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6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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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61화
61화
그제야 독고무령이 누군지 눈치 챈 그는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너, 너, 너는…… 소악…… 귀…….”
“비옥 십팔호실에서 어떤 식으로 고문하는지, 왜 사람들이 입을 열 수밖에 없었는지 아나? 이제부터 그걸 알게 해주지. 그대의 몸으로.”
소엽은 비명을 크게 내지르지 않았다. 아니 위장이 튀어나오도록 비명을 내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으어, 어, 어, 어…….”
고문이라는 것. 비밀수련을 하며 숱한 고통을 겪은 그는 세상의 어떤 고문도 참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손발톱 빼내는 거야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망치로 잘근잘근 뼈를 부숴도 그저 이마만 찡그리며 참을 수 있었다. 청마조를 익힐 때는 그보다 더한 고통을 매일같이 겪지 않았던가.
설사 팔다리를 자르고 뭉갠다 해도 상관없었다. 약간의 시간만 지나면 고통이 둔해지고 죽음에 이를 테니까.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에게 그러한 고통은 일시적인 것일 뿐이니까.
그러나 독고무령의 고문은 결코 그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등줄기를 파고든 쇠줄이 신경을 뜯어낸다.
까칠까칠한 송곳이 푹푹 꽂혀 몸속을 휘젓는 것만 같다. 집게로 살을 뜯어내고, 거친 갈퀴로 그 안을 후벼 파는 듯하다.
그러다 기절할 만하면 갑자기 통증이 사라지고, 다시 똑같은, 아니 그보다 더 지독한 통증이 또 시작된다.
반복, 반복…… 갈수록 통증의 강도가 강해진다.
극한의 고통이 번갯불처럼 온몸을 휘돈다.
지옥이다. 자신이 누워있는 이곳이 무간지옥이다.
뇌리가 하얗게 변하는데도 고통만은 생생하게 느껴진다.
“끄어어어어어…….”
그는 세상에 이러한 고통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아마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겪을 수 없을 것이다. 죽을 테니까.
문제는 죽음의 시기마저 독고무령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한 시진 후가 될지, 하루 후가 될지, 독고무령이 죽음으로 인도하기 전까지 지옥에서나 겪을 법한 고통을 끊임없이 당해야 한다는 것.
소엽은 그것이 더 두려웠다.
단 이 각, 이제 죽음은 그가 세상에서 제일 원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제대로 대답만 하면 바로 지옥으로 보내주지.”
독고무령은 이 각 만에 손을 멈추고 소엽에게 처음으로 입을 열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이 각 만에 눈이 휑해진 소엽은 망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흐으, 흐으…… 제발…… 빨리만 죽여줘…….”
독고무령이 지하비밀 통로에서 나온 것은 반시진이 조금 넘어서였다.
초비경의 얼굴은 전보다 훨씬 더 좋아진 상태였다. 그는 독고무령에게 안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독고무령은 별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초비경에게 한 가지만 부탁했다.
“사람을 시켜서 안에 있는 자를 처리해주십시오.”
“알겠네.”
초비경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움직이는 데는 별 지장이 없는 듯했다.
독고무령은 초비경이 일어나자 장이생의 방으로 향했다.
장이생은 깨어나 있었다.
그는 독고무령이 들어오자 빙긋이 웃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고맙다, 무령아…….”
겨우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없는 목소리. 가솔들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가족의 안전에 대한 안도가 섞인 표정이었다.
“일단 몸부터 보중하십시오.”
“그래야지. 아암, 그래야지…….”
독고무령은 가슴이 찡하니 아파왔다.
‘남조경, 너는 곧 네가 저지른 대가를 받게 될 것이다!’
그는 남조경에 대한 분노를 씹으며 장유유에게 물었다.
“소천이의 사문은 어디지?”
장소천은 장가장의 장자, 그에게 이곳의 상황을 알려야 할 듯했다.
“하북의 대홍문(大洪門)이라고 했어.”
“대홍문?”
처음 들어보는 문파였다.
설마 강해지겠다는 장소천이 이름도 없는 삼류문파에 들어간 것은 아닐 터.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확실하게는 몰라. 오빠가 그 말만 하고 나중에 자세한 것을 알려주겠다고만 해서…….”
“연락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어. 오빠가 말해준 곳이 있거든.”
“그래? 다행이군.”
그때 장이생이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무령, 아무래도 이곳을 떠나야 할 것 같다.”
또다시 제왕성의 공격이 있을 것을 걱정하는 듯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독고무령은 잠시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분간 그렇게 하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소엽의 말에 의하면, 남조경만이 이 일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만 제거하면 우려할 것이 없다는 말이었다.
문제는, 남조경이 위지천백에게 보고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모든 가능성을 생각하고 움직여야만 했다.
“괜찮으시다면, 당분간 제가 말씀드리는 곳에 가 계시지요.”
장이생이 다시 잠들자, 독고무령은 장이생의 방을 나왔다. 장유유가 따라 나오려고 했지만 그녀도 그대로 방에 남게 했다.
“부모님 곁에 유유라도 있어야지. 심부름할 것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녀도 그 말이 옳다 생각했는지 별 다른 말없이 그의 말을 따랐다.
독고무령이 앞마당으로 들어가자 진사혁이 다가왔다.
앞마당은 시신은 다 치워져 있었다.
그러나 핏물은 금방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물을 뿌리고 흙으로 메우지만, 아마 한동안은 피비린내가 진동할 것이었다.
“대충 정리했네.”
“고맙네.”
“고맙기는.”
궁금한 것이 많은 눈치였다. 그래도 참고 바로 묻지 않는 걸 보면 보기보다 참을성이 강했다.
독고무령은 쓴웃음을 지으며 진사혁에게 말했다.
“나중에 알려줄 테니 조금만 참게.”
자신의 마음을 알아준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지 진사혁이 히죽 웃었다.
“그러지 뭐. 아, 그건 그렇고…….”
그가 말을 끌며 한곳을 향해 손짓했다.
“이리와 보쇼.”
진사혁이 가리킨 쪽에는 열 명의 장한이 모여 있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독고무령과 진사혁을 향해 다가왔다.
‘누구지?’
모두 열 명. 제법 강하게 보인다. 특히 다가오는 장한은 족히 절정에 도달한 기운을 지닌 자다.
독고무령이 아는 한 그들은 장가장의 무사들이 아니었다.
그가 바라보는 사이, 다가온 장한이 포권을 취하며 자신들의 정체를 밝혔다.
“밀호방의 십걸을 이끄는 조익입니다. 방주의 명으로 급히 달려왔습니다만, 조금 늦어서 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밀호방의 십걸?
아마도 운양이 보냈나 보다.
“별 말씀을. 지금 이곳 사람들은 정신이 없는 상황이오. 아마 이들에겐 귀하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을 거요.”
역시나 생각했던 대로 운양의 힘은 생각보다 컸다. 아마 눈앞에 있는 자들 말고도 또 다른 고수가 그의 휘하에 있을 게 분명했다.
‘그가 자신할 만하군.’
독고무령은 내심 운양의 능력에 감탄하며 조익이라는 자에게 말을 건넸다.
“수고스럽지만, 경비를 좀 서 주시오. 수상한 자가 나타나면 바로 알려주고 말이오.”
“알겠습니다.”
조익이 십걸을 이끌고 외곽으로 나가자 독고무령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장가장의 무사들 중 몸이 멀쩡한 사람은 십여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무사가 아닌 사람들까지 모두 나와서 정리하고 있는 터라, 오가는 사람은 오륙십 명을 헤아렸다.
그때 문득 한 사람이 보였다. 철노였다.
‘후우, 다행이군.’
독고무령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철노에게 갔다.
“무사하셨군요.”
독고무령의 인사에 철노가 흠칫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뉘신지……?”
“접니다, 무령이요.”
철노의 눈이 점점 커졌다. 그러다 독고무령의 옆구리에 걸려 있는 검을 보고 주름진 눈을 잘게 떨었다.
“정말…… 이군. 허, 허…….”
철노의 눈에 맺힌 물기가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독고무령은 철노와 함께 철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진사혁도 떨어지면 큰일이라도 나는 사람처럼 바짝 붙어 두 사람을 따라왔다.
“어떻게 될 것 같으냐?”
철노가 처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앞으로의 상황을 대충 예측한 듯한 말투였다.
“장주님은 당분간 이곳을 떠날 것입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겠지.”
철노는 찬찬히 철방을 둘러보았다. 불이 꺼진 철방은 을씨년스러웠다.
“사십 년 만에 불이 꺼졌다, 사십 년 만에…….”
철노가 힘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자식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적이 누군지 아십니까?”
“후우…… 내 어찌 그 죽일 놈들을 알겠느냐?”
독고무령은 철노를 지그시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은 절대 아무에게도 알리면 안 됩니다. 장주님도 바라지 않으니까요.”
철노가 의아한 표정으로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뭔가 뜻이 있음을 알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마.”
“오늘 장가장을 친 자들은 제왕성의 비밀고수들입니다.”
철노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뭐, 뭐야?”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알려선 안 됩니다. 만일 그 사실이 알려진다면 장원의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무조건, 누가 묻거든 정체불명의 도적이라고 하셔야 합니다.”
이를 악문 철노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알겠다, 무슨 말인지.”
그제야 독고무령이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철노께선 이곳에서 불을 다시 지피십시오.”
“불을?”
“제 생각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저들이 또 온다 해도 철방만은 건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
“그들은 무기가 필요합니다. 무기를 공급해주는 가장 큰 거래처를 이대로 잃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독고무령이 그렇게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비화당의 무사들은 앞과 뒤를 치면서도 철방만은 손대지 않았다. 철방에 무사들이 상당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도.
그런데 철노가 거친 수염을 떨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놈들에게는 무기를 만들어주지 않을 거다. 절대로!”
적이 제왕성이란 걸 안다면 장가장의 사람들 모두가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독고무령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어차피 두려움에 질린 사람들이 떠나고 나면 남은 사람이 얼마 안 될 겁니다. 게다가 이곳이 아니더라도 그들은 얼마든지 다른 곳에서 무기를 공급받을 수 있으니 큰 신경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일단 철방의 일을 계속하십시오.”
철노의 눈이 흔들렸다.
수십 년을 지내온 장가장이 아닌가. 그라고 해서 어찌 떠나고 싶을까.
“그들이…… 정말 우리를 놔둘 거라 보느냐?”
“만일 무기를 만들어달라고 하면 만드십시오.”
철노의 이마에 거미줄 같은 주름이 졌다.
독고무령은 그런 철노를 향해 나직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만든 무기 중 태반을 철검보로 보내주십시오.”
“철검보에?”
철노의 눈이 번쩍 뜨였다.
철검보는 혈겁을 자행한 제왕성과 대항하는 무천련의 오대세력 중 하나다. 그곳에 대주는 거라면 대환영이었다.
“얼마나 말인가? 너무 적으면 놈들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
나중에는 감시를 할지도 몰랐다. 독고무령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정체불명의 도적들이 쳐들어온 바람에 장인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고 삼 할만 그들에게 주십시오.”
남은 칠 할은 무천련에 대주라는 말.
철노의 주름진 눈에서 형형한 안광이 흘러나왔다.
“좋아. 그렇게 하지. 그것도 질이 안 좋은 것으로만 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