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7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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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8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70화
70화
“너무…… 무리하지는 말게. 그 싸가지 없는 놈도 너무 심하게 손보지는 말고.”
그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일은 그들의 행동여하에 따라 처리할 생각이었다.
구양손도 그건 어떻게 할 수 없다 생각했는지 말을 돌렸다.
“그리고…… 앞으로 철풍검대를 자네가 좀 맡아주게. 형님께는 내가 따로 말씀드리겠네.”
“대주, 저보다는 차라리 적 조장님이나 석 조장님이…….”
구양손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쟁을 앞두고 있네. 강한 사람이 필요한 상황이지. 자네라면 잘 이끌 수 있을 거야.”
독고무령은 물끄러미 구양손을 바라보았다. 표정에 힘은 없지만 눈빛만큼은 단호했다.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방을 나오자 한무종이 말했다.
“조장 말대로, 그 양반 명도 듣겠소.”
구양소현의 말을 들은 듯했다.
독고무령은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구양손은 수하들의 존중을 받을 만한 사람이었다.
‘서문도, 서문태강. 그대들은 오늘의 일을 뼈저리게 후회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어줄 테니까!’
독고무령이 구조의 방으로 들어가자 진사혁이 제일 먼저 반겼다.
“안 오면 내가 내일 찾아가려고 했네.”
독고무령은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침상에 앉았다.
그제야 진사혁은 고개를 모로 꼬고는, 멀뚱히 서 있는 한무종을 바라보았다.
“저 사람, 종애에서 봤던 사람 같은데……?”
독고무령은 고개만 끄덕였다.
진사혁은 눈을 좁히고 독고무령을 내려다봤다.
평소의 독고무령이 아니란 것을 뒤늦게 눈치 챈 것이다.
“무슨 일 있었나? 표정이 왜 그래?”
“대주님께 일어난 일, 모르고 있었나?”
“대주? 왜? 아, 몸이 아프다고 하루 종일 안 나오던데…….”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하긴 알았다면 진사혁의 성격에 조용히 있었을 리가 없지.
“좀 전에 대주님을 만나봤네.”
독고무령은 구양손이 내상을 입은 일에 대해 모두 이야기해주었다.
반응이 곧바로 나왔다.
“뭐야!”
진사혁이 눈을 부릅떴다. 구조의 조원들도 벌떡벌떡 일어나서 분노한 눈빛으로 이를 갈았다.
독고무령은 그들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대주께선 어떠한 경우라도 무천련대회합에 영향이 미치는 것을 원치 않소. 그러니 그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거요. 모두 그렇게 알고, 그들에 대한 것은 나에게 맡겨두시오.”
구조 조원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진사혁조차 어깨를 부르르 떨고는, 씩 웃으며 백마방의 무사들이 쉬고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비열한 자식! 너 이제 큰일 났다. 어디 건들 사람이 없어서…….”
* * *
자시가 넘어갈 무렵, 진천신권(震天神拳) 벽도정을 필두로 화천문의 사람들이 도착했다.
모두 이백여 명. 그들 역시 제왕성의 공격을 받아서 오십여 명이 죽고 백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래도 다른 곳에 비하면 피해가 적은 편이었다.
벽도정은 자신들의 피해가 적다는 것에 조금도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활화산처럼 솟구치는 분노를 그대로 털어놓았다.
“오늘의 일을 반드시 복수하고 말 것이다!”
어디 벽도정뿐이랴! 그러한 마음은 백마방도, 전궁산장도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입으로만 떠들 뿐, 제왕성의 위세에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렇게 새벽이 되어갈 즈음, 철검보주 구양은이 이백 무사와 함께 도착했다. 그들 중에는 조양표국에 있던 철풍검대원 오십 명 정도가 섞여 있었는데, 종리청과 소강도 있었다.
다행히 거리가 가까운 덕에 그들은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상태였다.
구양은은 두이정을 만나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철정검대의 대주이자 막내아우인 구양학과 함께 곧바로 구양손을 찾아갔다.
두 사람은 구양손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어떻게 된 것이더냐? 조양표국에서 부상을 입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더냐?”
“저…… 그게…….”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어차피 구양소현이 다 일러바칠 게 분명했다. 그러면 일이 더욱 커질 터. 구양손은 자신의 입으로 간단하게 사정을 설명했다.
구양손의 설명을 들은 두 사람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뭐야? 서문 방주가!”
“그가 정말 두 조장 때문에 대항도 않는 형님을 공격했단 말입니까!”
구양손은 몸이 아픈 와중에도 형제들이 분노하지 않게 사력을 다해야만 했다.
“더 이상 따지지 않기로 했으니 진노를 푸십시오, 형님. 그리고 아우도 화를 가라앉히게. 내가 왜 대항하지 않고 그의 장력을 맞은 것인지 말했잖은가? 대회합을 앞두고 분란이 생기면 누구에게도 좋을 게 없다네. 한데 이 일로 화를 낸다면 나만 쓸데없이 부상을 입은 꼴이 되는 거 아닌가?”
구양손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이 일로 서문태강과 싸운다면 일이 더욱 커질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분노가 치미는데도 당장 싸울 수 없는 상황. 어쩌면 그걸 알기에 더 화가 나는지도 몰랐다.
구양은은 허공을 노려보며 나직한 신음을 흘렸다.
“으음, 서문태강 그 친구. 그렇게 무모한 행동을 할 사람은 아니라 봤거늘,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군.”
“방도들의 죽음 때문에 잠시 감정이 격해져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형님.”
“쯔쯔쯔, 셋째는 다 좋은데, 너무 마음이 약한 게 흠이야. 언제고 그 성격 때문에 피해를 입을 거라 누누이 말했거늘…….”
“그래도 덕분에 수하들의 신망을 얻었잖습니까? 저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구양손이 극구 말리니 구양은도 더 이상 화를 내지 못했다.
“대체 그 두 사람이 얼마나 뛰어나기에 네가 그토록 감싸는 것이더냐?”
구양손은 내심 안도하며 독고무령과 석도명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더불어 진사혁까지.
구양은과 구양학이 눈을 크게 떴다.
“팔조장이 대동의 비호검이라고?”
구양손은 몸이 아픈 와중에도 수하들이 자랑스럽다는 듯 어깨를 폈다.
“그렇습니다, 형님. 하지만 진짜 물건은 구조장이지요.”
* * *
먼동이 틀 무렵.
분노를 가라앉힌 구양은이 독고무령을 불렀다.
독고무령은 구양은과 구양학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철풍검대 구조 조장 독고무령이 보주님을 뵙습니다.”
구중철검(九重鐵劍) 구양은.
그는 남 앞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다. 신년 인사를 올리던 하정례(賀正禮) 때도 봤고, 그 후로도 먼발치에서 서너 번 봤었다.
그러나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구양손이 수더분한 인상인 거와 달리 구양은은 한 자루 철검처럼 강인한 인상이었다. 목소리도 굵고 묵직해서 구양손과 같은 형제인지 의문이 일 정도였다.
구양은도 말을 하면서 독고무령을 살펴보았다.
“아우에게 말은 들었다. 그대에게 철풍검대를 맡겼다고 하더군.”
“예, 보주.”
구양은의 두 눈 깊은 곳에서 기광이 일렁였다.
조양표국의 혈전에 대해서 보고를 받았을 때, 그는 솔직히 기쁘면서도 곤혹스러웠다.
철풍검대와 철환검대가 약하지 않다 해도 도혼단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런데 이겼단다. 비슷한 숫자였는데도.
그것도 기습을 당한 상태에서!
십중팔구 둘 중 하나 정도는 과장된 보고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구양손의 말을 듣고 나니 그 보고가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두 사람이 수십 명을 쓰러뜨렸다지 않는가 말이다.
그 두 사람 중 하나가 앞에 있다.
구양은은 독고무령을 살펴보고는, 구양손의 말이 조금도 과장이 아님을 직감으로 느꼈다.
‘호오, 나조차 능력을 파악하기 힘들 정도란 말인가?’
그때 구양학이 한마디 거들었다.
“나이가 젊어서 다른 조장들이 반발하지나 않을지 모르겠군. 할 수 있겠나?”
그는 구양은과 닮은 면이 많아 보였다. 그러나 기세를 비롯해서 모든 것이 구양은에 비해 많이 뒤졌다.
“능력이 안 되면 물러나야겠지요.”
독고무령은 그의 말에 짤막하니 대답하고 구양은을 바라보았다.
“그보다 보주님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부탁?”
“백마방과의 일에 대해선 모든 것을 제게 맡겨주셨으면 합니다.”
구양은의 눈에 이채가 번뜩였다.
“아우 때문에 그러는가? 그 일에 대한 말을 듣고 나 역시 분노를 참을 수 없었지. 하나 세상은 분노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많은 법이다.”
“분노만으로 해결하려 했다면, 그때 쫓아가서 두 사람에게 죄를 물었을 겁니다.”
백마방주와 그 아들에게 죄를 물었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한 말에 구양은과 구양학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대가 말인가?”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독고무령은 그들의 반문에 답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 말했다.
“어제는 대주께서 원치 않으시기에 참았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유야무야 넘길 생각은 없습니다. 맡겨주신다면, 제 방식대로 어제 일에 대해 죄를 물을 생각입니다.”
구양은은 별 묘한 놈 다 봤다는 표정으로 독고무령을 직시했다.
“그대 말은 잘 알겠다. 그럼 하나만 묻겠다. 그대가 하고자 하는 일이 본보나 대회합에 해가 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아마 그들은 부끄러워서라도 본보에 책임을 물을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대회합에도 별다른 해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왜 그리 생각하는가?”
“지금은 강한 세력이 절실한 때지요. 철검보가 예상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걸 알게 되면, 사람들은 백마방의 치욕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을 것입니다.”
“허어, 젊은 사람이 말을 너무 함부로 하는 것 아닌가?”
구양학이 눈살을 찌푸리며 독고무령을 나무랐다.
그러나 구양은은 생각이 달랐다.
그는 독고무령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정말 그리할 자신이 있느냐?”
“최소한, 대주님의 명예는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강하게만 보이던 구양은의 얼굴에 가는 미소가 걸렸다.
“좋다. 그렇다면 허락하마. 독고 대주, 그대 맘대로 해!”
구양학이 급히 나섰다.
“형님! 저 어린 친구에게 백마방에 대한 일을 맡겼다가 자칫 실수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구양은이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나 조금 전과 달리 온기가 사라진 웃음이었다.
“솔직히 나도 화가 난다. 아주 많이 나! 까짓 것, 서문태강이 한판하자면 못할 것도 없지!”
“하아, 그거 참…….”
구양학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독고무령은 그 말에 구양은을 다시 보았다.
남에게 속을 내비치지 않는 사람이라 들었다. 강인하고 냉정한 성격이어서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일지 모른다는 소문마저 있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꼭 그런 사람만은 아닌 듯했다.
“감사합니다, 보주.”
독고무령은 일어서며 진심에서 우러난 포권을 취했다.
구양은이 입꼬리를 비틀며 차갑게 웃었다.
“그럼, 수고하게. 내 기대하지!”
* * *
위지천백은 두 눈에 태양을 담고,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동쪽을 바라보았다.
“피해가 얼마나 났지?”
“모두 이백육십의 사상자가 났다고 합니다, 성주. 그중 사망자가 백 명이 조금 넘고, 중상자가 육십 명쯤 된다고 합니다.”
사망자가 중상자보다 훨씬 많다.
어떻게 생각하면 기이한 일이었다.
하지만 치고 빠지는 작전에서는 싸움 중에 중상을 입을 경우, 산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적의 공격에서 빠져나오는 것 자체가 어려울 테니까.
“사백을 넘게 죽이고 그 정도면 괜찮군. 그래, 몇 명 정도가 모였지?”
“현재 대풍장에 모인 자들의 숫자는 일천이 조금 넘습니다. 아마 이틀 정도 지나면 이천까지 모일 거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틀에 이천이라…… 훗, 지금쯤 시작했겠군.”
공노명이 위지천백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무천련의 마지막 대회합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