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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82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1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82화

 

82화

 

 

 

 

 

 

관초악은 위불군의 공세를 침착하게 막아내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위협적인 공격을 가해 위불군을 압박했다.

 

때론 무겁게, 때론 날카롭게. 빈틈을 파고드는 관초악의 검세는 섬뜩할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위불군은 등줄기로 흐르는 식은땀을 느낄 새도 없이 관초악의 검을 막기에 급급했다.

 

그렇게 황암과 위불군이 관천악과 관초악에 의해 막히자 상황이 조금씩 달라졌다.

 

하지만 한번 밀린 전체적인 형세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그나마 두 사람의 가세로 더 이상 밀리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었다.

 

그 사이 구양은과 설자웅, 벽도정을 비롯한 무천련의 수뇌들은 자파의 간부들을 독려하며 제왕성의 공세를 막아냈다.

 

바닥은 흥건한 피로 붉게 물든 지 오래. 모두가 지옥에 한 발을 디딘 채 적의 살을 베어내고 뼈를 갈랐다.

 

그 사이에도 장원의 곳곳에서는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다.

 

황암이 관천악의 검세를 견디지 못하고 뒤로 밀리기 시작한 것은 삼십여 초가 지날 즈음이었다.

 

기병인 륜의 공세에 익숙해진 관천악이 방어에서 공격으로 전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상황은 여전히 무천련에 불리했다.

 

구양은과 벽도정, 설자웅과 관초악만이 조금 유리할 뿐, 나머지 고수들은 악전고투하며 적의 공세를 막아내고 있었다.

 

심지어 두이정과 구양학, 전궁산장의 수석호법인 전호양도 이를 악물고 방어진을 이탈하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판이었다.

 

그런데 그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황암이 계속 뒷걸음질 치자, 구양은과 격전을 벌이던 자가 기다렸다는 듯 소리쳤다.

 

“부각주! 아무래도 오늘은 틀린 것 같소이다! 그만 물러납시다!”

 

그는 제왕성의 십이장로 중 하나로 패검(覇劍) 양무등이란 자였다.

 

그가 소리치자, 황암도 훌쩍 뒤로 물러났다.

 

“모두 후퇴하라!”

 

크게 밀리는 것도 없는데 후퇴를 외친다. 오히려 남쪽을 제외한 서쪽과 북쪽은 금방이라도 뚫릴 것만 같은 상황이거늘.

 

하지만 무천련의 사람들은 의문을 품을 여유가 없었다.

 

혈향이 코를 찌르고, 비명과 신음소리가 환청처럼 귀청에서 메아리친다. 그저 적의 후퇴가 반갑기만 했다.

 

관천악은 황암을 향해 검을 뻗으며 노성을 내질렀다.

 

“이놈, 황암! 어딜 가려고 그러느냐! 비겁하게 도망가지 말고 나와 백초를 더 겨뤄보자!”

 

“놈들이 후퇴하려고 한다! 더 몰아붙여라!”

 

각 문파의 수장들도 악을 쓰며 더욱 강하게 적을 몰아붙였다.

 

 

 

대풍전 앞마당이 피로 뒤덮이던 그 시각, 남쪽을 제외한 서쪽과 북쪽은 악전고투를 하며 적을 막아내고 있었다.

 

오백이 넘던 무천련의 무사들은 이미 반 가까이가 쓰러졌다.

 

시신이 발에 걸려 신법조차 제대로 펼칠 수 없을 상태. 간혹 핏물에 발이 미끄러지는 어이없는 상황조차 연출되는 판이었다.

 

“그쪽을 막아!”

 

“놈들을 죽여라!”

 

“으악!”

 

“물러서지 마!”

 

악다구니에 뒤섞여 터져 나오는 비명과 신음!

 

당장 도망가고 싶어도 사방이 막혀 도망갈 곳이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기를 휘둘러 적을 죽이는 것. 아니면 적의 무기에 죽어가는 것뿐.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무천련 무사들의 눈빛에서 광기가 돌았다.

 

이제는 죽음조차 당연하게 여겨지는 듯 그들은 미친 듯이 악을 쓰며 제왕성의 공격에 부딪쳐갔다.

 

“크하하하! 어디 죽일 테면 죽여 봐라!”

 

“얼마든지 와라! 개자식들!”

 

“덤벼! 덤벼봐! 씨벌새끼들아!”

 

팔이 잘리면 발로 차고, 팔조차 잘리면 머리로 들이받는다.

 

그 광경이 어찌나 험악한지, 그토록 살벌하게 몰아치던 제왕성의 무사들조차 주춤거리며 공격의 고삐를 늦췄다.

 

 

 

그동안에도 철검기와 전궁기가 주축이 된 남쪽 방어벽은 철벽처럼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제왕성의 무사들이 담장까지 밀린 상태였다.

 

어이없는 것은, 그런 상황이 된 게 한 사람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공포에 질린 눈빛.

 

자신들이 겪은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

 

이를 악문 제왕성의 무사들은 무천련 무사들의 공세를 막는 와중에도 기회가 날 때마다 한곳을 흘끔거렸다.

 

그곳에서는 검혼단과 도혼단의 중간간부 일곱 명이 힘을 합쳐 한 사람을 상대하고 있었다.

 

조금 전만 해도 열 명이었던 인원이 십 초가 지나기도 전에 셋이 죽고, 일곱 명만이 남았다. 일류 중의 일류라는 고수들이!

 

게다가 싸우고 있는 일곱 명 중에서도 두어 명이 쓰러지기 직전이다.

 

-사신(死神)! 저자는 사신이다! 

 

저자 혼자서 사십 명을 넘게 죽였다.

 

몽둥이를 휘두르는 미친놈이나, 활을 쏘는 놈,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는 놈에게 죽어간 자들도 적지 않지만, 그들은 사신에게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제왕성 무사들이 공포에 질려 있을 때였다. 빗살처럼 허공을 베어가던 독고무령의 검이 두 사람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쉬아아악!

 

“끄으으!”

 

“허억!”

 

도를 휘두르던 자의 목이 기묘하게 꺾여 옆으로 기울어지고, 검을 휘두르던 자의 허리가 접힌 채 그대로 꼬꾸라진다.

 

독고무령은 그들의 죽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바람개비처럼 몸을 휘돌렸다.

 

호접무 중의 하나인 호접회풍류(虎蝶回風流).

 

공세를 겸할 수 있는 절고의 신법이 펼쳐진 것이다.

 

“물러서!”

 

검혼단의 조장 중 하나가 대경해서 소리쳤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가 채 스러지기도 전, 독고무령의 검첨에서 흘러나온 검기가 한 사람의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얼굴에 혈선이 그어지며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억!”

 

나머지 네 사람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뒤로 튕기듯 물러났다.

 

독고무령은 물러나는 그들을 향해 유령처럼 나아가며 검을 뻗었다.

 

그때였다.

 

삐이이익! 삐삐이이이익!

 

어디선가 기다란 소성(嘯聲)이 울렸다.

 

기다렸다는 듯 제왕성의 무사들은 담장을 넘기 위해 신형을 날렸다.

 

철검기, 전궁기, 무천련의 무사들은 방어막이 흐트러지자 담장을 넘으려는 적들을 공격했다.

 

“어딜 도망가려고!”

 

“갈 때는 네놈들 맘대로 갈 수 없을 것이다!”

 

어이없게도 제왕성의 정예라는 검혼단과 도혼단의 무사 십여 명이 도주하다 죽어갔다.

 

그럼에도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담장을 넘어갔다. 사신이 쫓아올 것이 두렵다는 듯.

 

독고무령은 두 명의 조장을 더 죽이고 나서야 검을 멈췄다.

 

이미 남쪽 담장 안에는 살아있는 제왕성의 무사가 단 한 사람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 * *

 

 

 

공격을 시작한지 반 시진.

 

광란의 살겁을 자행하던 제왕성 무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무천련의 무사들은 쫓을 생각도 못한 채 멍하니 서서 바라보기만 했다.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

 

삭풍에 핏물로 젖은 몸이 으스스하니 떨렸다.

 

지옥의 문턱에서 살아나왔거늘, 기뻐하는 표정을 짓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적들이 물러간 자리에는 시뻘건 선혈과 시신과 신음소리만이 남았다.

 

“크윽, 내 다리……!”

 

“살려줘……. 이, 이봐…… 나 좀…….”

 

피가 흥건한 바닥을 기며 살려 달라 애원하는 사람들.

 

죽은, 죽어가는 동료를 끌어안고 울부짖는 사람들.

 

“조금만 참아! 곧 괜찮아질 거야! 너는 살 수 있다니까!”

 

“으아아아! 개자식들!”

 

일천에 달하는 사람들의 신음과 울부짖음에 쏟아지던 햇빛조차 얼어붙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죽은 동료를 끌어안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무천련의 군웅들은 이를 악물고 주위를 정리했다.

 

그 와중에 무천단의 활약이 일파만파로 번졌다.

 

사실 급조된 단체여서 별 다른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런데 적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힌 것이다.

 

특히 남쪽을 맡은 철검기와 전궁기의 활약에 대한 이야기는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무천련의 무사들은 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새로운 소문을 전하며 쑥덕거렸다.

 

“철검기는 죽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더군.”

 

“그게 정말인가?”

 

“나도 듣기만 했는데, 그 독고무령이란 기주가 혼자서 적을 오십 명도 넘게 죽였다고 하네. 오죽하면 제왕성 놈들이 겁에 질려서 사신이라고 소리쳤더구먼.”

 

“지미, 철검기에서 사람 더 안 뽑나?” 

 

 

 

소문대로 철검기 이십 명의 무사들 중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오기천, 모덕명, 나인창, 용호종이 중상에 가까운 부상을 당했고, 유원위와 조한상 등 열 명 가까운 사람이 가볍지 않은 부상을 입었다.

 

무천단의 다른 기에 비하면 적은 희생이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겁게 내려앉은 기분이 풀어지지는 않았다.

 

싸움이 끝난 후 철검기는 백마방이 머물던 별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제부터는 철풍검대가 아닌 무천단으로서 움직여야 했다. 철검기만이 아니라 십기 모두가 그곳을 거처로 사용하게 될 터였다.

 

독고무령은 일단 부상자들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옆에서 그를 돕던 진사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의문을 표했다.

 

“도대체 알 수가 없군. 놈들이 왜 그냥 물러났지?”

 

“피해를 더 보면 안 된다고 생각했겠지.”

 

“강하게 밀어붙였다면 오늘 싸움으로 무천련을 완전히 끝장낼 수 있었을 텐데, 그 정도 피해가 대순가?”

 

사실이 그랬다.

 

독고무령이라고 해서 모르지 않았다.

 

남쪽만 유리했을 뿐, 다른 곳은 제왕성에 밀렸다. 진사혁의 말대로 강하게 밀어붙였으면 제왕성의 승리로 끝났을지도 몰랐다.

 

설령 양패구상의 상황이 된다 해도 제왕성은 아직 배도 더 되는 전력이 본성에 있지 않던가.

 

서연이 무너지고 그들이 나오면, 무천련은 손을 들 수밖에 없는데 왜 포기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억지로 유추한다면 그럴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전력의 손실을 줄이겠다는 것.

 

하지만 그것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천련을 무너뜨리려는 자들이 왜 전력 보존에 그리 신경을 쓰는 걸까?

 

싸움이 길어지는 것보다는 피해가 많아도 한 번에 끝내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말이다.

 

혹시 무천련 말고도 상대해야 할 강력한 적이 또 있단 말인가?

 

‘두고 보면 알겠지…….’

 

의문을 접은 독고무령은 용호종의 상처를 싸매고 구양소현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진사혁이 손봐준다는 걸 바득바득 거절하고, 자신이 손봐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기껏 해봐야 팔이 한 치쯤 찢어진 걸 가지고.

 

“약 좀 뿌리고 싸매면 될 텐데 왜 가만있지?”

 

“기주가 해줘요.”

 

“사혁이가 해준다고 했잖아?”

 

구양소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곰이 손보면 덧날지 모르니까 기주가 해달라고요!”

 

사람들은 못들은 척 두 사람을 바라보지 않았다.

 

사실 구조의 사람들 중 구양소현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은 독고무령밖에 없었다. 잘못 끼어들었다가 봉변을 당하기는 싫었다.

 

물론 진사혁은 예외였다.

 

“누님, 그 정도는 나도 할 줄 안다니까요?”

 

“시끄러!”

 

독고무령은 구양소현의 입을 막기 위해 하는 수 없이 직접 손을 썼다. 구양소현은 생글거리며 독고무령을 빤히 쳐다보았다.

 

“정말 신기하게 안 아프네. 기주는 누구에게 의술을 배웠어요?”

 

의술이 아니다. 고문할 때 쓰는 방법이지.

 

“상처를 잘못 다스리면 덧나거나 흉터가 생기는데, 기주가 손본 상처는 빨리 낫고 흉터도 안 진다면서요?”

 

죄인을 취조하려면 최대한 오래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상처를 잘못 손대면 오히려 그로인해 죽을 수도 있다. 하기에 상처를 살피는 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일이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조용히 하고, 저쪽 가서 쉬고 있어.”

 

구양소현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한쪽으로 물러났다.

 

독고무령은 고개를 돌려 용설을 바라보았다.

 

그의 옷 역시 여기저기 피가 묻어 있었다. 적의 피만 묻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도 상당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상처를 부득불 자신이 치료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놔두었는데, 창백한 얼굴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괜찮나?”

 

독고무령의 질문에 용설이 어물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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