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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35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0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35화

 

35화

 

 

 

 

 

 

* * *

 

 

 

태원으로 돌아온 독고무령은 운양을 만났다.

 

운양은 독고무령을 운가고서점의 내실로 안내하더니 잔뜩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갔던 일은 잘 되었소?”

 

“덕분에 어느 정도 소득이 있었소.”

 

음울한 표정.

 

독고무령을 바라보던 운양은 자신도 모르게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제왕성에는 왜 간 거요?”

 

“알아볼 게 있어서…… 노태릉을 만났소.”

 

독고무령은 운양보다 배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간단하게 설명하고는, 무저갱처럼 깊은 눈으로 운양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제왕성과 맞부딪칠 일이 자주 있을 것 같은데, 운 형의 도움이 많이 필요할 것 같소.”

 

운양이 눈을 치켜떴다.

 

노태릉을 만났다고? 제왕성과 자주 맞부딪칠 거라고? 

 

그 말인 즉 제왕성과 적이 될 거라는 뜻이 아닌가!

 

그런데 뭐? 자신더러 많이 도와달라고?

 

이자가 지금 제정신인가?

 

갑자기 뭔가 묵직한 것이 가슴을 누른다. 

 

불길한 느낌.

 

운양은 입을 꾹 닫았다. 그러고는 ‘안 돼! 그 일만은 절대 도와줄 수 없어!’, 그런 마음을 다졌다.

 

하지만 촌각도 안 되어 그의 마음이 다시 흔들렸다.

 

독고무령이 말했다.

 

“제왕성이 두렵다면 듣지 못한 걸로 해도 상관없소.”

 

‘아! 진짜!’

 

운양이 악다문 입을 열었다.

 

“누가…… 두렵다고 했소?”

 

“형제들을 염려하는 마음을 나도 아오. 내가 무리한 부탁을 한 것 같소. 너무 마음 쓰지 마시오.”

 

“아 글쎄! 그게 아니라니까!”

 

버럭, 한소리 내지른 운양의 이마에 땀이 배었다.

 

‘안 돼, 속을 긁는다고 넘어가면 안 돼!’, 머릿속에서는 계속 그 생각이 맴돌았다.

 

그런데도 정작 그의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킁, 나는 정보만 줄 수 있을 뿐이오. 물론 정당한 대가를 받고. 나머지는 당신이 알아서 해야 할 것이오.”

 

꼭, 독고무령의 눈빛에 눌려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남이야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젠장! 뭔 놈의 눈빛이…….’

 

독고무령은 이마를 잔뜩 찌푸린 운양을 보며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고맙소, 운 형.”

 

“고맙기는…… 단순히 거래를 하는 것뿐인데…….”

 

운양은 머쓱한 표정으로 대답하고는, 잠깐 망설이는가 싶더니 뜻밖의 제안을 했다.

 

“저기…… 그건 그렇고, 독고 형. 우리 나이도 비슷한 것 같고, 앞으로 정보를 거래하다보면 자주 만날 것 같은데, 그냥 친구처럼 지내면 어떻겠소? 그럼, 나도 부담이 덜할 것 같은데…….”

 

그냥 무턱대고 제안한 것이 아니었다.

 

친구처럼 지내면 기세에서 조금 눌려도 자존심이 덜 상할 것 아닌가? 

 

독고무령은 운양을 빤히 바라보았다.

 

친구라면 장소천이 유일했다. 친구가 한두 명쯤 더해진다고 해서 나쁘진 않을 듯했다. 

 

더구나 자신이 본 운양은 의외로 순진한 구석이 있는 사람. 친구처럼 지내도 될 것 같았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하지.”

 

운양은 독고무령이 곧바로 반말로 나오자 씩 웃으며 답했다. 그동안 쌓인 것을 다 털어내듯.

 

“나처럼 멋진 사람을 친구로 둔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 자넨 복 받은 거라고. 하, 하, 하.”

 

웃음을 터트린 운양은 다 식은 차를 입으로 가져가며 느긋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이제 어디로 갈 건가, 친구?”

 

독고무령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몇 가지 일을 보고나서 철검보로 갈 것이네. 연락할 일이 있으면 그곳으로 하게.”

 

철검보는 무천련의 다섯 세력 중 일원궁과 화천문에 이어 세 번째 정도로 봐야 했다.

 

운양은 독고무령이 철검보행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철검보로? 왜 하필 그곳인가? 무천련으로 가려면 차라리 일원궁이나 화천문이 낫지 않나?”

 

“철검보에 구양손이라는 사람이 있더군. 그가 마음에 들어서 그러네.”

 

“인의철검? 흠, 그자라면 믿을 만하지. 조금 엉뚱한 면도 있지만 사람 하나는 진국이니까.”

 

“자넨 어떻게 할 건가? 계속 이곳에 있을 건가?”

 

“이백 년을 넘게 살아온 터전을 버리고 내 어딜 가겠나?”

 

“위험할지 모르네. 마인걸도 그렇지만, 지금쯤 노태릉이 움직이기 시작했을 것이네.”

 

“훗, 걱정 말게. 내 비록 자네에게는 무시당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훨씬 무서운 사람이거든.”

 

“그렇다면 다행이군.”

 

독고무령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운양은 단순한 고서점 주인이 아니었다. 밀호방이라는 것도 운양이라는 나무에서 뻗은 가지 중 하나일 가능성이 컸다.

 

독고무령은 그리 짐작하고도 운양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것을 다 알려주지 않은 것처럼 운양도 숨기고 싶은 것이 있을 테니까.

 

‘언젠가는 서로의 비밀을 모두 털어놓을 때가 있겠지.’

 

그때까지는 지금 이대로가 편했다.

 

 

 

독고무령은 그 후로도 운양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일각 정도 더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가봐야겠네. 두어 군데 가볼 곳이 있거든.”

 

“좌우간, 자네가 부탁한 것은 내 최대한 알아보지. 아마 오백 냥의 비용이 아깝지 않을 것이야. 하, 하.”

 

독고무령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가 되기로 했어도 일을 공짜로 해줄 수는 없다며 비용을 요구했다. 무려 오백 냥을. 돈이 오가야 우정이 쌓인다나?

 

독고무령은 선뜻 돈을 주었다. 운양은 아랫사람을 부리는 사람. 그들을 부리려면 돈이 필요할 테니까.

 

“부탁하네.”

 

“계속 철검보에 있을 생각은 아니겠지?”

 

독고무령의 눈이 운양을 직시했다.

 

“당분간은 그곳에 있을 거네.”

 

“하긴 제왕성과 무천련이 본격적으로 싸울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 판이니……. 쩝, 나만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니게 생겼군.”

 

“그거야 돈 받은 사람이 알아서 해야지.”

 

“끄응, 어째 일을 잘못 맡은 기분이군.”

 

“우는 소리 말고, 근처에 대장간 괜찮은 곳 있으면 좀 알려주게.”

 

그 말에 운양이 눈을 치켜떴다.

 

“대장간? 그야 많지. 왜, 검을 손보려고?”

 

장가철방으로 가면 간단하다. 가면 반겨줄 사람도 있고, 누구보다 자신이 가고 싶었다.

 

하지만…… 가서는 안 된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독고무령은 옆구리의 검을 가만히 쓸어 만지며 나직이 대답했다.

 

“날을 좀 세워야 할 것 같아서.”

 

단지 날을 세운다는 말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운양은 등골이 으스스 떨렸다.

 

‘어흐, 벌써 삭풍이 부는 것 같군.’

 

 

 

* * *

 

 

 

휘이이잉.

 

겨울이 다가오는지 삭풍이 거친 황야를 휩쓸고 태원부를 휘감았다.

 

태원부를 벗어난 독고무령은 찬바람을 가슴에 안고 북쪽으로 올라갔다.

 

자신이 날을 세우려 한다고 하자 운양이 한곳을 알려주었다. 태원부 북쪽 이십 리 위쪽에 있는 화진촌의 진가철방이라는 곳이었다. 그도 예전에 철 노인에게 들은 적이 있는 곳.

 

‘산서제일, 아니 천하제일의 철방이라 했지.’

 

운양이 진가철방을 알려준 것은, 철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진사혁이라고, 철방 주인의 아들이 내 친구네. 한번 만나보게. 마음에 들 거야.”

 

 

 

운양처럼 자신을 숨기고 사는 사람이 친구로 사귈 정도면 평범한 사람은 아닐 듯했다.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진사혁, 그는 어떤 사람일까?

 

 

 

태원부를 벗어나 빠르게 걸은 지 이 각.

 

와우령(臥牛嶺)이라는 고개를 넘자 진가철방이 보였다.

 

화진촌의 반쪽을 차지하고 있는 진가철방은 단순한 대장간이 아니었다. 군과 관에 납품을 넣고, 산서 각지에 농기구를 만들어 파는 대규모 철방이었다.

 

의외라면, 그들은 절대 강호의 문파에 무기납품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지난 백수십 년 간 그 율법은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제왕성과 무천련의 다섯 세력조차 진가철방의 무기를 살 수 없었다.

 

어찌 보면 상당히 오만한 태도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진가철방을 건드리지 못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진가철방이 군과 관의 보호를 받기 때문이었다.

 

진가의 형제들 중 군과 관에 투신한 사람만도 십여 명이나 되었다. 그들 모두가 천부장급 이상의 장수들이거나, 관에서 상당히 높은 지위에 올라 있었다. 

 

강호의 세력이 건들기에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진가철방의 뒤에 드리워진 거대한 그림자 때문이었다.

 

신화처럼 전해지는 절대자. 백수십 년 전 강남대전(江南大戰)을 승리로 이끈 신협(神俠) 진고영. 절대무제(絶對武帝)라 칭해진 그가 강호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은거한 철방이 바로 진가철방이었던 것이다.

 

당연하게도 신협의 핏줄이 대대로 이어진 진가철방의 무력은 여느 대문파 못지않게 강했다.

 

강호의 고수들치고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오죽하면 제왕성과 무천련 역시 자파의 수하들이 진가철방을 건드릴까봐 조심스러워했다.

 

‘재미있군. 제왕성조차 어쩔 수 없는 철방이라니.’

 

독고무령은 진가철방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떠올리며 와우령을 내려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진가철방의 규모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장가장의 철방도 작지 않은데, 그곳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컸다. 

 

게다가 안쪽의 장원까지 합한 규모는 장가장 전체보다 서너 배는 될 듯했다.

 

땅, 따당, 땅, 따당, 땅…….

 

안쪽에서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귀청을 울리며 흘러나왔다. 수십 명이 두드리는데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장단이 맞았다.

 

“좋군.”

 

독고무령은 쇠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정문을 통과했다.

 

“무슨 일로 오셨소.”

 

그가 통과하자마자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한 사람이 다가왔다.

 

독고무령은 그에게 한 사람의 이름을 말했다.

 

“진사혁이란 분을 만나러 왔소만.”

 

“사혁 도련님을?”

 

장한은 의외라는 표정을 짓고는 슬쩍 고갯짓을 했다.

 

“이리 따라오시오.”

 

 

 

장한은 독고무령을 한쪽에 있는 객방으로 안내했다.

 

독고무령은 객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당에 서서 진가철방을 구경했다.

 

장한은 독고무령이 그러거나 말거나, 안에다 알린다며 떠나갔다.

 

객방 앞마당은 조용했다. 사람들이 번잡하게 오가지도 않았고, 간혹 오가는 사람들도 자신들 일에만 열중했다.

 

독고무령은 눈을 반쯤 감고 쇠 두들기는 소리에 정신을 집중했다.

 

맑은 쇳소리가 귀청을 기분 좋게 울렸다. 

 

장가철방에서 들었던 소리와는 느낌이 미묘하게 달랐다.

 

장가철방의 쇠 두들기는 소리는 단순했다. 그저 규칙적으로 쇠를 두들긴다고 할까?

 

그런데 진가철방의 쇠 두들기는 소리에는 어떤 흐름이 있었다. 듣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는 기묘한 흐름이.

 

특히 독고무령은 객방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독립된 철방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곳에서 나는 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곳의 작은 소리가 모든 흐름을 주도하고 있었다.

 

독고무령은 그 흐름에 몸을 맡기고 가만히 서서 쇠 두들기는 소리를 음미했다.

 

땅, 따당, 탕, 탕, 따당…….

 

귀청을 울리던 소리가 시간이 지나면서 가슴까지 울렸다.

 

그렇게 얼마가 지나자 몸마저 그 소리의 흐름에 젖어들었다. 독고무령은 아예 눈을 완전히 감고 그 소리의 흐름에 모든 것을 맡겼다.

 

가만히 서 있는 데도 몸에서 은근히 땀이 배어나오는 듯했다. 솜털이 올올이 곤두서고, 잠들어 있는 신경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듯했다.

 

탕! 탕! 탕!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 몸이 공명통(共鳴筒)이라도 된 것처럼 울리기 시작했다.

 

텅! 텅! 텅!

 

온몸이 산산이 부서진 후 다시 뭉치는 기분!

 

고통은 없었다. 오히려 머릿속이 환하게 밝아졌다.

 

독고무령은 자신도 모르게 태천일심법을 운용했다.

 

중단전에 웅크리고 있던 자그마한 덩어리가 몸의 울림에 맞춰 떨렸다.

 

내가, 내가 아닌 것 같고, 모든 것이 공명(空冥)의 세상처럼 텅 빈 느낌.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바닥에서 몸이 한 치쯤 떠올랐다.

 

그때였다. 한 줄기 기운이 그를 향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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