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121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2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121화
121화
장유유가 입을 삐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두 번이나 사람을 보냈는데……. 어디 오기만 해봐라. 내가 가만 안 놔둘 거야.”
“찾아간 곳에서 들은 말은 없고?”
“무조건 알았다고, 기다리라고만 했대.”
장가장의 일이 벌어진 지 석 달이 지났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연락조차 안 할 장소천이 아니다.
뭔가 이상했다.
장소천이 갔다는 대홍문에 대해 알아봤지만, 하북에 그런 문파가 없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리고 장유유가 말한, 대홍문과 연락이 된다는 곳은 보정의 한 객잔이었는데, 객잔 사람들 말로는 대홍문의 제자라는 사람들이 간혹 들러서 혹시 자신들을 찾는 사람이 없는지 알아본다는 말만 했다고 했다.
결국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독고무령은 운양에게 다시 한번 부탁해 볼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이상해. 철저히 알아봐야겠어.’
그때 장이생의 방문이 열리며 소설향이 밖으로 나왔다.
“무령이 왔구나.”
“장주님은 깨어나셨습니까?”
“일어나서 책 보고 계신다. 들어가 봐라.”
“예, 어머…….”
독고무령은 무심코 ‘어머니’라는 말을 하다 멈칫했다.
소설향이 조용히 웃으며 독고무령과 장유유를 번갈아보았다.
순간 장유유가 빨개진 얼굴을 푹 숙이며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독고무령은 뭔가 미묘해진 분위기에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소설향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너는 소천이의 친구가 아니더냐. 그리고 유유의 오빠고 말이다. 그래서 나도 너를 아들처럼 생각하고 있단다. 앞으로 마음 편하게 그렇게 부르려무나.”
갑자기 심장이 두방망이질 친다.
독고무령은 떨리는 목소리를 가라앉히기 위해 턱에 힘을 주어야만 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러엄.”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뭔가가 울컥 올라왔다.
어머니가 생겼다. 어머니가…….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가 아닌, 바로 앞에 있는 어머니다.
독고무령은 귀청이 쿵쿵 울리고 가슴이 먹먹해져 그 자리에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들어가 보겠습니다.”
독고무령이 고개를 숙이고 서두르자 소설향이 나직이 말했다.
“아마 상공도 나와 같은 마음일 거다. 그러니 네가 편한 대로 부르도록 해라.”
“예…….”
나직이 대답한 독고무령이 방으로 들어가자, 장유유가 슬쩍 고개를 들고 소설향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빨개진 얼굴로.
소설향은 그런 딸을 보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장유유는 배시시 웃으며 손가락만 만지작거렸다.
장이생은 부드러운 웃음으로 독고무령을 맞이했다. 모두가 웃음에 전염된 듯했다.
독고무령은 그 모습이 싫지 않았다. 어두웠던 안색보다야 보기도 훨씬 좋고 자신의 마음도 밝아지는 기분이거늘, 싫을 이유가 뭐 있을까.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일단 앉아라.”
독고무령은 장이생의 맞은편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장이생은 독고무령이 자리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자 담담하게 물었다.
“하는 일은 잘 되고 있느냐?”
장이생이 묻는 것은 무천련의 재건에 대한 것이었다.
암천회에 대한 것은 말해주지 않았다. 많이 알면 많이 알수록 위험만 커질 테니까. 하기에 장이생은 자신이 그저 무천련의 잔여세력을 모으기 위해 움직이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예, 그 일 때문에 찾아뵌 것입니다.”
“나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해 봐라.”
독고무령은 장이생을 똑바로 바라본 채 자신이 온 용건을 말했다.
“아무래도 곧 전쟁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제왕성과 그들의 배후에 있던 자들이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누었습니다. 혹시라도 전쟁의 불길이 태원으로까지 번질지 모르니 당분간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장이생의 표정이 굳어졌다.
“너도 나설 생각이냐?”
염려가 가득한 목소리.
독고무령이 왜 장이생의 마음을 모를까. 그는 장이생의 염려를 덜어주기 위해 돌려서 이야기했다.
“준비가 되는 대로 저들의 약점을 노려볼 생각입니다.”
장이생은 걱정이 되었지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기에 답답하기만 했다.
“그들이 굳이 나를 노릴 이유가 있을까?”
“은룡산장과 제왕성은 암암리에 정보원을 풀어 저를 찾고 있습니다. 당장은 저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총력을 기울여 조사하면 오래지 않아 저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 와중에 저와 장주님과의 관계를 알게 된다면 이용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단지 ‘안다’는 것만으로 일가를 몰살시키려 한 자들이다. 충분히 가능한 말이었다.
“그럼 저들의 눈을 피할만한 곳이 있겠느냐?”
독고무령은 미리 생각해 두었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숭산(崇山)의 소림사라면 어떻겠습니까?”
“소림사?”
“마침 제가 그곳과 연관된 비밀을 하나 알고 있습니다. 그 비밀을 건네준다면, 당분간 그곳에서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태원에서 숭산까지 일천오백 리 길. 더구나 길이 험하고 황하마저 건너야 한다. 마차로 가면 열흘이 더 걸리는 거리.
하지만 가족들의 안전을 생각하면 못갈 것도 없었다. 다시는 전날과 같은 악몽을 겪고 싶지 않은 그였다.
“흠, 그럼 가족들과 숭산 구경이나 가볼까? 가는 김에 낙양 구경도 하고 말이야.”
독고무령은 장이생이 순순히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소천이에 대해선 제가 따로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주겠느냐?”
“예, 장주님.”
순간 장이생이 이마를 잔뜩 찌푸리며 독고무령을 흘겨보았다.
“왜 누구는 어머니라 부르면서, 누구는 장주님이냐? 사람 그렇게 차별하는 거 아니다, 무령이 너.”
“죄송합니다. 아…… 버님.”
그제야 장이생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흠, 항상 아들이 하나인 게 아쉬웠는데, 마침내 둘이 되었구나, 허허허.”
그때였다. 밖에서 소설향과 장유유의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그것 때문에 저에게 불만이 있었던 건 아닌가요, 상공?”
“아무래도 그런가 봐요, 어머니. 이제야 아버지의 마음을 확실히 알았어요. 딸은 눈에 차지도 않나 봐요, 쳇.”
장이생이 재빨리 입을 막았다.
“헙!”
독고무령은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웃었다.
* * *
천공에 떴던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질 무렵, 검은 장포를 걸친 노인 하나가 북문을 통해 태원으로 들어섰다.
머리와 어깨 위에 잔뜩 먼지가 내려앉은 걸 보니 제법 먼 길을 온 듯했다.
노인은 성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후우, 산서를 한 바퀴 빙 돌았는데도 찾을 수가 없다니. 조금만 서둘렀어도 철검보에서 찾았을 텐데…….”
지난 두어 달 간 한 사람을 찾아다녔다. 물어볼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내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분명 연관이 있어.’
어느 날 한 사람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죽었을 거라 생각한 사람의 얼굴이 거기에 있었으니까.
동료들을 만난 그는 자신이 목격한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동료들은 자신이 잘못 봤을 거라 했다. 그 아이는 이미 죽었다면서.
자신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날 본 얼굴이 더욱 뚜렷하게 떠올라서 미칠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 즈음, 제왕성 내에서 한 사람에 대한 소문이 들려왔다.
-무천련의 청년고수가 백마방주 서문태강을 이겼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그 소문을 대충 흘려들었다.
그런데 곧 또 다른 소문이 돌았다. 이번에는 제왕성의 무사들이 직접 겪은 것이어서 좀 더 확실하고, 그래서 더욱 파장이 컸다.
-그자에게 삼단의 정예무사 수십 명이 죽음을 당했다. 심지어 검혼단의 부단주 궁천한마저 그자에게 밀려 부상을 입었다.
남자답게 잘 생긴 그자의 이름은 독고무령. 무천단 철검기의 기주였는데, 악마의 검이라 불릴 정도로 지독한 살검을 쓴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의 말에서 금원을 침입했던 청년의 모습을 바로 떠올렸다.
어쩌면 아닐지도 몰랐다. 그러나 확인이라도 해봐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그는 곧장 동료들에게 청년을 찾아보겠다는 말만 남긴 채 금원을 나섰다.
나중에 위지천백이 추궁할지 모르지만, 당장 중요한 것은 위지천백의 추궁이 아니라 청년을 만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서연에 도착했을 때는 청년의 행방이 사라진 뒤였다.
그는 어깨를 늘어뜨린 채 금원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채 사흘이 지나기도 전에, 철검보가 무너지고, 그 청년도 그곳에 있었다는 말이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암천사신!
어느새 청년의 이름 앞에는 무시무시한 별호가 붙어 있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금원을 나와 청년의 흔적을 쫓아 산서 서부를 남북으로 종행했다.
와중에 그를 보았다는 사람도 몇 사람이나 만났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가 철검보에서 청년과 함께 탈출한 사람들로, 그들 역시 그 이후로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후로는, 두 번 다시 그를 보았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노인, 막위지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로를 걸어갔다.
‘대체 어디로 간 거야?’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다른 성으로 멀리 가버린 것은 아닐까?
태원에서조차 찾지 못한다면 하북이나 하남으로 가봐야 할까보다.
사실 노인도 태원은 초기에 한 번 조사한 곳이어서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조사한 이후에 왔을지도 모르는 일. 하남으로 내려가는 길에 다시 한번 알아보기 위해 들른 것이었다.
‘후우, 늘그막에 수천 리 길을 여행해야할지도 모르겠군.’
그래도 찾아야 한다. 반드시!
그런데 그가 막 객잔 앞을 지나갈 때였다.
저만치서 다가오는 몇 사람이 보였다.
무사 일곱 명과 그들이 둘러싼 소녀 하나.
그들을 본 순간, 얼굴이 굳어진 막위지는 슬그머니 몸을 돌려서 골목 안으로 몸을 숨겼다.
‘호천위들이 무슨 일로?’
호천위가 호위하는 사람이라면 제왕의 가족이라는 말.
막위지는 골목에 몸을 숨긴 채 자연스런 자세로 그들을 살펴보았다. 소녀를 본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아이는 위지천백의 딸이 아닌가?’
그때 또 다른 자들이 느껴졌다.
좌우와 뒤에서 삼 장의 거리를 두고 따라오는 세 사람.
행색은 평범해 보였다. 그러나 성주의 딸인 위지선유로 인해서 정신을 집중하지 않았다면 알아채지 못했을 정도로 은밀했다.
그런데 단순히 따라오는 것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걷고 있었다.
막위지는 그들의 눈이 훑는 범위를 대충 계산해 보았다.
두 사람의 눈은 호천위에게서, 정확히는 호천위가 보호하는 위지선유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비밀호위? 저 정도의 고수가 호위라면……. 설마 제왕밀위?’
일순간, 막위지의 눈 깊은 곳에서 기광이 일렁였다.
그 시각.
호천위에 대한 정보가 운양에게도 전해졌다.
그들이 태원으로 들어섬과 동시, 태원 전체에 퍼져 있는 암천회 산하의 정보원들 눈에 뜨인 것이다.
그런나 정보를 전한 사람들조차 제왕밀위의 존재는 미처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운양은 그 보고를 듣고 곧장 독고무령에게 달려갔다.
“수상한 자들이 태원에 대거 들어왔는데, 그중 호천위도 있다고 하네.”
운양의 보고에 독고무령의 눈빛이 싸늘한 광채를 발했다.
호천위는 제왕의 위사들이다. 위지천백과 그의 가족을 지키는 자들. 그들이 태원에 들어왔다는 것은 그만한 자격을 지닌 사람을 호위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몇이나 되지?”
“모두 일곱인데, 소녀 하나를 호위하고 있다더군.”
문득 제왕지처에서 봤던 소녀가 떠올랐다.
혹시 그녀가 아닐까?
‘이름이 선유라 했지.’
위지성이 그렇게 불렀다.
‘위지선유…….’
독고무령은 그 이름을 밀호방에 있는 제왕성의 인물정보가 적힌 책에서 보았다.
알고 보니 그녀는 위지천백의 딸이었다.
철천지원수의 딸. 무천련을 피의 구렁텅이에 빠뜨린 자의 핏줄.
그런데 악감정보다는 실소만 나왔다.
‘정말 순진한 여자였어.’
그때 운양이 그녀의 정체를 추측해내고는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위지천백의 딸이 아닌가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