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5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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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4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56화
56화
제2장 너는 세상에서 가장 참혹하게 죽을 것이다
독고무령 일행은 천천히 사위를 살피며 남쪽으로 내려갔다.
삼십여 리를 내려가도록 제왕성 무사들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일행은 이십여 리를 더 간 후, 태원성에서 약 오십 리쯤 떨어진 곳에 도착하자 발길을 멈추었다.
언제 어디서 제왕성 무사들이 나타날지 모르는 일.
독고무령은 그곳에서 조원들을 석도명에게 맡기고 태원에는 혼자 들어갈 생각이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조원들과 함께 먼저 돌아가십시오.”
석도명도 이미 알고 있는 일이기에 간단하게 대답했다.
“알겠네. 다녀오게나.”
그때 진사혁이 재빨리 앞으로 나왔다.
“나도 함께 가세. 혼자 가면 심심할 것이 아닌가?”
독고무령도 마다하지 않았다. 진사혁은 운양의 친구가 아니던가. 더구나 진사혁이 함께 가면 태원으로 가는 길을 물어보는 수고도 덜 수 있었다.
그런데 독고무령이 진사혁을 받아들이는 걸 보고 구양소현도 함께 가겠다고 떼 아닌 떼를 썼다.
“그럼, 나도 함께 가요.”
당연히, 독고무령은 그녀의 청을 거절했다.
“당신은 안 돼.”
“왜 저 멍청이는 되고 나는 안 된다는 거죠?”
독고무령은 이러쿵저러쿵 사유를 말하기보다 간단하게 그녀를 눌렀다.
“명령이다. 듣기 싫으면 철검보로 돌아가.”
구양소현은 입을 삐죽거리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입 안에서만 맴돌 뿐 밖으로 새어나오지는 않았다.
‘바보! 가다가 돌부리에 채여서 콱 넘어져 버려라.’ 대충 그런 말인 듯했다.
그때 용설이 말했다.
“조장, 나도 태원에 볼일이 좀 있습니다. 오래 걸리지는 않으니 함께 가면 안 되겠습니까?”
구양소현이 눈을 굴려 독고무령과 용설을 번갈아 째려보았다.
‘설마 조장이 저 수상한 놈을 데려가지는 않겠지?’
그녀가 용설을 수상하게 보는 것은 육감에 뭔가가 자꾸만 걸렸기 때문이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그런데 독고무령은 구양소현의 예상을 확실하게 짓밟고 용설의 청을 수락했다.
“좋다. 하지만 오래 있을 수는 없으니, 성에 들어간 후 한 시진 안에 나오도록.”
순간 구양소현의 눈꼬리가 확 찢어졌다.
그걸 본 독고무령은 구양소현의 입에서 쓸데없는 소리가 나오기 전에 말머리를 잡아 돌렸다.
“시간이 없으니 출발하자!”
* * *
세 사람은 일단 철검보의 복장 위에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평복을 덧입었다. 그러고는 태원까지 거의 쉬지 않고 적당한 속도로 달렸다.
진사혁이 주변 길을 잘 알고 있는 덕분에 멈칫거리며 길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다만 진사혁이 타고 있는 말이 빨리 지쳐서 두어 번 잠깐 쉬었을 뿐.
태원까지는 한 시진이 조금 못 되어 도착했다.
석양이 서산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마 일을 보고 성을 나설 때쯤이면 완전히 어두워져 있을 듯했다.
세 사람은 태원성 앞에 도착하자 말에서 내렸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데다, 성 안에서 말을 타고 가면 시선이 집중될 터. 독고무령은 아예 말을 맡기고 들어갈 생각으로 진사혁에게 물었다.
“말을 어디다 맡겼으면 좋겠군.”
진사혁이 어깨를 펴고 걱정 말라는 투로 말했다.
“나에게 맡기게. 마침 적당한 곳이 있으니까. 객잔에 맡기는 것보다 나을 거네.”
진사혁은 두 사람을 성 안쪽의 성문 근처에 있는 대장간으로 데려갔다.
수염이 덥수룩한 대장간 주인은 진사혁을 보더니 허리를 땅에 닿게 숙였다.
“어이구, 공자님. 오랜만에 뵙습니다요.”
“하, 하. 잘 지냈습니까, 송씨 아저씨?”
“물론입지요. 그런데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별일은 아니고, 번거롭겠지만 말 좀 부탁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말을요?”
“복잡한 성 안으로 말을 몰고 들어가기 좀 뭐해서요.”
“그런 일이라면 걱정 마십쇼. 저 안에 매어두면 어느 놈도 못 가져갑죠.”
“하하하,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거…… 누구 시켜서 여물 좀 먹여주십시오.”
진사혁은 품에서 은자 한 냥을 꺼내 내밀었다.
송씨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받지 않으려 했다.
“어이구! 무슨 말씀입니까요? 놔두십쇼. 말에게 여물 먹이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그래도 받아요. 정 뭐하면 콩이라도 좀 사서 섞어주고 말이죠.”
송씨는 마지못한 척 은자를 받고 허리를 땅에 닿게 숙였다.
“말들은 걱정 마시고 다녀오십쇼, 공자님!”
말을 대장간에 맡기고 나오자 용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저쪽 길로 가야 합니다.”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은 남문로, 운가고서점이 있는 곳은 중문대로다.
독고무령은 고개를 까닥이고 약속시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한 시진 뒤에 이곳에서 만나지. 만일 일각 이상 늦으면 먼저 떠난 것으로 알고 뒤따라오게.”
“알겠습니다.”
독고무령은 용설을 먼저 떠나보내고 중문대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진사혁이 힐끔 용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 말인가?”
“저 친구 말이야. 목소리도 이상하고, 목까지 천으로 둘러서 가린 것도 좀 이상하고, 항상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것도 좀 그렇고…….”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많은데 그게 뭐가 이상하다는 건가?”
“혹시 말이야, 어디 아픈 것 아닐까? 아니면 입이나 목에 큰 상처가 있든지.”
“글쎄, 기운의 흐름으로 봐선 특별히 아픈 곳은 없어 보이던데? 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세.”
진사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독고무령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운양은 독고무령과 진사혁이 함께 운가고서점으로 들어오자 환한 표정으로 맞이했다.
“두 골칫덩이가 함께 왔군.”
진사혁이 눈을 부라렸다.
“잔소리 말고 먹을 거나 좀 내놔라. 죽어라 뛰어다녔더니 배고파 죽겠다.”
“쯔쯔쯔, 누가 먹보 아니랄까봐…….”
운양은 혀를 차며 진사혁을 흘겨보고는, 눈을 돌려 독고무령에게 말했다.
“자네도 참 고생이네. 저 먹보를 데리고 다니느라.”
독고무령이 담담히 대꾸했다.
“얼마 전에는 은자 석 냥을 주고 육포 여섯 개를 사먹더군.”
진사혁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운양은 그 모습을 측은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에혀, 진가철방의 앞날이 훤히 보이는군. 육포 여섯 개를 석 냥이나 주고 사먹다니. 그 돈이면 배고픈 아이들 백 명은 먹일 텐데.”
진사혁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독고무령을 흘겨보았다.
“육포 하나를 은자 한 냥에 파는 사람도 있는데 뭐.”
운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사혁을 볼 때와는 전혀 다르게 정말 감탄했다는 표정이었다.
“호오, 누군지 정말 대단하군. 그래, 그게 누군가?”
진사혁은 독고무령과 운양을 번갈아보고는 빽 소리쳤다.
“좌우간 그런 사람이 있어! 계속 여기 세워둘 건가!”
진사혁은 이라도 쑤실 것처럼 곤 끝을 턱밑에 받치고 잔뜩 골난 표정을 지었다.
그래봐야 독고무령이나 운양은 그에게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놈들의 움직임은 어떤가?”
곤 끝에 턱을 얹은 진사혁이 눈알만 돌려 운양을 바라보았다. 그게 신호라도 되는 듯 운양의 입이 열렸다.
“워낙 은밀하게 움직여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았네. 그래도 몇 가지는 건졌지. 첫째, 이번 일은 위지천백의 명령 아래 공노명이 직접 지휘하고 있다는 것이네. 그리고 두 번째는 제왕성 전체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네.”
진사혁의 눈이 독고무령 쪽으로 돌아갔다.
역시나 독고무령의 입이 열렸다.
“역시 그랬군. 그럼, 전쟁을 본격적으로 하겠다는 말이겠지?”
진사혁의 눈이 운양 쪽으로 돌아갔다.
“그런 것 같네. 그것도 단기전으로 승부를 볼 생각인 것 같더군. 왠지 모르게 서두르는 느낌이야.”
독고무령의 눈빛이 깊숙이 침잠되었다.
“그들이 왜 서두른다고 보나?”
“정확히는 알 수 없는데, 내 생각으로는 내부에서 모종의 일이 생긴 것처럼 보이네.”
“내부라…… 배후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나?”
운양이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고개를 젓는 그의 입가로 묘한 웃음이 번졌다.
“아직은……. 하지만 조금만 더 있으면 알게 될 거네. 낚시를 몇 개 던져 놨거든.”
독고무령은 운양의 말을 들으며 찻물로 입술을 적셨다. 그리고 운양의 말이 끝나자, 이전에 그에게 부탁했던 일에 대해 물었다.
“정주에 간 사람에게서 들어온 소식은 없나?”
하남 정주, 유백하가 원주였던 백운서원을 말함이었다. 운양이 자신의 부탁을 받고 사람을 하나 보냈다고 했던 것이다.
운양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아직 별 다른 건 없네.”
“유하령에 대해선 알아보았다던가?”
“아직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했다고 하더군. 워낙 오래된 일이다 보니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은가 보네. 뭐 백운서원의 사람들조차 그녀를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 판이니…….”
하긴 그게 언제 적 일이던가. 더구나 제왕성에 의해 쫓기던 여인이 아니던가. 그녀는 살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흔적을 최대한 남기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백운서원의 사람들 중 그녀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건 조금 이상한 일이었다.
“백운서원의 사람들이 그녀를 모른다고?”
독고무령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운양이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칠팔 년 전, 백운서원의 학자들 대부분이 하룻밤 사이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고 하네. 당시 서원에 없어서 살아남은 사람이 둘 있었는데, 그들은 지금 있는 사람들이 들어오자 모든 걸 넘겨주고 도망치듯이 서원을 떠났다고 하더군.”
“학자들이 떼죽음을 당했는데, 두 사람만 살았다?”
독고무령의 미간에 한 줄 주름이 졌다.
왜 그들을 살려놨을까? 겁이 났으면 왜 바로 떠나지 않고 사람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도망치듯이 떠났을까?
“그들을 찾아보라고 하게.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잖아도 정주에 간 수하가 지금 그들을 찾고 있다고 하네.”
독고무령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놈들 짓이겠지.’
예전 장가장을 떠날 때, 백운서원으로 가볼까 하는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천자무서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서 제왕성이 유하령을 쫓고 있는 상황. 보나마나 백운서원은 철저히 감시당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더구나 천자무서의 해독서에 대해 알고 있는 자신마저 사라진 마당이 아니던가.
눈에 핏발이 선 남조경은 분명 자신과 유백하가 연관된 곳은 어디라도 손을 뻗었을 터. 그중 가장 중요한 곳인 백운서원 감시를 더욱 강화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래서 곧장 태행산으로 향했던 것이다. 남조경이 쫓아올 수 없는 무천련의 영역으로.
지금 생각하면 천만다행이었다. 만일 그곳으로 갔으면 범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민 꼴이 되었을 것이 아닌가.
‘언제든 시간이 나면 내가 직접 가봐야겠군.’
유하령의 일도 그렇지만, 찾아야 할 물건이 있었다. 유백하가 남긴 마지막 선물을.
‘정세가 가라앉으면 정주에 갔다 올 정도의 시간은 나겠지.’
독고무령이 생각에 잠겨 있자, 눈알만 굴리던 진사혁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던졌다.
“무슨 말이야? 배후는 뭐고, 정주의 일은 뭐고, 낚시는 또 뭐야?”
운양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진사혁을 바라보았다.
“자넨 골치 아픈 거 싫어하잖아. 먹을 거라면 몰라도.”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진사혁이 곤 끝에서 턱을 떼었다.
“먹을 것? 가만? 자네 정말 아무 것도 안 줄 거야? 나보고 이 텁텁한 차로 배를 채우라는 뜻은 아니겠지?”
운양이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걱정 말게. 곧 요리가 될 테니까.”
“그래? 그럼 먹고 나서 나머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떻겠나?”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누군가가 방문을 두들겼다. 그리고 곧 초운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형, 요리가 다 되었는데요, 안으로 가져갈까요?”
족히 칠인 분도 넘는 요리가 탁자에 가득 찼다.
진사혁의 입에서 침 삼키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흘러나오는 걸 보고 운양이 피식 웃었다.
그러다 갑자기 떠오른 어떤 생각에 초운을 바라보았다.
“아까 조 당주가 뭘 조사한다고 하던데, 무슨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