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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127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9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127화

 

127화

 

 

 

 

 

 

“그는 기회라 생각하고 모든 힘을 집중할 겁니다.”

 

“그가 무너지면 황궁이 나서겠지?”

 

“쉽게 나서지 못할 겁니다. 숨죽이고 있던 금의위가 움직일 테니까.”

 

“금의위라……. 아우 작품인가?”

 

“소제는 단지 상황을 알려주고, 기회가 올지 모른다는 것을 말해줬을 뿐이지요. 어차피 결정은 그들이 내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후후후, 그건 그렇지. 그러고 보면 아우야말로 무서운 사람이야. 말 몇 마디에 금의위를 움직이다니.”

 

“그런 말 하지 마십시오. 괜히 살이 떨립니다.”

 

“훗, 그래, 북경으로는 언제 돌아갈 건가?”

 

“내일 날이 밝으면 바로 갈 생각입니다.”

 

“아쉽군, 아우가 곁에 있으면 내가 훨씬 편할 텐데…….”

 

“그보다…… 태원의 일, 조금 심하셨습니다. 선유를 미끼로 쓰시다니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하지 않았습니까?”

 

“사지가 다 꺾인 놈들이 그런 잔머리를 굴릴 줄은 미처 몰랐네. 암천사신이란 놈이 태원에 숨어있을지 몰라서, 기왕 일을 벌인 거 그놈까지 잡으려 했거늘, 백마방의 잔챙이들만 걸려들었으니…….”

 

“저도 그자에 대한 말은 얼핏 들었습니다. 대체 어떤 놈입니까?”

 

“나도 정확한 것은 알지 못하네. 다만 무천련의 잔당들이 놈을 중심으로 뭉칠지 몰라서 미리 제거하려는 것이지. 어쨌든 성아가 수련을 마치고 나오면 놈을 잡는 임무를 맡길 생각이네. 성아가 놈을 잡는다면 후계 자리를 확고하게 다질 수 있을 거야.”

 

잠시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위지천백도 그대로 눈을 감은 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로부터 셋을 셀 즈음,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북경의 일이 제대로 마무리되면, 노태군의 뒤통수를 칠 수 있도록 일을 꾸며보겠습니다. 그 후에 뵙지요.”

 

“알겠네.”

 

위지천백은 대답하고 나서도 일각가량이 더 지나서야 눈을 떴다.

 

일순간, 그의 두 눈에서 신광이 쏟아졌다.

 

‘노태군, 너는 아느냐? 그가 살아있다는 걸!’

 

 

 

* * *

 

 

 

해가 질 무렵, 전서구 한 마리가 서쪽에서 날아들었다.

 

운양은 전서구 다리에 매달린 서신을 꺼내보고 곧장 독고무령을 찾아갔다.

 

“공노명이 직접 서연으로 간다고 하네. 제왕성 세력의 삼 할 이상이 그를 따라간다고 하는군.”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건가?”

 

“이번 싸움으로 제왕성의 의도가 명백히 드러나지 않았는가? 더구나 최소한의 피해로 은룡산장의 세력을 치려던 계획이 무산되었으니 다른 방법이 없었겠지.”

 

“그럼, 은룡산장도 움직였다고 봐야겠군.”

 

“아직 소식이 들어오지는 않았네만, 그렇다고 봐야 할 거네.”

 

운양은 담담히 대답하고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제왕성과 은룡산장.

 

천하를 뒤흔드는 세력들이 단순한 정보 하나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만일 자신 혼자 생각했다면 그런 식으로 이용할 수 있었을까?

 

결과를 보고나면 누구나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운양은 정보를 다루는 사람이기에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정보를 모으는 것과 모아진 정보를 이용해 어떤 일을 직접 실행으로 옮긴다는 것.

 

그 둘은 비슷하면서도 확연히 다른 일인 것이다.

 

똑같은 상황이라 해도 일개 지방을 다스리는 사람과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이 일을 처리하는 게 다른 것처럼.

 

운양은 새삼 자신과 독고무령의 틀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이런 괴물과 친구인 게 어디야?’

 

그는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러는 게 속이라도 편했다.

 

그때 독고무령이 눈을 좁히며 나직이 말했다.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는군.” 

 

운양은 상념을 떨치고 독고무령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 건가? 전면전이 시작되면 보나마나 산서 전역에 불똥이 튈 텐데. 계속 보고만 있을 건가?”

 

“단순한 강호세력의 싸움이 아니네. 천하 패권을 다투는 자들의 힘겨루기라고 봐야 되네. 전면전을 벌인다 해도 당장 으르렁거리면서 물고 뜯지는 않을 거야.”

 

운양이 고개를 모로 꼬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벌써 한바탕 붙지 않았나?”

 

“내가 알기로, 전초전은 적에 대한 탐색과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벌이는 싸움이라 하더군. 비록 위지천백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엊그제의 싸움은 그저 선전포고를 겸한 전초전일 뿐이라는 생각이네.”

 

“흐음, 그럼 공노명이 서연으로 움직이는 건, 더 이상의 진격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위지천백의 의지라 봐야겠군.”

 

“아무래도 그렇게 봐야겠지. 물론 기회만 되면 은룡산장을 치겠다는 생각도 있을 테고 말이야.”

 

“후우, 수백 명이 죽었는데 겨우 전초전이라니. 이거 갈수록 겁나는군.”

 

말은 겁난다고 하면서도 눈에 열기가 떠오르는 운양이다.

 

저들은 알까? 뒤에서 자신들을 노리는 암천회가 있다는 것을?

 

운양은 그것만으로도 묘한 흥분감에 입이 바짝 말랐다.

 

독고무령은 그런 운양을 응시한 채 나직이 말했다.

 

“전쟁의 불길은 어느 날 갑자기 타오르게 될 거네. 그 불길이 최고조로 타오르면, 저들은 우리의 존재를 의식할 여유도 없을 거야. 그때까지 모든 준비가 끝나야만 그나마 우리에게 승산이 있을 거네.”

 

운양은 몸을 흠칫 떨고 느릿하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결국은 준비를 어느 정도 철저히 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 나겠군.”

 

독고무령은 마주 고개를 끄덕이고는 운양에게 물었다.

 

“천룡방이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했지? 사자들은 언제 도착할 것 같나?”

 

“별일만 없다면 내일모레 사이에 도착할 거네. 동문의 장원도 정비가 거의 끝났으니 그곳으로 데려갈 생각이야.”

 

어느덧 암천회의 인원이 삼백에 가깝게 늘어난 상태.

 

운양은 동문 근처의 장원을 하나 매입해서 손보는 중이었다.

 

“이틀……. 적당하군.”

 

적당하다고?

 

운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독고무령은 담담한 표정으로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그때쯤이면 제왕성은 서연에, 은룡산장은 우현에 무력을 집결시키고 대치한 상태일 거네. 그들이 그 사실을 안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달려들겠지.”

 

운양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갸름한 눈으로 독고무령을 노려보았다.

 

“회주, 산속에서만 살았다는 거, 정말이야? 그런 사람이 어떻게 수많은 사람을 상대해 본 나보다 더 사람들의 심리를 잘 파악하는 거지?”

 

고문은 심리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거늘 십 수 년 간 고문당하는 사람들 옆에서 산 독고무령이다. 게다가 그 후 일 년은 직접 고문을 하며 심리싸움을 벌였지 않은가.

 

그러나 독고무령은 다른 이유를 댔다.

 

“산속이라고 해서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 자네도 갇힌 곳에서 삼괴와 오 년을 넘게 살아 보게. 아마 상대의 마음을 파악하는 것에서 만큼은 나보다 더 고수가 되었을 거야. 조금만 방심하면 죽을 고생을 해야 하니까.”

 

운양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며칠도 괴로운데 어떻게 몇 년을 버틴단 말인가?

 

그러고 보면, 그런 삼괴와 오 년을 넘게 살아온 독고무령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건 그렇군. 아마 나는 일 년도 못 버티고 머리가 터져 죽었을 거네. 아니지, 그 전에 치선 어르신의 괴상한 약을 먹고 미쳐버렸을 거야.”

 

치선의 약 이야기가 나오자, 독고무령은 그때의 일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내가 처음 그분을 만났을 땐, 그 약이 커다란 단지로 하나 가득 있었지.”

 

“커, 커다란 단지? 그럼 요즘 사람들에게 건네주는 것이 그건가?”

 

“아니, 아마 새로 만든 약 같네.”

 

“단지로 가득 있었다며?”

 

“그건 남은 게 없네. 내가 다 먹어서 없앴거든.”

 

운양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 그걸…… 혼자!”

 

세상에! 그 독한 약을 단지째 먹다니!

 

확실히 자신과 독고무령은 틀이 달랐다.

 

 

 

* * *

 

 

 

어둠과 함께 내리기 시작한 부슬비 때문인지 창밖에 안개가 낀 것만 같다.

 

건너편 건물조차 잘 보이지 않을 정도.

 

추월루의 삼 층 전각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희미하다.

 

유하령은 어둠이 완전히 추월루를 뒤덮자 창문을 닫고 돌아섰다.

 

막도환의 말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을 알아봤는데, 아무도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루주.”

 

“그럼, 산서사람도 아니라는 말인가요?”

 

의자에 앉은 유하령이 실망한 표정을 짓자, 막도환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루주, 무령은 찾지 못했지만, 그와 비슷한 이름을 지닌 자가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그가 바로 무령이라는 자일 것 같습니다.”

 

“비슷한 이름?”

 

문득 그가 황보광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무령, 일단 그렇게만 아시오.

 

 

 

그녀의 눈이 기대감에 가득 찬 빛으로 반짝였다.

 

“누구죠?”

 

막도환이 말했다.

 

“독고무령이라는 자입니다.”

 

“독고무령?”

 

“암천사신이라는 별호로 더 유명하지요.”

 

유하령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녀도 암천사신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다. 최근 들어 산서에서 온 강호인들이 한결같이 입에 담으며 술안주로 삼는 이름이 아닌가.

 

무천련의 희망. 암천의 별. 암천사신.

 

하지만 그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어떤 자는 과장된 소문이라고도 했고, 어떤 자는 오히려 과소평가되었다고 했다. 

 

어떤 자는 그의 나이가 오십이 넘었다고도 하고, 어떤 자는 아직 서른이 안 되었다고도 했다.

 

분명한 것은, 제왕성의 무사들이 그를 두려워할 정도로 강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사신이라 불리는 걸로 봐서 성격도 냉정하고 손을 씀에 단호하다는 말.

 

‘암천사신 독고무령!’

 

속으로 그 이름을 되뇌는 그녀의 전신에 전율이 일었다.

 

심장에서 싹튼 씨앗의 뿌리가 혈관을 타고 치달리는 기분!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에 고막이 터질 것만 같다.

 

그가 틀림없어!

 

단정을 내린 그녀는 내력을 끌어올려 마음을 가라앉혔다. 자신의 들뜬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겨우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에야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막도환에게 물었다.

 

“그에 대해서 알아낸 것이 있나요?”

 

“행적이 오리무중이어서 도무지 그림자도 잡을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항간에선 제왕성에 의해 척살되었을 거라는 소문조차 돌고 있는데, 제 생각으로는 뜬소문인 것 같습니다.”

 

유하령 역시 독고무령이 죽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얼마 전에 무령이 보낸 사람이 왔다. 무령이 암천사신이라면, 죽은 자가 사람을 보냈을 리는 없지 않은가.

 

“그건 맞아요. 그들이 정말 암천사신을 죽였다면, 만천하에 떠들었을 거예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기 위해서라도. 어쨌든 문제는 그가 어디에 있냐 하는 것인데…….”

 

찾아온 자에게 아직 알아낸 것이 없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한 후 뒤를 쫓았다.

 

그런데 그만 그의 행적을 황하에서 놓치고 말았다. 그를 놓치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보다 확실한 것을 알아냈을 것이거늘…….

 

유하령은 그를 놓친 것이 무척 아쉬웠다.

 

제왕성에서도 찾지 못하고 있다면 그만큼 깊이 숨어 있다는 말. 자신들 역시 그를 찾는다는 게 쉽지 않을 것이 분명한 것이다.

 

하지만 유하령은 포기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사람을 더 늘려요. 산서의 남쪽에서 북쪽까지, 태행산이든 장성 너머의 사막이든,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도 가보라고 하세요. 비용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어요.”

 

굳은 의지가 실린 말투.

 

막도환은 유하령이 왜 암천사신을 그리도 악착같이 찾으려 하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의문을 품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추월, 유하령의 명령은 그에게 천자의 명보다 우선이었다.

 

“예, 루주.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제11장 폭풍우와 함께 몰려드는 사람들

 

 

 

 

 

남쪽에서 올라온 봄바람이 끈적끈적한 습기를 머금은 날 아침.

 

관제산에서 내려온 육백 무사는 한 대의 마차를 호위한 채 동쪽으로 내달렸다.

 

그들이 분하를 건널 즈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시간이 갈수록 굵어졌다.

 

하지만 마음이 조급해진 그들은 진창길도 아랑곳하지 않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 시각.

 

낭아산 자락의 은룡산장을 출발한 오백 무사가 태행산맥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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