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1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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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105화
105화
제1장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자
독고무령과 눈이 마주치자, 황보정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며 몸을 떨었다.
황보세가라는 이름이 나오면 고양이 앞의 쥐처럼 겁먹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겁먹기는커녕 오히려 죽여서 입을 막겠다고 한다.
‘이, 이놈은 미친 새끼야…….’
전혀 예상치 못한 독고무령의 말에 충격을 받은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추월은 입을 반쯤 벌린 채 말을 못하고, 주위에 서 있던 추월루의 호위무사들은 몸이 굳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
독고무령은 말 몇 마디로 추월루의 정원을 조용하게 만들고 추월에게 다시 물었다.
“그는 어디 있소? 그것만 알려주면 그대를 곤란하게 만들 생각은 없소만. 저자의 목숨도 살려주고 말이오.”
황보정을 죽이겠다는 것.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그럴만한 실력도 있고, 행동으로 옮길 배짱도 있다.
추월은 그걸 알기에 갈등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황보정이 이곳에서 죽으면 황보세가는 추월루를 제일 먼저 압박할 것이다.
상대는 그걸 알고 자유자재로 상황을 조절하고 있다.
문제는, 대답을 거부할 경우 황보정만이 아니라 추월루 역시 피해를 입을 거라는 것이다.
‘이곳을 피로 물들이고 그분을 찾으려 하겠지.’
상대는 한때 천하를 뒤집어놓은 북천삼괴의 비전무공을 얻은 자. 그 내심을 누가 안단 말인가.
조병탁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추월루 전체를 걸 수는 없는 일. 다행이라면 조병탁을 해치기 위해서 온 것은 아닌 듯 보인다는 점이다.
추월은 무력은 물론 심기싸움에서도 패배했음을 인정하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분은 후원의 별실에 있어요. 제가 안내…….”
순간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독고무령의 신형이 갑자기 허공으로 쑥 솟구쳤다. 그를 보고 있던 사람들의 눈에는, 그가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극한의 빠름이었다.
찰나의 순간, 오 장을 솟구친 독고무령은 지붕 너머를 향해 손을 저었다.
“쥐새끼, 네가 갈 곳은 지옥뿐이다!”
삼 장의 허공을 격한 채 뻗어나간 귀혼낙의 일수가 지붕 언저리의 어둠을 갈랐다.
퍽!
“크윽!”
어둠속에서 터져 나오는 억눌린 신음소리.
독고무령은 사선으로 날아가며 다시 일장을 후려쳤다.
쾅!
“컥!”
단말마와 함께 지붕에서 한 사람이 굴러 떨어졌다.
독고무령은 천천히 땅으로 내려서서 떨어진 자를 쳐다보았다.
떨어진 자는 빼빼마른 몸에 쥐새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곡부귀의 설명에 부합하는 얼굴, 동초광이었다.
“동초광. 반 정도의 확률이었는데, 기다린 보람이 있군.”
동초광은 부들부들 떨며 공포에 질린 눈으로 독고무령을 올려다보았다.
조병탁이 추월루의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일일이 뒤져볼까 했지만 일개 기루라 하기에는 강한 무사들이 너무 많았다.
결국 그는 추월루 근처에 몸을 숨기고 사람의 긴장이 가장 느슨해지는 새벽을 노리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때마침 자신처럼 조병탁을 찾는 자가 나타났다.
그는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서 그들의 말을 들으려 했다. 잘하면 힘들이지 않고 조병탁의 거처를 알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마침내, 그가 후원 별실에 있다는 말이 추월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는 즉시 몸을 뒤로 빼서 후원으로 가려 했다.
심장을 가르는 가공할 기운이 밀려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단 두 번의 손짓.
동초광은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었다. 피하려 했을 때는 이미 칼날 같은 기운이 자신의 심장을 부순 직후였다.
그는 죽어가면서야 알았다.
자신의 움직임이 상대의 계산 하에 있었다는 걸.
어디에 있는지 모를 자신을 끌어내기 위해서 상대가 고의로 조병탁의 이름을 대놓고 거론했다는 걸.
“끄으으……. 넌 누구……?”
동초광의 입에서 핏물이 꾸역꾸역 흘러나온다.
독고무령은 눈앞에 있는 자가 동초광임을 확신하고 망설이지 않았다.
곡부귀에게 들을 만큼 들었다. 다 죽어가는 동초광에겐 더 들을 말이 없었다.
“숨어 있었으면 찾기가 힘들었을 텐데, 수고를 덜어줘서 고맙군. 그 대가로 깨끗하게 죽여주지.”
그는 무풍객잔에서 죽은 사람의 복수를 대신 해주는 심정으로 동초광의 옆머리를 후려 찼다.
퍽! 우두둑!
동초광의 머리가 팽 돌아가며 목이 부러져 버렸다.
독고무령은 죽은 동초광에게서 시선을 떼고 추월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제 그 사람을 만나러 갑시다. 그에게 물어볼 게 있으니까.”
뛰어난 머리. 단호한 행동.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살수. 얼마나 강한지조차 알 수 없는 무공. 거기다 석공이 정성을 다해 조각한 것처럼 보이는 얼굴까지.
추월은 묘한 떨림을 느끼고 침을 삼켰다.
저 사람은 누굴까? 누군데 황보세가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저리도 냉정하고 치밀하게 일을 처리한단 말인가?
그녀는 천하의 수많은 강호인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강호 천하에 저런 남자가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었다.
정말 북천삼괴의 제자가 맞는 걸까?
이제는 그조차 확신이 들지 않는다.
‘어쩌면…… 저 사람이라면…….’
추월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독고무령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제 와서 요구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감각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눈앞에 있는 남자는 세상 그 어떤 사람보다 위험한 자였다.
“좋아요, 저를 따라오세요.”
* * *
조병탁은 추월의 말대로 후원의 별실 지하의 아늑한 방에 있었다. 그의 방에는 수많은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서 그곳이 방인지 서고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독고무령과 추월이 방으로 들어가자, 책을 보고 있던 중년인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던 그는 독고무령을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지금까지 추월은 이 방에 오면서 남자를 데리고 온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저 사람은……?”
“물어볼 것이 있다고 해요.”
“나에게?”
조병탁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독고무령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독고무령은 무심한 표정으로 조병탁을 응시한 채, 추월에게 나직이 말했다.
“잠시 자리를 피해주시오.”
추월의 눈빛이 흔들렸다.
의견을 묻는 게 아니다. 그리 해달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안 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안 된다고 하면 꼭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 그녀의 목을 막았다.
답답해진 그녀는 어깨를 덮고 있던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망설였다.
어깨를 덮고 있던 기다란 머리카락이 그녀의 등 뒤로 넘어갔다. 그 바람에 사슴처럼 기다란 목이 드러났는데, 눈보다 더 하얀 그녀의 목에 찍혀 있던 앙증맞은 점 하나가 순간적으로 보였다가 옷자락에 다시 덮였다.
하지만 조병탁을 보고 있던 독고무령은 그 점을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추월이 망설이자, 조병탁을 걱정해 그러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녀를 안심시켰다.
“걱정 마시오, 저 사람에게는 손끝 하나 대지 않을 테니까.”
추월은 이를 지그시 악물고 몸을 돌렸다. 하지만 반쯤 몸을 돌리다 말고 독고무령에게 물었다.
“저는 당신의 요구를 다 들어줬어요. 당신도 최소한 이름 정도는 알려줘야 하는 게 아닌가요?”
“무령이오.”
독고무령이 툭 던지듯이 답해주었다. 성을 뺀 이름만.
지금 독고무령이라는 이름이 산서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 곧 하남에도 알려질 터. 자신이 유하령을 찾고 있다는 걸 누군가가 알아봐야 좋을 게 없는 것이다.
무령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성까지 알아낸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때 추월이 다시 물었다.
“북천삼괴와는 어떤 관계죠? 펼친 장력이 혼천묵양공인 것 같던데요.”
독고무령은 고개를 돌리고 추월의 눈을 무심한 눈으로 직시했다.
“어떻게 알았소? 혼천묵양공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강호를 통틀어도 몇 명 되지 않소만.”
눈이 정면으로 마주치자, 추월의 눈빛이 보일 듯 말 듯 흔들렸다.
“사부님께서 일전에, 기행을 일삼다 사라진 고인들에 대해 말씀해주신 적이 있었죠. 그중 북천삼괴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는데, 당신이 쓴 무공이 그분들 중 한 분의 대표적인 무공과 비슷해서 짐작해본 거예요.”
추월의 사부가 누구인진 모르지만 거짓은 아닌 것 같다.
독고무령은 추월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 채 나직이 말했다.
“단순히 그런 거라면, 오늘 본 것은 잊으시오. 다른 사람에게 말해봐야 곤란한 일만 생길 테니까.”
추월의 입가로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그건 그렇죠. 삼괴의 존재 자체가 강호인들에겐 번뇌일 테니까요. 그런데 그분들, 지금도 살아 계신가요?”
“나도 모르오. 몇 년 전에 헤어진 후 보지 못했으니까.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북천삼괴의 제자가 아니오. 약간의 인연이 있었을 뿐.”
그 말을 끝으로 독고무령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북천삼괴에 대해선 더 말할 게 없다는 듯.
추월은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달싹였지만, 입 밖으로는 내뱉지 않았다.
‘무령…….’
그녀는 그저 다시 한번 독고무령의 이름을 가슴속에서 되뇌며 몸을 돌렸다.
탁.
그녀가 나가고 방문이 닫히자, 독고무령은 조병탁에게 다가갔다.
조병탁의 다섯 자 앞까지 다가간 독고무령이 입을 열었다.
“모르는 걸 말해 달라고 하지는 않을 거요. 그러니 편안한 마음으로 대답해주시오.”
추월이 두 사람만 남겨 놓고 나갔다. 뭘 말해도 상관없다는 뜻.
조병탁으로서는 목숨과 함께 가져갈 비밀이 아닌 이상 말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나 같은 평범한 학사에게 뭘 알고 싶은 거요?”
독고무령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먼저 하나, 혈겁이 벌어진 그날, 백운서원에서 벌어진 일을 말해주시오. 임시원주라는 자가 죽기 전에 대부분의 일을 말했으니, 귀하는 그가 모를 거라 생각되는 것만 말하면 되오.”
조병탁의 눈빛이 거세게 출렁였다.
“그, 그가 죽었단 말이오?”
“그렇소. 물론 그의 수하들도 모두.”
조병탁이 부들부들 떨며 이를 갈았다.
“잘 죽었다, 나쁜 놈들! 정말 잘 죽었어…….”
나직이 말하는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흔들리는 그의 눈에 물기가 어른거렸다.
그는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독고무령은 그의 맞은편에 앉아 조병탁의 마음이 가라앉길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조병탁이 찻물로 입술을 적시고 말문을 열었다.
“그날 우리가 서원에 들어갔을 때는 모두가 죽어 있었소. 한 사람도 빠짐없이. 우리는 바로 그곳을 떠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소. 놈들이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으니까. 그 후 우리는…….”
조병탁은 한참 동안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에는 별 다른 것이 없었다.
독고무령은 꾹 참고 그의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혹시 전대원주의 딸인 유하령이라는 여인에 대해 아시오?”
조병탁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그가 어찌 그녀를 모를까. 어릴 때부터 숙부라 부르며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거늘.
“물론이오.”
“그럼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