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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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7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43화
43화
진사혁의 표정이 굳어졌다.
“설마 그 두 초식의 공격을 아무도 막아낼 수 없다는 말은 아니겠지?”
“두 초식이 아니라 네 초식이다, 사혁.”
“좌우간, 그 네 초식이면 무조건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다는 말이야?”
“비슷한 무위거나 약간의 차이가 나는 상대라면 충분해.”
비슷하거나 약간의 차이가 나는 상수를 단 네 초식으로 무너뜨릴 수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생사가 달라질 테니까.
조원들의 얼굴에 떠오른 기대감이 다시 짙어졌다.
“정말 그걸 익히면 상수를 이길 수 있단 말이오, 조장?”
조한상이 벌게진 얼굴로 물었다.
“대신 익히는데 힘이 많이 들 거요.”
한때 절정고수로 이름 높던 사람들의 성명절기를 합친 것이다. 당연히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류무사로 항상 목숨을 걱정하던 조원들에게 힘든 것쯤은 문제가 아니었다.
오기천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죽어라 익히죠, 뭐.”
용호종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내 목숨을 구해줄지 모르는데, 힘든 게 대숩니까?”
모덕명과 소강, 사도단영도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사혁마저 슬그머니 물었다.
“그거 나도 배울 수 있지?”
“자네는 조원 아닌가?”
“그건 그렇지. 하, 하, 하. 누님, 우리 함께 배워요.”
비록 육성에 불과해서 그렇지 철검보의 가전무공을 익힌 구양소현이다.
그녀는 사실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독고무령이 절정의 무공을 가르쳐줄 리 없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독고무령의 말을 듣고 나니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상수를 이길 수 있다지 않는가 말이다.
“나도 조원이잖아. 당연하지.”
의외라면 종리청이었다.
그가 망설이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 조장님. 저는 제가 가진 무공도 아직 다 익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말씀인데…… 저는 당분간 제 무공에 전념했으면 합니다.”
독고무령의 눈이 종리청을 향했다.
정확한 것을 알지 못할 뿐, 그는 종리청에게 말 못할 비밀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는 일정 수준에 이르지 못해서 그렇지 상승의 묘리가 담긴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은연중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도 매우 정심했다.
낭인무사는 지닐 수 없는 뭔가가 그에게 있는 것이다.
“그대가 원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감사합니다, 조장님.”
종리청을 제외한 나머지 구조 조원들은 하루 종일 구명절혼수 수련에 매달렸다.
심지어 진사혁마저 나흘째부터는 곤을 아예 침상 위에 올려놓고 구명절혼수만 익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도 처음에는 ‘그저 조금 강한 수법이겠지’하고 건성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사흘째 되던 날, 하마터면 조한상에게 맞을 뻔했다.
자존심도 상하고, 잘못하면 하수에게 맞을지도 모를 판이다. 그는 일단 구명절혼수를 제대로 알아놔야 당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익혔다.
생각이 바뀐 것은 하루가 지난 후였다.
막상 구결을 외우고 초식을 익히려 하자 쉽지가 않았다. 구명절혼수는 자신이 얕잡아볼 정도로 형편없는 수법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어떤 무공에도 뒤떨어지지 않는 상승묘리가 담겨 있었다.
일초에 여섯 개의 변식.
문제는 그 여섯 개의 변식이 언제든 또 다른 형태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말이 사초 이십사식이지, 그것은 단지 기본적인 골격일 뿐.
구명절혼수가 무서운 점은 바로 그 점이었다.
진사혁은 점점 구명절혼수의 묘리에 빠져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진사혁 같은 고수마저 구명절혼수에 몰두하는 것을 보고 더욱더 흥이 났다.
-진정한 고수가 될 수 있는 무공을 얻었다!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며 죽어라 수련에 몰두했다.
하루 종일 수련을 해도 지겹지가 않았다.
땀이 옷을 적셔도 힘들지 않았다.
밥 먹는 시간마저 아까울 지경이었다.
밤이 늦으면 방에 들어가서도 구명절혼수에 대한 것을 연구했다.
구명절혼수를 전력으로 수련한 지 한 달.
조원들의 전체적인 무위가 확연히 달라졌다. 상대의 약점을 보는 눈도 밝아졌고, 급소를 파고드는 순발력은 배 이상 정진되었다.
그럼에도 일반조원들은 구명절혼수의 진정한 위력을 알아보지 못했다.
오직 진사혁만이 구명절혼수의 무서움을 알아봤을 뿐.
그는 독고무령과 단둘이 있는 기회를 틈타 넌지시 자신이 느낀 점을 말했다.
“무령, 구명절혼수 말이야. 너무 무서운 수법 같아.”
독고무령이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솔직히 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네.”
사실이 그랬다.
그저 조원들의 목숨을 구해줄 구명초식을 만들면 족할 거라 생각했다. 자신이 만들고도 그런 정도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아니었다.
막상 오성 이상의 내력을 끌어올려 펼쳐보니, 펼친 자신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위력이 뿜어져 나왔다.
상수도 이길 수 있다는 말이 절정고수에게도 통할 지경인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알려줄 건가?”
“그럼 이제 와서 어쩌겠나?”
“하긴…….”
“좋은 쪽으로 생각해. 그만큼 조원들이 살아날 확률이 높아졌다고 말이야.”
“후우, 그건 그런데…… 잘못하면 마공으로 치부될지도 몰라서…….”
한 수 위의 고수마저 이길 수 있는 무공이다. 거기다 무기를 든 채 사용하면 치명적인 살상력마저 지녔다.
진사혁의 말대로 마공이라 불릴지도 모를 만큼 강한 무공. 그게 구명절혼수다.
하지만 독고무령은 그 일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건 상관없어. 생사가 걸린 싸움에서 자비는 사치일 뿐이니까.”
제7장 피바람은 불기 시작하고…… 지옥이 펼쳐져도 눈은 내린다
원단이 다 되도록 별 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전쟁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누그러졌다.
평화로운 나날이 계속되자, 무천련의 수뇌들은 제왕성이 봄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 같다는 예측들을 내놓았다.
산서의 삭풍 속에서 누가 싸우고 싶어 할까?
제왕성도 마찬가지 마음이겠지. 그들이라고 해서 눈보라를 헤치고 다니며 싸움을 하고 싶진 않겠지.
사람들은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하고 원단을 보냈다.
그러나 세상에는 때때로 사람들이 예측치 못한 일이 벌어지곤 했다.
거친 삭풍에 눈까지 섞여 날리던 어느 날.
한 필의 말이 날듯이 달려오더니 철검보의 정문을 쏜살같이 통과했다.
그리고 반 시진 후, 마침내 철풍검대에 작전명령이 떨어졌다.
더욱 거세진 삭풍이 절정에 달한 정월 중순 무렵이었다.
촤르륵.
지도를 펼친 구양손이 손으로 한곳을 짚었다. 태원에서 백 리가량 동쪽으로 떨어진 곳이었다.
“수양의 조양표국이 본보의 분타나 마찬가지인 곳이라는 걸 모르지 않을 것이다. 어제, 조양표국의 표사들이 태원을 갔다 오던 중 이곳에서 제왕성의 공격을 받았다.”
제왕성과 무천련의 세력은 태원을 경계로 해서 동서로 나누어진 상태다.
양대 세력이 그 상황에서 서로를 침범하지 않은 게 어느덧 십 년, 비록 비공식적인 경계라 하나 누구도 그 경계를 무시하지 않았다.
물론 아주 마찰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끔씩 국지적인 마찰이 있었을 뿐, 대대적으로 상대를 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제왕성의 무사들이 태원에서 백 리나 떨어진 조양표국의 표사들을 공격했다.
그것은 엄연한 침범이었다. 더구나 단순실수가 아닌 고의적인 일이라는 것이 더 문제였다.
구양손의 손끝을 바라보던 사람들 중 사십 전후로 보이는 중년인이 물었다.
“피해가 얼마나 된다고 합니까?”
각진 얼굴에 두툼한 입술. 강인한 인상을 지닌 그가 바로 철풍검대의 일조 조장인 적수등이었다.
“표사와 쟁자수 삼십여 명이 죽고 표물마저 빼앗겼다고 하네.”
구양손의 침중한 대답에 둘러서 있던 조장들이 해연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삼십여 명이 죽었다면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이조장인 마영조가 눈을 번들거리며 입술을 씹었다.
“놈들이 전쟁을 하기로 작정했나 보군요.”
그의 눈은 꼬리가 위로 올라가서 영락없이 뱀눈을 닮았는데, 성질도 그 눈만큼이나 날카롭다고 알려진 자였다.
“빌어먹을 새끼들, 하필 한겨울에…….”
“그걸 노린 것이겠지. 우리가 쉽게 움직이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말이야.”
“공노명이 꾸민 책략이겠지.”
조장들이 제왕성을 욕하며 구시렁거렸다.
공노명이라면 제왕성의 총군사다. 그의 교묘한 책략은 산서의 모든 패주들이 두려워했다.
그가 직접 나섰다면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했다.
적수등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저희만 가는 겁니까?”
구양손이 머리를 들고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본대와 철환검대가 함께 출동한다. 시간은 정오. 그때까지 준비하도록.”
구양손은 조장들을 내보내고 독고무령만 남겨두었다.
“어떻게 할 건가? 소현이도 함께 데려갈 건가?”
막상 전쟁터로 간다는 생각을 하자 구양소현이 걱정되는 듯했다.
독고무령은 간단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가지 않겠다면 데려가지 않을 것입니다. 단, 그때부터는 구조의 조원 또한 아니라고 봐야겠지요.”
“끄응…….”
구양손이 침음을 흘렸다. 구양소현이 어떤 대답을 할 것인지 묻지 않아도 뻔했다.
그는 구양소현이 왜 그러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썩을…… 하필 이런 무정한 친구를 좋아해서…….’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전쟁터로 내보낼 수도 없었다.
“내가 일단 그 녀석을 불러서 말을 건네 보겠네. 만일 그 아이가 가지 않겠다면, 대신 다른 사람을 채워주지.”
제발 그랬으면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는 걸 독고무령 역시 구양손만큼이나 잘 알았다.
“알겠습니다.”
당연히! 구양소현은 펄쩍 뛰었다.
“미쳤어요? 제가 지금까지 어떻게 지내왔는데 여기서 그만둬요?”
“이놈아, 죽을지도 모른다니까.”
“어차피 이판사판이라고요! 만일 못 가게 하면 도망쳐서라도 갈 테니까 그리 아세요!”
구양손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휴우, 정말 그놈이 그렇게 좋냐?”
구양소현이 움찔하며 목을 쏙 집어넣었다.
“무, 무슨 말이에요?”
“목숨을 걸 정도로 좋냐고. 그 무정한 놈이.”
구양소현의 고개가 슬며시 돌아갔다.
“그,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
“쯔쯔쯔,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나도 모르겠다. 휴우…….”
구양소현은 고개를 숙인 채 눈만 치켜뜨고 우물거렸다.
“숙부님은 너무 걱정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어휴……!”
* * *
끼이익!
철검보의 정문이 활짝 열렸다.
철환검대가 먼저 떠난 상황. 철풍검대는 반 시진의 간격을 두고 철검보를 출발했다.
일백의 무사들이 빠르게 움직이자 차가운 겨울바람조차 옆으로 비켜선다.
구조와 함께 뒤로 처진 독고무령은 찬바람을 묵묵히 가르며 걸음을 옮겼다.
전에 운양은 제왕성의 움직임이 단순하지 않다고 했다.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야욕을 드러낼지 모른다고도 했다.
그게 지금을 말하는 것일까?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자신이 지금 제왕성과 싸우기 위해 간다는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피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얀 눈이 붉게 변해 천지를 뒤덮을 때까지.’
독고무령은 무심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삭풍이 부는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너는 곧 나를 알게 될 것이다, 제왕성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