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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41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1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41화

 

41화

 

 

 

 

 

 

살짝 치켜 올라간 눈매. 붉은 입술 사이로 보이는 상아처럼 하얀 이.

 

진사혁은 짜릿한 느낌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하하하, 나는 무령이의 친구인 진사혁이라 합니다. 무령이가 낭자처럼 아름다운 분을 알고 있었다니, 생각도 못했던 일이군요. 좌우간 만나서 반갑습니다. 방명이 어떻게 되시는지…….”

 

‘어쭈? 이 곰이…….’

 

구양소현의 눈이 위아래로 빠르게 굴렀다.

 

그래도 아름답다는 말이 싫지는 않은지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말투는 그대로였지만.

 

“알아서 뭐하게?”

 

“하, 하. 하도 아름다워서…….”

 

“댁은 신경 꺼.”

 

‘나는 곰처럼 큰 사람은 별로니까.’

 

구양소현이 뭐라 해도 진사혁은 그녀와 말을 나누었다는 것만으로도 싱글벙글했다.

 

이름이야 독고무령에게 물어보면 될 것이 아닌가.

 

그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독고무령의 뒤를 따라갔다.

 

“하, 하. 그럼 저는 이만.”

 

 

 

반 시진 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독고무령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당연히 떠났을 줄 알았던 구양소현이 아직도 철풍검대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꽤나 끈질기군.’

 

반면에 진사혁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번졌다.

 

“하, 하, 하. 아직 안 가셨군요.”

 

구양소현이 앉아 있던 바위에서 일어났다.

 

“아니, 잠깐 나갔다 왔어.”

 

그녀는 독고무령과 진사혁이 구조의 무사들과 식사를 하러가자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일각 전에 다시 돌아왔다.

 

“왜 또 돌아온 거지?”

 

독고무령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물론 구양소현에게는 돌아온 이유가 확실하게 존재했다.

 

“숙부를 만나고 왔어.”

 

“구양 대협을?”

 

“그래. 그런데 내가 왜 숙부를 만났는지 알아?”

 

안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지. 

 

독고무령은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에 뒷목이 간지러웠다.

 

그때 구양소현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입을 열었다.

 

“철풍검대 구조에 사람이 모자라다는 말을 들었거든? 그래서 숙부를 만나 말했지. 나도 구조에 들겠다고 말이야.”

 

철검보주의 조카딸인 구양소현이 일개 검대의 조원이 되겠다고?

 

독고무령의 표정이 보일 듯 말듯 일그러졌다.

 

진사혁은 입을 떡 벌리며 좋아죽기 일보직전의 표정을 지었다. 

 

구조의 조원들은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표정으로 멍하니 구양소현을 바라보았다.

 

구양소현은 ‘왜? 할 말 있어?’하는 표정으로 턱을 치켜들었다.

 

끝내 독고무령이 싸늘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네가 왜 구조에 들어오겠다는 거지? 지금 장난을 하겠다는 거냐?”

 

“누가 장난으로 들어간데?”

 

“앞으로 목숨을 걸고 싸움터를 누벼야 한다는 걸 모르지는 않겠지?”

 

“흥! 나도 그쯤은 알아!”

 

“자칫하면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 너를 구해주지 못할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어. 그래도 상관없나?”

 

“상관없어. 나도 내 몸 하나 지킬 실력은 되니까.”

 

독고무령이 봐도 구양소현의 실력은 조원이 되기에 충분했다. 덤벙대는 성격이어서 그렇지 그녀의 실력은 조한상보다 오히려 위로 보일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달갑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너 하나 때문에 조원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는 일. 일단 대주를 만나보고 결정을 내리겠다.”

 

“흥! 흥! 흥! 마음대로!”

 

연달아 코웃음을 터트리는 구양소현을 보며 진사혁이 넌지시 말했다.

 

“어…… 무령, 그냥 받아들이면 안 될까?”

 

독고무령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무작정 받아들이기에는 위험이 너무 컸다.

 

구양소현의 안전이 걱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위험에 처하면, 분명 조원들이 어떻게든 구하려 할 것이다. 

 

척 보니 진사혁은 죽기 살기로 달려들 것 같고.

 

한 사람으로 인해 구조 전체의 분위기가 흐트러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끄응, 첫날부터 골칫덩이 때문에 일이 이상하게 흐르는군.’

 

 

 

구양손은 독고무령의 말을 듣더니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냥 받아주면 안 되겠나?”

 

뜻밖의 대답. 독고무령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대주…….”

 

“부탁이네.”

 

아무래도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는 듯하다. 독고무령은 구양손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유가 뭡니까?”

 

“그게…… 자네도 시간이 지나면 알겠지만, 소현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골치를 앓고 있다네. 워낙 천방지축이라서……. 더구나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누구 말도 듣지 않는다네. 그런데 자네라면 그 아이를 잘 다스릴 거 같거든.”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까, 구양손의 말인즉 아무도 못 말리는 망아지라서 자신에게 떠맡긴다는 뜻이 아닌가?

 

“대주, 그녀로 인해서 문제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그래도 보 전체에 문제가 생기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네.”

 

“대원들이 흔들리면 철풍검대를 강하게 만들려는 대주의 계획이 어긋날 수도 있습니다.”

 

“후우, 차라리 그게 낫지. 보 전체가 흔들리면 제왕성과의 싸움은 이미 물 건너간 셈이 아닌가?”

 

어떻게든 떠맡기겠다는 뜻인 것 같다.

 

철검보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봐야 하나?

 

제왕성과 대적할 수 있는 무천련의 세력이 아직 네 곳이나 남아 있다. 특히 일원궁이라면 전에 만났던 관조운이 있으니 들어가기가 쉬울 것이었다.

 

하지만 엉덩이에 뿔난 망아지 하나 때문에 오자마자 떠날 수도 없는 일.

 

독고무령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아예 강하게 나갔다.

 

“저는 그녀에게 절대 특별대우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거야말로 구양손이 바라던 바였다.

 

“그래서 맡기려는 것이지!”

 

“조원들과 똑같은 훈련을 시킬 것입니다. 그 와중에 다칠지도 모르지요.”

 

“상관없네.”

 

더 말할 것 없다는 듯 단호한 대답이다.

 

독고무령은 쓰디쓴 표정을 지으며 마지막 패를 꺼냈다.

 

“그래도 구양 소저의 부모는 원치 않을 것 아닙니까?”

 

그 말에 구양손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실, 소현이 일로 조금 전에 형님과 형수를 만나봤는데, 두 분이 나보다 더 원하더군. 제발 버릇 좀 고쳐 달라고 말이야. 뭐 죽거나 크게 다치는 것까지 바라지는 않겠지만서도…….”

 

 

 

구조의 거처로 돌아온 독고무령은 구양소현을 싸늘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명심해, 말썽 부리거나, 우리 조의 활동에 방해된다 싶으면 바로 돌려보낼 테니까.”

 

“걱정 마시지.”

 

“그리고, 일단 그 말투부터 고쳐. 고치기 싫으면 돌아가든지. 붙잡는 사람 없으니까.”

 

“그럽죠, 조, 장, 님!” 

 

그녀의 얼음조각 뚝뚝 떨어지는 대답이 나오자마자 진사혁이 환하게 웃었다.

 

“와하하하, 축하합니다, 구양 소저!”

 

구양소현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진사혁을 보며 생긋 웃었다.

 

“당신, 나이가 몇이지?”

 

“스물…… 셋인데요?”

 

“그래? 그럼 나보다 한 살 아래네? 동생이라고 불러도 되지?”

 

“…….”

 

 

 

* * *

 

 

 

구조에 마지막 한 사람이 보강된 것은 다음 날 오전 수련을 마친 조원들이 방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방문이 열리더니 커다란 목소리가 방을 뒤흔들었다.

 

“신입조원 종리청입니다!”

 

구조의 조원들은 일제히 방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종리청이라 이름을 밝힌 신입조원이 문밖에서 잔뜩 굳은 표정으로 어떤 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러잖아도 험상궂은 얼굴의 모덕명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

 

“자네가 우리 구조의 신입조원이란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자네, 아무데서나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나?”

 

“아닙니다!”

 

“그럼, 좀 목소리 좀 낮춰.”

 

“예? 예.”

 

그때까지도 종리청은 방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호리호리한 체구의 오기천이 가느다란 눈을 더욱 가늘게 뜨고 한소리 했다.

 

“뭐해? 빨리 들어오고 문 닫아.” 

 

종리청은 후다닥 안으로 들어와서 문을 닫았다.

 

“자네, 나이가 어떻게 되지?”

 

소강이 방 안으로 들어온 종리청을 바라보며 물었다.

 

종리청이 바짝 굳은 몸으로 대답했다.

 

“어제로 스물 되었습니다.”

 

그 말에 조한상이 한숨을 내쉬었다.

 

“스물이라……. 후우, 설마 자네도 엄청난 무공을 숨기고 있다든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

 

“예? 무슨 말씀이신지……?”

 

“아님 말고. 나, 조한상이네.”

 

“옙, 종리청입니다.”

 

그때 구양소현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종리청은 힐끔 주위를 둘러보고는 구양소현 앞으로 다가갔다. 꼭 ‘저 여자도 조원 맞습니까?’ 하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의외인 것은, 구양소현의 얼굴을 보고도 감탄한다든가, 하다못해 눈이 커지진다든가 하는 일반적인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구양소현이 희한하다는 듯 종리청을 보며 말했다.

 

“야 인마. 신입이면 신입답게 조장에게 먼저 인사를 해야 할 거 아냐?”

 

“어느 분인지 몰라서…….”

 

“자식, 척보고 알아봐야지. 그 정도 눈치도 없어서 어떻게 험한 강호에서 살아남겠냐?”

 

구조의 조원들은 대뜸 ‘인마’, ‘자식’하는 구양소현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구양소현이야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자, 골라봐. 이중에 누가 조장 같냐?

 

종리청은 재빨리 방 안을 둘러보았다.

 

나이로 보면 일단 세 사람이 꼽혔다. 그러나 강호에서는 나이로 신분을 따지지 않는다 하지 않던가?

 

그렇게 따지고 보니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진사혁과 용호종.

 

특히 진사혁은 나이가 어려보이긴 해도 내재된 기운이 자신의 숨을 막히게 할 정도였다. 

 

이런 곳에 저런 고수가 있다니!

 

그런데 그의 시선이 진사혁에게 꽂혔을 때다. 구양소현이 진사혁을 불렀다. 왠지 의도적으로 부른 듯했다.

 

“어이, 동생.”

 

“예, 누님.”

 

“쟤 좀 걱정되지 않아?”

 

“왜요? 괜찮아 보이는데요?”

 

진사혁의 눈에 종리청은 정말 괜찮은 조원으로 보였다. 

 

구양소현을 보고도 눈빛 하나 변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그리 흔하던가? 

 

그는 그 점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 사이 종리청은 용호종에게 시선을 돌렸다. 구양소현에게 누님이라 부르는 진사혁이 조장일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다 문득, 어깨를 부르르 떨며 이를 악물었다.

 

‘뭐, 뭐지?’

 

종리청은 천천히 눈을 돌려 구석진 곳에 있는 침상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이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자신보다 많아 봐야 서너 살 정도 더 먹은 자였다. 

 

얼굴은 남자인 자신이 봐도 감탄할 정도로 잘생겼고, 무심한 표정은 자신이 들어온 것을 아직도 모르는 것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상대의 어디에서도 강함을 느낄 수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곤혹스러웠다.

 

저자가 정말 자신의 어깨를 떨게 만든 자일까?

 

그가 자신의 느낌에 회의감을 가질 때 독고무령이 입을 열었다.

 

“나는 독고무령이라 하네.”

 

“아, 예. 저는 종리청입니다.”

 

“그만 다른 사람과 마저 인사를 나누고 빈자리에서 쉬게. 구양 조원의 말은 신경 쓰지 말고.”

 

구양소현이 입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쳇, 장난도 못하나? 무뚝뚝하기는…….”

 

그제야 진사혁도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하하, 나는 진사혁이네. 반갑군. 그리고 여기 이 누님은 구양소현이라는 분이지.”

 

종리청은 다급히 남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 와중에도 신경은 온통 독고무령에게 쏠린 상태였다. 조금 전의 느낌 때문이었다.

 

‘내가 잘못 알지 않았다면, 그것은 분명 무형지기였어.’

 

철검보의 대주도 아니고 일개 조장이 무형지기를 쏘아낼 정도의 절정고수다. 더구나 진사혁이라는 사람도 상당한 고수임이 분명해 보였고.

 

헷갈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철풍검대의 일개 조장이 절정고수라니!

 

나름대로 목적이 있어서 철검보에 몸을 담은 종리청은 자신이 선택을 잘 한 것인지조차 판단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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