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78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78화
78화
독고무령은 관천악이 부른 사람들의 면면을 보고 상황을 대충 짐작했다.
다만 문제는 자신이었다.
모인 사람은 모두 비무에서 결선에 오른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차전에 참가하지도 않은 자신을 왜 불렀을까?
물론 짐작 가는 바가 없지는 않았다.
‘나를 무천단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건가?’
전각 안의 사람들은 독고무령을 보고 시선을 멈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제야 관천악의 생각을 알고 작은 탄성을 터트렸다.
“아……!”
“그렇군. 그런 생각이었어.”
관천악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눈치 챌 때까지 기다린 후, 독고무령에게 물었다.
“독고무령, 그대에게 무천단 십기 중 하나를 맡길까 한다. 응낙하겠는가?”
자신의 짐작대로 상황이 흐른다.
나름대로 생각한 것이 있기에, 독고무령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관천악이 만족한 듯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들었다시피 십기 중 하나를 독고무령에게 맡길 생각이오. 열 분 이상이 반대한다면 없던 일로 하겠소. 찬성하는 분은 손을 들어보시오.”
세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서문태강을 물리친 독고무령이다. 누가 반대할 것인가.
사람들을 둘러본 관천악이 결정을 내렸다.
“되었소. 그럼, 그렇게 단주와 십기주를 정하도록 하겠소!”
독고무령은 깊어진 눈빛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밖에 있으면서 관초악과 관천악의 말을 들었다.
두 사람 역시 자신처럼 정보망의 중요성을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자신의 생각과 다른 점은, 그들이 정보망을 일원궁의 휘하에 두려한다는 점이었다.
‘그것 때문에 무천단을 급조해서 만든 것인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흐르고 있었다.
‘그대 뜻대로 흐르지만은 않을 것이오, 대련주.’
이제 그의 관심은 과연 십기주에게 얼마만큼의 권한이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두이정이 독고무령의 속을 풀어주려는 듯 무천단과 십기주의 권한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무천단은 문파를 초월한 단체로, 무천련 내의 모든 정보조직을 이용해서 독자적인 작전을 수행하게 될 거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련주만이 명을 내릴 수 있으며, 각 문파들은 무천단이 도움을 원할 경우 우선적으로 들어줘야 하오.”
독고무령이 그 말을 듣고 눈빛을 반짝였다.
모든 정보조직을 이용해서 움직인다고?
그것은 결코 작은 권한이 아니었다.
게다가 독자적인 작전을 펼칠 수 있고, 언제든 다른 문파의 도움도 받을 수 있다지 않은가.
‘생각보다 괜찮군.’
그 정도면 일개 조직치고는 최고의 권한을 부여받았다고 봐야 했다. 그는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두이정의 이어지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단주와 십대기주에게는 각자 이십 명의 무사들을 선출할 수 있는 자격이 있소. 물론 자파든, 타파든, 아무 상관없소. 제왕성과의 싸움이 코앞에 닥친 만큼 이곳을 나가는 순간부터 단원들을 차출하시오.”
‘일기에 이십 명. 단원 전체로 봤을 때 모두 이백이십 명이군.’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다. 강한 자들이 모일 테니까.
‘잘됐어. 어차피 제왕성의 정예 단체에 대항할 주력이 하나쯤 있었으면 했는데…….’
* * *
백마방 무사들이 서둘러서 대풍장을 떠났다.
누구도 그들을 말리지 못했다.
가족을 위해, 동료를 위해 떠나는 길이다. 가다가 습격을 받아 죽을지 몰라도 가야만 하는 길이기에 가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백마방의 뒤에 대고 소리쳤다.
“이봐! 가서 팔기보를 혼내주라고!”
“그깟 놈들에게 당할 백마방이 아니라는 걸 보여줘!”
하지만 그 어떤 위로에도 백마방 무사들의 어깨는 무겁게만 보였다.
독고무령은 그들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몸을 돌려서 철풍검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각기의 대원 이십 명.
독고무령은 그중 대부분을 철풍검대에서 채웠다.
진사혁을 비롯한 구조원 여덟 명, 용설과 그의 형제인 나인창, 한무종. 그리고 석도명과 유원위, 조원화, 연사성을 비롯해서 장효와 막추성까지.
소강은 수양에서 입은 부상이 많이 나았지만, 그래도 일단은 제외시켰다.
독고무령은 그렇게 일차 인원 열일곱 명이 결정되자, 각자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빼주도록 하겠소. 언제든 말하시오.”
사람들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눈빛으로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모덕명이 아주 간단하게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대주와 함께 싸우다 죽고 싶습니다.”
독고무령은 사람들을 차례차례 둘러보았다. 반짝이는 눈빛들이 절정고수 저리가라 할 정도다.
“나는 내 수하들이 죽는 걸 좋아하지 않소. 그러니 살려면 지금보다 배는 더 노력해야 할 거요.”
모두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방이 떠나갈 듯이 대답했다.
“예, 대주!”
“걱정 마십시오!”
“노력하는 거라면 자신 있습니다!”
무공이 강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마음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더 빨리 죽는다. 최소한 그것만큼은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독고무령은 만족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둘러보고는 사도단영에게 명을 내렸다.
“사도단영, 가서 서문도와 싸웠던 표은종이 어디 있는지 알아보고 데려와라.”
“표은종? 아, 그 사람요? 알겠습니다.”
사도단영이 나가자 사람들에게 물었다.
“비무에서 봤던 사람이든 누구든,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말해보시오.”
지켜보고만 있던 적수등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전유곤과 싸웠던 자가 괜찮은 것 같더이다.”
진사혁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도일성인가 하는 자 말이오? 흠, 그자라면 괜찮을 것 같군요. 이차전에서 패해 그렇지, 채찍을 휘두르는 게 보통이 아니던데.”
채찍이라는 말을 들으니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조금 고집스런 표정으로 전유곤과 정면대결을 벌이던 청년으로 비무자 중 유일하게 채찍을 사용했었다.
당시 그는 전유곤에게 밀리면서도 눈빛에선 물러서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보였었다.
고집과 투지를 지닌 자. 괜찮을 것 같았다.
“누군지 알 것 같군. 가서 데려오게, 사혁.”
“내가?”
“자네라면 그를 데려올 수 있을 거 같네만.”
“사람 데려오는 게 뭐 어렵다고……. 다른 사람도 있잖아? 나도 이제 조장인데 말이지.”
진사혁이 커다란 덩치로 입을 씰룩거리자 구양소현이 핀잔을 주었다.
“대주가 너를 보낼 때는 이유가 있을 거야. 빨리 갔다 와. 다른 사람이 채가기 전에.”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염왕의 명이라도 받은 듯 진사혁이 즉시 몸을 일으켰다.
“예, 누님.”
그가 나가자 유원위도 한 사람을 추천했다.
“대주, 저 제가 아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데려와 볼까요?”
“믿을 만한 사람이오?”
“예, 무공도 저보다 훨씬 강합니다.”
조원화가 유원위를 쳐다보았다.
“혹시 감가기를 말하는 거냐?”
“맞아.”
“항상 궁상맞게 혼자 다니기 좋아하는 사람인데, 올까?”
“혹시 알아? 여기까지 왔을 때는 뭔가 생각이 있으니 온 거겠지.”
석도명도 그를 아는 듯 눈빛을 빛냈다.
“그가 왔단 말이냐?”
“예, 대형. 한쪽 구석에 있는 걸 봤습니다.”
“그럼, 데려와 봐라. 대주라면 그도 마음이 바뀔지 모르니까.”
유원위가 활짝 웃으며 일어났다.
“하하, 대형 생각도 그렇죠? 아마 대주와 하루만 있으면 그도 대주 뒤를 졸졸 따라다니게 될 겁니다. 그럼, 저는 그가 어디로 가기 전에 찾으러 가보겠습니다.”
그가 부리나케 밖으로 나가자 조한상이 의아한 듯 물었다.
“저, 대주. 왜 본보의 사람 중에서 뽑지 않고 외부인으로 뽑는 겁니까?”
“덕분에 본보에 뛰어난 사람들이 들어오잖소?”
독고무령은 그렇게만 대답하고 말았다.
사실 ‘몇 명 더 뽑을까?’하는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외부인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들어오면 분란의 소지도 그만큼 많아진다.
백마방이 공격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게 흐르고 있다는 말. 지금 상황에서 그것은 절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은 서두를 필요 없어. 어차피 상황이 다급해지면 저절로 모이게 되어 있으니까.’
폭풍이 불면 사람들은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곳으로 모이게 되는 법이다.
사도단영이 표은종을 데려온 것은 이 각가량이 지나서였다.
표은종은 자신을 부른 사람이 독고무령임을 알고 종리청을 흔쾌히 따라왔다.
“무슨 일로 부른 것이오?”
“무천단 십기 중 철검기에 들어오라 불렀소.”
표은종이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강제로 들어가야 하는 거요?”
“무천련에 속한 이상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그렇소. 하지만 그대가 원하지 않는다면 들지 않아도 되오.”
본래는 강제로 끌어당길 수 있는데, 그보다는 개인적인 자율에 맡긴다는 말.
표은종은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거 마음에 드는군. 좋소. 십기의 일원이 되겠소.”
그의 대답이 떨어진 순간이었다.
덜컹.
문이 열리며 진사혁이 들어왔다. 옷매무사가 흐트러진 것이 누구와 다투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뭐하쇼? 들어오쇼.”
진사혁이 뒤를 향해 소리치자, 허리에 채찍을 감은 빼빼한 자가 어정쩡한 걸음으로 들어왔다. 도일성이라는 자였다.
머리가 흐트러지고 얼굴이 상기된 걸 보니 순순히 따라온 것은 아닌 듯했다.
사람들은 진사혁과 도일성의 모습을 보고 대충 상황을 짐작했다.
‘한판 붙었군.’
‘그럴 줄 알고 저 곰을 보냈나?’
귀신같은 대주였다. 어떻게 도일성이 순순히 따라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을까?
그때 도일성이 힐끔 방 안을 훑어보고는, 독고무령을 향해 따지듯 말했다.
“저 곰 같은 작자를 보내 나를 데려오게 한 이유가 뭐요?”
“무천단 철검기의 일원으로 들어오시오.”
도일성이 고집스런 표정으로 딱 부러지게 거절했다.
“싫소.”
“무조건 들어와야 한다면?”
“내 비록 저 곰에게 져서 오긴 했지만, 선택은 내 맘이오.”
“그럼 나하고 내기를 해보지 않겠소?”
도일성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도 독고무령과 서문태강의 격전을 지켜보았다.
그걸 보며 손에서 땀이 나고 심장이 벌떡거렸다. 자신이 꿈꾸던 모습을 독고무령이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그런 독고무령이 자신과 내기를 하자고 한다.
무인이 내기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비무!
문제는 자신에게 승산이 없다는 것이었다.
“흥! 당신이 강하다고 해서 내 마음까지 돌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쇼.”
독고무령은 못들은 척 조건을 걸었다.
“내 공격을 한 번만 막으면 당신이 이긴 것으로 하겠소.”
한 번?
도일성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그의 가슴에서 꿈틀거리는 뭔가가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해! 한 번이라잖아? 까짓 거 한 번을 못 막겠어?
‘씨발, 네가 아무리 강해도 나를 일 초에 제압할 수는 없어!’
은근히 오기가 생겼다.
“정말 한 번만 막으면 되는 거요?”
독고무령이 손을 늘어뜨리고 짧게 대답했다.
“물론이오.”
“좋소, 그럼 어디 해봅시다!”
도일성은 이를 질끈 악물고 허리춤을 쓸었다.
촤르륵.
일 장이 넘는 채찍이 풀어지며, 그의 발아래 뱀처럼 똬리를 틀었다.
상황이 이상하게 흐르자, 사람들이 거리를 벌리며 방 가장자리로 물러났다. 호기심 가득한 눈을 반짝이며.
찰나였다.
도일성의 손이 은밀하게 흔들리는가 싶더니, 똬리를 틀고 있던 채찍의 편두가 느닷없이 바닥에서 튀어 올랐다.
쉬익!
‘어디 한번 받아봐라!’
좁은 공간에서의 예상치 못했던 갑작스런 공격!
둘러서 있던 사람들의 입에서 헛바람 빠지는 소리가 터졌다.
“헛!”
“저런 비겁하게!”
독고무령은 아직도 손을 늘어뜨리고 있는 상태.
편두가 살아있는 독사의 대가리처럼 독고무령의 가슴으로 쏘아진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멋진 일격!
손목을 비트는 도일성의 입가에 쾌재의 웃음이 떠올랐다.
‘좋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