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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66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3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66화

 

66화

 

 

 

 

 

 

남자가 춤을 춘다.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손에서 천지를 아우르는 강력한 힘이 느껴진다.

 

모두 아홉 개의 춤.

 

그 춤사위는 그가 언젠가 본 것이었다. 

 

한 번 보고 다시는 떠올릴 수 없었던 바로 그 춤사위.

 

수천제마 구겁무라 했던가?

 

전율에 온몸이 떨렸다. 

 

손짓 하나하나에 천지조화의 힘이 담겨 있었다.

 

단순하게 손을 뻗은 것뿐인데도 천변만화(千變萬化)가 일어나는 듯했다.

 

하지만 그 많은 변화도 결국은 단순한 동작 하나로 귀결되었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가.

 

단순한 동작이 진체인가, 천변만화가 진체인가.

 

고오오오오…….

 

춤이 이어지면서 세상천지가 천천히 휘돈다. 그릇 속의 빛도 고요함을 잃고 소용돌이처럼 휘돈다.

 

남자가 춤을 추며 손짓을 한 번 할 때마다 자신이 얻었다 자부한 모든 것이 산산조각으로 깨어져 나간다.

 

그야말로 극한의 절대 지력이다!

 

아아아아! 이제야 알겠다.

 

저 춤은 머리로 풀어서 출 수 있는 춤이 아니다. 의념(意念)이 스스로 움직일 정도의 경지가 되지 않으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절대의 춤이다.

 

그걸 이제야 알다니!

 

문득 춤을 추는 남자가 고요히 웃는 듯하다.

 

‘왜 당신은 웃는 것입니까?’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마지막 춤을 추며 조용히 스러졌다.

 

“으음…….”

 

독고무령은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정신을 차렸다.

 

떨리는 그의 눈꺼풀 사이로 찬란한 태양빛이 쏟아졌다.

 

그는 다시 눈을 감고 조금 전에 본 것을 떠올려봤다. 남자가 춤 추던 모습을.

 

그러나 일각도 지나지 않아서 탄식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이런……!”

 

빌어먹을 일이다.

 

조금 전만 해도 선명했다. 그런데 왜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단 말인가?

 

펼칠 수는 없다 해도 동작 정도는 기억할 수 있어야 하거늘.

 

자신에게 이어질 인연이 아닌 걸까?

 

독고무령은 멍하니 앞을 보며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후우우, 태천일심법도 이제 겨우 반밖에 익히지 못한 놈이 욕심은…….”

 

아쉽긴 하나 얻을 수 없는 것에 정력을 쏟아내기에는 할일이 너무 많았다.

 

그는 일단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공력은 대부분 회복된 상태였다. 내상을 입은 것도 움직임에 거의 지장이 없을 정도고.

 

예상보다 훨씬 빠른 회복. 

 

게다가 태천일심의 기운이 조금 더 커진 것처럼 느껴진다.

 

‘조금 전에 느꼈던 기분과 상관있는 것이 아닐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때만큼은 세상의 모든 것과 하나가 된 것만 같았으니까.

 

어쨌든 다행이었다. 내심 우려했는데 시간 안에 서연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몸을 일으킨 독고무령은 옆에 놓아둔 검을 들고 동굴 밖으로 나섰다.

 

자신이 몸을 숨기고 운공을 한 곳은 절벽 중간에 위치한 동굴 속이었다.

 

동굴은 위에서도, 아래서도 보이지 않았다.

 

암향호접무를 펼치며 바람을 타고 옆으로 흐르지 않았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만큼 입구가 교묘하게 가려져 있었다. 

 

‘부지런히 가야겠군.’

 

그는 삼십여 장 높이의 절벽에서 밑으로 뛰어내렸다.

 

 

 

* * *

 

 

 

독고무령이 동굴을 벗어나던 그 시각.

 

대풍장에 한 가지 소식이 긴급으로 전해졌다.

 

“뭐야? 백마방의 주력이 암습을 당해?”

 

두이정은 대경하며 자세한 상황을 물었다.

 

“어떻게 된 건가? 주력에 백마방의 최정예들이 모두 모여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좀 더 자세히 말해보게! 피해가 얼마나 되나?”

 

“순찰조의 보고에 의하면, 근 반수 가까이가 죽음을 당하고, 남은 사람들도 부상이 심하다 합니다, 태상.”

 

일원궁의 순찰당인 조원당(調垣堂)의 당주 호중삼이 굳은 표정으로 보고를 올렸다.

 

두이정은 미간을 꿈틀거리며 짜증을 냈다.

 

“제기랄! 서문도, 그 애송이의 말을 믿는 게 아니었거늘……!”

 

전날, 백마방의 전초대가 당했다는 보고를 받고 일백 정예무사들을 파견했다. 

 

본래는 백마방의 주력을 지원할 목적으로 보냈는데, 백마방의 이진을 호위한 채 서연 분타로 돌아왔다.

 

그들이 도착한 시간은 밤이 깊어진 해시 초.

 

밤이 깊어 재차 지원무사를 보내기가 어정쩡한 상황.

 

두이정은 일단 서문도에게 백마방 주력의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서문도가 자신 있게 말했다. 

 

 

 

“주력에 백마방의 최정예들이 모두 모여 있는데 놈들이 미치지 않은 이상 주력을 치겠습니까? 하하, 걱정 마십시오. 저희도 아무 일 없었잖습니까?”

 

 

 

두이정 자신이 생각해도 그럴 듯했다. 서문도와 요극한이 이끄는 이진도 공격하지 않았는데 주력을 공격하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더 이상 지원무사를 파견하지 않았거늘, 일이 이 지경으로 흐를 줄이야!

 

‘썩을 놈! 자존심만 살아서…….’

 

문제는 

 

두이정은 다급히 명령을 내렸다. 

 

“즉시 사람들을 보내서 다른 곳의 상황도 알아봐라!”

 

“예, 태상!”

 

 

 

오십여 명의 순찰조가 즉시 대풍장을 나서서 남쪽으로 달렸다. 일부는 철검보가 오는 길로, 일부는 전궁산장과 화천문이 오는 길로.

 

그렇게 순찰조가 떠난 지 두 시진가량이 지났을 무렵, 백마방의 주력이 대풍장에 도착했다.

 

눈에 보이는 상황은 보고받은 것과 차이가 없었다.

 

이백이 넘었던 인원은 백여 명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많은 사람이 부상을 입은 상태였고, 성한 자도 모두가 피로에 지친 표정이었다.

 

백마방의 장주인 서문태강은 두이정을 만나자 이를 갈았다.

 

“놈들은 우리가 계곡을 지날 때 앞뒤에서 기습했소. 우리는 피해를 불사하고 계곡을 벗어나는데 최선을 다했다오. 그렇게 겨우 계곡을 벗어나서 반격하려는데, 놈들이 갑자기 퇴각해버리는 게 아니겠소? 비겁한 놈들! 그런 놈들이 산서의 패주라고? 흥!”

 

코웃음 치는 서문태강의 두 눈에서 싸늘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허어, 그야말로 무사의 도리도 모르는 놈들이구려.”

 

두이정이 제왕성을 욕하며 서문태강의 비위를 맞춰주었다.

 

그러나 관초악은 결코 제왕성을 비겁하다 욕하지 않았다. 욕은커녕 오히려 눈빛이 침중하게 가라앉았다.

 

몰살이 목적이 아니라 힘을 빼는 것이 목적이라는 말.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철저히 승리의 길을 걷겠다는 것.

 

전쟁은 이기는 자가 선이다. 저들은 그것을 알고 그대로 행하고 있다. 무사의 도리라는 것은 전쟁을 이긴 후에 찾아도 된다는 듯.

 

그걸 알기에 관초악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대현의 총단에 연락은 하셨습니까?”

 

관초악의 질문에 서문태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했네. 곧 이백의 무사들이 더 올 것이네. 내 이놈들과 아주 끝장을 보고 말 것이야!”

 

그러더니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관초악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그댄 누군가?”

 

“관초악이라 합니다. 일원궁주께서 저의 형님이 되시지요.”

 

서문태강은 의아했지만, 더 깊은 것을 물을 정신이 없었다.

 

“그건 그렇고, 두 대협. 다른 곳의 상황은 알아보았소?”

 

“좀 전에 사람을 보냈소. 곧 어떤 소식이 들려올 거외다. 소식이 오면 바로 알려드릴 테니, 너무 걱정 마시고 좀 쉬시구려.”

 

서문태강은 짐짓 끄떡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깨에 힘을 주었다.

 

“험, 이 정도로는 나를 흔들 수 없소이다. 그보다 아직 내가 모르는 게 있으면 좀 알려 주시구려.”

 

서문태강은 잠시 두이정과 이야기를 더 나누고 자신들이 머물 거처로 갔다.

 

전초대만 몰살당했을 뿐 둘째 아들인 서문도와 요극한은 다행히 피해가 없다고 했다. 그들과 합하면 그럭저럭 이백 명은 될 터, 다른 곳에 기가 죽을 일은 없을 듯했다.

 

하지만 서문도를 만난 그는 일각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서문도를 앞세운 채 성난 표정으로 구양손을 찾아갔다. 화풀이할 곳을 찾았다는 듯.

 

 

 

“그들을 내놓게.”

 

구양손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화려한 가죽옷을 입은 오십 중반의 중년인이 자신을 노려본다. 백마방의 장주 서문태강이다.

 

구양손은 그가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전에도 두어 번 만나본 적이 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찾아와서는 대뜸 사람을 내놓으라니.

 

“무슨 말씀입니까?” 

 

“아들이 그러더군. 철검보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우리 백마방 전초대를 보고도 그냥 지나쳤다고 말이야.”

 

“본대의 팔조장이 그러더이다. 제왕성의 암습이 염려되어서 죽어라 달려갔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만나지도 못했고, 그 소식을 전하지도 못했네.”

 

구양손이 서문태강 옆에 앉아 있는 서문도를 바라보았다.

 

“대신 서문 공자와 요 당주를 만났지요. 서문 공자께선 말씀드리지 않았는가? 방주님께 사실을 알리려는 사람들을 억지로 끌고 전초대에게 갔다고 말이야.”

 

서문도는 냉랭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는 억지로 끌고 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어디 제 말을 따르는 사람들이던가요? 듣지 못했습니까? 전초대원들을 묻을 때 그들이 저를 어떻게 대했는지 말입니다.”

 

그 이야기에 대해선 서문태강도 들은 바가 있었다.

 

하지만 설마한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구양손의 표정을 보니 사실인 것 같지 않은가?

 

그는 자신의 아들이 일개 조원들에게 무시당했다는 생각을 하자 화가 더 났다.

 

“훗, 대단한 자들이군. 감히 내 아들을 무시하다니.”

 

구양손도 할 말은 많았다.

 

“서문 공자가 처음부터 억지를 부리지 않았는가? 더구나 그들은 말다툼하기 싫어 그곳을 떠났을 뿐이네. 그게 어찌 서문 공자를 무시한 거란 말인가?”

 

“수하 중 한 사람이 제게 곤을 겨눈 것에 대해선 알고 계십니까?”

 

그건 미처 몰랐다.

 

구양손의 이마에 그려진 주름이 몇 개 더 늘었다.

 

‘제길, 얼마나 얄밉게 했으면 곤을 겨누었겠냐?’

 

그는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만 저었다.

 

“그 일은 듣느니 처음이군. 설마 서문 공자가 내 수하의 곤에 겁먹었을 리는 없었을 테고, 좀 더 자세히 말해보게.”

 

능글능글하게 받아치는 구양손의 말에 서문도도 이만 악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면 자신이 겁먹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아닌가 말이다.

 

‘능구렁이 같은 자.’

 

‘어림없다, 이놈.’

 

두 사람이 서로 한 방씩 주고받았을 때다. 서문태강이 구양손을 노려보았다.

 

상황을 듣자하니 아들이 철풍검대의 일개 조원에게 기세에서 눌린 것 같지 않은가 말이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네. 중요한 것은, 자네의 수하들은 전초대원들의 죽음을 방임하고도 아무런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이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럼, 다 죽어가는 사람 한둘 살리자고 적의 암습을 나 몰라라 했어야 한단 말입니까?”

 

“긴말 할 것 없네. 팔조와 구조의 조장들을 내놓게. 그들에게 내 직접 죄를 묻겠네.”

 

“억지가 너무 심하십니다.”

 

“억지라고?”

 

“죄도 없는 사람들을 내놓으라는 것이 억지가 아니면 뭡니까?”

 

“흥! 철검보의 일개 대주가 언제부터 그리 건방을 떨었는지 모르겠군.”

 

“저는 건방을 떤 적이 없습니다. 사실을 말했을 뿐이지요.”

 

“도혼단을 이겼다는 소문이 있던데, 지금 그걸 믿고 그러는가?”

 

솔직히 그도 아들의 말이 억지에 가깝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해서 그저 화풀이나 조금 할 생각으로 왔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이 아닌 것 같지 않은가.

 

더구나 구양손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니 더 울화가 치민다.

 

“내놓지 않겠다면, 내 자네 형님께 죄를 짓더라도 오늘 참지 않을 것이네.”

 

그제야 구양손도 상황이 가볍지 않음을 알았다. 서문태강의 본 목적을 어렴풋이 눈치 챈 것이다.

 

‘젠장! 어디서 맞고 와서 나에게 화풀이야?’

 

그렇다고 조장들을 내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는 표정을 굳히고 서문태강을 바라보았다.

 

“방주께서 하신 말씀은 알겠습니다만, 그러한 일 때문이라면, 제 수하들을 내어드릴 수 없습니다. 이해해주시지요.”

 

“감히!”

 

서문태강이 벌떡 일어났다.

 

구양손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포권을 취했다.

 

“급한 볼일이 있어서 그만 나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순간이었다. 서문태강의 눈썹이 역팔자로 꺾어졌다.

 

“많이 건방져졌구나, 구양손!”

 

동시에 포권을 취하는 구양손을 향해 우장을 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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