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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69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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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암천제 69화

 

69화

 

 

 

 

 

 

“후우, 사 년 전, 강호에 나와 그들을 조사하면서 절망했소. 그들은 알려진 것보다 배나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소. 왜 무천련을 그대로 놔두는지 의아할 정도로…… 빌어먹을…….”

 

사부의 죽음을 뒤로하고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원수를 갚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러기를 삼 년, 그에게 돌아온 것은 절망뿐이었다.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런데 이제 술을 끊어야 할지도 몰랐다. 몸속에 쌓인 썩은 기운을 몰아내야 할 테니까.

 

그래도 싫지는 않았다.

 

오랜만의 전의가 오히려 상쾌하게 느껴졌다.

 

사실 지금도 눈앞에 있는 독고무령이 제왕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따라나선 이유는 하나다.

 

한 번쯤은 목숨을 걸고 제왕성과 싸우고 싶었다. 호랑이를 잡으려는 사냥꾼이 되어서 말이다.

 

‘그래, 까짓 거, 죽을 때 죽더라도 남자로 죽자!’

 

이를 지그시 악문 그를 향해 독고무령이 물었다.

 

“정말 무천련이 그들을 상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오?”

 

한무종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조금 전보다 힘이 실린 목소리였다.

 

“상대할 수야 있겠지만, 절대 이길 수는 없소.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한다면, 무천련은 그들의 상대가 되지 않소.”

 

“그리 생각하는 이유라도 있소? 무천련 주요 고수들의 무위 말고라도 말이오.”

 

“지닌 힘은 차치하고라도, 무천련은 힘이 나누어져 있고 제왕성은 위지천백의 한마디에 모든 것이 움직이오. 무천련이 완전히 통합된다면 모를까, 지금 상태로는 어림도 없소. 물론 무천련이 통합될 일도 없을 테니 어차피 결과는 같겠지만.”

 

무천련의 문파들은 필요에 의해 연합하고 있을 뿐이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의미로.

 

아마 자신의 문파가 위기에 처하면, 언제, 누가 등을 돌릴지 몰랐다. 사상누각(沙上樓閣), 그것이 바로 무천련인 것이다.

 

‘제대로 판단하고 있군.’

 

독고무령은 내심 한무종의 말을 인정했다.

 

그러나 한무종이 미처 모르는 것이 있었다. 무천련이 항상 그 자리에 있지만은 않을 거라는 점을.

 

가슴이 뜨거워지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게 인간 아니던가.

 

용암에 섞이면 모래도 돌이 될 수 있는 법이다.

 

 

 

* * *

 

 

 

바람을 가슴에 안고 달린 지 한 시진, 까마득한 곳에서 불빛이 반짝였다. 일원궁의 서연 분타인 대풍장이었다.

 

독고무령은 대풍장이 보이자 한무종에게 두어 가지 주의를 주었다.

 

“이제부터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거요.”

 

“알겠소.”

 

“손발이 맞지 않으면 서로가 힘들게 되오. 한 형의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참을 땐 참아주시오.”

 

한무종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나는 조장의 말만 들을 것이오. 그 점은 이해해주시오.”

 

“가끔은 대주가 하는 말도 들어주시오. 그 양반, 꽤 괜찮은 사람이오.”

 

“나도 인의철검에 대한 소문은 들었소. 만나보고 판단하겠소.”

 

 

 

대풍장의 정문을 오십여 장 남겨 놓았을 때였다. 독고무령의 표정이 굳어졌다.

 

한발 앞서서 일단의 무사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복장을 보니 일원궁이나 철검보, 백마방의 무사들이 아니었다.

 

상당수 무사들의 등에 궁이 매달려 있었다.

 

게다가 검은 옷에 새겨진 뇌전문양.

 

전궁산장의 자랑이라는 전궁대(電弓隊)인 것 같은데, 많은 사람이 부상을 입은 듯 보였다.

 

‘전궁산장도 당했군.’

 

그렇다면 화천문도 당했을지 몰랐다.

 

독고무령은 그들이 다 들어가기를 기다려 정문으로 다가갔다.

 

전궁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위사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정지! 어디서 온 누구시오?”

 

독고무령은 담담히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철검보의 철풍검대 구조장이오.”

 

“철풍검대? 그럼 어제 순찰을 나갔던……?”

 

“그렇소. 일이 있어서 좀 늦게 왔소.”

 

위사는 독고무령의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철검보의 복장이 아닌 것 같소만?”

 

“적을 만나 찢어지는 바람에 바꿔 입었을 뿐이오.”

 

위사의 눈이 한무종을 향했다. 그는 상거지나 다름없는 한무종의 모습을 보고 짜증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저 사람도 구조의 조원이오?”

 

독고무령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위사는 한무종을 흘겨보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하긴 하루 종일 수백 명이 너덜거리는 옷을 입고 찾아왔는데, 거지 하나 더 들어온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겠지.”

 

“들어가도 되겠소?”

 

위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옆으로 비켜섰다.

 

“들어가쇼.”

 

독고무령이 안으로 들어가자 한무종이 따라서 들어왔다. 그러더니 독고무령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재미있군. 강아지도 제 집 앞에서는 호랑이를 향해 짖는다더니…….”

 

그때였다. 저만치 대연무장을 가로질러가던 자들 중 하나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길어 보이는 얼굴. 거친 수염. 굳게 다물린 입술에서 만만치 않은 고집이 엿보이는 젊은 자였다.

 

나이는 이십 대 중후반 정도?

 

그의 등에는 한 자루 강궁이 걸려 있었는데, 바라보는 눈매가 뾰족한 화살촉처럼 날카로웠다.

 

그는 독고무령과의 거리가 이 장으로 줄어든 후에야 말문을 열었다.

 

“철검보의 철풍검대 구조장이라 들은 것 같소만?”

 

“그렇소.”

 

“나는 전유곤이라 하오. 철풍검대가 도혼단을 물리쳤다는 말을 들었소. 괜찮다면 나중에 이야기 좀 나눴으면 싶은데.”

 

독고무령도 전유곤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이자가 바로 전궁산장의 촉망받는 기재인 추뢰궁(追雷弓) 전유곤이군.’

 

이십 대의 나이로 전궁대의 부대주에 오른 자. 산서십영으로 통하는 열 명의 젊은 고수 중 하나.

 

첫인상은 괜찮았다. 

 

“이제 보니 추뢰궁 전 형이었군요. 좋으실 대로 하시지요.”

 

전유곤은 싸늘한 눈빛을 번뜩이며 이를 갈았다.

 

“우리를 친 놈들 중에 도혼단이 있었소. 그래서 그러는 거요. 그럼 나중에 봅시다.”

 

그는 그 말만 하고는 몸을 돌렸다.

 

독고무령은 대충 그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철검보가 물리친 도혼단에 자신들이 당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전유곤이 멀어지자 독고무령이 허공에 대고 물었다.

 

“저자, 어떻소?”

 

뒤에 서 있던 한무종이 대답했다.

 

“제법 괜찮게 보이는군요.”

 

독고무령의 입꼬리가 살짝 비틀렸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소.”

 

그렇게 걷는 사이, 곧 이천여 평의 드넓은 대연무장이 나타났다.

 

어둠이 깔린 대연무장의 한쪽에는 십여 개의 화톳불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곳에선 여섯 자 높이, 이백 평에 달하는 거대한 대(臺)의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대회합을 진행할 연단이라 했다.

 

그러나 그보다는 행사 중 하나인 비무대회를 위한 목적이 더 컸다.

 

 

 

철풍검대가 머무는 별원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오가는 사람은 없고 싸늘한 바람만이 앞마당을 쓸고 지나갔다.

 

‘아직 철검보의 사람들은 도착하지 않은 것 같군.’

 

별원에 들어간 독고무령은 구양손의 방을 바라보았다. 불이 켜져 있는 걸로 봐서 아직 잠이 들지 않은 듯했다.

 

독고무령은 일단 자신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구양손의 방으로 갔다.

 

“구조장입니다, 대주.”

 

“들어오게.”

 

구양손의 대답이 들려왔다.

 

그런데 이상했다. 목소리에 왠지 힘이 없다.

 

독고무령은 한무종에게 잠시만 기다리라 하고 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구양소현이 있었다.

 

구양소현은 방으로 들어서는 독고무령을 골난 표정으로 흘겨보았다.

 

“늦었네요?”

 

독고무령은 그녀를 향해서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

 

‘늦게 왔다고 화가 난 건가?’

 

그때 구양손의 누워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누워서 사람을 맞이할 구양손이 아니다. 하거늘 누워서 힘없이 웃음을 짓고 있다.

 

창백한 안색. 하루 사이에 큰 병이라도 든 것처럼 보이는 얼굴. 그뿐이 아니다. 절정의 무위를 지닌 구양손의 몸에서 실낱같은 기운만이 느껴진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독고무령의 표정이 굳어졌다.

 

구양손의 침상으로 다가간 독고무령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구양손의 맥문을 잡았다.

 

구양손은 슬며시 눈을 돌리고 그대로 놔두었다. 숨긴다고 모를 독고무령이 아니었다.

 

‘에혀, 조용히 지나갔으면 좋겠는데…….’

 

독고무령이 구양손의 몸 상태를 아는 데는 굳이 오랜 시간이 필요 없었다.

 

독고무령은 반의 반각이 되기도 전에 구양손의 맥문을 놓고 이를 악물었다.

 

“어찌된 일입니까?”

 

구양손이 쓴웃음을 지으며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재수가 좀 없었네.”

 

그 말에 구양소현이 빽, 소리를 질렀다.

 

“숙부님도 참! 솔직히 다 말해요. 왜 말 못해요?”

 

구양손은 이마를 찡그리며 씩씩거리는 구양소현을 흘겨보았다.

 

“조용히 해, 이놈아.”

 

독고무령도 듣고 싶었다. 보다 자세한 사실을.

 

“말씀해 주시지요. 무슨 일이 있었기에 대주께서 이리 중상을 입은 것입니까?”

 

구양손이 창백한 얼굴로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별거 아니라니까.”

 

구양소현이 참지 못하고 또 소리쳤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는데 별게 아니라니요? 백마방의 그 작자들이 숙부님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데, 억울하지도 않으세요?”

 

“백마방? 무슨 말인지? 자세히 말해봐.”

 

독고무령이 구양소현을 다그쳤다.

 

구양소현은 구양손이 뭐라 하든 독고무령을 똑바로 바라보며 쫑알쫑알 다 일러바쳤다.

 

“……그렇게 되었는데, 숙부님이 두 사람을 못 내준다고 하니까, 결국 서문 방주가 숙부님을 이렇게 만든 거라구요.”

 

“사실입니까?”

 

구양손은 슬그머니 눈을 돌렸다.

 

“죽을 정도는 아니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게.”

 

독고무령의 눈빛이 출렁였다.

 

구양손은 단전이 반쯤 상한데다, 대여섯 군데의 혈맥마저 막힌 상태였다. 본래의 무공을 되찾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을 정도.

 

하거늘 신경 쓰지 말라니.

 

“그냥 넘겨준다고 하시지 그랬습니까?”

 

“그럴 순 없었네. 아마 자네가 내 입장이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걸?”

 

그건 그랬다. 아마 자신이었어도 수하들을 내주지 않았을 것이었다. 싸우는 한이 있어도.

 

그래서 마음이 더 아팠다.

 

수하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치고는 너무 큰 대가를 치렀다. 단지 자신을 구해준 것 때문에 멸문의 위기를 겪었던 장이생처럼.

 

‘내가 왜 당신을 좋아하는지 이제 좀 알 것 같군요.’

 

구양손은 장이생과 다른 듯하면서도 닮은 점이 많았다. 이제야 그것을 알 것 같았다.

 

그래서인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가슴 깊은 곳에서 스멀거리며 끓어올랐다.

 

장이생에 이어 구양손마저 침상에 누웠다.

 

둘 다 자신 때문에!

 

대체 두 분이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왜 자신 때문에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미안했다. 그리고 화가 났다.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 구양손이 독고무령의 마음을 눈치 채고는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독고무령이 자신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기에 독고무령이 쫓아가면 한바탕 큰일이 벌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새면 대회합이 시작되네. 대회합이 열리기도 전에 내 일로 시끄러워지는 것은 원치 않네. 무슨 말인지 알겠나?”

 

독고무령은 깊게 침잠된 눈빛으로 구양손의 손을 잡았다.

 

당장 서문태강과 서문도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한바탕 소란을 피우는 한이 있어도, 두 사람을 잡아와서 구양손 앞에 무릎 꿇리고 싶었다.

 

하지만 구양손의 간절한 마음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더구나 그렇게 하면 구양손만 더 힘들어질지도 모르는 일.

 

독고무령은 좀 더 확실한 방법을 찾기로 했다.

 

“걱정 마십시오. 대주의 뜻대로 당장 그들에게 쫓아가지는 않겠습니다. 단, 그들을 용서하라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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