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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55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4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55화

 

55화

 

 

 

 

 

 

“무슨 말? 살릴 수 있는 사람을 놔두고 왜 떠났느냔 말이다! 너희들이 제대로 일처리를 했으면 몇 사람은 살았을 것이 아닌가!”

 

그때였다. 자세한 사정을 적어 두 번째 전서구를 막 날려 보낸 구양소현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웃기는 사람이군.”

 

서문도는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벙찐 표정을 지었다.

 

“방금 뭐라고 했지?”

 

아마 구양소현이 아름답지 않았다면, 나중에 어떻게 해볼 마음만 없었다면 당장 욕이 튀어나왔을 것이었다.

 

물론 구양소현은 그런 서문도의 마음을 조금도 알아주지 않았다.

 

“웃기니까 웃기다고 한 거다, 왜?”

 

서문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뭐, 뭐야?”

 

일이 점점 더 커질 것 같다.

 

그런데 독고무령도 은근히 구양소현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 정말 웃기는 자가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일이 커져봐야 좋을 것이 없는 상황.

 

독고무령은 구양소현이 또 일을 벌이기 전에 자신이 직접 나섰다.

 

“시간을 지체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했소. 그 정도는 이해할 거라 생각하오만.”

 

“뭐라? 그럼 내가 너희들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뭐라고 하는 거란 말이냐? 이 건방진 것들이!”

 

욕설에 가까운 말투. 

 

독고무령의 눈빛이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자신의 위치만 믿고 거만을 떠는 작자다. 자신의 분노를 남에게 떠맡기는 비열함으로 똘똘 뭉친 자.

 

적이었다면 더 들을 것도 없이 당장 목을 쳐버렸을 것이다.

 

‘아군인 것을 다행으로 알아라.’

 

독고무령은 구더기 보듯 서문도를 보며 냉랭히 말했다.

 

“우리는 당신에게 그런 말 들을 아무런 이유가 없소. 정 우리가 싫으면 떠날 테니 이곳은 당신들이 알아서 하시오.”

 

“뭐야? 이 자식이!”

 

버럭 소리 지른 서문도가 옆구리로 손을 가져가 칼을 반쯤 뽑았다.

 

그때 언제 다가왔는지 진사혁이 곤을 빼 서문도를 가리켰다. 그러고는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점잖게(?) 타일렀다.

 

“어허, 칼을 빼서 어쩌자는 거요? 다치기 전에 집어넣으쇼. 우리 누님에게 욕한 것 생각하면 확, 한바탕 하고 싶은데, 한솥밥 먹을 사이라니까 일단 참겠수.”

 

단순히 가리킨 것이 아니다. 곤에 내력을 집어넣었다.

 

곤 끝에서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넘실거리자 서문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 이놈들이 어디서 감히……!” 

 

“무슨 짓이냐! 감히 이공자님께 무례를 범하다니!”

 

진사혁이 곤으로 서문도를 가리키자, 주위에 있던 백마방의 무사들도 굳은 표정으로 도검을 잡았다.

 

갑작스런 상황에 철풍검대원들이 몰려오고, 백마방의 무사들도 언쟁이 이는 곳으로 다가왔다.

 

순식간에 오십여 명이 몰려들어 대치했다.

 

일촉즉발의 상황!

 

당장 싸움이라도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다.

 

“멈춰라! 뭐하는 짓이냐!”

 

그때 수하들의 매장을 지휘하던 요극한이 소리치며 달려왔다. 멀리 떨어지지 않았기에 그도 서문도와 석도명과 독고무령의 대화를 들었다. 그러니 서문도가 억지를 부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백마방주의 아들을 향해 일개 순찰조 대원이 몽둥이를 겨눈 것은 백번 양보해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네놈들이 본방의 이공자께 무례를 범하다니! 곤을 내리지 못할까!”

 

진사혁이 곤을 내리고는, 피식 웃으며 한마디 했다.

 

“도와주면 원수처럼 대하는 것이 백마방의 법도인 모양이군.”

 

“뭐라!”

 

“그렇지 않습니까? 잘못하면 죽을지 모르는데도 돕겠다고 불알 얼어붙는 날씨에 죽어라 달려갔는데, 돌아온 것은 욕뿐이었잖습니까?”

 

그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찌 본방의 공자께 함부로 대한단 말이더냐! 내 선배로서 네놈들에게 따끔한 훈계를 내릴 것이니라!”

 

눈을 부라리며 소리친 요극한은 진사혁과 독고무령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순간 진사혁이 내렸던 곤을 다시 들어 올려 요극한을 가리켰다. 동시에 굵은 목소리가 착 깔려 나왔다.

 

“후회할 행동은 자제하시지요.”

 

순간 걸음을 멈춘 요극한의 눈빛이 격하게 흔들렸다.

 

‘뭐, 뭐야, 이놈?’

 

그는 절정에 이른 고수다. 하기에 진사혁의 곤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평범치 않음을 곧바로 알아챘다. 아니, 평범하기는커녕 자신의 아래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어이가 없었다. 분명 철풍검대의 조원들이라 했다.

 

일개 조원이 자신 못지않은 고수라니!

 

“물러서게, 사혁.”

 

그때 독고무령이 진사혁을 물러서게 했다.

 

진사혁은 곤에 집어넣었던 내력을 거두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조장님께서 물러서라면 물러서야지.”

 

순간이었다.

 

“이놈!”

 

서문도가 소리치며 땅을 박찼다.

 

거리라고 해봐야 일 장 반 정도. 그의 손에 한 자루 시퍼런 칼이 번뜩였다.

 

“죽어라!”

 

누가 제지할 새도 없었다.

 

자신에게 몽둥이를 겨눈 진사혁을 단칼에 요절내버리겠다는 듯 서문도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칼을 휘둘렀다.

 

쉬이익!

 

진사혁을 향해 떨어지는 칼날에 바람이 갈라졌다.

 

찰나, 진사혁의 곤 끝이 발딱 들리며 서문도의 칼을 정면으로 후려쳤다.

 

쩡!

 

겨울의 차가운 대기를 흔드는 청명한 충돌음!

 

동시에 진사혁과 서문도가 두 걸음씩 물러섰다.

 

서문도는 자신이 밀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수하들 앞에서 철검보의 일개 조원에게 밀리다니. 그것도 선공을 했거늘!

 

그는 오히려 칼을 잡은 손에 자신의 모든 내력을 집중시켰다.

 

처음에는 오성의 진력밖에 쓰지 않았다. 자신이 본 실력을 발휘한다면 절대 밀릴 리가 없었다.

 

‘목을 쳐서 죽여 버릴 것이다!’

 

그는 욕설을 퍼부으며 다시 도를 휘둘렀다.

 

“이 개자식!”

 

“멈추게, 이공자!”

 

요극한이 다급히 소리쳐 말렸다.

 

하지만 서문도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진사혁이 두 걸음 물러서는 바람에 독고무령이 약간 앞으로 나와 있던 상황이었다.

 

독고무령은 진사혁 쪽으로 비스듬히 한 걸음 내딛고는, 번뜩이는 서문도의 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헛! 위험……!”

 

사람들이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그러나 독고무령은 일말의 동요도 없이 취접라의 수법으로 서문도의 칼날을 잡아 가볍게 밀쳤다.

 

남들이 보기에는 엉겁결에 손을 뻗은 것처럼 보이는 단순한 수법이었다.

 

그 단순한 수법에 서문도의 몸이 옆으로 일 장 가량이나 밀렸다.

 

“크읍.”

 

비틀거리는 서문도의 입을 뚫고 신음이 흘러나왔다. 독고무령이 칼을 잡아채는 바람에 내력이 뒤틀린 것이다.

 

독고무령은 서문도의 도를 밀치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심한 눈으로 요극한을 쳐다보았다.

 

“불필요한 다툼은 그만하지요.”

 

요극한의 움켜쥔 주먹에 땀이 찼다.

 

아주 간단한 수법이었다. 그저 손을 뻗어 서문도의 칼을 잡고 밀어냈을 뿐이니까. 병들어 날지도 못하는 파리를 잡아채듯이.

 

하지만 그는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전력을 다한다면 저자처럼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덩치 큰 놈도 그렇고, 다른 몇 놈도 보통이 아닌 듯 보인다.

 

요극한은 가슴에 커다란 바위가 얹힌 듯했다.

 

이놈들, 정말 철검보의 일개 조원들인가? 혹시 철검보에서 비밀리에 기른 고수들 아닐까?

 

그럴지도 몰랐다. 서연 분타에 먼저 와 있는 것만 봐도 뭔가가 이상했다. 그때 문득 오기 전에 들었던 소문이 떠올랐다.

 

‘맞아. 제왕성의 도혼단이 철검보의 철풍검대에 밀려 퇴각했다고 했지?’

 

그 생각을 하자 앞에 있는 자들이 정말 철검보의 비밀고수들처럼 보였다.

 

그러잖아도 명분이 없는 싸움. 이겨도 좋을 것 없고, 지면 고개를 들 수 없을 것이었다.

 

잠깐 사이 판단을 내린 요극한의 입에서 억눌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 역시 그만했으면 좋겠군.”

 

서문도가 상황도 모르고 소리쳤다.

 

“요 당주님! 저놈들을 그냥 놔둘 겁니까?”

 

상대에게 밀린 걸 단순히 재수가 없어서 그리되었다 생각한 표정이다.

 

하긴 자신이 서문도의 상황이었으면 그리 생각했을지 몰랐다. 그만큼 상대의 수법은 교묘하면서도 고절했다.

 

요극한은 한숨이 나왔다. 그렇다고 방주의 아들을 야단칠 수도 없는 노릇.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신중하게 달래는 것이 전부였다.

 

“이공자, 저들은 우리를 도와주고자 한 사람들이오. 이 일은 나중에 따로 이야기합시다.”

 

서문도는 이를 악물고 요극한을 노려보았다.

 

그가 아무리 방주의 아들이라 해도, 요극한은 팔당 중 하나인 전마당의 당주. 함부로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요 당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따르기는 하겠습니다만…….”

 

요극한은 고개를 저어 서문도의 입을 막고, 다시 독고무령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곳의 일은 우리가 알아서 처리하겠네. 자네들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뒤처리는 놔두고 먼저 떠나라는 말.

 

독고무령 역시 그게 더 나았다. 빨리 헤어질수록 태원으로 가는 것도 빨라질 테니까.

 

“저희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만큼 임무를 계속 수행할 생각입니다. 자세한 사정을 적어 전서구로 보냈으니 곧 사람들이 올 겁니다. 당주께선 그분들과 합류해서 움직이십시오.”

 

“음, 알겠네.”

 

대답하는 요극한의 눈빛이 잘게 흔들렸다.

 

아주 잠깐, 독고무령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순간 그는 오금이 저려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지만,

 

‘빌어먹을! 대체 저놈이 누군데…….’

 

 

 

말에 올라탄 독고무령 일행은 백마방과 헤어져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십 리를 지나 작은 냇가에 다다랐을 때였다. 독고무령이 말을 세우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가 한참을 그러고 있자, 석도명이 다가와 물었다.

 

“왜 그런가?”

 

“제왕성이 백마방의 주력을 그냥 놔둘 거라 보십니까?”

 

“글쎄. 그건 아무리 제왕성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겠나? 주력을 치려면 적어도 수백 명을 동원해야 할 텐데, 아직 그 정도의 인원이 움직인 어떤 정보도 들어온 것이 없고 말이야.”

 

“전초대를 친 자들에 대한 것도 정보가 없기는 마찬가지였지요.”

 

“하긴…….”

 

문제는 정보였다.

 

무천련의 정보망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약했다. 제왕성이 체계적인 정보망을 가지고 있다면, 무천련은 각 세력이 지닌 조잡한 정보망을 엮어서 사용하는 상황이었다.

 

그나마도 각 세력마다 자신들이 지닌 정보망을 함부로 노출시키지 않으려 했다.

 

어쩌면 그것이 여러 세력이 연합한 무천련의 한계일지도 몰랐다.

 

‘이대로는 안 돼.’

 

독고무령의 눈빛이 깊숙이 가라앉았다.

 

제대로 된 정보망이 구축되지 않는 한, 제왕성과의 싸움은 눈먼 봉사가 낭떠러지를 향해 달려가는 꼴이 될 것이다.

 

무력도 무력이지만 정보망을 구축하는 것이 더욱 시급하다.

 

때로는 정확한 정보 하나가 수백 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음이니…….

 

‘운양을 만나서 상의해봐야겠군.’

 

그라면 정보망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독고무령은 고개를 돌려서 석도명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예정대로 순찰을 돌지요.”

 

그때 진사혁이 고개를 쑥 내밀고 말했다.

 

“정 걱정되면 지금이라도 가보는 게 낫지 않을까?”

 

독고무령이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대신 구양소현이 나서서 핀잔을 주었다.

 

“싸움이 났다고 해도 우리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이미 끝났을 걸? 아무 일도 없다면 가봐야 헛걸음만 하는 거고. 아니, 또 쓸데없는 행동했다고 욕이나 안 하면 다행이지. 그래서 조장이 고민한 거라고, 멍청아.”

 

이러나저러나 가봐야 소용이 없다는 말.

 

진사혁은 구양소현의 눈치를 살피며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럼 뭐, 가봐야 소용도 없겠네.”

 

독고무령은 쓴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말의 배를 찼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완전히 옳은 말도 아니었지만.

 

확실한 것은, 욕을 얻어먹으면서까지 도와줄 만큼 자신의 마음이 넓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대의를 위해 자신을 굽히는 것은 군자들의 몫.

 

자신은 군자(君子)가 되느니 사신(死神)이 될 작정이었다.

 

하늘이 그렇게 태어나도록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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