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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31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3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31화

 

31화

 

 

 

 

 

 

“고 형, 저 양반들 상대하지 마시구려. 아주 치사한 양반들이오. 대동에 있을 때만 해도 안 그랬는데, 이곳에 오더니 동생을 지나가는 똥개 취급하지 뭐요.”

 

네 사람은 청운의 꿈을 품고 대동에서 함께 온 자들인가 보다.

 

“나는 동생을 똥개 취급하는 사람도 별로라고 생각하지만, 고자질하는 사람도 좋아하지 않소.”

 

“그게…….”

 

유원위가 반쯤 입을 벌리고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연사성과 조원화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 와중에 석도경은 묘한 눈빛으로 독고무령을 바라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데, 그게 뭔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잘 단련된 몸을 빼면 특별한 게 없어 보인다. 그런데 왜 저자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무거워지는 것이지?’

 

그와 느끼는 바는 다르지만, 독고무령도 의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낭인무사들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다. 낭인무사라 하기에는 지닌 기운이 너무 강하다. 자신이 정확히 봤다면 넷 다 일류고수의 수준이다.

 

특히 석도경. 그는 능히 일류 중의 일류고수로 부족함이 없는 자다.

 

제왕성의 정예무사로 당장 편입되어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들.

 

이상한 것은 바로 그 점이었다.

 

자신들의 실력을 드러냈다면 곧바로 제왕성의 눈에 뜨였을 터. 그런데 그러질 않고 일반무사들이 머무는 무객당에 머물고 있다.

 

왜?

 

‘사연이 있나 보군.’

 

독고무령은 일단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라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출세하러 왔다면,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고 싶어 하는 게 인간의 당연한 욕망이 아닌가.

 

 

 

* * *

 

 

 

오정이 독고무령을 찾아온 것은 근 한 시진이 지나서였다.

 

무객당에 딸려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잠시 누워있는데 문이 열리고 오정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고 공자.”

 

석도경을 비롯한 네 사람이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오정이 ‘공자’라는 호칭을 붙인 것이 의외인 듯했다.

 

독고무령은 침상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때까지도 네 사람의 눈길은 독고무령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텅.

 

독고무령이 나가고 문이 닫히자 유원위가 석도경을 쳐다보았다. 지금까지와 다르게 장난기가 거의 보이지 않는 표정이었다.

 

“뭐하는 놈일까요?”

 

“뭐하는 놈인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석도경은 방문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처럼 제왕성의 무사가 되기 위해 온 자는 아니라는 것.”

 

“그럼, 왜 이곳에 왔죠? 혹시 우리를 의심하는 것은 아닐까요?”

 

조원화의 물음에 석도경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독고무령의 침상에 남겨진 봇짐으로 향했다.

 

“두고 보면 알겠지.”

 

봇짐을 놓고 갔다는 것은 다시 돌아온다는 말이니까.

 

 

 

* * *

 

 

 

가산을 두 개 지나고, 십여 채의 커다란 건물을 지난 후, 일 장 높이의 담장에 난 월동문에 이르자 오정이 걸음을 멈췄다.

 

“여기서부터는 다른 분이 안내해줄 것이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월동문 안쪽에서 한 사람이 나왔다.

 

“나를 따라오시오.”

 

차가운 목소리, 예리한 눈빛을 지닌 서른 전후의 무사였다. 기도로 봐서 단순한 경비무사는 아닌 듯했다.

 

독고무령은 잠시 안을 바라보고 월동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가자 무사가 몸을 돌렸다.

 

독고무령이 무사의 등에 대고 말했다.

 

“그를 죽이지 마시오. 내가 원했다고 하면 당신의 주인도 뭐라 하지 않을 거요.”

 

무사가 움찔했다. 그는 이마를 두어 번 찡그리더니 허공에 대고 말했다.

 

“들었지? 일단 놔둬라.”

 

밖에 있던 오정은 월동문이 닫힌 후에야 상황을 깨달았다.

 

자신이 저승에 다녀왔다는 걸.

 

 

 

* * *

 

 

 

집법전의 건물은 거대했다.

 

산서 무림의 패자, 제왕성의 법을 집행하는 곳이다. 다시 말해 산서 무림의 법을 집행한다는 말이다.

 

삼 층 대전각은 길이가 이십여 장이나 되었고, 거기에서 뻗어나간 건물만도 네 개나 되었다.

 

독고무령이 들어간 월동문은 바로 그 대전각의 뒤쪽에 나 있는 것이었다.

 

무사는 독고무령을 집법전 대전각의 뒷문으로 안내했다.

 

독고무령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무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기다랗게 뻗은 회랑이 눈에 들어왔다.

 

‘열둘.’

 

회랑에 열두 명의 비밀호위들이 잠복해 있다.

 

상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오늘만 그런 것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어떠한 일이 벌어질 경우 이들을 처리해야만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독고무령은 무심한 표정을 지은 채 무사를 따라 회랑을 걸었다. 무사가 걸음을 멈춘 곳은 회랑 중간에 나 있는 방문 앞에서였다.

 

“모셔왔습니다, 전주.”

 

덜컹.

 

대답 대신 문이 열렸다.

 

칼날 같은 눈빛을 번뜩이는 두 명의 중년 무사가 문 바로 안쪽에 서 있었다. 그리고 저 안쪽에는,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은 노인이 대황초 불빛 아래서 책을 보고 있었다.

 

“들어가시오.”

 

무사가 말했다.

 

독고무령은 성큼 걸음을 옮겨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간 순간, 두 중년무사 중 매부리코의 중년인이 우수를 뻗었다. 그야말로 번개와 같은 출수였다.

 

쉬익!

 

독고무령은 앞으로 내딛던 발을 뒤로 슬쩍 빼며 몸의 중심까지 이동했다.

 

찰나, 중년인의 우수가 세 치의 간격을 두고 코앞을 스쳐갔다.

 

언뜻 보면 별것 아닌 듯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두 중년인은 물론 노인마저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독고무령의 중심 이동이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아는 까닭이다.

 

“제법이군. 한수 있다는 건가?”

 

손을 뻗었던 중년인이 피식 웃으며 뇌까린다.

 

독고무령은 무심한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한 번 더 그러면, 당신 죽어.”

 

중년인의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일렁였다.

 

“이런 건방진 놈이……!”

 

그때 안쪽에 앉아 있던 노인이 말문을 열었다.

 

“그만 나가 있게나.”

 

중년인은 차마 더 손을 쓰지 못하고 독고무령을 노려보았다.

 

“오래 살고 싶으면 주둥이 조심해라, 애송이.”

 

하지만 독고무령은 그에게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고 노인만 바라보았다.

 

매부리코의 중년인은 이를 악물고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다른 중년인도 흥이 인 눈빛으로 독고무령을 바라보며 뒤따라 나갔다.

 

그리고 텅, 방문이 닫혔다.

 

“이리 와 앉지.”

 

노인이 보고 있던 책을 덮고는, 손을 들어 방 가운데 있는 탁자를 가리켰다.

 

탁자 앞으로 간 독고무령은 머뭇거리지 않고 의자를 하나 빼내 앉았다.

 

노인, 노태릉이 묘한 눈빛으로 독고무령을 쳐다보았다.

 

“자넨 이곳이 어딘지 아나?”

 

독고무령은 그가 묻는 이유를 알기에 담담히 대답했다.

 

“죽음이 두려웠다면 오지 않았을 것이오.”

 

“호오, 대단한 자신감이군. 역시 젊음은 좋은 거야.”

 

“젊음만으로 이곳에 온 것이 아니오. 귀하도 곧 그것을 알게 될 거요.”

 

“잡아서 고문을 할지도 모르는데, 그것도 견딜 자신이 있나?”

 

고문이라고?

 

독고무령의 입꼬리가 살짝 비틀렸다. 가소롭다는 듯.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하지요. 별로 재미도 없으니까.”

 

두려워하기는커녕 조소에 가까운 표정을 짓는 독고무령을 보고 노태릉은 가슴 속에서 뭔가가 울컥했다.

 

‘저 건방진 놈이!’

 

하지만 이제 와서 화를 내봐야 신경전에서 패배를 인정하는 꼴. 그는 화를 꾹 눌러 참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좋아, 원한다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그 전에 주위 사람을 물려주시오. 귀하에게도 그게 나을 것 같소만.”

 

차갑게 가라앉은 노태릉의 눈빛이 찰나 간 흔들렸다.

 

그러나 자신이 누군가. 제왕성의 집법전주이자 무위의 강함만으로도 제왕성 내에서 적수가 열 명 안쪽이라는 초절정고수가 아닌가.

 

반면에 눈앞에 있는 놈은 아직 철모르는 애송이다. 비록 자신의 수신쌍위 중 한 사람의 공격을 피해냈다지만,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는 곧, 설마 자신이 눈앞의 애송이에게 당하겠나? 하는 마음에 흔쾌히 독고무령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도 그렇군. 모두 물러가 있어라.”

 

노태릉의 명이 떨어진 순간, 사방에서 네 줄기 기척이 멀어졌다. 그제야 독고무령은 자신의 허리에서 검을 빼내 한쪽에 내려놓았다.

 

노태릉은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풀어놓을 필요 없네만…….”

 

“그냥 내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오.”

 

당신과 싸우러 온 게 아니다, 그 말이다.

 

노태릉은 피식 웃으며 본론을 꺼냈다.

 

“자네 마음이 그렇다면 내가 뭐라 하겠나. 그래, 얼마나 알고 있나?”

 

“전부. 전옥이란 여덟 살짜리 여자아이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 아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모두 다.”

 

노태릉의 얼굴 근육이 꿈틀거렸다.

 

전옥에 대한 이야기. 그것은 자신의 치부 중 치부였다. 사실이 알려지면 집법전주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강호에서 얼굴을 들고 살아갈 수 없을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을 빼고 세상에 오직 세 사람뿐.

 

그런데 눈앞에 있는 고령이라는 놈은 그 세 사람 중 하나가 아니다.

 

누군가가 비밀을 발설했다는 말.

 

‘어떤 죽일 놈이!’

 

그러나 누가 발설했는가 하는 것은 당장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또 한 사람이 그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냥 죽여 버릴까? 

 

그럴 수도 없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들어왔을 때는 그만한 조치를 해놓고 왔을 터. 죽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빌어먹을!

 

노태릉은 독고무령을 똑바로 노려보며 직설적으로 물었다.

 

“나를 찾아온 목적이 뭐지? 뭘 원하는 것이지? 돈인가? 얼마를 원하는 거지?”

 

독고무령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다.

 

“당신을 곤란하게 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두어 가지만 물어보겠소. 그것만 대답해준다면, 전옥에 대한 일을 내 머릿속에서 지울 것이오.”

 

생각지도 못한 요구에 노태릉의 눈이 가늘어졌다.

 

“두어 가지 질문이라……. 어디 말해보게.”

 

독고무령은 무저갱의 어둠처럼 깊은 눈으로 노태릉을 직시했다. 

 

알고 싶은 모든 걸 세세하게 물을 수는 없다. 노태릉이 자신의 신분을 의심할지도 모르니까.

 

그는 한 사람에 대해 물어보는 것으로 모든 질문을 대신했다.

 

“지옥타배 독고헌이 제왕성에 있었다 들었소. 그에 대해 귀하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해주시오.”

 

노태릉의 눈이 조금 커졌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 노회한 그조차 잠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가 왜 그를……?”

 

“모른다는 말은 하지 마시오. 나도 비옥에 대한 것을 알 만큼은 아니까.”

 

하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독고헌에 대해 아는 놈이다. 비옥에 대해 안다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더구나 독고헌은 이미 죽은 자. 말해준다고 해서 자신에게 손해 갈 것이 뭐 있을까?

 

그렇게 생각한 노태릉은 식어버린 차로 입술을 축이고 입을 열었다.

 

“흐음……. 좋아, 말해주지. 이십오 년 전, 동창에 쫓기던 그를 본성에서 몰래 빼돌렸다네. 그의 고문술이 필요했거든. 그 후로 그는 비옥을 맡아 죄수들을 고문하며 아들과 함께 살아갔지. 그리고 어느 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네.”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노태릉은 독고헌이 누구를 고문했는지, 그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독고무령도 그 일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다. 이미 자신이 다 알고 있으니까.

 

다만 꼭 한 가지만큼은 반드시 알아야 했다.

 

“아들이 있다면, 혼인을 했다는 말이오?”

 

그 질문에 노태릉이 코웃음을 쳤다.

 

“흥! 비옥에 사는 꼽추 놈이 혼인은 무슨?”

 

가슴 깊은 곳에서 불길이 솟구쳤다.

 

감히 아버지를 모욕하다니!

 

독고무령은 이를 악물고 분노의 불길을 억눌렀다. 아직 들어야 할 말이 있었다.

 

“그럼…… 어떻게 그에게 아들이 있단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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