 

아니, 아예 하지 않기를 바랐을지도…….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 * *

 

 

 

고문 사흘째.

 

비옥십팔호실 공기는 유난히 무거웠다.

 

피가 말라붙어 갈색으로 변한 석벽에 한 사람이 매달려 있었는데, 그는 이미 살아있는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핏기 없는 회색 얼굴, 벌집처럼 구멍 난 몸, 비늘처럼 말라붙은 피딱지, 적어도 수십 번은 생사를 넘나든 듯 보이는 모습.

 

이미 팔 할 이상은 죽은 거와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전면을 바라보는 그의 두 눈에서는 더욱 진한 공포가 떠올랐다.

 

“악마…… 차라리…… 죽여…….”

 

푸들푸들 떨리는 목소리.

 

거세게 흔들리는 공포에 찬 눈빛.

 

하지만 그의 뒤에 서 있는 꼽추는 일말의 표정변화도 없이 손을 천천히 당겼다.

 

벽에 매달린 자의 등에 박혀 있던 기다란 장침이 꼽추의 손길을 따라 빠져나온다.

 

아홉 치 길이의 장침은 그냥 빠져나오는 것이 아니다.

 

장침이 한 치 빠져나온 순간부터 처절한 비명이 비릿한 혈향으로 가득한 뇌옥을 울렸다.

 

“끄아아아아!”

 

가느다란 장침에 달린 수십 개의 갈고리가 등 쪽의 신경을 뜯어내고 뼈를 긁으며 빠져나온다.

 

장침 끝에서 점점이 떨어지는 핏방울이 바닥의 흥건한 핏물 위로 떨어진다.

 

똑, 똑, 똑…….

 

핏방울 떨어지는 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소리가 방 안을 울릴 때마다, 쇠사슬에 묶인 채 석벽에 매달려 있는 자는 푸들거리며 몸을 떨었다.

 

그의 몸은 이미 푸줏간의 고기처럼 넝마가 된 지 오래였다.

 

그리되고도 목숨이 붙어 있다는 것, 아직도 고통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차라리 이대로 죽여주었으면…….’

 

석벽에 매달려 있는 자의 단 하나 희망이라면 오직 하나, 죽음뿐이었다.

 

그러나 당장 죽는다는 게 얼마나 헛된 희망인지 그도 잘 알았다.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상대는 강호제일의 고문술사다. 자신이 입을 열기 전에는 절대 죽음을 허락지 않을 것이다.

 

“말하고 싶으면 언제든 고개를 끄덕여, 편하게 죽고 싶으면. 숨긴다고 감춰질 것도 아닌데…….”

 

고저 없는 칼칼한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리며 귓전에 맴돈다.

 

그는 모든 힘을 쥐어짜 목소리의 주인을 노려보았다.

 

꼽추가 앞으로 걸어 나온다.

 

무심한 눈빛, 완벽한 무표정.

 

인간의 모든 감정이 말살된 것 같은 얼굴이다.

 

‘악마 같은 놈……!’

 

그때 꼽추가 장침을 옆으로 내미는 게 보였다.

 

작은 손 하나가 장침을 받아들고는, 손가락 두 개 크기의 흑색 병을 꼽추 손에 쥐어준다.

 

순간, 그의 두 눈이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 위의 난파선처럼 거세게 흔들렸다.

 

그는 아는 것이다. 저 흑색 병에 든 액체가 자신의 상처 난 몸으로 흘러들면 어떤 고통이 전해지는지.

 

이미 한번 경험해본 그로선, 지옥의 어떤 형벌보다 더 지독할 것 같은 그 고통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는 사이, 툭, 흑색 병의 뚜껑이 열렸다.

 

피비린내와 섞인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냄새만 맡았을 뿐인데도 혼이 갈가리 찢겨지는 고통이 느껴지는 듯했다.

 

‘아, 안 돼!’

 

그는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말…… 하겠…….”

 

비천자(秘天子) 양처기.

 

한때 제왕성의 비밀호법이었던 그가 ‘제왕(帝王)의 비밀(秘密)’에 대해 입을 연 것은, 비옥십팔호실에 끌려온 지 사흘 만이었다.

 

 

 

그날 밤.

 

그의 아버지는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꼭 끌어안았다.

 

“무령아, 내 아들, 조금도 슬퍼할 것 없다. 어차피 이게 이 애비의 운명이니까. 그래도 동창의 눈을 피해 이곳에서 이십 년을 넘게 살았으니 운이 좋았던 거란다. 더구나 이렇게 잘난 아들까지 세상에 남겼지 않느냐?”

 

그날따라 그의 아버지는 더욱 많은 말을 했다.

 

그는 그게 아버지와의 마지막 밤이라는 것을 알고, 아버지의 가슴이 축축하게 젖도록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의 아버지는 심장에 한 자 길이의 장침을 꽂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왜 스스로 심장에 장침을 꽂았는지!

 

 

 

* * *

 

 

 

산서제일세(山西第一勢)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강호인들은 주저하지 않고 한곳을 꼽았다.

 

 

 

-그거야 강호팔패의 한축인 제왕성(帝王城)이지!

 

 

 

제왕성은 태원 동쪽에 우뚝 솟은 관제산 중턱을 드넓게 차지한 채 산서 무림을 오만하게 내려다봤다.

 

비옥십팔호실은 바로 그 제왕성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제왕성 사람들은 꼽추가 죽은 것에 대해서 조금도 슬퍼하지 않았다. 그들은 꼽추의 시신을 더러운 동물사체를 대하듯 거적으로 감싸서 한쪽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소악귀의 처리를 고민했다.

 

어차피 밖으로 내보낼 수는 없는 일.

 

죽일 것이냐, 아니면 살려서 비옥 내의 심부름이라도 시킬 것이냐.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하지만 결론을 내리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열다섯 살의 소년은 그들에게 하찮은 대상일 뿐이었다.

 

게다가 비옥십팔호실의 수많은 고문기구와 괴이한 약재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그밖에 없었다.

 

결국 성의 사람들은 그로 하여금 새로운 주인이 생길 때까지 십팔호실을 관리하게 했다.

 

그런데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한 가지 사실이 드러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꼽추, 지옥타배(地獄駝背) 독고헌이 지녔던 강호제일의 고문기술을 그가 모두 알고 있다는 게 밝혀진 것이다.

 

성에서는 그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단순히 기술만 알고 있는지, 아니면 실제로 고문까지 할 수 있는지.

 

그 시험을 하기 위해 성에서는 죄인 하나를 비옥십팔호실에 집어넣었다.

 

그는 첫 번째 고문을 훌륭히 수행해 냈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눈빛 한번 흔들림 없이 사람의 살을 가르고 뼈를 갉아냈다.

 

성의 사람들은 그가 고문하는 것을 보고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소악귀라더니, 참으로 독사 같은 놈이로다.

 

-나이도 어린놈이 지 아비보다도 더 독하군.

 

-저런 놈을 세상에 내놓으면 강호가 우리를 욕할 것이네.

 

 

 

그날 부로 그는 고문기술자가 되었다.

 

비옥십팔호실도 다시 그의 것이 되었다.

 

그날, 그는 아버지가 주무시던 침상에 엎드려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다짐했다.

 

‘아버지 말대로 세상에 지지 않을게!’

 

 

 

* * *

 

 

 

비옥십팔호실의 주인이 된 지 일 년이 지났다.

 

그동안 소악귀 독고무령이 맡은 죄수의 숫자는 모두 열아홉 명. 하나같이 강호에서 이름을 날리던 자들이었다.

 

하지만 비옥십팔호실에 끌려왔을 때는, 독고무령이 한 손으로 죽일 수 있을 만큼 피폐한 몸으로 변해 있었다.

 

독고무령은 그들을 고문했고, 결국 그들의 숨마저 끊어주었다. 최대한 고통 없이.

 

그리고 마침내, 봄기운이 만연한 삼월의 어느 날, 운명처럼 스무 번째 죄인이 비옥십팔호실에 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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