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4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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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45화
45화
황 표두, 나이 마흔둘의 황석조는 갑자기 쳐들어와서 질문하는 독고무령을 빤히 쳐다보았다.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연락이 있었는지, 그게 궁금하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걸 묻기 위해서 경비무사들을 때려눕히고 들어왔단 말인가?”
황석조가 기분 나쁜 것은 당연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독고무령은 그의 기분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왔습니까, 안 왔습니까?”
“내가 왜 그 말을…….”
황석조가 빈정거리며 입을 열 때였다.
쾅!
독고무령이 황석조 앞에 있는 탁자를 발로 걷어찼다.
탁자가 그대로 밀리며 황석조를 벽까지 밀어붙였다.
“컥!”
독고무령은 성큼 한 발을 내딛고는, 입을 쩍 벌리며 신음을 토하는 황석조의 멱살을 확 잡아당겼다.
“시간이 없어. 당신의 대답이 늦으면 늦은 만큼 사람들이 죽어갈 거야. 왔어, 안 왔어?”
“이…… 이놈……!”
“왔어, 안 왔어?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죽이고 다른 사람에게 알아볼까?”
황석조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흔들림 한 점 없는 독고무령의 눈을 보니 소름이 오싹 돋았다.
‘이자는 정말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
왈칵 겁이 난 황석조는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그, 그게…… 아직 아무도…… 연락을…….”
“연락 온 게 없단 말이지?”
“그렇다네.”
“지금쯤은 연락이 왔어야 하지 않나?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지?”
“조금…… 이상하긴…….”
“국주께 말씀드리지 않았나?”
“말씀드렸는데…….”
우당탕.
독고무령은 황석조를 밀치고는 몸을 돌렸다.
보고만 있던 석도명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제 이야기를 해줄 때가 되지 않았나?”
독고무령은 걸음을 옮기며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었다.
“와야 할 연락이 없다는 것은, 연락이 중간에서 끊겼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누군가가 연락을 끊었다는 건데, 그럴 만 한 자가 누구겠습니까?”
“그럼 제왕성의 무사들이……?”
“그들이 조양표국의 연락망을 끊은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야 행적을 숨기려고…….”
“제왕성이 철검보가 무서워 등을 보일 거라 보십니까?”
뜬금없는 질문에 막 표운각을 나서던 석도명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자들은 아니지.”
“철검보를 무서워하지 않는 자들이 행적을 숨겼다? 그 목적이 뭐겠습니까?”
석도명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독고무령이 빠르게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철검보를 무서워하지는 않지만, 불필요한 피해는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겠지요. 전쟁은 이제 시작이니까 말입니다.”
석도명은 독고무령의 말에서 불길한 냄새를 맡고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설마…… 그들이 정말 이곳을 공격할 거라 보는가?”
“저라면 그럴 겁니다. 최소한의 피해로 철검보의 정예를 단숨에 줄일 수 있는 좋은 기회니까요.”
석도명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서서히 머릿속에서 독고무령의 말이 한 줄로 이어졌다.
적의 연락망을 끊는다. 행적을 숨기고 접근한다. 그리고 공격.
상대는 제왕성, 철검보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 충분히 가능한 추측이다.
‘빌어먹을! 사실이라면…….’
바로 그때 독고무령의 신형이 위로 쑥 솟구쳤다.
석도명이 번쩍 고개를 듦과 동시, 독고무령의 무심한 목소리가 지붕 위에서 울렸다.
“생각보다 빨리 왔군요.”
“젠장!”
석도명은 즉시 자신들의 조원들이 묵고 있는 객방으로 달려갔다.
독고무령도 그대로 지붕을 넘어갔다.
‘눈보라만 아니었어도 조금 더 일찍 알아챘을 텐데…….’
제왕성의 기습은 완벽했다.
어둠이 세상을 뒤덮기 직전, 눈보라 속을 뚫고 달려와서 기습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눈보라보다 더 거센 혈풍이 조양표국의 담장을 넘은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맨 처음 순찰을 돌던 표국의 무사들이 제왕성 무사들의 검에 쓰러졌다.
“으아악!”
“적이다! 제왕성 놈들이 쳐들어왔다!”
비명이 터지고, 적이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 사이 제왕성 무사들은 외곽을 무너뜨리고 안쪽으로 진입했다.
“놈들을 막아라!”
“으악!”
“철검보 놈들이 쉬고 있는 곳을 쳐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해!”
“막는 놈은 다 죽여!”
제왕성 무사들의 도검은 냉정하고 무자비했다.
그들은 일말의 인정도 없이 닥치는 대로 상대의 목을 자르고 심장을 갈랐다.
표사든, 철검보의 무사든, 그들은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수십 명이 쓰러지며 반 뼘 정도 쌓여 있던 눈이 붉게 물들었다.
독고무령이 객방에 도착하자마자 제왕성 무사들이 밀려들었다.
기다렸다는 듯 철풍검대의 무사들이 방에서 쏟아져 나왔다.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던 듯 허둥대는 자는 보이지 않았다.
“무령!”
진사혁이 그를 발견하고 반갑게 소리쳤다.
독고무령은 고개만 한번 살짝 끄덕이고 검을 빼들었다.
건너편 건물에 있는 철환검대가 먼저 적의 공격을 받은 상황이다.
그들은 아무런 준비도 하고 있지 않았는지 우왕좌왕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반면 제왕성의 무사들은 개개인이 철검보의 무사들보다 강한 자들인데다, 사기마저 충천해 있었다.
잠깐 사이 이십여 명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하늘에서 붉은 눈이 내리는지 하얗던 바닥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비명과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 악에 받쳐 외쳐대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객방 일대를 뒤흔들었다.
그러나 철풍검대도 철환검대를 지원할 여력이 없었다.
제왕성의 무사들이 눈과 함께 철풍검대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침착하게 대응하라!”
구양손이 버럭 소리쳤다.
뒤이어 조장들이 조원들을 다그쳤다.
“흩어지지만 않으면 밀릴 것 없다!”
“물러서지 마라!”
그 사이 독고무령은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자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쾅!
굉음이 일며 떨어져 내리던 눈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동시에 공격자의 몸뚱이도 부러진 검과 함께 훌훌 날아갔다.
단 일격에 상대를 물리친 독고무령은 전면을 향해 검을 뻗었다. 무사 둘이 도를 휘두르며 달려들고 있었다.
독고무령의 검이 원을 그리며 휘돈 순간!
쩌정!
두 자루 도가 힘없이 튕겨지고, 달려들던 자들은 일그러진 얼굴로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설마 자신들의 도가 그리 쉽게 튕겨질 줄은 생각도 못한 듯했다.
“네놈은 누구냐?”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한 사람이 물었다.
독고무령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들을 향해 쇄도했다.
죽고 죽이는 상황. 대답할 시간이면 동료가, 수하가 죽어나가는 상황이었다.
단걸음에 일 장을 좁힌 독고무령의 검이 원을 그리며 두 사람을 휘어 감았다.
“헉!”
“물러서!”
독고무령의 검은 그들이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스걱!
질문을 던졌던 자의 목이 길게 갈라졌다. 그나마 다른 자는 재빨리 피해서 어깨만 그어지는 것으로 그쳤다.
“크윽!”
어깨에서 피를 뿌리며 물러서는 자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상대는 분명 철검오대의 대원일 뿐이다. 하거늘 자신들이 이토록 허무하게 당하다니.
‘말도 안 돼!’
그는 칼을 쥔 손에 힘을 주고 이를 악물었다.
순간이었다. 독고무령의 검이 다시 그를 향해 뻗어나갔다. 그러더니 그가 도를 들어 막을 새도 없이 그의 목을 꿰뚫어버렸다.
극쾌의 일 검. 뇌정일섬(雷霆一閃)이라는 초식이었다.
‘어, 어떻게 이런 검이……!’
독고무령은 공포에 질린 상대의 눈을 보며 검을 뽑았다.
삼불곡에서 뇌정십팔검과 섬전격이십사수, 무혼마류검의 장점만 섞어 칠초의 검식을 만들었다.
뇌정일섬은 그중 하나였다.
‘빠름은 좋은데 막상 뻗으면 힘이 제대로 안 실려. 좀 더 보완해야 할 것 같군.’
그때였다. 우측에서 중년인 하나가 노성을 터트리며 날아들었다.
“이놈!”
독고무령은 강력한 기운이 밀려들자 슬쩍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기운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날아든 자는 얼굴이 긴 중년인이었다. 그는 날아들자마자 독고무령을 향해 폭풍과 같은 기세로 달려들었다.
좀 전에 상대했던 자와는 그 기세부터가 다르다. 제왕성 무사들을 이끄는 수장 중 한 명인 듯하다.
독고무령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검을 들어올렸다.
독고무령이 세 명의 적을 물리치고 또 다른 적을 맞이한 사이, 철풍검대는 제왕성 무사들의 공격을 침착하게 막아냈다.
처음부터 싸울 준비를 하고 있던 터였다. 제왕성의 공격이 눈보라와 함께 거세게 몰아쳤지만 쉽사리 전열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특히 구조와 팔조는 조금도 밀리지 않았는데, 구조는 오히려 적을 압박하며 다른 조의 숨통까지 틔워주었다.
“어느 놈이든 와봐!”
그 중심에는 맨 앞에 서서 성난 사자처럼 곤을 휘두르는 진사혁이 있었다.
우르릉!
그가 곤을 휘두를 때마다 벽력음이 일었다. 그 기세가 어찌나 살벌한지 제왕성 무사들은 대항도 못하고 분분히 물러섰다.
이미 그의 곤에 널브러진 자만 둘. 아마 구양소현만 아니라면 좌충우돌하며 더 많은 적을 쓰러뜨렸을지도 몰랐다.
“우하하, 누님은 걱정 마쇼! 내가 지켜줄 테니까!”
그만이 적과의 싸움에서 유리한 것이 아니었다. 구조의 다른 조원들 역시 밀리지 않았다. 그들의 무위가 제왕성 무사들보다 위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의외의 일이었다.
더 의외의 일은, 가끔씩 제왕성 무사들이 그들에 의해 쓰러지는 상황까지도 나온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런 구조의 활약에 철풍검대 전체의 사기가 올라갔다.
비록 쓰러진 자가 십여 명이나 되었지만, 적도 그 이상 쓰러진 상태였다.
게다가 미친 듯이 설치는, 사잔지 곰인지 모를 진사혁으로 인해서 오히려 적이 흔들리고 있는 판국이었다.
사기가 오른 철풍검대원들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고 소리를 질러댔다.
“놈들을 쳐라! 철풍검대의 힘을 보여주자!”
“놈들도 별거 없다! 겁먹을 거 없어!”
와아아!
구양손도 힘이 불끈 솟았다.
기습한 적이 제왕성의 정예인 도혼단이라는 걸 알고 얼마나 놀랐던가.
솔직히 철풍검대는 도혼단의 상대가 아니었다. 백 명이 팔십여 명을 상대하고 있지만, 그래도 상대가 아닌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여차하면 후퇴명령을 내릴 생각을 했다. 무리하게 대적하다 수하들을 다 죽일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철풍검대가 도혼단을 상대로 밀리지 않는다.
산서의 패자 제왕성의 정예와 싸우는 데도!
그는 검을 휘두르며 목이 터져라 외쳤다.
“모두 힘을 내라! 우리가 이길 수 있다!”
바로 그때, 독고무령의 검이 도혼단의 좌호장 유충안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빠져나왔다.
전보다 더 강력해진 듯 보이는 뇌정일섬이었다.
“커억!”
유충안은 눈을 홉뜬 채 뒤로 천천히 넘어갔다.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악마…… 검…….’
독고무령은 오 초 만에 상대의 심장을 꿰뚫고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돌아서는 그의 입가에 싸늘한 냉소가 걸렸다.
두 번의 실전으로 뇌정일섬에 힘을 싣는 법을 깨달았다.
귀도는 실전이 최고의 수련법이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자신을 괴롭히기 위한 핑계처럼 들렸는데, 틀린 말이 아니었다.
‘잘 하면 이 기회에 몇 개는 숙달시킬 수 있겠군.’
유충안의 죽음으로 추가 기울기 시작했다.
구양손은 유충안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하기에 그가 죽자 힘이 불끈 솟구쳤다.
티끌만 한 힘마저 모조리 끌어올린 그는 도혼단의 우호장을 사정없이 몰아붙였다.
“이놈! 우리 철풍검대가 그리 만만해 보였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