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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72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5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72화

 

72화

 

 

 

 

 

 

서문도처럼 자신을 내세우기 좋아하는 사람이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일반무사들의 신청이 어느 정도 줄어들면 그때 나서겠다는 거겠지.’

 

일반무사들을 이겨봐야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없을 테니까.

 

자신이 나설 때는 그때다.

 

 

 

“와아! 잘한다, 지평!”

 

“저런! 뒤로 빠져서 반격을 노려야지!”

 

“몰아붙여!”

 

비무대를 둘러싼 군웅들이 악을 쓰며 자신과 같은 세력에 속한 사람을 응원했다.

 

가끔씩 세력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나오면 상대를 정하지 않고 소리를 질러댔다.

 

독고무령은 비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격전을 바라보며 때를 기다렸다.

 

비무는 두 곳에서 열렸다. 비무대가 워낙 넓어서 반으로 나누었는데도 좁지 않았다.

 

비무를 진행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신청 순서대로 비무를 해서 세 사람을 이기면 이차전에 올라갈 자격이 주어졌다.

 

삼연승 일승단(三連勝 一昇段).

 

그런데 세 사람을 이기려다 보면 부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공력도 소모될 것이었다. 자칫하면 실력이 있어도 약간의 차이로 질 수도 있었다.

 

그러한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각각 다섯 명씩의 비무 심판관이 위촉되었다.

 

심판관은 오대세력의 장로나 그에 준하는 고수들. 그리고 초대된 강호명숙이 맡았다.

 

그들은 비무가 오래 지속되면 적절한 선에서 비무를 멈추게 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판단으로 승패를 갈랐다. 당연히 반발은 허용되지 않았다.

 

비무 진행의 유일한 예외라면,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조치였다.

 

강호명숙이, 절정고수가 처음부터 일반무사들과 비무를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심판관 다섯 명이 인정한 절정고수들은 삼차전부터 참가하게 했다.

 

그 일에 대해선 누구도 반발하지 않았다.

 

고수들이 빠지면 그만큼 삼연승할 가능성이 많아질 터.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보고 있는 사이, 네 명이 삼연승을 거두고 이차전을 기다렸다.

 

오십여 명이 비무를 한 결과치고는 적은 숫자였다.

 

비무가 그만큼 치열하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중에는 진사혁도 끼어 있었다.

 

진사혁은 상대를 모두 십 초 이내에 꺾었다.

 

더 빨리 이길 수도 있었지만, 실력을 적당히 감추라는 독고무령의 말에 그리한 것이었다.

 

그렇게 백이십여 명의 비무가 진행되자 열세 명의 삼연승자가 나왔다.

 

비무하는 자들은 무천단이라는 먹이를 노리는 맹수들 같았다. 다행이라면 치열한 비무에 비해서 부상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비무대 위의 붉은 선혈자국도 점점 커져만 갔다.

 

 

 

어느덧 정오를 향해 태양이 솟구쳤다.

 

비무의 열기가 태양보다 더 뜨겁게 대연무장을 달구었다.

 

비무 신청도 막바지가 되었는지 줄 서 있는 사람이 서너 명밖에 안 되었다.

 

바로 그때, 한 사람이 비무 신청 장소를 향해 걸어가는 게 보였다.

 

서문도였다.

 

신청자의 줄이 확연히 줄어들고, 고수들이 하나둘 모습을 보이자 더 참지 못하고 나선 듯했다. 뒤로 갈수록 진정한 고수들이 많아질 터. 적당한 때라 생각했을 것이었다.

 

독고무령도 걸음을 옮겼다.

 

서문도와의 사이에 한 사람이 끼어들었다. 독고무령은 잠자코 자신의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서문도는 아직 독고무령을 보지 못한 상태였다.

 

곧 서문도가 오만한 표정으로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백마방의 서문도요. 강호의 친구들은 은성도(銀星刀)라 불러주지요.”

 

심사관은 굳이 이런저런 것을 묻지도 않고 서문도의 이름을 기재했다.

 

서문도는 백마방주의 둘째아들이며 산서십영 중 하나이기도 했다. 굳이 시험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독고무령 앞에 선 자의 태도가 의외였다.

 

그의 나이는 이십 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굵은 눈썹과 부리부리한 눈, 거기다 팔이 길고 어깨가 떡 벌어진 것이 제법 다부지게 보였다.

 

그는 서문도의 이름을 듣고도 겁을 내거나 망설이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표은종이라 합니다.”

 

심사관 중 한 사람이 고개를 들어 표은종이라는 자를 바라보았다.

 

“사문은?”

 

“가문의 무공을 이었습니다.”

 

“보아하니 도를 익힌 것 같은데, 어떤 도법을 익혔나?”

 

표은종이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작게 말했다.

 

“무적표풍참마도법을 익혔습니다.”

 

심사관이 모두 표은종을 바라보았다.

 

‘정말 굉장한 도법 이름이군!’ 하면서 금방이라도 웃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독고무령의 입가에도 슬며시 웃음이 걸렸다.

 

‘그래도 천뢰무적파천검법보다는 덜하군.’

 

그때 문득 서문도의 눈길이 느껴졌다. 돌아서가려다 자신을 본 듯했다.

 

<훗, 잘 됐군. 대주라는 자가 피를 토하는 걸 보고도 성이 차지 않았는데 말이야.>

 

귀청으로 서문도의 전음이 파고들었다.

 

독고무령은 무심한 표정을 지은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꾸가 없자 서문도가 비릿한 조소를 흘리며 또 전음을 보냈다.

 

<겁나면 지금이라도 돌아서. 잘못 걸려서 병신이 되는 것보다 나을 테니까. 흐흐흐흐.>

 

‘매를 버는구나, 서문도.’

 

그때 표은종이 자신의 도를 뽑는 게 보였다.

 

생쥐만도 못한 자에게 신경 쓰느니 표은종의 도법을 보는 게 더 나았다.

 

‘무적표풍참마도법이라…… 생각해보니 이름이 괜찮군.’

 

독고무령이 엉뚱한 생각을 하는 사이, 표은종은 자신의 도법 중 하나를 간단하게 선보였다.

 

앞을 향해 서너 번 휘두르다 갑자기 도를 휘돌리는데, 그 모습이 매우 자연스러워 흐름이 끊어지지 않는다.

 

‘내력이 달려서 그렇지 괜찮군.’

 

심사관들도 그리 본 듯했다.

 

“좋아, 표은종이라 했지?”

 

그의 이름이 신청자란에 적은 심사관이 독고무령을 올려다보았다.

 

독고무령이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철검보 철풍검대의 독고무령입니다.”

 

심사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의 이름을 신청자란에 적었다. 아마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자이니 실력을 봐야 하나 고민하다가, 철검보의 무사라는 말에 그냥 적는 듯했다.

 

서문도가 그걸 보고는,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돌아서며 한마디 했다.

 

<언제든지 말해. 봐달라고 말이야. 그럼, 혹시 아나? 팔다리를 다 부러뜨리려다 팔만 부러뜨릴지. 크크크…….>

 

독고무령의 한없이 깊은 눈 속에서 싸늘한 광채가 반짝였다 사라졌다.

 

‘기대해도 좋아, 서문도.’

 

 

 

비무대회는 점심을 위해 반시진 정도 멈췄다. 그리고 미시가 되자 재개되었다.

 

이제 일차 비무가 칠 할 이상 끝난 상태였다. 신청자는 모두 이백오십여 명. 남은 사람은 오육십 명 정도 되었다.

 

서문도가 비무대로 올라온 것은 미시정이 막 지날 무렵이었다.

 

그는 첫 번째 상대를 사 초 만에 가볍게 제압하고 다음 상대를 기다렸다.

 

“표은종! 나오시오!”

 

표은종이 훌쩍 몸을 날려 비무대에 내려섰다.

 

서문도는 뒷짐을 진 채 오만한 표정으로 표은종을 바라보았다.

 

“하하하, 지금이라도 그냥 내려가면 어떻겠나? 그럼, 몸이라도 성할 텐데 말이야.”

 

표은종의 눈매가 사납게 일그러졌다.

 

“지금 나를 모욕하겠다는 거요?”

 

“원하지 않는다면 할 수 없지. 그럼, 조심하게나. 후후후.”

 

서문도는 능글맞게 웃으며 도를 빼들었다.

 

표은종도 도를 빼들고 하단으로 내렸다.

 

두 사람 다 도를 쓰는 만큼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고 비무대를 주시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서문도가 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곧 표은종의 선공으로 두 사람의 비무가 시작되었다.

 

“하앗!”

 

서문도는 강맹한 표은종의 도세가 뜻밖이었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도를 휘둘렀다.

 

따다다당!

 

순식간에 두 사람의 도가 십여 번이나 부딪치며 휘돌았다.

 

군웅들의 환호소리가 커졌다.

 

“와아! 저 사람 제법 하는데?”

 

“그러게, 은성도 서문도를 저렇게 몰아붙이다니. 굉장하군!”

 

개중 중소 문파의 사람들은 표은종을 노골적으로 응원했다.

 

“잘한다! 표은종!”

 

“어디 이겨봐라! 이기면 내가 술을 사주마!”

 

귀가 막히지 않은 이상 서문도가 그 소리를 못들을 리 없었다. 그는 분노한 표정으로 도를 잡은 손에 내력을 더 불어넣었다.

 

바로 다음에 올라올지 모르는 독고무령을 상대하기 위해서 내력을 아끼려 했다.

 

하지만 독고무령보다 눈앞에 있는 놈을 이기는 것이 먼저였다.

 

“어디 이것도 받아봐라!”

 

쉬이익!

 

따당!

 

서문도의 도가 갑자기 빨라졌다. 도세도 훨씬 강맹해졌다.

 

도가 한 번씩 부딪칠 때마다 별빛이 번쩍이며 손목에 짜릿한 충격이 왔다. 

 

이를 악문 표은종은 서문도의 공세를 막기 위해 혼신을 기울였다.

 

그러나 공력 차이는 어쩔 수 없었다.

 

몇 번 도가 부딪치는 사이, 손이 저리고 어깨가 욱신거렸다. 그나마 그의 신체가 남보다 강하지 않았다면 서너 번의 부딪침 만에 도를 떨어뜨렸을지 몰랐다.

 

좌우로 몸을 흔들며 신법을 펼쳐보지만, 서문도는 표은종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도를 휘둘렀다.

 

깡!

 

도와 도가 정면으로 부딪치며 맑은 소리가 울렸다.

 

손목이 부러질 것 같은 충격!

 

표은종은 와락 일그러진 표정으로 급급히 세 걸음을 물러섰다.

 

서문도는 기회를 잡았다는 듯 득달같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면서 도를 휘둘러 표은종을 몰아붙였다.

 

일순간, 그의 장기인 은혼십삼도의 도세가 줄기줄기 쏟아졌다.

 

표은종은 면이 넓은 도로 빠르게 원을 그리며 다시 두 걸음을 물러섰다.

 

따다다당!

 

그러나 손목에 충격을 받은 표은종이 막아내기에는 서문도의 공세가 너무 강했다.

 

표은종은 옅은 신음을 흘리며 바닥을 굴렀다. 서문도의 공세에 몸을 상하지 않는 방법은 그것이 유일했다.

 

“크윽.”

 

서문도는 독랄한 눈으로 표은종을 노려보았다.

 

‘개자식!’

 

상대는 이름도 없는 놈이었다.

 

이런 놈을 이기는 것쯤이야 오 초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무려 삼십여 초를 허비했다. 그러고도 표은종의 몸에 상처를 내지 못했다. 

 

서문도는 분노가 치밀었다.

 

이딴 놈과 삼십 초나 싸우다니!

 

비무 규칙대로라면 이쯤에서 손을 멈춰야 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도를 떨쳤다.

 

쉬이익!

 

“멈추게!”

 

심판관 중의 한 사람인 구양학이 다급히 소리쳤다.

 

서문도는 듣지 못했다는 듯 표은종의 어깨를 향해 내리친 도를 회수하지 않았다.

 

‘팔 하나는 잘라주마!’

 

당장이라도 표은종의 어깨가 잘려나갈 것 같은 상황!

 

뜻밖의 일이 일어난 것은 그때였다.

 

바닥을 한 바퀴 구른 표은종이 느닷없이 서문도의 도세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도를 팔랑개비처럼 휘두르며!

 

당황한 서문도는 도를 휘두르면서 황급히 몸을 허공으로 띄웠다.

 

쩌정!

 

두 자루 도가 부딪치며 표은종의 도가 한쪽으로 튕겨졌다.

 

서문도의 강력한 내력이 실린 도세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 덕에 서문도의 도세가 현격하게 약화되었다.

 

스윽!

 

약화된 도세는 단순히 표은종의 어깨를 훑고 지나가는 것으로 그쳤다. 그 사이 표은종은 서문도가 서 있던 자리로 몸을 피했다.

 

“그만!”

 

구양학이 다시 소리쳤다.

 

이번에는 서문도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짐짓 태연을 유지한 서문도가 표은종을 노려보며 말했다.

 

“정말 멋진 비무였소.”

 

표은종도 서문도의 마지막 공격이 뜻하는 바를 모르지 않았다. 그는 이가 갈렸지만 그 일에 대해서 따지지 않았다. 

 

실력이 모자라서 진 것만큼은 분명했으니까.

 

“내가 졌소.”

 

구양학이 서문도의 승리를 외쳤다.

 

“백마방의 서문도 승!”

 

기다렸다는 듯 진행자가 다음 상대를 불렀다.

 

“철검보의 독고무령 나오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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