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5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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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2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57화
57화
조 당주, 조이상은 밀호방의 사당 중 하나인 귀호당(鬼狐堂)의 당주였다. 그는 태원 남쪽의 정보를 총괄하는 자로, 그가 바쁘게 움직였다면 그만한 일이 있다는 말이었다.
초운이 그릇을 정리하며 대답했다.
“제왕성 무사 이십여 명이 분하(汾河)를 건넜는데요,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이 이상해서 조사해봤나 봐요.”
“제왕성 무사 이십여 명?”
지금은 수백 명씩 몰려다니며 혈풍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
이십여 명이라면 그다지 신경 쓸 숫자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고 요리에 손을 뻗었다.
그때 초운이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예,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어요.”
“뭐가 말이냐?”
“조 당주님이 조사해보니까, 그동안 내성에서 거의 나오지 않던 비화당 비밀무사들인 것 같다고 해요.”
막 젓가락으로 요리를 집던 독고무령이 움직임을 멈췄다.
뒷골에 장침이 틀어박힌 듯 찡한 느낌!
그는 자신도 모르게 다그치듯이 물었다.
“비화당이라고?”
“예.”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을까?”
“정확한 목적지는 모르겠는데요, 조 당주님 말씀으로는 남쪽으로 내려갔다고 했어요.”
남조경의 비화당. 그리고 태원 남쪽.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남조경이 왜 이십 명이 넘는 비화당의 비밀무사들을 움직여 남쪽으로 내려 보냈을까? 그것도 은밀하게.
독고무령은 젓가락을 든 채로 운양에게 물었다.
“혹시 이전에도 그들이 움직인 적 있나?”
“글쎄……. 아! 얼마 전의 일이네만, 수상한 자들이 의원을 찾아다니며 뭔가를 수소문하고 있다는 말을 듣긴 했네. 제왕성의 무사들 같다고 하는데, 웃기지 않게도 몇 년 전에 지나간 마차와 어떤 환자에 대한 걸 묻고 다녔다고…….”
독고무령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작스런 독고무령의 행동에 오리다리를 문 진사혁이 고개를 들었다.
“무스 이이야?”
괴상한 말투와 함께 입 안에 든 고기가 튀었다.
그래도 알아듣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급히 가봐야 할 곳이 있네. 시간이 걸릴지 모르니, 내가 시간 안에 안 오면 자네 먼저 떠나게.”
독고무령은 빠르게 말하고는, 옆에 내려놓았던 검을 집어 들었다. 그러더니 몇 마디 말할 시간도 아까운 듯 밖으로 나가며 운양에게 말했다.
“남은 이야기는 돌아와서 하세.”
“음? 알았네.”
엉거주춤 반쯤 일어선 운양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을 때는 이미 독고무령이 방을 나간 후였다.
얼마나 급했으면 저 무쇠덩이 같은 친구가 저리 서두른단 말인가? 대체 어떤 일이 저 친구를 저리 서두르게 만든단 말인가?
‘가만? 비화당이 남쪽으로 움직였다고 했지? 남쪽이라면…….’
뒤늦게 정신을 차린 운양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눈을 두어 번 깜박이는 사이 생각을 정리한 그는 초운에게 다급히 소리쳤다.
“십걸을 진중의 장가장으로 보내라. 최대한 빨리 달려가라고 해!”
초운은 대형이 이렇게 다급히 서두르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만큼 다급한 일이라는 말.
“예, 대형!”
꿀꺽!
주먹만 한 오리고기를 대충 씹어 삼킨 진사혁이 다급히 물었다.
“뭐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저 친구는 갑자기 어딜 가는 거지? 이거 답답해서 견딜 수가 있나!”
“전에 얼핏 진중의 장가장에 대해 들은 적이 있네.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어떤 사정이 있는 것 같았지. 그곳 이야기를 물어보며 꼭 고향집을 그리워하는 표정을 짓더군.”
“그래?”
“나에게 혹시라도 장가장에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알리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비화당의 무사들이 그곳으로 갔을까 봐 걱정되어서 간 것 같아.”
“장가장? 제왕성 무사들이 왜 거길 가?”
“그건 나도 몰라. 어쩌면… 무령이 때문인지…….”
진사혁은 오리다리를 든 채 벌떡 몸을 일으켰다.
장가장이 독고무령과 관련있다는 것은 그도 아는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운양의 말이 맞는 듯했다.
“빌어먹을! 이거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나? 그런 일이 있으면 말을 하고 같이 가야지 말이야!”
버럭, 한 소리 내지른 그는 곤을 옆구리에 끼고 득달같이 밖으로 달려 나갔다.
독고무령은 운가고서점을 빠져나오자마자 즉시 경공을 펼쳐서 대장간으로 갔다. 촌각이 다급한 상황, 남의 눈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즉시 대장간에서 자신의 말을 찾고는, 성을 빠져나와 남쪽으로 달렸다.
말에게는 안 된 이야기지만 달리다가 쓰러져도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지쳐서 속도가 늦춰지면 버리고 갈 생각이었다.
‘비화당의 비밀무사들이 이십 명이나 넘게 움직였다면 남조경이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다. 제발……!’
서쪽하늘이 시뻘겋게 타오른다.
저 불꽃이 사그라지면 어둠이 밀려올 터. 그 전에 도착해야만 한다.
‘제발 내가 헛걸음하는 것이었으면……!’
* * *
“이놈들!”
장이생의 입에서 분노에 찬 고함이 밤하늘을 울리며 터져 나왔다.
일각 전,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사들이 들이닥쳤다.
복면을 한 그들은 자신들의 앞을 막는 장가장의 무사들을 가차 없이 베어 넘겼다.
일각 만에 장가장의 넓은 마당이 장가장 무사들의 시체로 가득 찼다.
나름 정예라는 장가장의 무사들이 짚단처럼 무너진다.
화톳불이 타오르는 앞마당에 붉은 핏물이 가득하다.
심지어 장가장의 원로고수들마저 복면인에게 밀리는 판이다.
장이생의 눈에 핏발이 섰다.
저놈들은 살귀다.
오직 죽음의 검만을 펼치는 지옥의 살귀!
‘제왕성! 분명 그 자식이 데려온 놈들이야!’
하지만 그는 그 말을 외칠 수 없었다.
복면을 했을 때는 정체를 숨기겠다는 말. 장가장의 무사들이 적의 정체를 알게 되는 순간, 놈들은 도망가는 사람들까지 개미새끼 한 마리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지우려 할 테니까.
입을 막기 위해서, 보다 더 확실하게!
“장주님과 장주님의 가족들을 보호해!”
“장주님! 어서 가족들을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십시오!”
무사들이 소리치며 복면인들을 향해 달려든다.
정규무사들만이 아니라 철방에서 일하던 사람들까지 나와서 적을 막는다.
하지만 그들의 힘으로 비화당의 비밀무사들을 막는다는 것 자체부터가 무리였다.
“비경!”
장이생은 초비경을 부르고 이를 악물었다.
초비경이 사정하듯이 소리쳤다.
“장주님!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저를 따라 밀도(密道)로…….”
“나는 가지 않는다! 대신 너에게 내 가족들을 부탁하겠다!”
“장주님!”
“저 사람들이 나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나더러 어딜 가라는 말이냐? 네가 나보다 강하다는 걸 안다, 비경! 어서! 어서 내 가족들을 데리고 이곳을 떠나라! 어서!”
장이생은 강하게 말을 맺고 검을 빼들었다.
“나머지는 나와 함께 적을 막는다! 가자!”
장이생이 몸을 날리자, 호위무사들도 어쩔 수 없이 뒤를 따랐다.
장이생이 막 전장에 뛰어들었을 때였다.
“아악!”
뒤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초비경이 경악해서 소리쳤다.
“뒤쪽으로도 적이 들어왔습니다!”
“가봐라, 비경! 어서!”
안색이 하얗게 질린 장이생은 입술을 깨물고 소리쳤다.
자신도 가고 싶었다. 그러나 몸을 돌릴 상황이 되지 못했다.
초비경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못하고 즉시 몸을 날렸다.
비명이 난 곳에는 소설향과 장유유가 있었다. 그녀들을 구하지 못한다면, 장이생은 죽어도 이곳을 떠나려 하지 않을 것이었다.
* * *
“어디로 갔지?”
소엽의 질문에 시비는 벌벌 떨며 오줌을 지렸다.
동료의 잘려진 머리가 자신을 바라본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듯하다.
“저, 저, 저는…….”
“말하면 살려주마. 이곳에 살던 계집들은 어디로 갔지?”
시비는 이를 부딪치며 덜덜 떨기만 했다.
소엽의 옆에 서 있던 복면인 하나가 그녀의 얼굴을 칼로 그었다.
“얼굴이 갈기갈기 찢어져 죽고 싶으냐?”
핏물이 주르륵 흐르며 목을 흘러내렸다.
시비는 혼이 빠진 듯 손을 들어 한곳을 가리켰다. 달랑 그림 하나가 걸려 있는 벽을.
“저, 저, 저기로…….”
소엽은 고개를 돌려 벽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로 하얀 웃음이 번졌다.
“후후후, 비밀통로를 마련해 두었단 말이지?”
그는 음소를 흘리며 벽을 향해 쌍장을 내밀었다.
우르릉.
벽이 진동하며 쩍쩍 금이 갔다.
소엽은 금이 간 벽을 밀치듯 두들겼다.
한 뼘 두께의 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바로 그때였다.
쾅!
방문이 부서지며 한 사람이 뛰어들었다.
초비경이었다.
순간 소엽의 뒤에 서 있던 두 명의 복면인이 번개처럼 몸을 돌리며 검을 뻗었다.
쩌저정!
세 사람의 검이 뒤엉키며 불꽃이 튀었다.
강렬한 충격에 세 사람이 두어 걸음씩 물러섰다.
소엽이 그걸 보고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제법이군.”
그러나 초비경은 상대의 칭찬에 대꾸할 정신이 없었다.
“차앗!”
그는 검을 열십자로 그어내며 자신의 앞을 막은 두 복면인을 향해 몸을 날렸다.
쩌저저저정!
순식간에 삼초식의 검이 오가며 고막이 터질듯 한 충돌음이 방 안을 휘돌았다.
“큭!”
“흡!”
복면인 하나의 어깨에 구멍이 뚫렸다.
초비경도 옆구리의 옷이 찢어지며 살까지 베어졌다.
잠깐 멈칫한 순간, 상처를 입지 않은 복면인이 초비경을 향해 달려들었다. 곧이어 어깨에 구멍이 뚫린 복면인도 달려들었다.
초비경은 전력을 다해서 복면인의 검을 막았다.
일대일이라면 이길 수 있는 상대다. 그러나 둘을 상대로는 버겁기만 하다. 더구나 적은 아직 하나가 더 있다.
두 복면인보다 더 강한 자가!
초비경은 이를 악물고는, 검을 왼손으로 바꿔 잡았다.
그동안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비밀이 하나 있다. 자신이 본래 우수검이 아닌 좌수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그러한 비밀조차 숨길 여유가 없었다.
쉬익!
검이 갑자기 달라졌다.
변화는 적어지고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검첨이 기괴한 각도로 휘어지며 두 복면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허억!”
“흐읍!”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진 두 복면인은 갑자기 몽둥이질당한 개새끼처럼 다급히 펄쩍 뛰었다.
초비경의 좌수검은 머리를 세운 독사처럼 두 사람 사이를 파고들었다.
소엽이 초비경의 좌수검에 눈을 크게 떴다.
“사혼검?”
그는 소리침과 동시 초비경의 가슴을 향해 쌍수를 뻗었다.
“어림없는 수작!”
갈퀴처럼 구부러진 그의 열손가락에서 시퍼런 기운이 넘실거렸다.
초비경의 핏발 선 눈이 흔들렸다.
이대로 검을 쳐내면 두 복면인 중 하나의 목숨을 거둘 수 있다. 잘하면 둘 다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심장도 뚫릴 각오를 해야 한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었다. 자신이 당하면 두 여인은 누가 보호한단 말인가!
이를 악문 초비경은 억지로 검을 비틀어 방향을 바꾸었다.
찌지직!
좌측 복면의 가슴을 찢어낸 검은 곧장 소엽의 팔목을 향해 떨어졌다.
소엽도 팔목을 비틀어 초비경의 검면을 후려쳤다.
까가강!
검과 손가락이 얽혀들자 마치 쇠와 부딪친 듯한 소리가 울렸다.
벼락이 검신을 두들기는 것만 같다.
초비경은 검신을 타고 전해지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두 걸음을 물러섰다.
“후후후, 사혼검의 좌수검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다니, 놀랄 일이군. 하지만 그것으로는 결코 네 목숨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소엽은 냉소를 흘리며 초비경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의 열손가락에서는 여전히 시퍼런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