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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68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7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68화

 

68화

 

 

 

 

 

 

제6장 남자라면, 그런 말에 당연히 가슴이 뛰어야 한다

 

 

 

 

 

휘이이잉!

 

삭풍이 황야를 달리며 누런 먼지를 피워 올린다.

 

서산으로 넘어가는 석양이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천지를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석양을 등에 진 독고무령은 발길을 재촉했다. 별일만 없다면 밤이 깊어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동북쪽으로 방향을 잡은 독고무령은 날듯이 걸음을 옮겼다.

 

일보에 삼사 장을 미끄러지는 그의 모습은 마치 제비가 땅위를 스치고 나는 듯했다.

 

혼자서 달리는 만큼 다른 사람을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석양이 질 시간이라서 그런지 오가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경공을 펼치는데 부담이 없었다.

 

독고무령은 마음 편히 달리면서 운양과 나눈 말을 되새겨보았다.

 

선평원을 나와 운가고서점으로 돌아가자마자 운양에게 물었다.

 

 

 

“무천련의 정보망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할 것 같네. 혹시 좋은 생각 없나?”

 

운양이 곧바로 대답했다.

 

“쉽지 않을 걸? 정보망이라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연락망이 아니네. 거기에는 각 세력의 비밀이 숨어 있지. 그런데 어떤 세력이 자신들의 비밀을 내놓으려 하겠나?”

 

“그래서 묻는 거네. 자네에겐 뭔가 방법이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 방면으로는 자네가 고수 아닌가?”

 

한껏 하늘 높이 띄워주자, 운양이 어깨를 으쓱하며 답을 내놓았다.

 

“방법은 하나뿐이야. 차라리 새롭게 만들게. 무천련이라면 인원과 돈이 있으니,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어렵지 않게 구축할 수 있을 거네. 보다 세밀한 것은 그 후에 손봐도 되겠지.”

 

“흠, 새로운 정보망을 만들어라?”

 

“문제는 수뇌부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건데…… 솔직히 무천련의 주인들에게 그런 의지가 있을지 그게 의문이네.”

 

“서로를 못 믿는단 말인가?”

 

“현재의 대련주인 관천악이 악용하기라도 하면, 나머지 세력들은 일원궁의 수하로 전락할 수밖에 없네. 수뇌들이 그걸 모르지 않을 테니, 원하는 사람이 없을 거라는 말이지.”

 

“만약 정보망을 별도의 조직으로 움직인다면? 대련주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게 말이야.”

 

“그렇게 된다면야 좋겠지.”

 

 

 

운양은 그렇게 말하며 여전히 쉽지 않을 거라는 표정을 지었다. 뜻과 방법은 좋지만, 거기에는 넘기 힘든 난관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자신도 그게 무엇인지 모르지 않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대련주 관천악이 권위를 일부 양보해야 한다.

 

문제는 그럴 가능성이 반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보망을 거머쥐면 보다 강력한 지배를 할 수 있을 터. 자신이 들은 관천악은 그런 권리를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정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수밖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한 시진을 달리자 어둠이 온 세상을 검게 물들였다.

 

그믐날, 달이 뜨지 않아서인지 하늘에 점점이 박힌 별들이 유난히 많아 보이는 밤이었다.

 

별들을 벗 삼아 달린 지 얼마나 되었을까, 저만치 능정이 보였다.

 

‘방향을 잘못 잡지는 않았군.’

 

어차피 늦은 시각.

 

독고무령은 능정에서 식사를 하고 가기로 했다.

 

 

 

* * *

 

 

 

허름한 객잔으로 들어간 독고무령은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객잔 안의 분위기가 왠지 모르게 무겁게 느껴졌다.

 

그 원인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강호문파들의 싸움에 대한 말이 오가는 게 들렸다.

 

그중 이야기 하나가 독고무령의 신경을 잡아끌었다.

 

“백마방이 무천련 대회합에 참석하려고 내려오다가 제왕성에게 당했다더군.”

 

“많이 죽었다며?”

 

“백 명도 넘게 죽었다고 하네.”

 

독고무령은 점소이가 가져다준 엽차 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눈빛을 빛냈다.

 

‘결국 그렇게 되었군.’

 

백마방이 당했다면 다른 곳도 당했을지 몰랐다.

 

철검보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억지로 서쪽 길을 택하지만 않았다면 제왕성도 그들을 건들지 못할 테니까.

 

문제는 화천문과 전궁산장이었다. 그들은 먼 거리를 오는 만큼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들이 온전해도 제왕성을 상대할 수 있을지 모르는 판이다. 그들이 타격을 입으면, 그만큼 제왕성을 상대하기가 힘들어진다.

 

‘역시 무천련만으로는 제왕성을 상대할 수 없는 건가?’

 

산서의 강호문파가 제왕성과 무천련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문파나 사람들도 많았다.

 

자신들의 안위를 생각해서 제삼자의 입장으로 바라만 보고 있을 뿐.

 

‘그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문득 삼괴가 떠올랐다.

 

그들이 지닌 무위는 능히 무천련 오대세력의 주인들과 자웅을 겨루기에 충분했다. 강호의 골칫거리인 그들을 사람들이 반겨줄지 몰라서 그렇지.

 

‘그 양반들,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군. 삼불곡에서 내가 나왔다는 걸 알면 돌아가 있을 텐데…….’

 

독고무령이 이런저런 생각을 할 때였다.

 

객잔의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삭풍에 떠밀리듯 들어왔다.

 

그를 본 독고무령의 눈에서 기광이 반짝였다.

 

‘저자는?’

 

허름한 옷에 풀어헤쳐진 머리카락,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상처 난 얼굴. 그리고 폭이 좁은 칼 한 자루.

 

종애에서 봤던 자였다.

 

그는 그때나 다름없는 음울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독고무령을 발견하고 고개를 살짝 틀었다. 

 

‘나를 알아봤군.’

 

독고무령은 아무런 말도 않고, 손가락을 구부려서 탁자를 톡톡 쳤다. 장한의 수세미 같은 머리카락 사이로 흥미가 동한 눈빛이 일렁였다.

 

터벅, 터벅.

 

발자국 소리를 내며 걸음을 옮긴 그는 곧장 독고무령의 앞까지 다가왔다. 그러더니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앞자리에 앉았다.

 

그가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점소이가 음식을 내왔다.

 

“화주 한 병.”

 

장한이 술을 주문했다.

 

점소이가 독고무령을 힐끔 쳐다보고는, 독고무령이 고개를 끄덕이자 화주 한 병을 가져왔다.

 

장한은 술잔에 술을 가득 따르고 단숨에 목구멍 속으로 털어 넣었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독고무령 앞에 있는 접시에서 고기 한 점을 집어 입 안에 구겨 넣었다.

 

탁!

 

장한이 갑자기 술잔을 독고무령 앞에 놓고 술을 따랐다.

 

“공짜는 싫거든.”

 

텁텁한 목소리가 장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독고무령은 장한이 따른 술잔을 들고 음미하듯이 마셨다. 화주 특유의 독한 열기가 목구멍을 쓸고 내려갔다.

 

독고무령은 빈 술잔을 장한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술을 따르며 입을 열었다.

 

“그때 왜 비웃은 거요?”

 

장한이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 대답했다.

 

“웃겨서.”

 

“뭐가 그리 웃긴 거요?”

 

“늑대 몇 마리가 모였다고 해서 호랑이를 상대할 수 있다고 보나?”

 

“호랑이도 늑대 떼는 함부로 대하지 않소.”

 

“그것도 늑대 나름이지. 지금 있는 몇 마리 늑대로는 호랑이의 상대가 되지 않아. 약간의 상처는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상처가 크면 호랑이도 사냥꾼의 활에 당할 수밖에 없소.”

 

“큭, 그만한 사냥꾼이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

 

“그만한 사냥꾼이 없다고 보는 것이오?”

 

“아직은 보지 못했어.”

 

“그럼 나는 어떻소?”

 

장한이 술잔을 잡고 멈칫했다.

 

그의 입가로 비웃음이 걸렸다.

 

“오만하군. 자신감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지나친 자신감은 자신의 죽음을 앞당기는 법이지.”

 

“지나친 것이 아니라면?”

 

독고무령의 담담한 말에 장한의 두 눈에서 한광이 번뜩였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독고무령은 가만히 젓가락을 뻗었다.

 

장한은 젓가락이 자신의 술잔 위로 다가오는 데도 독고무령을 바라보기만 했다.

 

독고무령은 젓가락을 장한의 술잔 위에 올려놓고 무심히 말했다.

 

“최소한 겁에 질려 주저앉는 사냥꾼보다는, 죽을 때 죽더라도 호랑이와 싸우는 사냥꾼이 낫다고 보오만.”

 

장한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독고무령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 입술이 일그러진 그의 두 눈에 경악이 물결쳤다. 그의 머리카락이 바람이 없는데도 파르르 떨며 흩날렸다.

 

독고무령이 그런 장한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여전히 그의 젓가락은 장한의 술잔 위에 있는 상태였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많은 사람이 필요하오. 물론 호랑이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어야겠지만.”

 

장한은 입을 열지 못한 채 이만 악물었다.

 

턱 근육이 그의 입 주위에서 씰룩였다. 그러나 술잔을 잡은 손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독고무령은 장한의 술잔에서 천천히 젓가락을 떼어내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접시의 요리를 집어 먹었다.

 

술잔에 가득한 술은 잔물결조차 일지 않았다.

 

하지만 장한의 눈빛은 폭풍에 휘말린 조각배처럼 흔들렸다.

 

“너는…… 당신은…… 누구지?”

 

“함께 호랑이를 잡겠다면 알려주겠소.”

 

장한은 떨리는 눈빛으로 손에 들린 술잔을 바라보더니, 술잔을 놓고 술병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독한 화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텅.

 

빈 술병을 내려놓은 장한은 소매로 입술을 닦았다. 독고무령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죽을 때 죽더라도 호랑이를 잡자, 그 말이지? 크크크…… 이거 내가 미친 것 같군. 왜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뛰는 거지?”

 

독고무령이 장한의 눈을 직시한 채 말했다.

 

“남자라면, 그런 말에 당연히 가슴이 뛰어야 하지 않겠소?”

 

장한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빌어먹을! 오늘 재수 더럽게 없군. 술 한 잔 마시러 왔다가 완전히 코가 꿰었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눈빛만은 그 어느 때보다 활활 타올랐다.

 

 

 

* * *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옷 틈으로 파고드는 삭풍의 차가움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한 사람의 합류는 독고무령의 기분에 적지 않은 변화를 주었다.

 

장한의 이름은 한무종. 나이는 스물아홉이라 했다. 더 자세한 것은 자조의 표정을 지으며 그냥 넘어갔다.

 

그래도 독고무령은 재촉하지 않았다. 어차피 마음이 열리면 다 말을 하게 될 테니까.

 

‘괜찮은 사람을 얻었어.’

 

말하는 것을 보고 대충 한무종의 마음을 짐작했다. 한이 맺혀 있으면서도 상대의 힘에 좌절한 사람의 말투였다.

 

그렇게 생각한 그는 한무종의 마음을 자극해보았다.

 

굳이 많은 말이 필요 없었다.

 

한이 깊은 사람, 좌절한 사람은 심경을 건드리는 한마디에도 울컥하는 법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한무종은 자신의 말에 쉽게 반응했다. 그리고 이제 자신과 나란히 걷고 있다.

 

‘사혁과 큰 차이가 없을 만큼 강하다. 이런 자가 몇 명만 더 있으면 좋겠는데…….’

 

하늘의 수많은 별들 중 유난히 밝은 별이 있다. 사람들은 그 별을 곧잘 뛰어난 사람에 비교하곤 한다.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한무종도 능히 그런 별들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능정에서 십 리를 벗어날 즈음, 독고무령이 지나가듯이 물었다.

 

“제왕성과 어떤 관계요?”

 

한참 만에 한무종의 입이 열렸다.

 

“불구대천의 원수.”

 

역시 예상했던 대로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한무종은 대체 제왕성과 어떤 원한이 있는 걸까?

 

하지만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았다. 대신 말을 돌려 다른 질문을 던졌다.

 

“왜 혼자서 떠돈 거요?”

 

“제왕성이란 곳이, 나의 능력으로는 무너뜨릴 수 없을 만큼 강하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입술을 질겅거리던 한무종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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