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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58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4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58화

 

58화

 

 

 

 

 

 

* * *

 

 

 

“크윽!”

 

장이생의 입에서 거친 신음이 흘러나왔다.

 

두 복면인의 협공을 상대한지 삼십여 초. 칼날이 허벅지를 깊게 훑고 지나갔다.

 

얼굴이 일그러진 장이생은 다리를 절룩거리며 급급히 뒤로 물러났다.

 

쩍 벌어진 허벅지에서 핏물이 뭉클거리며 흘러나온다.

 

둔탁한 통증!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빌어먹을, 너무 깊게 베였어.’

 

하지만 그로선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두 복면인이 기회를 잡았다는 듯 더욱 세차게 달려든다.

 

다섯 명의 호위무사들 중 둘이 죽고 셋이 남았지만, 그들은 다른 복면인들을 상대하느라 자신을 도와줄 수 없는 상황. 위기를 벗어나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었다.

 

쩌저정!

 

눈을 부릅뜬 장이생은 혼신의 힘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냈다. 장가장의 비전검법인 소천십이검이 그의 검첨에서 줄기줄기 쏟아졌다.

 

그러나 허벅지의 부상으로 움직임이 둔해진 상태. 두 사람을 막기가 버겁기만 했다.

 

사오 초가 지나자 두어 군데에 작은 상처가 더해졌다.

 

허벅지에서 흘러나오는 핏물로 인해 왼쪽 다리가 붉은 기둥으로 변했다.

 

고통을 느낄 정신도 없었다. 그의 관심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소설향과 장유유의 생사!

 

어쩌면 상대의 칼에 부상을 입은 것도 그 때문일지 몰랐다. 어쩔 수 없었다. 아내와 딸이 위험하지 않은가 말이다.

 

‘비경! 제발 구해다오!’

 

그의 정신이 찰나 간 분산되었을 때였다.

 

서걱!

 

또다시 상대의 검이 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장이생은 신음조차 삼키고 검을 휘둘렀다.

 

순간 복면인 중 하나가 독기어린 눈으로 장이생을 노려보며 물러섰다.

 

그의 가슴 옷자락이 길게 갈라져 있었다. 깊진 않지만 가슴을 훑고 지나간 검첨에 상처를 입은 듯했다.

 

물러설 줄 알았던 장이생이 오히려 반격해서 상처까지 입히자 두 복면인은 이를 갈며 독기를 뿜어냈다.

 

“정말 지독한 놈이군!”

 

“네놈을 처참하게 죽여주마!”

 

장이생도 마주 소리쳤다.

 

“얼마든지 덤벼라, 개만도 못한 놈들! 내 죽더라도 네놈들은 함께 데려갈 것이니라!”

 

그와 동시, 두 복면인의 공격이 다시 시작되었다. 좀 전보다 더욱 신랄해진 공세였다.

 

장이생은 한 점 남은 기운까지 모조리 끌어올려서 두 복면인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문제는 한쪽 다리를 움직이기 힘드니 신법조차 마음대로 펼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칠팔 초가 지날 즈음이었다. 불로 지지는 통증이 왼쪽 어깨를 훑어 내렸다.

 

“크으윽!”

 

장이생의 악다문 잇새로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나왔다.

 

그는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 팔을 옆구리에 붙이고 급히 세 걸음을 물러섰다.

 

동시에 두 복면인이 장이생을 향해 도검을 뻗었다.

 

“이제 죽어라, 장이생!”

 

팔과 다리가 하나씩 움직이지 않는다.

 

중심이 잡히지 않으니 두 사람의 도검을 동시에 막아낼 수 없다.

 

장이생의 핏발 선 눈에서 불길이 쏟아졌다.

 

“오냐, 이놈들! 함께 죽자!”

 

두 명의 적을 줄일 수 있다면, 그만큼 아내와 딸이 살 가능성이 높아진다.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라니!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최선을 다해야만 성공할 수 있을 것이었다.

 

‘향 매! 소천아! 유유야!’

 

장이생은 소설향과 장소천과 장유유를 가슴으로 소리쳐 불렀다.

 

울컥, 눈물이 앞을 가렸다.

 

어둠 때문인가, 눈물 때문인가, 눈앞이 뿌옇게 변했다.

 

그때 두 복면인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드는 게 보였다.

 

그도 두 복면인을 향해 마주 몸을 날렸다.

 

설움에 찬 외침이 그의 목구멍에서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

 

바로 그때였다!

 

평생 처음 보는 기괴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스윽!

 

뭔가가 왼쪽에서 달려드는 복면인의 목을 스치는 듯하더니, 복면인의 머리가 옆으로 스르르 미끄러진다.

 

그뿐이 아니었다. 자신의 가슴에 검을 밀어 넣던 오른쪽 복면인의 이마에서 삐죽한 검이 튀어나온다.

 

이놈들이 사술을 익혔단 말인가?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에는 서로간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푹!

 

장이생의 검이 우측 복면인의 심장을 관통했다.

 

상대의 검은 그의 옆구리 옷을 찢으며 힘없이 떨어졌다.

 

그리고 좌측 복면인은 머리와 몸통이 따로 분리된 채 비틀거리다 그 자리에 엎어져버렸다.

 

장이생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때 나직한 목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인사는 나중에 하지요.”

 

상황과 전혀 다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목소리.

 

장이생은 홱 고개를 돌려 옆을 돌아다보았다.

 

누군가가 다가온다. 청년이다.

 

언젠가 본 듯한 얼굴.

 

장이생의 가슴이 콱 막히고 턱이 덜덜 떨렸다.

 

“너, 너는…….”

 

독고무령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장이생의 어깨 부위 혈도를 몇 군데 짚었다. 반쯤 잘린 팔에서 뭉클거리며 흘러나오던 피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심하게 움직이면 안 됩니다. 여기를 손가락으로 세게 누르고 계십시오.”

 

장이생은 자신의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듯 멍한 표정을 지은 채 그가 하라는 대로 했다.

 

그러다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 미친 듯이 소리쳤다.

 

“안채로 가봐! 향 매와 유유가 위험해!”

 

장이생의 허벅지 안쪽마저 지혈하고 막 몸을 일으키던 독고무령의 눈에서 광기마저 느껴지는 안광이 쏟아졌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십시오.”

 

순간 그의 신형이 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곧 몇 마디 신음이 울리는가 싶더니, 장가장을 피로 물들이던 살귀들이 썩은 갈대처럼 무너져 내렸다.

 

독고무령은 장가장으로 오면서부터 오직 한 가지만을 생각했다. 적을 최대한 빨리 제거하는 것만이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할 수 있다는 것.

 

하기에 그는 자신의 능력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장이생을 구하러 가는 도중에도 동선에 있는 복면인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쓰러뜨렸다.

 

그리고 안채로 가는 중에도 단호하게 손을 써 복면인들을 제거했다. 남는 자가 있으면 장이생에게 위협이 될 테니까.

 

스물두 명의 복면인 중 장가장의 무사들에게 죽은 자는 셋, 열다섯이 독고무령의 손에 무너졌다.

 

남은 자는 넷뿐.

 

하지만 지금은 그들마저도 위협이 되었다. 장가장의 무사들 중 제대로 무기를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은 열 명 안팎, 그들로서는 네 명의 복면인을 상대할 수 없을 것이었다.

 

‘최대한 하나라도 더 처리해야 돼.’

 

그때였다.

 

누군가가 담장을 훌쩍 넘어왔다.

 

“이 빌어먹을 놈들! 감히 본 공자를 밥도 못 먹고 달리게 만들다니!”

 

담장을 넘은 자는 고함을 내지르며 두 명의 복면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진사혁이었다. 아마도 자신의 뒤를 쫓아 정신없이 달려온 듯했다.

 

진사혁을 본 독고무령은 즉시 안채로 신형을 날렸다.

 

“부탁한다, 사혁!”

 

 

 

“웩!”

 

초비경은 선혈을 토해내며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떠덩!

 

복면인의 검이 튕겨지며 옆으로 흘렀다.

 

그러나 적은 복면인만이 아니었다. 내상까지 입으며 어떻게 하나를 제거했지만, 복면인보다 더 무서운 소엽이 남아 있었다.

 

초비경은 복면인의 검이 옆으로 흐르자마자 몸을 굴렸다.

 

찌이익!

 

소엽의 손가락이 간발의 차이로 초비경의 옆구리를 찢고 지나갔다. 찢어진 것은 옷뿐이었다.

 

그러나 초비경은 옆구리의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듯했다.

 

초비경이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킬 때다.

 

몸을 날린 소엽이 두 손을 엇갈리며 앞으로 뿌렸다.

 

“흥! 이제 끝이다, 이놈!”

 

초비경은 전력을 다해 검을 휘돌렸다.

 

따당!

 

소엽의 청마조가 검을 따라 휘돌더니 검면을 후려쳤다. 동시에 시퍼런 손가락이 초비경의 가슴에 떨어졌다.

 

초비경은 다급히 우권을 뻗어 소엽의 청마조를 막아냈다.

 

퍽!

 

“크윽!”

 

검조차 튕겨내는 청마조다. 특별한 권을 익히지 않은 주먹으로 막아내기에는 무리일 수밖에 없었다.

 

초비경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린 채 뒤로 주르륵 물러났다.

 

주먹이 으스러졌는지 극심한 통증이 뇌리까지 치달렸다. 게다가 주먹을 통해 들어온 소엽의 내력이 그의 내부를 뒤흔들었다.

 

“우엑!”

 

초비경은 다시 한번 피를 토하고 고개를 들었다.

 

몸이 덜덜 떨려 검을 들기조차 힘들었다.

 

소엽이 그런 초비경을 보며 비릿한 조소를 흘렸다.

 

“나의 청마조를 이십 초 넘게 버티다니, 제법이군.”

 

한 번만 더 손을 쓰면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힘도 못 쓰는 초비경을 죽이는 것은 이제 아무런 문젯거리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비밀통로에 숨어 있는 장이생의 가족을 잡는 게 더 급했다.

 

“네가 마무리 지어라.”

 

소엽은 복면인에게 명을 내리고는, 무너져 있는 벽 안으로 들어갔다.

 

‘그 계집들이 얼마나 뛰어나기에, 그 바보 같은 놈이 저 죽을지도 모르고 욕심내는지 알아봐야겠군. 후후후후…….’

 

퍽! 우직!

 

뒤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았다.

 

소엽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후드득 털었다.

 

그때 나직한 목소리가 그의 고막을 후벼 팠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참혹하게 죽을 것이다.”

 

소엽은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찰나 간 뇌리를 지배하는 지독한 공포심!

 

소엽은 자신이 그런 기분을 느꼈다는 것에 분노가 일었다.

 

홱! 몸을 돌린 그는 청마조를 펼치며 몸을 날렸다.

 

상대가 누군가는 상관이 없었다. 설령 자신의 심복이라 해도 목을 부러뜨려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거늘 일 장 앞에 있는 자는 자신의 심복이 아니었다. 자신의 심복은 이미 목이 부러지고 허리가 꺾인 채 기묘한 자세로 널브러져 있었다.

 

소엽은 일갈을 내지르며 전력을 다해 청마조를 내리쳤다.

 

“죽어!”

 

독고무령은 먹빛 눈으로 소엽을 바라보았다.

 

소엽의 시퍼런 손가락이 순식간에 석 자 앞까지 다가왔다.

 

독고무령은 그제야 좌수를 뻗어 소엽의 오른팔 팔목을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무쇠처럼 단단한 소엽의 팔목을 마른가지 꺾듯이 꺾어버렸다.

 

콰직!

 

동시에 우수로 소엽의 좌수를 쳐내고, 텅 빈 그의 가슴에 일 장을 내갈겼다.

 

쾅!

 

취접라에 귀월인, 마지막은 구명절혼수. 각기 다른 삼 초의 수법이 눈 깜짝할 순간에 펼쳐진 것이다.

 

“커억!”

 

소엽의 눈이 홉떠지고, 그의 입에서 격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팔목이 잡힌 소엽에게는 두 번의 기회가 없었다.

 

독고무령은 부러진 손목을 잡아당긴 후, 소엽의 마혈과 아혈을 찍고 바닥에 내던졌다.

 

우당탕탕!

 

힘없이 널브러진 소엽의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

 

가슴이 갈가리 찢겨지는 통증이 밀려들었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무력감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때였다.

 

지독한 공포심의 정체!

 

그것이 그제야 떠올랐다.

 

오래 전, 그는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처음으로 제왕성의 성주인 위지천백을 바로 앞에서 봤을 때 말이다.

 

당시 그는 독사와 눈이 마주친 쥐새끼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조금 전처럼.

 

‘말도 안 돼! 저놈이 누군데 그분과 비교된단 말……!’

 

비옥에서 하얗던 얼굴을 지닌 독고무령을 겨우 두어 번 본 그다. 그는 독고무령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독고무령은 널브러진 소엽을 쳐다보지도 않고 초비경에게 다가갔다.

 

“견딜 수 있겠습니까?”

 

초비경은 멍한 눈으로 독고무령을 올려다보았다. 아마 그가 이처럼 멍한 정신 상태가 된 것은 태어나 처음일 것이었다.

 

“누, 누구……?”

 

“접니다.”

 

초비경의 멍한 눈이 점점 커졌다. 어렴풋이 독고무령의 얼굴이 떠오른 것이다.

 

“부인과 유유는 저 안에 있습니까?”

 

독고무령의 질문이 떨어지고 나서야 초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실 거네.” 

 

독고무령은 지체 없이 벽 안으로 들어가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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