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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103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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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암천제 103화

 

103화

 

 

 

 

 

 

제10장 추월루(秋月樓)

 

 

 

 

 

정주에서 개봉(開封)까지는 이백 리 길.

 

인시(寅時) 초. 개봉에 도착한 독고무령 일행은 닫혀 있는 성문을 보고 성벽을 넘어서 성 안으로 들어갔다.

 

성 안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개봉은 모두가 처음 와본 곳. 당연히 독고무령 일행 중 추월루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독고무령은 추월루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에 대해선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 이 시각에는 개봉부의 어지간한 건물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으니까. 야간순찰을 도는 포졸들이.

 

아니나 다를까, 성에 들어온 지 반각 만에 동서로 뻗은 대로에서 포졸을 만났다. 

 

그들은 은자 닷 냥의 거금을 받더니 독고무령 일행을 직접 추월루 입구까지 안내하는 친절을 보였다.

 

거리가 상당히 되었기에 독고무령 일행은 순순히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혹시 어제 저녁에 추월루에서 시끄러운 일이 벌어지지 않았소? 사람이 죽었다든지.”

 

독고무령은 추월루로 가던 중에 넌지시 물었다.

 

포졸 중 하나가 고개를 저으며 어림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간이 배 밖에 나오지 않은 이상 추월루에서 누가 소란을 피운단 말이오?”

 

“강호인들은 가끔 소란을 피우잖소?”

 

“훗! 다른 곳에선 그렇게 할지 몰라도 추월루에선 그런 자가 거의 없소이다. 죽기로 작정했다면 또 모르지만.”

 

독고무령은 포졸의 말을 듣고 추월루가 일반주루가 아님을 직감했다.

 

강호인들이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말인즉, 추월루에 그만한 힘이 있다는 말. 그렇다면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곳에 대해서 아는 대로 말해줄 수 있겠소?”

 

독고무령의 말에 포졸은 신이 나서 추월루에 대한 것을 말해주었다.

 

 

 

* * *

 

 

 

추월루(秋月樓)는 개봉 제일의 기루였다.

 

삼층 누각을 중심으로 퍼져 있다는 열다섯 개의 건물.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삼백여 명의 기녀. 기녀들을 호위하는 이백 명의 호위무사. 그 어느 것 하나 여타 기루는 흉내도 낼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합친다 해도, 추월루의 주인인 추월(秋月), 그녀의 아름다움만큼 유명하지는 못했다.

 

하남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천하를 통틀어도 열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절세의 미녀. 그게 추월인 것이다.

 

오 년 전에 나타나 명월루를 인수한 그녀는 기루의 이름을 추월루로 바꾸었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서 천하의 기인협객, 거부들이 돈을 싸 짊어지고 추월루로 몰려들었다.

 

강호의 고수들이 너도나도 나서서 추월루의 후견인을 자처했다. 개중에는 정주 제일의 세력인 황보세가의 간부도 있었다.

 

추월루를 어떻게 해보려던 흑도문파들은 찍소리도 못하고 아부를 떨기에 바빴다.

 

결국 추월루는 단 일 년 만에 개봉의 화류계를 평정했다. 

 

 

 

“하지만 추월과 마주 앉아서 술 한 잔 나눌 수 있는 사람은 하루에 셋 정도에 불과하다오.”

 

포졸의 이야기가 끝날 즈음, 마침내 추월루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가 바로 추월루요.”

 

포졸은 커다란 삼층 누각을 가리키고는, 침을 찍 뱉고 뒤돌아섰다.

 

추월루 앞에 선 독고무령은 좌우를 둘러보았다.

 

삼층 누각을 중심으로 이층의 건물이 좌우로 길게 늘어져 있고 정원도 상당히 넓어 보였다.

 

건물이 열다섯 채라 했으니 후원도 있을 터. 그렇다면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한눈에 가늠하기 힘들 만큼 큰 규모. 포졸이 개봉 제일의 기루라고 하더니 빈말이 아니었다.

 

영업이 끝난 시각이어서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조병탁이라는 자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이상 무작정 담장을 넘어 들어갈 수도 없는 일. 차라리 정식으로 들어가서 물어보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일단 사람을 불러 봅시다.”

 

독고무령의 말에 한무종이 나서서 닫힌 문을 제법 세게 두들겼다.

 

탕탕탕!

 

얼마 지나지 않아 퉁명스런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지 모르지만, 장사 끝났으니 그만 가쇼!”

 

“물어볼 게 있어서 왔으니 일단 문 좀 열어보시오.” 

 

“물어볼 게 있으면 날 샌 후에 오쇼.”

 

그때 바라만 보고 있던 독고무령이 입을 열었다.

 

“한 번 더 부탁해보고, 그래도 문을 안 열면 부수시오.”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안에 있는 자가 못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다른 사람 귀에는 잘 안 들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너무나 똑똑히 들렸다. 독고무령이 그가 잘 들을 수 있도록 소리를 응집해서 보냈으니까.

 

“뭐야? 문을 부숴? 아, 나! 성질 좀 죽이려고 했더니!”

 

문 안쪽에 있던 자가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빗장을 풀고 문을 열었다.

 

그는 서른 전후의 장한이었는데, 문 밖에 서 있는 네 사람이 모두 강호인임을 알고 움찔했다.

 

하지만 곧 자신의 머리 위에 있는 현판의 이름을 믿고 눈과 목에 힘을 주었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행패를 부리려는 것이냐!”

 

순간 길쭉한 뭔가가 살아있는 뱀처럼 뻗어가더니 장한의 목을 휘어 감았다. 도일성의 채찍이었다.

 

“이백 리를 달려와서 힘들어 죽겠거든? 그러니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자고.”

 

“컥.”

 

장한은 황급히 채찍을 풀어내려 했지만, 어떻게 감긴 것인지 채찍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때? 들어가도 되겠어?”

 

도일성이 묻는데도 장한은 안색이 흙빛이 되어 눈알만 굴렸다. 그때 건물 안쪽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오중, 무슨 일인가?”

 

그는 사십 초반의 백의를 입은 중년인이었는데, 걸음걸이가 가볍고 눈에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단순히 주루의 잡일을 보는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친 기운을 지닌 자.

 

독고무령은 그를 보고 포졸의 말이 이해되었다.

 

‘일개 주루를 강호의 세력도 함부로 건들지 못한단 말이지?’

 

그 사이 한무종이 나서며 도일성에게 눈짓을 했다.

 

도일성이 장한의 목에 감긴 채찍을 풀자, 한무종이 중년인을 향해 말했다.

 

“뭐 좀 물어볼 게 있어 왔소.”

 

중년인은 안색이 창백한 장한을 힐끔 쳐다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물어볼 게 있어 왔다는 사람들의 태도치고는 너무 고압적이군.”

 

“일이 다급해서 무리를 한 것뿐이오.”

 

한무종은 담담히 말하고 안쪽을 쓸어보았다.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는 않았지만, 은밀히 문 쪽을 주시하고 있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지요.”

 

중년인, 추월루의 부총관인 모종경은 바로 거절하지 못했다.

 

말하는 자뿐만이 아니라, 그의 뒤에 서 있는 세 사람 역시 기세가 범상치 않았다.

 

한밤중에 찾아온 네 명의 청년고수. 왠지 끈적끈적한 기분이 느껴졌다.

 

그는 다른 이유를 대고, 일단 독고무령 일행이 추월루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귀한 손님이 와 있어서 소란스러워지는 것은 원치 않소. 괜찮다면 아침에 다시 오시오.”

 

“아침에 다시 올 거였다면 지금 이 시간에 이백 리를 정신없이 달려오지 않았을 거요.”

 

이백 리?

 

모종경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한무종을 바라보았다.

 

밤에 이백 리를 달려온 자들이 가란다고 갈까? 그것도 대뜸 채찍을 휘둘러 목을 감는 자들이?

 

그는 일단 상대의 요구를 반쯤 들어주었다.

 

“정 그렇다면 물어볼 게 뭔지, 우선 그것부터 말해보시오.” 

 

한무종이 독고무령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독고무령이 입을 열었다.

 

“조병탁이라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고 들었소. 그를 만나고 싶소만.”

 

“조병탁?”

 

모종경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곧 이어진 독고무령의 설명에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는 학사요. 몇 년 전까지는 정주에 머물렀고 말이오.”

 

“나는 그런 사람 모르…….”

 

“말장난 할 여유가 없소. 그가 죽기 전에 그에게서 들을 말이 있으니까.”

 

“무슨……?”

 

모종경이 계속 머뭇거리자 독고무령은 더 기다리지 않고 강하게 나갔다.

 

“여유가 없다고 했는데도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는군.” 

 

“뭐라?”

 

모종경의 이마에 서너 줄기 골이 파였다.

 

하지만 독고무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말해주지 않겠다면 우리가 찾아보지.”

 

모종경은 눈을 치켜뜨고 노기를 드러냈다.

 

“보자보자 하니까, 젊은 놈이 안하무인이로구나!” 

 

그가 소리친 순간, 여기저기서 여섯 명의 장한들이 바람처럼 나타났다. 

 

손에 무기를 든 것이 추월루를 지키는 호위무사들인 듯했다.

 

‘호위무사가 이백 명 있다고 했던가?’

 

독고무령이 포졸의 말을 떠올리는 사이, 그들 중 하나가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부총관님, 그자들은 저희에게 맡기시고 물러나시지요.”

 

기루라 하면 흑도의 무리가 호위무사를 하며 뒷일을 봐주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추월루의 호위무사들은 결코 흑도의 무사들이 아니었다.

 

정심한 내력을 지닌 자들. 하나같이 일류에 근접한 실력을 지닌 그들이 어찌 단순한 흑도의 무리일까.

 

그들이 나타나자 중년인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

 

“지금이라도 물러난다면 더 이상 따지지 않겠다.”

 

독고무령은 물러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제압하시오.”

 

그의 명령이 떨어진 순간.

 

쉬이익!

 

한무종의 칼이 도집을 벗어나 모종경을 향해 휘둘러졌다.

 

어둠을 가르는 도광이 눈앞에서 번쩍이자, 모종경이 황급히 물러났다.

 

그러나 그가 피하기에는 한무종의 칼이 너무나 빨랐다. 

 

세 번의 칼질이 어둠을 가르는 사이 모종경의 움직임이 완전히 차단되었다.

 

“부총관님을 구해!”

 

뒤늦게 호위무사들이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감가기와 도일성이 그들의 앞을 막으며 검과 채찍을 휘둘렀다.

 

쩌정! 촥!

 

여섯 명의 호위무사들은 접근조차 못해보고 뒤로 밀려났다.

 

그와 동시, 모종경의 어깨에 한무종의 칼이 얹어졌다.

 

모종경의 어깨에 칼을 얹은 한무종이 씩 웃으며 말했다.

 

“단주께서 시간이 없다잖소?”

 

“네, 네놈들이……!”

 

모종경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설마 자신이 손도 못써보고 당하다니!

 

갑자기 고요에 잠긴 장내에 독고무령의 무심한 목소리가 울렸다.

 

“조 학사는 어디 있소?”

 

“나, 나는…… 모른다! 지금 네놈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주위에 둘러서 있던 호위무사들도 분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죽일 놈들! 빨리 그분을 풀어주지 못하겠느냐!”

 

하지만 독고무령의 무심한 목소리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너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서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었다. 

 

“한 형, 그가 한 번 더 모른다고 하면 팔을 하나 자르시오. 손이 하나 없어도 말하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까.”

 

“예, 단주.”

 

모종경의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보통 사람이라면 저런 말을 저렇게 태연하게 할 수가 없다. 상대는 미친놈이든가, 아니면 지독한 살귀다.

 

문제는 어떤 쪽이든 자신에게 득 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 이놈들은 대체…….’

 

그의 마음을 알 바 없다는 듯 독고무령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다시 묻겠소. 조 학사는 어디 있소?”

 

모종경은 이를 악물었다. 대답을 하자니 비밀을 털어놓아야 하고, 말하지 않으면 팔이 잘릴 판이다.

 

“나, 나는…….”

 

모종경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삼층 누각 쪽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멈춰라!”

 

삼층 누각 안에서 나타난 자는 모종경보다 서너 살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중년인이었다.

 

길고 하얀 얼굴. 가늘고 일자로 늘어진 눈. 그로 인해서 유난히 차가워 보이는 인상이다. 굳이 더한다면 몸속에 수십 년의 내공을 지니고 있다는 것 정도.

 

그가 나타나자 정원 쪽에서 이십여 명의 무사들이 접근하더니, 정문을 닫고 독고무령 일행을 빙 둘러쌌다.

 

적을 완벽히 둘러싼 상황. 목에 칼이 얹어져 있음에도 모종경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물론 독고무령은 그의 출현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한 형, 그의 두 팔을 다 자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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