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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117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0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117화

 

117화

 

 

 

 

 

 

* * *

 

 

 

태원을 나선 독고무령은 북쪽으로 길을 잡고 말을 몰았다.

 

세 사람이 그와 동행했다. 진사혁과 사공화정 그리고 길 안내를 할 팔걸까지.

 

바람이 좀 강하게 불긴 해도 유난히 맑은 날이었다.

 

독고무령은 말을 몰며 파란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침에 봄바람 부는 평원을 달리니 기분은 상쾌했다.

 

하지만 속마음은 묵직하기만 했다.

 

‘전마 육풍원. 적어도 그만한 고수 셋 이상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래야 제왕성의 장로급 고수들을 막을 수 있어.’

 

지난 한 달여 간 피나는 수련을 하고 많은 무사들을 영입했다. 그 덕에 일류고수의 숫자는 제법 되었다.

 

거기다 절정고수도 이십여 명은 되고, 그들 역시 실력이 늘어서 사기가 한껏 올라 있었다. 비록 다 해봐야 과거 무천련에 비하면 반도 안 되는 전력이지만.

 

그래도 단결력이 강한데다가, 오늘 이 시간에도 무사들의 수가 늘고 있는 중이었다.

 

몇 달만 더 지나면 제왕성이 적어도 절반 이상의 전력을 쏟아 붓지 않는 한 쉽게 무너지지 않을 정도의 세력이 구축될 것이다.

 

다만 문제는, 제왕성의 장로급 고수를 상대할 사람이 태부족이라는 것이었다.

 

은룡산장이 움직였으니 제왕성도 움직이기 시작할 터. 혈풍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 본격적인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한 사람의 고수라도 더 영입하는 수밖에.

 

‘하다못해 삼괴라도 찾으면 좋을 텐데…….’

 

대체 어디로 간 걸까?

 

혹시 삼불곡으로 돌아간 거 아닐까?

 

운양에게 찾아보라고 할까?

 

독고무령은 깊어진 눈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북쪽으로 말을 몰았다.

 

 

 

육풍원은 태원에서 북쪽으로 백오십 리가량 떨어진 흔주(忻州) 남쪽 야산자락에 살았다.

 

독고무령이 그곳에 도착한 것은 태원을 출발한 지 두 시진 만이었다.

 

“저기가 육 대협의 집입니다.”

 

팔걸이 야산의 숲 끝자락에 지어진 외딴집 한 채를 가리켰다. 

 

통나무 사이에 흙을 발라 벽을 쌓은 집은 제법 튼튼해 보였는데, 집 외에는 담장도 없고 문도 없었다.

 

대신 듬성듬성 자란 대나무가 그의 집을 자연스럽게 감싸고 있어서 전원의 고즈넉한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독고무령은 말에서 내려 육풍원의 집으로 다가갔다.

 

진사혁과 사공화정도 말에서 내리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독고무령의 뒤를 따라갔다.

 

덜컹!

 

그때 문이 열리더니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오십 대 초반의 나이. 솔잎처럼 뻣뻣한 수염이 덥수룩하게 턱을 덮고 있는 커다란 체구의 초로인이었다.

 

사람이 오는 것을 알고 나온 듯 그는 조금도 놀라지 않고 독고무령 일행을 둘러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일로 왔는가?”

 

독고무령은 그의 삼 장 앞까지 걸어간 후 멈춰 섰다.

 

“전마 육풍원. 맞습니까?”

 

초로인은 침을 퉤 뱉고는 툴툴거렸다.

 

“제길, 한동안 조용히 잘 살았는데, 또 이사 가야겠군.”

 

은연중 자신이 전마임을 시인하는 육풍원이다.

 

독고무령은 이런저런 말 대신 자신의 옆구리에 걸려 있는 검을 두드렸다.

 

“전마의 검이 강하다는 말을 들었지요. 입으로 떠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무인 대 무인으로서 검으로 결정짓는 게.”

 

뜬금없는 독고무령의 말에 육풍원의 두 눈이 번뜩였다.

 

그는 별 괴상한 놈 다 본다는 눈빛으로 쏘아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뭘 말인가?”

 

“뭐든.”

 

“검에는 눈이 없네. 아직 나이도 어린 거 같은데, 좀 더 인생을 즐기고 죽어야 하지 않겠나?”

 

“누가 이길지, 두고 보면 알겠지요.”

 

육풍원의 굵은 눈썹이 꿈틀거리며 휘어졌다.

 

“죽으려면 그냥 분하에 빠져 죽지, 왜 나를 귀찮게 하는 건가?”

 

“사 년 전, 제왕성의 독선에 대항하며 검을 든 적이 있다 들었습니다. 이유는 그게 전부입니다.”

 

순간 육풍원의 몸에서 삭풍이 이는가 싶더니, 그의 입술을 뚫고 은은한 분노가 흘러나왔다.

 

“위지천백이 보냈느냐?”

 

“그가 비록 산서의 절대자가 되었다 하나, 나에게 명을 내릴 자격은 없지요.”

 

오만한 대답.

 

천하의 위지천백을 말 몇 마디로 깔아뭉개는 독고무령이다.

 

육풍원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독고무령을 노려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풀썩 웃었다.

 

“훗, 재미있는 놈이군. 좋다, 조금만 기다려라. 검을 가져오마.”

 

 

 

곧 육풍원이 커다란 장검을 들고 나왔다.

 

길이가 무려 넉 자나 되는 거검이었는데, 덩치가 큰 육풍원이 그 검을 들자 사자처럼 웅혼한 기세가 느껴졌다.

 

“오래 할 것 없이 초수를 정하는 게 어떻겠는가?”

 

육풍원의 제의에 독고무령은 짧게 대답하며 걸음을 옮겼다.

 

“십 초로 하지요.”

 

“그 정도면 적당하군.”

 

두 사람은 이 장의 거리를 둔 채 마당 중앙에 마주섰다.

 

진사혁과 사공화정과 팔걸은 멀찌감치 물러서서 눈에 잔뜩 힘을 주고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먼저 독고무령이 천천히 자신의 검을 빼들었다.

 

묵광이 은은하게 흐르는 검신이 모습을 드러내자 육풍원의 눈에 감탄이 떠올랐다.

 

“좋은 검이군.”

 

스르릉.

 

그는 자신의 넉 자 장검을 빼들고 하단으로 늘어뜨렸다.

 

눈앞에 있는 청년의 나이는 잘 봐줘도 자신의 반밖에 되지 않는다. 도망간 마누라가 데려간 자식이 살아있다면 이 청년 정도 될까?

 

그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검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조금 말라보이지만 잘 가꾸어진 몸매다. 잘생긴 얼굴에 박힌 두 눈은 오석(烏石)을 박아 넣은 것처럼 추호의 흔들림도 없다.

 

고요한 가운데 흐르는 무형의 기운.

 

육풍원의 두 눈에 가벼운 놀람이 일었다.

 

‘흠, 내가 잘못 봤나?’

 

강하다는 것은 처음 볼 때부터 알았다. 하지만 강호의 청년들 중에서 그저 조금 강한 정도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닌 것 같다.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청년의 몸에서 흘러나와 고요히 맴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더니, 잠깐 사이 숨 쉬기가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내가 잘못 판단했군.”

 

육풍원은 표정을 굳힌 채 검을 중단으로 들어올렸다.

 

동시에 웅패사자검기(雄覇獅子劍氣)를 일으켜 독고무령을 가리켰다.

 

순간, 독고무령이 한 발 앞으로 내딛으며 검을 내질렀다.

 

후우웅!

 

검첨에서 뻗은 묵광이 휘돌며 육풍원을 향해 밀려들었다.

 

육풍원은 공력을 팔성까지 끌어올린 채 웅패사자검을 펼쳤다.

 

두 사람의 기운이 석 자의 거리를 둔 채 얽혀들었다.

 

콰르릉!

 

뇌음과 함께 두 사람의 몸이 뒤로 밀려나고, 땅에서 일어난 누런 흙먼지가 회오리치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독고무령은 일 검의 여파가 사라지기도 전에 두 번째 검을 펼쳐 육풍원을 압박했다.

 

육풍원은 조금도 방심하지 못하고 웅패사자검을 펼쳤다.

 

우르르릉!

 

순식간에 삼 초의 공방이 이뤄지고, 직경 이 장 이내의 바닥이 들썩이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육풍원의 넉 자 장검에서 시퍼런 광채가 쭉 뻗어 나왔다.

 

“검강!”

 

구경하던 진사혁이 놀라 부르짖었다.

 

강기를 펼치는 거야 그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강기를 펼치기 위해선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육풍원은 순간적으로 강기를 펼치는 것이 아닌가.

 

별것 아닌 차이 같지만, 자신이 그 정도까지 이르려면 아직 수련이 더 필요했다.

 

바로 그때, 육풍원의 검강이 독고무령을 향해 뇌전처럼 뻗어갔다.

 

독고무령은 태천일심의 기운을 끌어올리고는, 한 줄기 번개가 되어 다가오는 검강을 직시한 채 검을 흔들었다.

 

천뢰무적파천검 중 뇌정파혼세(雷霆破魂勢)가 펼쳐진 순간!

 

쩌러렁! 쾅!

 

종이 깨어지듯 청량한 굉음과 함께 육풍원의 검강이 산산이 흩어져 허공으로 비산했다.

 

“헉!”

 

육풍원의 입에서 헛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회심의 일격이 너무 허망하게 무너졌다. 그것도 검강이 산산이 부서진 채.

 

서너 걸음 뒤로 물러선 그의 얼굴이 충격으로 인해 창백해졌다. 그나마 내력이 뒤틀리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하지만 기회를 잡은 독고무령은 조금도 사정을 두지 않고 검을 뻗었다.

 

확실하게 이겨야 뒤탈이 없는 법.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영롱한 묵광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독고무령의 검이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육풍원은 본능적으로 몸을 틀며 검을 휘둘렀다.

 

쩌정!

 

손목을 타고 어깨까지 뒤흔드는 시큰한 충격!

 

육풍원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바로 그 순간, 독고무령은 천뢰무적파천검 중 여섯 번째, 천뢰만영(天雷萬影)을 펼쳐서 육풍원을 압박했다.

 

머릿속까지 울리는 뇌성벽력!

 

우르릉!

 

육풍원은 아연한 표정으로 눈을 부릅떴다.

 

하늘을 찢어발긴 수백 줄기 벼락이 곧장 머리 위로 떨어진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곳이 없다.

 

어느 곳으로 피하든, 벼락이 자신의 머리를 가르고 몸을 두 쪽 낼 것 같다.

 

보고 있는 순간, 하나로 뭉쳐 거대해진 검영이 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뇌리가 하얗게 빌 정도의 공포.

 

육풍원은 난생처음 느껴보는 생경한 충격에 이를 악물었다.

 

‘어, 어떻게 이런 검이……!’

 

하지만 쳐다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그는 혼신의 공력을 끌어 올려 독고무령의 검에 맞섰다.

 

콰광!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

 

육풍원의 몸이 맥없이 뒤로 튕겨지고, 원을 그리며 해일처럼 밀려가는 먼지구름이 주위 오 장을 뒤덮었다.

 

주위에서 지켜보던 세 사람은 얼굴이 해쓱해진 채 뒤로 물러섰다.

 

독고무령은 먼지구름 속에 오연히 서서, 검을 지팡이 삼아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있는 육풍원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제가 이긴 것 같군요.”

 

육풍원은 입술을 질겅질겅 씹으며 억지로 입술을 열었다.

 

“너는…… 누구냐?”

 

먼지 섞인 바람이 독고무령의 머리를 쓸고 지나갔다.

 

그 사이로 독고무령의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독고무령. 암천의 주인.” 

 

 

 

육풍원의 내상은 그리 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심적 충격이 큰 듯 그는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독고무령은 그의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육풍원의 입이 다시 열린 것은, 근 이 각이 지나서였다.

 

그는 지팡이처럼 짚고 있던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에게…… 뭘 원하느냐?”

 

“당신의 검.”

 

“누구를 향해 휘둘러야 하지?”

 

“제왕성.”

 

육풍원의 눈이 잘게 흔들렸다.

 

위지천백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때부터 짐작은 했지만, 막상 독고무령의 입을 통해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큭, 그것은 마음에 드는군.” 

 

“어쩌면 더 마음에 드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후회는 하지 않을 거요.”

 

“그런가? 크큭, 늘그막에 바빠지게 생겼군.”

 

육풍원은 소매로 입가를 쓱 닦아내고는, 입 안에 고인 핏물을 뱉어냈다.

 

“퉤, 혹시 사람 더 필요 없는가?”

 

독고무령의 눈 깊은 곳에서 이채가 반짝였다.

 

“괜찮은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근처에 쓸 만한 놈이 하나 있네. 제왕성이라면, 아니 위지천백이라면 나 못지않게 이를 가는 놈이지. 실력도 그럭저럭 괜찮고 말이야.”

 

“누굽니까?”

 

“우도진이라는 놈이네. 사람들은 그를 귀창이라고 부르지.”

 

귀창(鬼槍)이라면 독고무령도 들어보았다.

 

창법이 하도 괴이신랄해서 그와 싸운 자들은 혼이 반쯤 빠진다고 했다. 전마에 비해 한 수 아래로 평가되지만, 그 차이라고 해봐야 백짓장 한 장에 불과했다.

 

쌍둥이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셈. 싫다고 하면 때려눕혀서라도 끌고 가야 했다.

 

“어디에 계십니까?”

 

“여기서 이십 리쯤 떨어진 산속에 있네. 얼마 걸리지 않을 거야.” 

 

‘흐흐흐, 나만 먼지 먹으며 돌아다닐 수는 없지. 안 그러냐, 우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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