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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106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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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암천제 106화

 

106화

 

 

 

 

 

 

독고무령의 질문에 조병탁은 숨을 한 번 몰아쉬고 대답했다.

 

“원주께서 제왕성 놈들에게 납치된 이후, 그 아이도 보이지 않았소.”

 

“최근 그녀의 소식을 들은 적이 있소?”

 

조병탁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저었다.

 

“듣지…… 못했소.”

 

“그럼 그 여인이 사라진 이후 한 번도 소식을 듣지 못했단 말이오?”

 

조병탁은 눈을 내리깐 채 기억을 더듬었다.

 

“그게…… 오 년 전인가? 그 아이를 제남에서 봤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소. 젊을 적 동문수학했던 친구였는데, 그 친구 말에 의하면, 어떤 노인과 함께 있었다 하오.”

 

“사실이오?”

 

조병탁이 눈을 치켜떴다. 최소한 몇 가지는 거짓이 아니었다. 하기에 그는 상대를 향해 자신 있게 쏘아붙일 수가 있었다.

 

“내가 왜 공자에게 거짓을 말한단 말이오?”

 

독고무령은 조병탁의 눈에 거짓이 없음을 알고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조금 전만 해도 진실이 아닌 듯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은 진실인 것처럼 보인다.

 

어느 것이,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알아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문을 하면 일각 안에 입을 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상대 나름, 유백하의 제자나 다름없는 조병탁을 고문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조병탁이 행방이 묘연해진 그녀의 위치를 안다는 보장도 없고.

 

고문은 최후의 방법. 일단 일보 뒤로 물러났다.

 

“그 친구의 이름이 뭐요?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오?”

 

“구진영이오. 하지만 만날 수는 없을 거요. 그 친구는 이 년 전에 죽었으니까.”

 

여전히 흔들림 없는 눈빛. 심장의 박동도 안정되어 있다.

 

사실이라면 동선이 끊겼다는 말. 아쉬운 일이었다.

 

‘제남에서 봤단 말이지?’

 

그나마 천하에서 제남으로 좁혀졌다.

 

결코 적은 수확은 아니었다. 지난 몇 달, 밀호방이 얻지 못한 것을 조병탁에게서 얻지 않았는가.

 

그때 조병탁이 물었다.

 

“그런데 왜 그 아이를 찾는 것이오?”

 

유백하가 찾아달라고 했으니까.

 

문제는 그 사실을 말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걸 말하려면 제왕성의 일까지 다 말해야 한다. 자신과의 관계까지.

 

자신이 유백하를 죽였다는 걸 알게 되면 뭐라고 할까?

 

물론 그 일은 숨길 수도 있다. 하지만 제왕성이 납치해간 후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된 유백하가 아닌가? 그런 사람에게 그러한 부탁을 들었다는 것 자체가 의심을 사고도 남을 일이었다.

 

결국 어느 정도는 사실을 말해야 한다는 말.

 

그러나 아직 모든 걸 다 말하기에는 시기상조다. 더구나 조병탁 역시 남의 집에 얹혀사는 사람. 완전히 믿을 수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녀를 찾아서 말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소. 그래서 찾으려는 것이오. 방법이 없겠소?”

 

“그 부탁을 한 사람이 누군데……?”

 

“그건 그녀를 찾은 후에 말해 주겠소. 어차피 찾지 못하면 소용이 없으니까.”

 

조병탁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말해 주어야 하나?

 

하지만 그녀에 대한 것은 자신의 친형제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터다.

 

앞에 있는 청년의 정체도 정확히 모르는 상태. 무턱대고 말했다가 그녀가 위험해지면 큰일이었다.

 

“으음, 당장은 마땅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구려.”

 

“사람을 동원할 수는 없겠소? 경비는 내가 댈 테니까. 나보다 당신이 그녀를 잘 알고 있으니 그것도 괜찮을 듯싶은데.”

 

조병탁은 끝까지 거부하지 못하고 요구 중 일부분은 응낙했다.

 

“그건 할 수 있을 것 같소. 한데 운이 좋아서 내가 그 아이의 소식을 알게 되면 어떻게 연락해야 하오?”

 

태원의 밀호방을 드러낼 수는 없는 일.

 

독고무령은 다른 방법을 찾아보았다.

 

“내가 주기적으로 사람을 보낼 테니 그에게 소식을 전하면 될 거요.”

 

조병탁도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 사이 앞에 있는 청년의 정체를 알아보면 될 테니까.

 

“알겠소.”

 

“그럼 부탁하겠소. 사소한 거라도 알게 되면 꼭 전해주시오.”

 

독고무령은 재삼재사 부탁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돌아서기 전 조병탁에게 물었다.

 

“이곳의 주인과는 어떤 관계요? 보아하니 가벼운 관계는 아닌 것 같은데?”

 

조병탁이 준비라도 한 것처럼 곧바로 대답했다.

 

“조카나 다름없는 아이요.”

 

충분히 가능한 관계다. 추월은 조병탁을 보호하고 있고, ‘그분’이라 부르며 윗사람으로 대하고 있지 않은가.

 

독고무령은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렸다. 들어온 지 반 시진 만이었다.

 

“나중에 좋은 일로 보기를 바라겠소.”

 

 

 

밖으로 나간 독고무령은 이마를 좁혔다.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이 추월루 전체를 감싸고 흐른다.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의 긴장이다.

 

고개를 돌린 그는 한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추월이 그녀를 호위하는 것처럼 보이는 삼십 대 여인 셋과 함께 서 있었다.

 

그가 가만히 바라만 보자 추월이 먼저 입을 열었다.

 

“손님이 오셨는데, 그분께서 당신을 찾고 있어요.”

 

독고무령은 천천히 좌우를 둘러보고는 추월에게 물었다.

 

“나와 함께 온 사람들은 어디 있소?”

 

“그분과 함께 있어요. 별 일은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자신이 지하에 있는 동안 뭔가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새벽이 되기도 전에 찾아온 귀한 손님. 그리고 사라진 수하들.

 

결코 단순한 일은 아닐 터였다.

 

“그는 어디 있소?”

 

독고무령이 담담히 묻자, 추월은 내심 안도하며 몸을 돌렸다.

 

“저를 따라오세요.”

 

 

 

* * *

 

 

 

추월이 안내한 곳은 삼층 누각의 일층이었다.

 

독고무령은 추월의 안내를 받으며 삼층 누각으로 들어갔다.

 

그 안쪽에는 십여 명이 늘어서 있었는데, 하나같이 상당한 기운을 지닌 자들이었다.

 

한무종을 비롯한 세 사람은 그들 한가운데 서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는 독고무령을 보고 한무종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독고무령이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요?”

 

“단주께서 하시는 일에 방해가 될까봐 저들의 말에 순순히 따라주었습니다.”

 

옷을 봐도 싸운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도열해 있는 자들은 모두가 절정에 근접한 고수. 개중 둘 정도는 한무종조차 상대하기 어려울 것처럼 보인다.

 

세 사람이 자신을 기다린 건 적절한 선택이었다.

 

“잘했소.”

 

도열해 있던 자들 중 하나가 콧소리를 내며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훗, 싸웠다면 거기에 서 있지도 못했을 걸?”

 

독고무령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도열해 있는 무사들 끝 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한 사람이 오연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서른 초반의 나이. 탄탄해 보이는 체구. 부리부리한 눈. 한눈에 강함이 느껴지는 자였다.

 

추월이 그를 소개했다.

 

“황보세가의 소가주이신 황보광 대협이세요.”

 

소가주, 오대세가의 하나인 황보세가의 후계자라는 말.

 

독고무령의 두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 사이 추월의 소개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쪽은 무령 공자예요, 황보 대협.”

 

황보광이 의자에 앉은 채로 입을 열었다.

 

“그대가 정아를 패대기쳤다 들었다. 맞는가?”

 

“그 사람이 황보정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면, 맞소.”

 

“죽이겠다고 했다던데?”

 

“물론 그런 생각도 가지고 있었소. 이곳의 주인이 말려서 참았을 뿐.”

 

“그냥 죽이지 그랬나?”

 

의외의 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독고무령도 설마 그런 말을 들을 줄은 생각지 못했던 터라 눈이 조금 커졌다.

 

“진심이오?”

 

“물론! 여자나 찾아다니며 가문을 욕되게 하는 놈은 죽어도 싸다.”

 

차가우면서도 묵직한 목소리에 진심이 담겨 있다.

 

싫지 않은 느낌을 주는 자. 황보광을 바라보는 독고무령의 두 눈이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그럼 다음에 또 그런 상황이 오면 죽이도록 하겠소.”

 

그 말이 또 의외였는지 황보광의 눈이 한껏 커졌다.

 

“그래? 와하하하!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젊은 친구를 만났군.”

 

“귀하는 내가 마음에 들지 모르지만, 나는 귀하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소.”

 

“음?”

 

황보광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때 옆에 도열해 있던 자들 중 하나가 노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무례하다! 말투가 그게 뭔가!”

 

독고무령의 눈이 그를 향했다.

 

입을 연 자는 갈의를 입은 중년인이었는데, 덩치가 진사혁만은 못해도 안에 있는 자들 중 가장 큰 자였다.

 

“본래 그러니 귀하는 신경 쓰지 마시오.”

 

“뭐야!”

 

덩치 큰 중년인이 발작할 것처럼 소리치자, 황보광이 손을 들어 막았다.

 

“그만하시오, 위 대협.”

 

“죄송하외다, 소가주.”

 

황보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독고무령에게 물었다.

 

“왜 내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건가?”

 

“동생의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을 어찌 좋아할 수 있단 말이오?”

 

“흠, 말이 그렇게 되나? 하지만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가문을 욕보이는 동생은 없느니만 못하니까.”

 

“외로운 곳에서 혼자 살다 보면 그런 마음도 변할 거요. 언제 시간나면 아무도 없는 동굴에 들어가서 한 이삼 년 살아보시오. 아무리 쓸모없는 동생도 그리워질 테니까 말이오. 그래도 마음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호, 그것도 일리 있는 말이군.”

 

황보광은 입을 닫고 독고무령을 직시했다.

 

“어쨌든, 동생이 당한 것은 따지지 않을 생각이다. 하나 본가의 명예가 손상된 것은 그냥 넘길 수가 없지.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먼저 원하는 걸 말해 보시오. 결정은 듣고 내리겠소.”

 

황보광은 묘한 놈 본다는 눈으로 독고무령을 보며 턱을 손으로 쓸었다.

 

“조금 전, 자네의 수하가 그랬지? 자네의 일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말을 따랐다고 말이야. 그럼 어떤가? 제대로 겨루어서 이긴다면 오늘 일은 더 따지지 않지.”

 

독고무령의 무심한 눈이 더욱 깊어졌다.

 

“그건 조금 마음에 드는군.”

 

 

 

사람들이 벽 쪽으로 물러나자 제법 넓은 공간이 생겼다.

 

촥!

 

도일성이 채찍을 풀어 쥐고 턱을 치켜들었다.

 

“누가 먼저 덤빌 거요?”

 

살아남기 위해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수련했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 사이 두 배는 강해졌다.

 

상대가 황보세가의 중견고수들이라 하지만, 도일성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오대세가의 하나인 황보세가의 고수들과 겨룬다는 것에 야릇한 흥분마저 느낄 지경이었다.

 

“내가 상대해주지.”

 

황보세가의 고수들 중에서 한 사람이 나왔다. 

 

이마에 커다란 점이 한 개 찍혀 있는 자였는데, 얍삽한 눈초리가 기분 나쁘게 느껴지는 자였다.

 

“나는 송추라 하네.”

 

“나는 도일성이오. 그럼 시작합시다.”

 

도일성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을 비틀었다.

 

쐐애액!

 

편두가 놀란 독사대가리처럼 송추의 목을 향해 튀어 올랐다.

 

“헛! 이런!”

 

대경한 송추는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휘리릭! 쉬쉬쉭!

 

도일성은 쉬지 않고 오 초의 공격을 가하며 송추를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송추는 황보세가의 중견고수답게 쉽사리 무너지지 않고 반격할 기회를 노렸다.

 

그렇게 십여 초가 흐르자 도일성의 편법에 구멍이 생겼다. 길이가 긴 채찍의 운용이 전각의 기둥으로 인해서 방해를 받은 것이다.

 

송추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쌍권을 휘둘렀다.

 

“빌어먹을! 밖에서 붙었으면 진작 끝났는데! 제기랄!”

 

도일성은 입에서 연신 쌍소리를 해대며 채찍을 휘둘렀다.

 

송추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끝나긴 끝났겠지! 네놈이 쓰러지고 말이야!”

 

그렇게 누가 유리한 것도 없이 막상막하의 대결이 펼쳐진 지 삼십여 초가 지날 무렵이었다.

 

도일성이 이를 악물고는 송추를 향해 달려들었다. 장병기인 채찍을 쓰는 그가 달려들 줄은 미처 몰랐는지 송추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순간, 도일성이 더욱 빨리 달려들며 채찍을 휘돌렸다.

 

패앵!

 

채찍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휘도는가 싶더니, 직경 석 자의 원을 그리며 송추를 향해 밀려갔다.

 

송추는 연달아 칠 권을 쏟아내며 도일성의 공격을 차단했다.

 

찰나였다. 도일성이 채찍을 쭉 뻗고는 냅다 달려들었다.

 

편두가 독사대가리처럼 날아들자, 기겁한 송추는 몸을 비틀며 쉬지 않고 주먹을 뻗었다.

 

퍼버벅!

 

송추의 주먹이 편두를 튕겨낸 순간, 도일성의 좌권이 송추의 가슴을 두들겼다.

 

퍼벅!

 

설마 주먹을 쓸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는지 송추는 일그러진 얼굴로 신음을 토해냈다.

 

“크윽!”

 

신음을 흘리며 뒤로 주르륵 밀려나는 송추를 향해 도일성이 재차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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