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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80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1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80화

 

80화

 

 

 

 

 

 

* * *

 

 

 

오백에 달하는 무사들이 얼어붙은 황야를 가로질렀다.

 

삭풍이 부는데도 그들은 입을 꾹 다문 채 오직 동쪽으로만 내달렸다.

 

그렇게 낮은 언덕을 넘고, 메마른 황무지를 지나 대우와 능정 사이를 통과할 즈음, 그들의 세가 더욱 불어났다.

 

양쪽 언덕에서 쏟아져 내려온 무사들 수백이 그들과 합류한 것이다.

 

 

 

무천련의 순찰 제오조는 어깨를 움츠린 채 언덕 위를 향해 말을 몰았다.

 

“빌어먹게 바람까지 부는군. 바람만 안 불어도 살겠는데 말이야.”

 

“납작 엎드려서 말을 끌어안으라구. 그럼 혹시 알아? 말이 흥분해서 뜨거운 열을 뿜어낼지. 낄낄낄…….”

 

“이거 가죽옷이 불량 아냐? 왜 이렇게 바람이 술술 들어와?”

 

그들은 추위를 이기기 위해 농담 반 진담 반 떠들어대며 언덕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언덕을 넘었을 때였다.

 

그들은 저 앞에서 새까맣게 밀려오는 무사들을 보고 대경했다.

 

“무, 뭐야!”

 

“제왕성이다! 빨리 전서구를 날려라!” 

 

곧 순찰무사가 새장에서 두 마리의 전서구를 모두 꺼냈다. 그러고는 작은 쪽지에 다급히 몇 글자를 휘갈긴 후 전서구의 다리에 달린 전서통에 집어넣었다.

 

“가라! 가서 놈들의 침공을 알려라!”

 

두 마리의 전서구가 차례대로 날아올랐다.

 

그때였다.

 

쉬쉬쉬쉭!

 

뒤쪽에서 십여 발의 화살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적은 앞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전서구 한 마리는 십여 장을 날아오르다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먼저 날아오른 한 마리는 깃털을 흩뿌리며 힘겹게 동쪽으로 날아갔다.

 

동시에 수십 명이 순찰조의 등 뒤를 덮쳤다.

 

“모두 흩어져서 도망쳐라!”

 

누군가가 소리치며 다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하지만 빠져나갈 곳이 없었다.

 

눈 깜짝할 순간에 순찰조를 포위한 제왕성의 무사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도검을 휘둘렀다.

 

연이어 터져 나오는 참담한 비명!

 

“빠져나가라!”

 

“으악!”

 

“크어억!”

 

황야가 순식간에 붉은 피로 얼룩지고, 이십 명의 순찰무사들은 제대로 대항해보지도 못한 채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제왕성의 무사들은 순찰조를 한 사람도 남기지 않은 채 몰살시키고는, 동쪽 언덕을 넘어 사라졌다.

 

 

 

* * *

 

 

 

둥! 둥! 둥! 둥…….

 

북소리가 빠르게 울렸다.

 

대풍장에 모였던 군웅들은 갑작스런 타고소리에 대연무장으로 모여들었다.

 

웅성웅성…….

 

“뭐야? 무슨 일이지?”

 

“갑자기 웬 비상 타고야?”

 

“쓰벌, 뭔 일 벌어진 거 아녀?”

 

그때였다. 아직 치워지지 않은 비무대에 오른 관초악이 군웅들을 향해 소리쳤다.

 

“무천련의 모든 무인들은 각파의 거처로 돌아가서 비상대기 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무천단의 십기주들은 최대한 빨리 단원을 뽑아서 대풍전 앞마당으로 모이도록 하시오!”

 

누군가가 소리쳐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오? 제왕성의 공격이라도 있는 거요?”

 

제왕성의 공격!

 

그 말 한마디에 웅성거리던 군웅들이 조용해졌다.

 

관초악은 대충의 상황만 알려주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없소! 각자의 거처로 가면 바로 지시가 떨어질 것이니, 여러분들은 일단 가서 기다리도록 하시오!”

 

 

 

무천단의 십기에도 집합명령이 떨어졌다.

 

독고무령은 스무 명의 단원들과 함께 백마방이 머물던 별원으로 갔다. 백마방이 떠난 그곳을 무천단이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가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곧 관조운, 전유곤이 단원들을 데리고 도착했다.

 

그리고 반각, 십기주들 중 일곱 명이 단원들을 데려왔다. 그때까지도 오지 않은 사람은 포원기주 사공화정뿐이었다.

 

독고무령은 기주들을 둘러보았다.

 

자신의 기가 철검기(鐵劍旗)이듯 십기의 이름은 각자가 속한 문파나 기주의 별호를 따서 붙였다.

 

일원기주 관조운, 칠혼기주 배위당, 화천기주 벽계진, 전궁기주 전유곤, 패웅기주 남위청, 창룡기주 위검학, 항룡기주 나호민, 섬전기주 유창. 

 

모두가 긴장한 표정이었다.

 

하긴 제왕성과의 싸움을 앞둔 상황. 긴장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뒤에는 각 기에 속한 무사들이 서 있었는데, 시간이 촉박해서인지 숫자가 서너 명씩 모자라는 기도 있었다.

 

특히 문파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이끄는 기는 숫자가 더욱 부족했다.

 

그런데 예상했던 대로, 그들 중 절정고수라 할 만한 자는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심지어 일원궁에서 뽑힌 육십 명 중에서도 절정고수는 서너 명에 불과했다.

 

위안이라면 모두가 일류고수 수준은 된다는 것 정도.

 

‘그래도 제왕성의 정예인 삼단 중 둘 정도는 상대할 수 있겠군.’

 

독고무령은 무천단의 무력을 그렇게 평가했다.

 

그때 사공화정이 헐레벌떡 나타났다.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그가 데려온 사람은 열다섯. 복장과 무기가 제각각인 걸로 봐서 중소십이문파에서 골고루 뽑은 듯했다.

 

그들을 본 오대세력의 무사들 얼굴에 보일 듯 말듯 비웃음이 스쳤다.

 

하지만 독고무령은 그들과 생각이 달랐다.

 

‘괜찮은 사람들이 제법 섞였군.’

 

모두가 뛰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열다섯 명 중 다섯 명 정도는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쓸 만했다.

 

십기의 인원과 자격에 대한 것은 오늘 오전에야 발표되었다. 그런데도 짧은 시간에 저 정도의 사람을 골랐다는 것은, 그만큼 사공화정이 사람을 볼 줄 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사공화정마저 도착하자 관초악이 입을 열었다.

 

“정말 놈들이 이곳을 공격할지 안 할지는 아직 모르오. 허나 공격할 거라는 생각을 하고서 명을 내리겠소. 시간이 없어 손발을 맞춰보지 못한 게 아쉽지만, 모두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주길 바라겠소!”

 

 

 

그 시각.

 

전서구 한 마리가 힘없는 날갯짓으로 대풍장에 날아들었다.

 

전서구를 담당하는 노중한은 한쪽 날개가 피로 물든 전서구를 보고는, 전서구의 다리에서 전서통을 잡아 뜯었다. 전서구의 다리가 뜯겨져도 상관없다는 듯 거친 손길이었다.

 

즉시 전서통에서 작은 종이쪽지를 뺀 노중한의 얼굴이 급살이라도 맞은 듯 창백해졌다.

 

“이런 제기랄! 진짜였어! 이봐! 자네는 여기서 대기하면서 전서구가 오면 바로 연락하도록 해!”

 

벌떡 일어난 그는 한쪽에 서 있는 장한에게 소리치고 방문을 향해 달려갔다.

 

그가 장한을 스쳐지나간 순간이었다. 가만히 서 있던 장한이 대답 대신 손을 휘둘렀다.

 

쉭!

 

싸늘한 칼날이 노중한의 뒷목을 훑고 지나갔다.

 

노중한은 문고리를 잡은 채 몸이 굳어버렸다.

 

“너…… 너…….”

 

그가 억지로 입을 열자, 두 번째 칼질이 그의 뒤통수를 반으로 갈랐다.

 

“어차피 가져다줘도 소용이 없을 거야.”

 

장한의 입가로 살소가 번졌다.

 

“네놈들이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을 테니까.”

 

 

 

* * *

 

 

 

노중한의 숨이 멎을 즈음, 정문을 지키던 왕오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유난히 청력이 뛰어난 그의 귀에 이상한 소음이 섞인 소리가 들렸다. 단순히 바람소리라고 하기에는 이상할 정도로 무겁게 느껴지는 소리였다.

 

”어? 이게 뭔 소리지?”

 

옆에 서 있던 마삼이 그를 흘겨보았다.

 

“소리? 그야 안쪽에서 지금 시끄럽잖아.” 

 

“그게 아니라니까! 가만? 이거…… 이거 혹시……?”

 

버럭 소리를 지른 왕오는 앞으로 걸어가며 전면을 주시했다.

 

그가 십여 장쯤 걸어갔을 때였다. 저만치 사백여 장가량 떨어진 나지막한 언덕 위에 검은 그림자가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림자는 순식간에 수백으로 불어나더니, 곧장 대풍장을 향해서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홱 몸을 돌린 왕오가 악을 쓰듯 소리쳤다.

 

“빌어먹을! 적이다아아!”

 

다른 위사들도 그제야 엄청난 무사들을 발견하고 고래고래 악을 썼다.

 

“적이다!”

 

“제왕성이 공격해온다!”

 

“비상! 비상! 제왕성 놈들이다!”

 

 

 

연락을 받고 대처했다 해도 일각의 여유밖에 없었다. 완벽한 방어망을 구축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

 

거기다 믿지 않는 사람마저 상당수인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무사들이 흩어지지 않고 모여 있는 상태라는 것이었다.

 

사방에서 적의 침입을 알리는 소리가 울리자, 비상대기 하던 무사들이 거처에서 뛰쳐나왔다.

 

“개자식들! 하필이면 왜 추운 날을 골라 쳐들어오는 거야!”

 

“잔말 말고 상관의 지휘대로 움직여!”

 

“빨리빨리 나가라! 놈들이 들어온다!”

 

그 사이 삼백여 장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그리고 곧 한겨울의 칼바람이 폭풍처럼 대풍장을 덮쳤다.

 

“쓸어버려라!”

 

 

 

 

 

 

 

제2장 혈전(血戰)은 의문(疑問)만 남기고

 

 

 

 

 

독고무령은 철검기의 무사들과 함께 남쪽으로 달려갔다.

 

전궁기의 전유곤이 그를 따라왔다.

 

“이봐! 누가 놈들을 많이 처치하나 내기할까?”

 

전유곤이 독고무령을 향해 소리쳤다. 

 

독고무령 대신 진사혁이 맞받아쳤다.

 

“나하고 하지!”

 

“난 곰하고는 내기하지 않아!”

 

“겁나면 겁난다고 해!”

 

“내가 왜 곰에게 겁을 내나? 화살 한 방이면 끝인데.”

 

“훗, 그까짓 화살로는 내 머리털도 못 건드릴걸?”

 

“원한다면 나중에 확인시켜주지.”

 

“좋을 대로!”

 

쓸데없는 말다툼처럼 들렸다.

 

그러나 나름대로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감을 풀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철검기와 전궁기 서른아홉 명이 남쪽에 도착할 무렵, 제왕성 무사 수백 명이 담장을 날아 넘었다.

 

전유곤이 어깨에서 두 발의 화살을 빼내 시위에 걸고 소리쳤다.

 

“이봐, 곰! 잘 봐! 내가 어떻게 담 넘는 도둑놈들을 처리하는지!”

 

진사혁도 곤을 힘껏 움켜쥐고 대꾸했다.

 

“크하하, 아무리 그래도 내 몽둥이가 더 많이 쓰러뜨릴걸?”

 

그 사이 철검기와 전궁기의 무사들은 제왕성의 무사들을 향해 달려갔다.

 

 

 

남쪽으로 넘어온 자들은 검혼단의 무사들이었다.

 

철검기와 전궁기가 도착하기 전에 나와 있던 무천련의 무사들이 먼저 그들과 부딪쳤다.

 

“놈들을 막아라!”

 

“으악!”

 

“크억!”

 

“흐트러지지 마라!”

 

그러나 일반무사들이 상대하기에는 검혼단의 무사들이 너무 강했다. 철검기와 전궁기가 달려가는 짧은 순간에 이십여 명이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전유곤이 소리치며 먼저 두 발의 화살을 쏘았다.

 

“뒤쪽에 있는 놈들을 노려라!”

 

쉬쉭!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날아간 화살은 검혼단 무사의 목과 어깨를 꿰뚫고 반대쪽으로 삐져나왔다.

 

뒤이어 전궁기의 무사들이 이십여 발의 화살을 쏘아냈다.

 

쉬쉬쉬쉭!

 

기껏해야 십수 장의 거리다. 제아무리 검혼단이 정예로 이루어졌다 해도, 그 거리에서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화살은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십여 명이 급살이라도 맞은 듯 신음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그제야 검혼단의 무사들 중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전궁산장 놈들이다! 화살을 조심하라!”

 

“저놈들을 먼저 쳐라!”

 

전궁기의 무사들은 재빨리 화살을 재고 검혼단 무사들을 노렸다. 

 

또다시 수십 발의 화살이 허공을 갈랐다.

 

쉬쉬쉬쉭!

 

하지만 검혼단의 무사들이 경각심을 가진데다가 도혼단마저 넘어오면서 수백 명이 뒤엉켜버렸다.

 

사람들이 뒤엉키자 전궁기의 활은 더 이상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 순간 진사혁이 몸을 날리며 검혼단 무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우하하하, 이제 내 차례다!”

 

 

 

독고무령은 전유곤과 진사혁이 경쟁하듯 소리치는데도 입을 꾹 닫은 채 적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무사 둘이 독고무령을 향해 달려들며 도검을 휘둘렀다.

 

독고무령은 허수아비를 상대하는 듯 일말의 표정변화도 없이 검을 뻗었다.

 

스스슥!

 

일 검으로 상대의 검을 튕겨내고, 두 번째 검으로 상대의 목을 베어냈다.

 

“컥!”

 

한 사람이 반쯤 잘린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독고무령은 그를 보지도 않고 검을 비틀었다. 검첨이 다음 목표를 노리고 번개처럼 뻗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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