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1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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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4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116화
1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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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날 저녁, 하루 종일 굶은 적충은 특급 고객들만이 이용하는 비밀통로를 통해 만금도국의 지하 이 층으로 찾아갔다.
그가 도착하자 마인걸, 역초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독고무령에게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했다.
“마인걸이 주군을 뵈오!”
“역초강이 충성을 맹세하오이다!”
“백귀회의 적충,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독고무령은 무릎을 꿇은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흑도의 진창에서 수십 년을 살아오며 나름대로 세력을 일군 사람들이다.
하루아침에 남의 밑으로 들어간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었다. 어쩌면 무릎을 꿇은 것도, 그저 잠시잠깐 위기를 벗어나보자는 것일 뿐, 진심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릎을 꿇은 이상 자신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독고무령은 말투를 바꾸고 세 사람을 동료로서 인정했다.
“일어나 앉으시오.”
세 사람은 몸을 일으켜 나란히 앉았다.
조금은 어색한 표정들이지만, 일단 작심한 일을 행한 후여서 그런지 조금 전보다 편안해 보였다.
독고무령은 자리에 앉은 세 사람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그대들 위에 있을 뿐, 앞으로도 태원의 밤은 지금처럼 그대들에 의해 지배될 것이오.”
뜻밖이라 생각했는지 세 사람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독고무령은 그들을 향해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강호의 세력들은 흑도를 우습게 여길지 모르지만, 나는 다르오. 나는 통합된 세력을 강호의 누구도 건들지 못할 만큼 강하게 만들 것이오.”
강호세력도 건들지 못할 만큼 강해진다?
누군들 그러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렇게 할 수가 없어 하지 못한 것이지.
마인걸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흑도라고 해서 삼류무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상승무공을 배우지 못해서 그렇지, 재능이 있어 하찮은 무공만으로도 일류고수가 된 자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심지어 싸우는 기술만으로 일류고수의 경지에 이른 자들도 있을 정도다.
어디 그뿐인가?
일을 저지르고 흑도로 숨어든 고수들도 적지 않다. 머리 위와 벽에 숨어 있는 자들처럼.
하기에 독고무령은 사람에 대해서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중에는 재능이 있는데도 배우지 못해서 묻힌 자가 하나둘이 아닐 것이오. 그들을 뽑아서 가르치면 어려울 것도 없소.”
말로는 쉽다. 그러나 말처럼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란 걸 세 사람이 잘 알았다.
사람들을 키워보려고 온갖 수단을 다 부려본 그들이 아니던가. 그래야 다른 파를 접수하고 태원을 집어삼킬 수 있으니까.
하지만 십여 년을 노력했는데도 일류고수의 숫자는 좀처럼 늘지 않았다. 그나마도 실컷 키워놓으면 타파의 고수들과 함께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앞으로도 그러지 말란 보장이 없었다. 강호 세력을 상대하게 된다면 필연의 일이니까.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키우면 된다.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어서 그렇지.
역초강이 넌지시 물었다.
“그들을 어떻게 가르친단 말입니까? 가려 뽑는다 해도 숫자가 적지 않을 텐데. 더구나 상승무공이란 것이 얻기 쉬운 것도 아니고…….”
“그 역시 걱정할 것 없소. 지금 준비 중이니까. 그대들은 일단 재능이 뛰어난 자를 선별하는데 전념하도록 하시오.”
마치 예정된 일을 진행하는 듯한 말투다. 자신들이 거부할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는 듯.
마인걸을 비롯한 삼파의 주인들은, 문득 든 생각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예정된 일이라면, 대항했을 경우의 일처리도 다 세워놓았을 것 아닌가.
간부들을 모두 죽인다고 했으니 그리 했을 터. 몸이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마인걸이 주저하며 독고무령에게 말했다.
“그런데 저…… 주군이 누구신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계속 귀면대인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역초강과 적충도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독고무령은 세 사람의 눈을 하나하나 직시하고 나직이 입을 열었다. 진기로 소리가 방을 벗어나지 못하게 막은 채.
“제왕성에선 나를 암천사신이라고 부른다 하오. 해서 우리의 모임을…… 암천회(暗天會)라 부를 생각이오. 단, 당분간 내 이름과 암천회라는 이름은, 오직 그대들의 머릿속에만 있어야 할 거요.”
일순간, 세 사람의 눈이 점점 커져갔다.
그들은 태원의 밤을 다스리던 자들. 암천사신이라는 이름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본 터였다.
‘맙소사!’
‘주, 주군이 암천사신!’
‘그럼 제왕성과 싸울지도 모른다는 말.’
세 사람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머릿속이 하얗게 비고, 두려움에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암천사신은 제왕성에서 혈안이 되어 잡아들이려는 자다. 그러니 암천사신의 수하가 된다면, 당연히 제왕성과는 적이 될 수밖에 없다. 산서의 절대자인 제왕성과 말이다.
일개 흑도단체를 이끄는 그들로서는 두려운 게 당연했다. 제왕성의 일개 단만 움직여도 몰살을 면치 못할 텐데 어찌 두렵지 않을까.
하지만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난 상태였다.
암천사신이 정체를 밝혔다는 것은,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배신하면 용서치 않겠다는 뜻.
이제 와서 거부한다면, 어쩌면 그가 선향루에서 한 말처럼 삼파의 수뇌들을 모조리 죽일지도 모른다.
이판사판, 뒤로 빠질 수도 없는 상황.
그들은 멀리 있는 제왕성의 검보다 앞에 있는 암천사신의 주먹이 더 두려웠다.
‘까짓 거,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목숨을 걸 거라면, 제왕성의 발을 닦는 하수인보다는 암천회에서 한 자리 차지하는 게 낫겠지.’
‘최대한 은밀히 움직이면 들키지 않을지도…….’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멀리 도망치지 뭐.’
세 사람은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였다.
“명심…… 하겠습니다, 주군.”
“무조건 따르겠소이다.”
“우리를 이끌어주시오, 주군!”
그날, 태원의 밤이 하나로 뭉쳐지고, 산서는 물론, 천하를 뒤흔들 ‘암천회(暗天會)’가 태동했다.
바야흐로 무저갱 저 깊은 곳에서, 세상을 휘감을 소용돌이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작게…….
제6장 전마(戰魔)와 귀창(鬼槍)
피바람이 불 거라던 예상이 빗나간 건가?
봄기운이 만연해지도록 별일이 벌어지지 않자, 산서의 무인들은 안도하며 긴장을 풀었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상으로 드러난 상황일 뿐, 대지의 저 깊은 곳에선 용암이 들끓고 있었다.
주인의 손에서 벗어나 산서의 절대자로 올라선 제왕성.
키우던 개에게 물렸다는 걸 알고 분노한 은룡산장.
서로의 심장에 검을 꽂을 날만을 기다리는 그들은 이미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 상태였다.
아마 화산이 분출하면 산서 전역이 불길에 휩싸일 것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시기가 언제냐 하는 것뿐.
그 사이 암천회는 그들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은 채, 묵묵히 무사들을 단련시키고, 암암리에 외부 고수들을 끌어들였다.
일류수준 이상의 무사를 영입하는 일은 운양의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은밀하게 이뤄졌다.
산서는 고대 때부터 전쟁의 몸살에 끊임없이 시달려온 곳이다.
전사(戰士)의 피가 흐르는 대지!
산서 사람들은 도검을 분신처럼 여기고, 창궁을 한시도 몸에서 떼어놓지 않고 살았다.
당연 강자들이 즐비했다.
운양은 강자들 중 제왕성과 적이 될 만한 자들만 추렸는데, 개중에는 절정의 경지에 이른 고수도 상당수 되었다.
그렇게 힘을 키워갈 무렵, 마침내 은룡산장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오월이 시작된 것을 알리려는 듯, 은룡산장을 주시하던 밀호방의 십일호에게서 전서구가 날아온 것이다.
독고무령이 방으로 들어가자, 운양이 한 장의 서신을 내밀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놈들이 움직였네.”
독고무령은 운양이 내민 서신을 읽으며 조용히 웃었다.
싸늘한 웃음, 한기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냉소였다.
[잠자고 있던 미꾸라지 오백 마리가 웅덩이를 떠났음.]
“드디어 시작인가?”
“아마 지금까지 벌어졌던 전쟁보다 훨씬 은밀하고 치열한 전쟁이 벌어질 거야.”
독고무령이 서신을 탁자 위에 올려놓자 운양이 입을 열었다.
“일단 터를 닦으려 하나보네.”
독고무령은 철검보에서 그들과 직접 맞부딪쳐 봤다. 하기에 은룡산장의 무사들이 강하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제아무리 최강의 정예무사들이라 해도 오백으로 제왕성과 대적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 운양의 말대로 터를 닦기 위한 전초대일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본대는 또 얼마나 강하단 말인가. 그들은 언제 올 것인가. 아니, 보내기는 보낼까?
거기에 대한 해답은, 저들의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나올 것이었다.
제왕성을 견제만 하고 말 것인지, 아니면 제왕성을 눌러 처음처럼 복속시키려 할 것인지.
“우선 하나하나 알아보지. 그들이 어디에 터를 잡을 거라 보는가?”
“일전에 몸을 숨기고 있던 우현의 장원을 이용하든지, 아니면…… 철검보의 대지에 둥지를 틀 수도 있겠지.”
“서연을 칠 가능성은?”
“그것도 생각 안 해본 것은 아니네만, 당장은 무리라는 생각이네. 그곳을 치려면 그들도 전멸을 각오해야 할 걸?”
독고무령은 잠시 생각하고는 또 하나의 이름을 꺼냈다.
“그럼 일원궁은 어떤가?”
“일원궁? 흠, 그것도 가능하겠지. 현재 일원궁의 힘으로는 그들을 막을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굳이 피해를 자초하면서까지 자리를 잡으려 할 이유가 있을까? 일원궁이 지리적으로 유리한 곳도 아닌데 말이야.”
“그러고 보니 제왕성이 일원궁을 그대로 놔두고 있는 게 그들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
“적의 적은 친구다, 뭐 그런 말인가?”
“친구까지는 안 되어도 같은 적을 두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지. 일원궁으로선 제왕성보다 은룡산장을 더 원수처럼 생각할 것이 아닌가?”
“흠…….”
“일단 일원궁에 사람을 보내게. 어쨌든 그들도 우리와 같은 편이 될 수 있는 자들이 아닌가? 관조운을 만나서 그의 생각을 들어보라고 해.”
“관초악이 아니라 관조운?”
“관초악은 감춰진 것이 많은 자야. 그자보다는 차라리 관조운이 더 상대하기 좋을 거네.”
관초악에게서 정체 모를 그림자를 엿본 적이 있었다. 독고무령은 그것이 께름칙했다.
지금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실수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차라리 관조운이 나았다.
운양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그리고 영입하려는 사람들 중 자네가 맡아줘야 할 사람이 두엇 있네. 좀 더 확실한 정보가 들어오려면 하루 이틀 정도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그 일을 먼저 처리하는 게 어떻겠나?”
“누구누군가?”
운양이 입꼬리를 비틀며 한 사람의 이름을 말했다.
“일단 육풍원부터 만나보게나.”
전마(戰魔) 육풍원.
산서에서 열손가락에 꼽히는 고수인 그는 본래 자신의 거처를 남에게 알리지 않고 유유자적 생활했다.
그런데 아주 우연한 일로 그의 거처가 알려졌다.
얼마 전, 백귀회의 간부 중 하나가 흔주(忻州)에 갔다가 죽도록 두들겨 맞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맞고 돌아온 자는 백귀회에서도 이십 위 안에 드는 중간 간부. 적충은 당연히 복수를 염두에 두고 적에 대한 것을 알아보았다.
조사책임자는 나름대로 강호인명에 밝다는 칠귀가 맡았다.
하지만 흔주로 간 칠귀는 육풍원을 본 순간, 그가 바로 전마임을 알아보고 도망치듯이 태원으로 돌아와서 적충에게 보고했다.
화들짝 놀란 적충은 곧장 운양에게 그 일을 이야기했다.
육풍원은 오래 전부터 제왕성과 척을 진 자. 운양이 영입하고자 했던 고수 중 하나였다. 사는 곳을 몰라서 접촉해 보지 못했을 뿐.
쾌재를 부른 운양은 그가 정말 전마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오래 전 육풍원을 한 번 봤다는 팔걸을 흔주로 보냈다.
그리고 어제 오후 늦게 팔걸이 돌아와서 보고했다.
“그 자는 틀림없이 전마 육풍원입니다, 방주.”
암천회에서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독고무령이 유일한 상황. 나호민조차 그에 비하면 한두 수 아래였다.
자존심 강하고 성질이 불같다는 육풍원을 끌어들이려면, 독고무령이 직접 가는 수밖에 없었다.
“알았네. 그자는 내가 만나보지.”